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9화 : 떨어지는 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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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9화 : 떨어지는 별(3)


떨어지는 별 (3)

“크윽.”

설무백이 마른 신음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여보!”

“아버지!”

그가 눈을 뜨자 여소교와 설우결 그리고 단예가 울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세 사람은 이틀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설무백은 배에서 치료를 받았다.

노도채의 식구들 중에 과거 의원이었던 이가 있어 가능했다.

한데 치료가 끝나고도 그는 쉬이 깨어나지 못했다. 피를 많이 흘린 데다가 거듭된 충격으로 심신이 많 이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여소교가 설무백의 손을 꼭 붙잡고 물었다.

“부, 부인, 여기가 어디요?”

“장강이에요.”

“……………배를 탄 것이오?”

“네. 우진이가 안배해 놓은 사람들 이 우릴 구해 줬어요. 용문걸이란 분이 이 배에 타고 있는 한은 누구 도 건드릴 수 없다고 했으니 이제 안심해도 돼요.”

여소교가 그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소상히 전했다.

설무백은 가족들이 무사한 것을 확 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 시 눈을 감았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몸 은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웠다.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다시 가족들 을 볼 수 없었을 테지.’

그의 머릿속에 궁악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무백은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 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말로라도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여 소교에게 어르신을 불러 달라 청했다.

한데 여소교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에 그는 직감적으로 궁악비에게 일이 생겼음 을 알아챘다.

“호, 혹,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생 긴 것이오?”

설무백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알아 온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 맺어진 인연의 끈은 결코 가 늘지 않았다.

여소교가 한참의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그분은 배에 타지 않으셨어요.”

“설마……?”

“아무래도 변을 당하신 듯해요.”

“겨, 결국 그리되고 말았구려.”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에 그의 눈시울은 축축하게 젖어 들었 다.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난 후 설무백은 용문걸을 찾아갔다. 혼자 서는 걷기 힘든 상황인지라 설우결 이 그의 발을 대신했다.

용문걸은 선수에 나가 있었다.

구룡탄은 물길이 험한지라 경험 많 은 이가 견시를 통해 타를 어느 방 향으로 틀지 알려 줘야 했다.

“아니, 몸도 성치 않은 분이 왜 밖 에 나온 겁니까?”

물길을 보고 있던 용문걸이 뒤늦게 설무백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은인께 인사는 드려야지요. 이 부덕한 몸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무백이 한껏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용문걸이 황급히 달려와 그의 허리를 세웠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전 그저 자 제분과 계약한 대로 이행했을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구명을 받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놈의 아버지 아니랄까 봐 고집 한번 더럽게 세군.’

용문걸은 고집스럽게 허리를 숙이 고 있는 설무백을 보며 자연스레 설우진을 떠올렸다.

설우진은 자신의 고집대로 밀어붙 이는 유형이었다.

좋게 말하면 추진력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불장군이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시죠. 구룡탄에 접어들면 갑판에 서 있기도 쉽지 않 을 겁니다.”

용문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진짜 아홉 마리의 용이 뒤엉켜 싸 우는 것처럼 물살이 거칠게 치고 있 었다.

“정말 저곳으로 들어가려 하십니 까?”

설무백은 그 위용에 압도됐는지 두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구룡탄은 다른 곳보다 물살이 센 만큼 웬만한 배는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저곳이 장강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때문이라면 굳이 그러실 필 요 없습니다. 가까운 포구에 내려 주시면 관부에 도움을……….”

“그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마천 놈들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관부의 병사들 따위는 반 식경이면 모두 쓰 러집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마시고 안에 들어가 쉬십시오.” 

용문걸이 설무백의 말을 중간에 자 르며 선실 안으로 떠밀 듯이 들여보 냈다.

그리고 얼마 후 노도채의 배가 구 룡탄으로 들어섰다.

용문걸은 바쁘게 양손을 움직여 길 을 알렸다. 바쁘게 돌아가는 타와 함께 배는 구룡탄의 중심으로 들어 갔다.

한데 신기하게도 구룡탄의 중심은 태풍의 눈처럼 물결이 잔잔하게 흘 렀다.


쾅!

설우진은 끓어오르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담벼락을 후려쳤고 순간 담 벼락이 그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설우진,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가족들이 뻔히 마천의 표적의 될 걸 알았으면서 왜 그렇게 안이하게 대 처한 거야?”

설우진은 스스로를 나무랐다.

애당초 적사호를 만나러 가지 않았 어야 했다.

그냥 집에 머물렀으면 최소한 가족 들만은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 을 것이다.

한데 자신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 는 바람에 이 사달이 벌어져 버렸 다.

‘설마, 놈들에게 끌려간 건 아니겠 지? 아닐 거야. 그리했다면 이곳에 내가 볼 수 있도록 협박장이라도 남 겨 뒀을 거야.’

설우진은 집에 도착해서 하루 반나절 동안 그날 있었던 흉사를 자세히 알아봤다.

거금을 들여 하오문의 정보를 사고 집 안에 남아 있던 흔적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다행히 가족들과 관련된 비보는 없 었지만 살아 있다는 직접적인 근거 도 없었기에 그는 좀체 불안감을 떨 쳐 내지 못했다.

끼익.

그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설가장 의 문이 열렸다.

설우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 로 손을 가져갔다.

들어오는 이가 마천의 졸개들이라면 그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문을 열고 나타난 이는 마천이 아니라 팽천호였다.

제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됐다. 단전은 잃었지만 어찌 됐든 목숨은 건지지 않았느냐.”

팽천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우 진을 위로했다.

그는 지난 사투의 여파로 단전이 부서졌다.

내력을 무리하게 끌어 쓰다 보니 기어코 그 그릇이 깨지고 만 것이 다.

하지만 그는 단전을 잃은 것에 크 게 좌절하지 않았다. 이미 야수도는 두 제자에게 이어졌고 야수도의 특 성상 내력이 없어도 충분히 강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곳으로 낭왕루의 식구들 이 오고 있다더구나.”

팽천호가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순간, 설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궁악비의 죽음은 그에게도 큰 충격 이었다. 그라면 어떤 위기 속에서도 제 한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찌 나올까요?”

“글쎄, 하지만 분명한 건 너에 대 한 감정은 좋지 않을 것이다. 아마 성질이 급한 놈들은 네게 칼을 겨눌 지도 모르지.”

낭왕은 낭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어떤 이는 아버지로 또 다른 어떤 이는 스승으로 여길 정도였다.

한데 그 낭왕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무리 계약을 이행하던 중에 생긴 일이라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 들이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낭왕이 외지에서 죽임을 당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피해 있는 게 어떻겠느냐?”

팽천호가 넌지시 권했다.

그는 낭왕루의 낭인들과 설우진의 충돌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 우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최악의 경우 네가 죽을 수도 있 다. 낭인들 개개인은 네게 부족할지 모르나 그들의 힘이 모인다면 너 혼 자서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팽천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경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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