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2화 : 절반의 성공 (2)
절반의 성공(2)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그의 시선 이 닿기도 전에 위태성은 이미 전장 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진혼대가 그림자처 럼 따라붙었다.
-좌우로 나뉘어 놈들의 후미를 점 한다.
위태성이 진혼대를 절반으로 쪼갰 다. 그리고 반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흑랑대의 후미를 확보했다.
-쳐라!
진혼대가 흑랑대의 뒤에서 들이쳤 다.
정면의 천도대만 신경 쓰고 있던 흑랑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 었다.
후미에서 치고 들어오는 진혼대의 공격은 거셌다.
특히 위태성이 휘두르는 검은 빠르 면서도 상대의 방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강한 힘을 머금고 있었다.
진혼대의 개입으로 흑랑대는 앞뒤 로 싸 먹히는 불리한 형국이 됐다. 난전에 특화된 자들답게 쉽게 무너 지지는 않았지만 싸움이 길어진다면 제 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 터.
이에 고금추는 다급히 요굉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제야 요굉을 비롯한 백랑대가 느긋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전장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설우진과 비검대원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다들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입고 있던 옷은 넝마가 된 지 오 래고 찢겨 나간 살점은 옷을 찢어 묶었는데도 금세 붉은 피를 쏟아 냈 다.
“이걸로 우리의 역할은 끝난 겁니 까?”
유건호가 눈에 띄게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그는 대열의 후미에서 흑랑대원의 공세를 받아 냈다. 자신의 무공이 가장 뛰어나기에 희생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몸은 크고 작은 상 처가 그득했다.
급하게 지혈은 했지만 이 이상 무 리해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투지로 빛나고 있었다.
“나도 웬만하면 쉬라고 말하고 싶 은데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았어.”
“그게 뭡니까?”
비검대원들의 시선이 설우진의 입 으로 한데 모였다.
이에 설우진은 고월장 안에서 공격 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염궁대를 가리켰다.
“저놈들이 전장에 개입하면 팽팽하던 전황이 뒤집어 질 수 있어. 연기 가 걷히기 전에 놈들의 발목을 묶어 야 해.”
“저희만으로 상대가 되겠습니까?”
차건웅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물었 다.
남은 비검대원의 숫자는 서른 남 짓. 그마저도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절반에 불과했다.
“그거라면 걱정 마, 너희들의 역할 은 놈들의 시선을 끄는 것에 불과하 니까.”
“설마 혼자서 싸우려는 겁니까?”
“응. 솔직히 이곳까지 달려오는 내내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 보질 못해서 손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거 든.”
설우진은 모두가 기겁할 얘기를 태 연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무모한 자신감이 아니라 철 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 었다.
그는 두 무리를 이곳으로 끌고 오 면서 틈틈이 축뢰를 통해 단전에 뇌 기를 쌓았다.
동공인 벽뢰진천의 특징을 십분 활 용한 것이다.
덕분에 그의 단전에는 염궁대를 상 대하기에 부족함 없는 뇌기가 쌓여 있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한꺼번에 치 고 나가. 우리가 갑자기 옆에서 나 타나면 놈들도 빠르게 대처하기 힘 들 거야. 그리고 화살이 날아오면 옆으로 피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놈들은 강한 팔 힘을 활용해 곡사가 아닌 직사로 표적을 노리기 때문에 그 동작이 화 살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설우진이 적사호에게 들었던 염궁 대의 특징을 비검대에 그대로 전했 다.
비검대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월장 의 담을 타고 넘었다.
그리고 설우진이 지시한 대로 최대 한 거리를 벌린 채 염궁대 쪽으로 뛰었다.
“적이다!”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염궁대원 하 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염사독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염 궁대의 일부를 움직여 그들을 상대 하게끔 했다.
눈 깜짝할 사이 시위에 화살이 걸 리고 화살촉이 비검대의 가슴을 겨 냥했다.
투투퉁.
화살이 동시다발적으로 허공을 갈 랐다.
그걸 본 비검대원들은 설우진이 신 신당부한 대로 곧장 바닥에 엎드렸 다.
당연히 화살은 표적을 하나도 맞추지 못한 채 애꿎은 돌담에 틀어박혔 다.
염궁대원들은 다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와중 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두 번째 화살을 날 리지 못했다.
비검대원들을 이용해 염궁대의 시선을 돌린 설우진이 기습적으로 염궁대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휘몰아쳐라, 폭뢰.”
설우진이 단전에 쌓여 있던 뇌기를 한 번에 쏟아 냈다.
“크아악.”
끔찍한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 다.
어른 머리통만 한 뇌기 덩어리는 외곽에 위치해 있던 염궁대원을 그 대로 집어삼켰다.
“이놈!”
폭뢰에 수하들이 죽어나가자 염사 독이 악에 찬 일갈을 내질렀다.
그의 두 눈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 었다.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수하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이 직접 가 르침을 전수한 제자 같은 이들도 있 었다.
‘죽인다.’
염사독은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놨다.
분명 화살은 걸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눈에 뭔가 보였는지 설우진 은 갑자기 바쁘게 몸을 움직이기 시 작했다. 두 발은 좌우를 오가고 오 른손에 쥔 천뢰도는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사위를 휘저었다.
캉캉캉.
천뢰도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 져 나왔다.
물론 여전히 화살은 보이지 않았 다.
‘이게 말로만 전해 듣던 기시인가? 생각보다 더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데.’
설우진은 순수하게 기감을 활용해 염사독이 날린 화살의 위치를 읽어 내고 있었다.
기시는 이름 그대로 기로 만들어 낸 화살이다.
뚜렷한 형태가 없어 육안으로는 구 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설우진은 벽뢰진천을 거두고 야수감각도를 활 용해 기감을 극대화했다.
설우진이 기시의 위치를 정확히 읽 어내자 염사독은 수법을 달리했다. 기시에 회전을 걸어 방향을 예측하 기 힘들도록 만든 것이다.
푹.
설우진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솟 구쳤다.
피한다고 피했는데 반응이 반 보 정도 늦었다.
‘이거 만만치가 않은데.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고.’
설우진은 양쪽 발에 뇌기를 집중해 다리의 움직임을 가속시켰다.
기시가 날아오는 방향을 알 수 없 으니 상대 또한 조준을 할 수 없도 록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기민한 대응은 제대로 효과를 봤다.
설우진이 쉴 새 없이 움직이니 염 사독도 좀체 공격할 때를 잡지 못하 고 우왕좌왕했다.
‘지금이야.’
설우진이 방향을 선회해 염사독의 정면으로 내달렸다.
한발 늦게 이를 감지한 염사독은 다급히 기시를 쐈다. 하지만 준비가 늦어 제대로 회전을 걸지 못했고 설 우진은 그 빈틈을 뚫고 시위를 당기 던 그의 오른손을 겨냥해 천뢰도를 휘둘렀다.
서걱.
염사독의 손은 천뢰도의 힘을 버텨 내지 못했다.
붉은 핏물을 쏟아 내며 그의 오른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대, 대주님!”
그 모습에 놀란 염궁대원들이 다급 히 그를 불렀다.
“나, 난 괜찮으니 놈에게 공격을 집중해라. 부상을 입어 전처럼 기민하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잘려 나간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염사독이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 다.
그의 의연한 대처에 염궁대는 부리 나케 화살의 방향을 설우진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동시다발적으로 화살을 쐈다.
사위에서 짓쳐 드는 화살 세례는 큰 힘을 쏟아 낸 뒤 극심한 무력감 에 시달리고 있던 설우진에게 상당 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역시, 수신무위라 이건가.’
설우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뢰도를 움켜쥐었다.
천하의 야수감각도라도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모두 피할 순 없었다.
해서 설우진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달리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부지런 히 정면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옆으 로 튕겨 냈다.
그리고 그중에 미처 막아 내지 못 한 것들은 일부러 사혈을 피해 가며 몸으로 받아 냈다.
무모하지만 과감한 돌파였다.
‘이젠 내 차례다.’
염궁대의 진영 한복판으로 파고든 설우진이 이를 악물고 사위로 천뢰도를 휘저었다.
활은 접근전에 취약한 병기인지라 거리를 좁혀서 칼을 휘두르는 설우 진의 반격은 염궁대에 상당히 치명 적으로 다가왔다.
사사삭.
열이 넘는 염궁대원이 목을 움켜쥐 며 쓰러졌다.
급한 대로 활을 방패 삼아 막아 보려 했지만 천뢰도의 힘을 감당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두 진형을 파하고 뒤로 물러나 라.”
염사독이 바닥에 쓰러진 수하들을 일별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후퇴 명 령을 내렸다.
상대에게 거리를 내준 시점에서 염궁대의 우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그 말인즉, 싸움을 지속 해 봐야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염사독의 명령에 염봉대는 발 빠르 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설우진은 무리해서 염봉대의 뒤를 쫓지 않았다.
지금 그의 몸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사혈을 빗겨 갔다곤 하나 몸 곳곳 에 적잖은 숫자의 화살들이 박혀 있 었고 벽뢰진천의 뇌기도 거의 바닥 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피해를 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쯤에서 만족하고 물러나 야겠어. 아까부터 소리가 잦아든 것이 영감이 좋질 않아.’
설우진은 눈으로 염봉대를 견제하 며 후보를 밟았다.
격렬하게 치른 고월장 앞에서의 싸 움은 요굉과 위태성의 개입으로 잠 시 중단됐다.
싸움이 격해지는 와중에 두 사람이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역천회가 언제부터 쌍룡맹의 개가 된 것이냐?”
요굉이 사나운 눈초리로 위태성을 쏘아봤다.
그가 위태성의 검법을 알아본 건 과거 현무문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물론 그리 기분 좋게 얘기할 인연은 아니었다.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 르겠군. 갑자기 이곳으로 쳐들어와 소란을 피운 건 너희 마천이다. 한 데 어찌하여 우리를 쌍룡맹과 엮는 것이냐?”
위태성이 날 선 어투로 반문했다. 이에 요굉은 황룡학관에서 이곳까 지 오게 된 경위를 자세히 밝혔다. “그러니까, 황룡 학관을 습격한 자 들의 뒤를 쫓다 보니 이곳까지 이르 게 됐다?”
위태성의 얼굴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처음 싸움이 벌어졌을 때부터 왠지 일이 꼬인다는 생각은 했다.
문이 부서지고 난 뒤 시야는 연막 탄으로 인해 흐려져 있고 염궁대와 천도대의 연계도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유는 있 었다.
설마 그 상대가 마천의 전위부대, 그것도 상위에 들어 있는 흑랑대와 백랑대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에.
‘적사호, 그자에게 완전히 당했어. 가렴이의 서신으로 하여금 우리를 경동케 하고 마천의 전위부대를 끌 어들임으로 동패구상을 노린 걸테지.’
상황은 명확해졌다.
위태성은 더 고민하지 않고 자신들은 더 이상 싸울 뜻이 없음을 밝혔 다.
하지만 싸움은 쉬이 끝날 리 만무 했다.
요굉은 어느 정도 마음이 흔들리는 눈치였지만 문제는 고금추였다.
고금추는 천도대와의 싸움으로 휘 하의 부하 다섯을 잃었다. 다른 전 위부대에 비해 인원이 많지 않은 흑 랑대였기에 그 피해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요굉, 지금 저놈이 지껄이는 말을 믿는 거야?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지 어낸 개소리일 뿐이라고!”
고금추가 길길이 날뛰었다.
말리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다시 싸 움판을 벌일 기세였다.
이에 요굉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찍어 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질도 장소를 가려 가며 부려. 지금 이곳은 적진이야. 게다가 상대 는 수호 가문 놈들이 우리를 상대하 기 위해 비밀리에 양성한 수신무위 라고. 이대로 싸움을 지속하면 양측 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거야.
-니미럴, 내 부하 놈들이 다섯이나 죽었다고!
-정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흑랑대 만 데려가, 나와 백랑대는 빠질 테 니.
요굉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쯤 되자 고금추로서도 마음을 돌 릴 수밖에 없었다. 흑랑대 혼자서 수신무위 둘을 감당해 내기 힘들다 는 건 그도 빤히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빚은 결코 잊지 않겠다.”
고금추가 위태성에게 사나운 눈초 리를 보내며 살기를 거둬들였다. 잠시 후 흑랑대와 백랑대가 무장을 거두고 전장을 이탈했다. 그리고 뒤 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피해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