낭왕전생 3권 – 26화 : 쌍룡 입성 (1)
쌍룡 입성 (1)
“네가 방패막이가 좀 돼 줘야겠 “어.”
설우진은 칼끝으로 뇌기를 실처럼 뽑아 내 관해철의 칼을 붙들었다. 그리고 천뢰도를 안쪽으로 끌어당겨 관해철을 자신의 앞으로 유도했다. 푸욱.
묵강시가 관해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고 지나갔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라 어찌 피할 틈이 없었다.
“비, 빌어먹을.”
관해철이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일 반적인 화살이었다면 치료가 가능했 겠지만 묵강시에 당한 것이라 대라 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 수 있을 가 망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게, 한 번 인정을 베풀었으면 조용히 살지, 왜 기어 나와서 이 사 달을 만들어!”
설우진이 휘청거리는 관해철의 몸 을 부여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수치 심이 드는지 관해철은 숨이 간당간 당한 와중에도 손을 뻗어 설우진의 멱살을 틀어쥐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설우진이 그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너흰 자존심 상해 할 자격도 없어. 돈에 눈이 멀어 녹림도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질렀으니까.”
“……”
“너희 녹림도들은 녹림십팔가로 이 름을 바꿀 당시, 강호에 한 가지 선 언을 했었지.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인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실제 녹림대성회에서 발표된 내용 이었다.
그 안에는 단순한 도적에서 벗어나 강호의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녹림도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한동안 그 약속은 충실히 이행됐다.
상단을 털게 되더라도 여자와 어린 아이, 노인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우린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비록 네 여동생을 이곳으로 데려오 기는 했지만 그 몸에 위해를 가하지 는 않았다.”
“크큭, 그래 내가 네놈들하고 무슨 얘길 더 하겠냐.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자!”
설우진이 천뢰도를 거칠게 내리그었다.
섬뜩한 파륙음과 함께 관해철의 얼 굴이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관해철을 시작으로 일방적인 살육 전이 이어졌다.
광룡가의 산적들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분노한 설우진의 발걸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지나는 길목마다 시체가 산처 럼 쌓였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산적들 중 일 부가 도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은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쓰러 졌다.
등을 보이며 달려가는 이들에게 사 도치의 화살이 날아든 것이다. 백발백중.
사도치의 화살은 그 명성에 걸맞게 한 발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사이 설우진은 고대기와 마지막 일전을 벌였다.
고대기는 정면으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 여기고 광룡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설우진의 빈 틈을 노렸다.
파파팟.
묵강시가 연속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시간 차를 두고 날아드는 묵강시는 꽤나 위협적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말벌의 독침이 아무리 날카로운들 황소를 찔러 죽이겠는가. 설우진에 게 묵강시가 딱 그런 존재였다.
텅텅텅.
둔탁한 소음과 함께 묵강시가 옆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고대기가 안간힘을 써 가며 내기를 불어 넣었지만 천뢰도에 맺힌 벽력도강을 깰 수는 없었다.
‘끝났군.’
전통에 가득 채워져 있던 철시가 모두 소진되자 고대기는 손에서 활 을 놨다. 더 이상의 저항은 의미가 없다 여긴 것이다.
잠시 후 설우진이 그 앞에 마주섰 다.
“참으로 허망하군. 우리 광룡가가 한 사람의 손에 무너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그러게 적당히 욕심을 부렸어야 지. 내 동생만 건드리지 않았으면 네놈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까는 녹림대성회를 거론하며 네 놈들이 죽을죄를 지었다는 식으로 몰아갔지만, 그건 사실 우격다짐으 로 지어낸 명분에 불과했다.
“결국, 내 욕심이 자넬 불러들인 셈이군. 더 시간 끌 것 없이 끝내 지. 부하들도 다 죽은 마당에 구차 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는 않네.”
고대기가 목을 내밀었다. 이에 설 우진도 깔끔하게 천뢰도를 휘둘러 확실한 마무리를 지었다.
“공자님, 이제 뒷수습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철운성이 설우진에게 다가와 물었 다.
“무슨 뒷수습?”
설우진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철운 성을 바라봤다.
“광룡가는 녹림십팔가에 들어 있는 세력입니다. 그곳이 하루아침에 사 라졌는데 녹림에서 가만히 있겠습니 까?”
“음, 그건 미처 생각 못 하고 있었 네. 철 호위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설우진은 철운성에게 조언을 구했 다. 그의 강호 경험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일단은 흔적을 지우는 게 우선입니다.”
“그럼, 불을 지르면 되겠네. 쉽고 깔끔하잖아.”
설우진은 간단한 해결 방법을 지시 했다. 철운성은 영 달갑지 않은 표 정이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 의견에 동조했 다.
“불을 붙이는 건 제가 맡죠. 요화 살에 기름 뭉치만 매달면 번거롭게 일일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불을 붙 일 수 있습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도치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설우진은 별 고민 없이 그 의견을 수용했다.
“공자님, 광룡가가 모아 둔 재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창고 쪽에 금 은보화가 가득 쌓여 있던데.”
맹기담이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물 었다. 어느 틈에 둘러보고 왔는지, 그의 작은 두 눈이 초롱초롱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음, 그냥 두고 가기엔 아깝고 그 렇다고 바리바리 싸 들고 가자니 흔 적이 남을 것 같고. 어떻게 한다?’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든 문제였 다.
한데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이름은 바로 무영신투.
강호를 위진시켰던 전설의 대도였다.
‘가만, 나라고 비고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맹 호위, 혹시 이 근처에서 동굴 못 봤어?”
“동굴은 갑자기 왜……?”
“비동을 만들까 해서.”
“기관진식에 조예가 깊으신가 봅니 다?”
철운성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설우 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어진 설우 진의 말에 그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 그러졌다.
“비동을 만드는 데 무슨 기관진식 이 필요하지? 그냥 대충 입구만 틀 어막으면 되잖아.”
“대체 뭘로 입구를 막으실 겁니까? 작은 토굴이라면 모를까 바위 동굴 은 어지간한 크기의 바위로는 입구 를 틀어막을 수 없습니다.”
“왜 입구를 바위로 막으려고 해? 그냥 무너뜨리면 되지.”
“그, 그게 무슨?”
“당장에 그 보물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위치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나중에 언제라도 와서 찾아갈 수 있 잖아.”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쉬워. 그쪽으로 타고난 전문가가 있거든.”
설우진이 이처럼 자신감을 드러내 는 데에는 전생의 경험이 기반되어 있었다.
그가 맡아서 수행했던 의뢰 중에는 무덤을 파내는 일, 그러니까 도굴과 관련된 것도 심심찮게 있었다. 일은 궁상맞지만 다른 의뢰에 비해 보수 가 두 배 이상으로 많았기에 꽤 쏠 쏠한 돈벌이가 됐다.
그 일을 수행할 때 설우진은 항상 토룡신군을 불렀다.
토룡신군은 그 별호에서 짐작이 가 듯 지둔공에 있어서 가히 천하제일 의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 어떤 땅도 그의 손길만 거치면 길이 만들 어질 정도였다.
답이 정해지자, 설우진은 광룡가 안에 세워져 있던 수레를 끌고 창고쪽으로 향했다.
맹기담의 말대로 창고 안은 금은보 화로 그득했다.
광룡가가 얼마나 작업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자, 다들 수레에 실어.”
설우진이 역마삼귀에게 손짓했다. 네 사람이 빠른 속도로 창고를 오가 자 순식간에 수레가 가득 채워졌다.
“공자님, 동굴이 있는 쪽은 경사가 져서 수레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굳이 수레를 바퀴로 움직일 필요 는 없지. 셋이서 사이좋게 머리에 짊어져.”
순간적으로 역마삼귀의 얼굴이 딱 딱하게 굳어졌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얼마나 힘이 들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한 명이라도 더 손을 보태는 게………….”
사도치가 설우진의 눈치를 보며 말 꼬리를 흐렸다.
“원래 힘쓰는 건 서로 오랫동안 합 을 맞춰 본 이들이 해야 실수가 없 는 법이야. 그리고 아닌 말로 고용 주가 고용인이랑 함께 일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이건 특수한 경우……”
“됐고, 해 지기 전에 빨리들 움직 여. 날 저물면 길 찾기 힘들어지니 까.”
설우진은 사도치의 말을 중도에 끊으며 단예가 머물고 있는 대청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 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다 이내 수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마 진짜 광룡가로 쳐들어간 건가?”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백대호 가 눈을 떴다.
그는 한 시진쯤 전에 광룡가를 눈 앞에 두고 기절했었다. 설우진과 발 을 맞추다 탈진을 한 것이다.
정신을 차린 백대호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발소리가 새어 나갈까 한껏 발끝에 힘을 줬다.
“이, 이게 다 뭐야?”
광룡가 앞에 다다른 백대호는 눈앞 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여기저기 광룡가의 무사들이 쓰러 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평소 안면을 트고 지냈던 광룡가의 부가 주 관해철이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백대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꿈이라 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바로 그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현실임을 알려 주는 인물이 등 뒤에 서 말을 걸어왔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 서 있는 거야? 어서 가서 저 시체들 안채로 옮겨.”
“대, 대협, 사, 살아 계셨던 겁니 까?”
“어째 말투가 죽기를 바랐던 사람 같네. 네놈한텐 안된 일이지만 보다 시피 멀쩡해.”
“설마 혼자서 광룡가를 쓸어버린 건 아니시겠죠?”
“뭐, 호위들의 손을 조금 빌리기는 했지만 중요한 윗 대가리들은 내 손 으로 정리를 했으니 혼자서 쓸어버 렸다는 표현이 맞을 걸.”
‘저 말을 믿어야 할까? 아니, 믿을 수밖에 없잖아. 저 인간은 말짱히 서 있고 광룡가의 식구들은 저리 쓰러져 있으니.’
백대호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런 괴물과 맞서려고 했던 자신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대협, 저 시체들만 치우면 되는 겁니까?”
“응. 날이 저물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니까 서둘러.”
“네.”
백대호는 설우진의 심기를 거스르 지 않으려 부리나케 움직였다. 빠르 게 시체들이 눈앞에서 치워졌다.
작업이 마무리된 후, 사도치가 화 시를 안쪽으로 날렸다. 시야가 확보 되어 있지 않은데도 신기하게 화시는 미리 열어뒀던 창문 안으로 떨 어졌다.
안쪽에서 시작된 불은 거침없이 사 위로 번져 나갔다.
때마침, 바람까지 불어온 터라 순 식간에 광룡가는 커다란 불길에 휩 싸였다.
“아까, 내가 한 말 잊지 않았지? 굳이 날 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 는데 다시 우리가 얼굴을 보게 되면 그땐 사지가 남아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처신 잘해.”
산을 내려가기 전.
설우진은 백대호에게 이곳에서 보 고 들은 것들을 절대 입 밖으로 내 지 말라 경고했다.
처음엔 그냥 깔끔하게 죽여 버릴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철운성이 말렸다. 그가 죽 으면 대호채까지도 지워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대협, 걱정 마십시오! 저와 얼굴 을 다시 마주할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백대호는 단단히 약속을 했다. 설우진은 미덥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한번 믿어 보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대로 산 아래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