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23화 : 개전, 피로 물드는 중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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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23화 : 개전, 피로 물드는 중원 (2)


개전, 피로 물드는 중원 (2)

그 언덕에는 하우연과 그가 이끄는 흑랑사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들이 이곳에 온 거지?’ 하우연은 생각지도 못한 백랑대의

출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분명 군사부에 전서구를 날렸 다. 그래서 당연히 사마중달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사마중달은 없고 백랑 대가 왔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하우연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백랑대주님을 뵙습니다.”

“놈은 어디 있느냐?”

“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한데 군 사님은 동행하지 않으셨습니까?” 

“군사는 천주님의 권위에 도전한 죄목으로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제 부터 이곳의 지휘는 내가 맡을 테니 넌 그만 학관으로 돌아가도록 해 라.”

요굉이 간략하게 사마중달의 사정 을 전하며 하우연에게 축객령을 내 렸다.

“이번 일은 우리 군사부 소관입니 다.”

“크큭, 누가 그 사부에 그 제자 아니랄까 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 구나. 난 지금 천주님의 명으로 이 곳에 왔다. 실각한 군사의 제자 따 위가 감히 천주님의 뜻에 반하겠다 는 것이냐!”

요굉이 기습적으로 하우연의 어깨 를 지그시 손으로 찍어 눌렀다. 하우연은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지 만 요괴의 힘에 눌려 점점 다리가 굽혀졌다.

“멀쩡한 다리로 돌아가고 싶다면 이쯤에서 고개를 숙여라.”

요굉이 최후통첩을 했다.

결국 하우연은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빌었다.

“무,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 진즉 이렇게 나왔어야지. 저 떨거지들 데리고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네.”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자 하우연은 흑랑사자들을 이끌고 부리 나케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떠난 뒤 요굉은 부하들을 이끌고 심덕촌을 향해 신형을 날렸 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두 그루 의 큼지막한 편백나무가 상징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요굉 이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설우진이 있었다.

“또 보네.”

설우진이 백랑대를 향해 반갑게 손 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요굉은 흠칫하며 손을 들었고 이에 뒤따르던 백랑대원들이 급하게 신형을 멈춰 세웠다.

‘저 태연한 태도는 뭐지? 우리가 이곳으로 찾아올 걸 알고 있었던 건 가?’

요굉은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설 우진을 눈앞에 두고도 공격을 망설 였다.

그리고 안력을 돋워 주변을 살폈 다. 혹시나 주변에 매복이 있지 않 을까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한데 아 무리 살펴봐도 수상한 움직임은 포 착되지 않았다.

“후훗, 뭘 그렇게 이리저리 살펴?

보다시피 이곳에 난 혼자야.”

“혼자 있는 것치고는 너무 여유가 넘친다고 생각지 않느냐!”

“그야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설우진이 요굉을 보며 얄밉게 웃었다.

“대주님! 그냥 저대로 두고 보실 겁니까?”

옆에서 맹고두가 발끈해 소리쳤다. 당장에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기세였 다.

하지만 요굉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분명 눈에 보이는 건 없는데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찝찝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이야?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이래봬도 바쁜몸이거든.”

설우진의 도발은 점점 강도를 더해 갔다.

결국 울화를 참지 못한 맹고두는 요굉의 허락도 얻지 않고 무단으로 달려 나갔다.

요굉은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다 이내 그 뒤에 대원 서넛을 빠르게 붙였다.

잠시 후 편백나무 사이로 맹고두를 비롯한 백랑대원들이 들어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우진은 오른 손을 갑자기 뒤로 잡아끌었다.

순간 백랑대원들 앞에 투명한 벽이 나타났다,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 게 지어진.

“흥, 이런 얄궂은 함정으로 우릴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맹고두는 재빨리 허리로 손을 가져 가 쏜살같이 칼을 뽑아 휘둘렀다. 백랑대의 상징인 혼백수라도였다. 혼백수라도는 올곧이 힘에 집중한 도법으로 움직임이 단조로운 반면 짧은 순간에 강한 절삭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맹고두는 당연히 이 정도 함정쯤은 손쉽게 돌파할 수 있으리 라 생각했다.

한데 벽에 칼이 부딪혀 튕겨 오르 는 순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뒤로 물러나.”

등 뒤에 따라붙고 있던 수하들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수하들은 그의 곁을 지나치고 있었다.

서걱.

섬뜩한 파륙음과 붉은 피가 사방으 로 비산했다.

수실에 잘려 나간 팔다리가 땅에 나뒹굴고 떨어진 목이 애처롭게 맹고두를 바라봤다.

“이 처 죽일 놈.”

속에서 천불이 솟았다.

이에 맹고두는 마기를 한껏 끌어냈 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마기는 도신을 빠르게 휘어 감으며 도강의 형태를 갖췄다.

도강을 머금은 칼날이 벽을 후려쳤다.

굳이 벽을 깨지 않아도 바깥쪽으로 돌아가면 될 것인데 그는 부득불 정 면 대결을 고집했다.

그사이 뒤쪽에서는 요굉이 백랑대 를 둘로 나누어 입구를 선회해서 지 나도록 지시했다. 설우진의 시선이 맹고두에게 쏠려 있는 사이 뒤를 잡 겠다는 계산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설우진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로 맹고두가 공격을 퍼붓고 있는 벽 쪽이었 다.

그리고 벽이 가까워지자 수실을 쥐 고 있던 손을 놨다.

순간 내기가 풀리면서 맹고두의 칼 이 손쉽게 벽 한가운데를 갈랐다. 칼끝에 실려 있던 힘이 크다 보니 자연스레 몸이 앞쪽으로 쏠렸다. 설우진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맹고두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 다. 물론 그 와중에 천뢰도는 제 역 할을 충실히 해냈다.

“커억.”

맹고두가 옆구리를 움켜쥐며 휘청거렸다.

얼마나 깊숙이 베었는지 몸 안의 내장이 다 비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지경이 돼서도 맹고두는 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설우진 하나만을 바라보며 맹공을 이어 갔다.

때문에 설우진은 발이 묶였다.

요굉은 맹고두가 만들어 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고두야, 네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마.’

맹고두의 등 뒤로 요굉이 들이쳤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맹 고두의 등판에 대고 자신의 애도를 찔러 넣었다.

푸슉.

맹고두의 배 속에서 기습적으로 도가 튀어나왔다.

설우진의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기에 그 공격은 충분히 위협적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나빴다. 설우진은 이런 식의 난전에 익숙했 다.

탕.

설우진의 왼손이 배 한가운데로 파 고드는 요굉의 도를 위에서 세게 내 려쳤다. 별거 아닌 동작처럼 보이지 만 그 한 수가 요굉의 공격을 무위 로 돌렸다.

때문에 애꿎은 맹고두의 목숨만 날 아갔다.

옆구리가 깊게 베인 상태에서 배로 파고든 도가 사타구니까지 내려가버렸으니 어찌 목숨을 부지하겠는 가.

“가, 간교한 놈.”

요굉이 원독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설우진을 바라봤다.

“목숨이 내걸린 싸움이야.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그리고 먼저 싸움을 걸어 온 건 그쪽이야.”

“그래, 맞는 말이다. 어디 누가 살 아남나 끝까지 싸워 보자.”

도에 묻은 맹고두의 피를 털어 내 며 요굉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맹 고두가 펼쳤던 것보다 더 완숙미가 엿보이는 혼백수라도의 기수식이었 다.

그런데 이번에도 설우진은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뒤돌아선 설우진이 후미에 대기하 고 있던 백랑대원들에게 달려들었 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도 그 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굉이 목청껏 소리쳤다.

“무리해서 놈의 공격을 받아 낼 필 요는 없다. 거리를 유지하면서 날 기다려라.”

요굉은 전력을 다해 설우진의 뒤를 쫓았다.

백랑대원들은 요굉의 지시에 충실 히 따랐다. 섣불리 맞서서 칼을 휘 두르기보다는 수비에 전념하며 거리 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볼 설우진 이 아니었다.

그는 철마들을 상대했을 때처럼 신 왕단을 통해 얻은 내공의 힘을 십분 활용했다.

퍼퍼펑, 펑펑.

폭뢰가 연속적으로 백랑대를 덮쳤다.

예전 같았으면 서너 번 정도에서 멈췄을 텐데 지금은 그 횟수가 열을 넘어갔다.

게다가 그 위력은 전보다 더 강해 진 상태.

다들 막아 보려 애를 썼지만 폭뢰 는 그들의 저항 의지마저 집어삼켜 버렸다.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백랑대원들 이 쓰러졌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도 눈이 풀려 있었다.

‘그, 그때보다 더 강해졌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눈앞에 설우진의 등판이 보였다. 그런데 요굉은 선뜻 도를 휘두르지 못했다. 백랑대가 일방적으로 휩쓸 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설우진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은 요굉이 물었다.

이에 설우진이 뒤를 돌아보며 답했 다.

“황룡 학관 이년 차 설우진.” 

“거짓말 마라. 어찌 너 정도의 실 력을 가진 놈이 일개 학관의 관도일 수 있느냐!”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지만 내가 네놈들이 강제로 점거한 학관 의 관도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 실이야. 그러니까 얌전히 저승으로 꺼져.”

설우진이 기습적으로 야수감각도를 전개했다.

요괴의 몸 곳곳에서 빈틈이 엿보였다.

처음 입구에서 조우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카캉, 캉캉.

빈틈을 파고드는 천뢰도의 움직임에 요굉이 정신없이 도를 휘둘러 막 았다.

마음의 평정이 깨진 상태였지만 괜 히 대주 자리를 꿰찬 것이 아니라는 듯 효과적으로 천뢰도를 흘려보냈 다.

“그래, 네가 누구든 이제 와서 무 슨 상관이겠느냐! 이 요굉, 마천의 자랑스러운 무사로서 네놈을 저승길 동무로 삼겠다.”

요굉이 몸 안의 마기를 폭발시켰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 지의 표현이었다.

마기를 잔뜩 머금은 요굉의 혼백수라도는 파괴적이었다. 지나는 길목마다 대기가 출렁이고 그 끝자락에서 아수라의 울부짖음이 일었다. 아수라와 뇌룡의 격돌.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백랑대원의 몸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갈가 리 찢겨 나갔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심덕촌을 지 켜온 편백나무도 요란하게 몸을 흔 들다 결국 허리가 부러졌다.

그렇게 얼마를 싸웠을까, 갑자기 요굉의 몸이 휘청거렸다.

몸 안의 잠력이 모두 소진되면서 그 여파가 몸 전체에 퍼진 것이다. 

“크큭, 이렇게 지랄 발광을 했는데 도…………… 칼집 하나 내지 못하다니. 이 싸움… 네 완승이다.”

“후훗, 그쪽도 나쁘지 않았어. 하니, 다음 생에는 부디 착한 놈으로 태어나라고.”

설우진이 요굉의 몸을 스쳐 지나며 칼끝으로 그의 목을 훑었다. 마천이 자랑하는 오대 전위대 중 하나가 완 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뭘 주워 먹은 거냐?”

“그렇게 티가 납니까?”

“대놓고 기를 뿜어 대는데 눈치를 못 채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 냐!”

설우진은 백랑대와의 싸움이 끝난 후 남궁벽을 윤허준에게 맡겨 두고 통천문으로 향했다.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행방이 묘연하던 설우진이 제 발로 나타나자 적사호는 반색을 금치 못 했다.

반가움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 지만 그는 얼굴에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솔직한 인간이었다.

“대체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던 게 냐? 집을 떠난 이후로 그 행적이 묘연하던데.”

“황룡 학관에 다녀왔습니다.”

“…설마, 놈들에게 분풀이라도 하려고 찾아간 것이냐?”

“다른 이유가 없지 않느냐?”

적사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반문했다.

“벽이 녀석이 그곳에 갇혀 있었습 니다. 놈들이 절 끌어들일 목적으로 납치해 간 것이죠.”

“마천다운 치졸한 수법이로구나. 그래, 벽이는 무사히 구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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