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31화
과거의 광부들과 함께 뛰고 있었지요.
마치 유령의 광산을 질주하는 산 자 같았습니다. 예언자는 진로를 막는 광부들을 뚫고 달렸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었지요. 그것은 과거의 모습이니 까요. 주위의 광부들도 서로를 마구 관통했습니다. 그 광부들 모두가 같은 시간대의 광부들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광부들이 서로에게 곡괭 이를 휘둘러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언자를 향해 정면으로 곡괭이를 휘두르는 광부들도 있었지요. 그것이 과거의 땅을 파던 과거의 광부 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예언자는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 모든 풍경을 비추는 조명 또한 온갖 시간대에 온갖 각도와 온갖 밝기로 비춰 진 것들의 중첩이라 신경이 남달리 예민한 사람은 몇 분 안에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언자의 입에선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지요. 예언자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벽을 짚었습니다. 계획이 어긋났어요. 광부들의 움직 임을 따르다보면 광산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예언자의 예상이었죠. 하지만 예언자는 그 광경이 그토록 신경을 혹사할 줄은 몰랐습니다. 예언 자가 벽을 짚고 있는 동안에도 과거의 유령들은 그를 통과해 지나갔습니다. 잠시라도 과거를 보는 것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과거의 빛들이 사라지며 그는 캄캄한 현실 속에 떨어지게 되겠지요. 예언자는 그 상태에서 자신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눈앞 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예언자는 광부들 사이에서 자신을 보았어요.
비명을 내뱉을 힘도 없었습니다. 예언자는 비명을 되새김질하며 과거의 자신을 보았습니다. 과거의 예언자는 길을 잃은 채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었 습니다. 예언자는 과거의 자신에게 그 정도로 절망하냐고 고함을 질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예언자의 뇌리에 그 다음 광경이 떠올랐습니 다.
예언자는 황급히 좌우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왕지네가 나타났을 때 예언자는 목이 메어 컥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예언자의 기억대로 과거의 왕지네는 과거의 그에게 물을 주며 시에프리너의 보물을 털 작정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모습을 주시하며 예언자는 다 른 과거들을 모두 지웠습니다. 광부의 유령들이 사라지며 예언자는 과거의 자신과 왕지네만 보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는 무릎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 었습니다. 가까스로 호흡이 진정되자 예언자는 말했습니다.
“고마워. 왕지네.”
그때 과거의 왕지네가 말했습니다.
“잠깐. 광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난 들키면 안 되니까…………”
과거의 왕지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예언자는 가슴이 철렁했죠. 과거의 왕지네는 정확히 그가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 눈엔 의아한 감정이 서려 있었죠. 기겁한 예언자가 쿵쾅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을 때 과거의 왕지네는 다시 과거의 예언자를 돌아보았습니다.
“좋아. 가자.”
왕지네는 과거의 예언자를 안내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멎은 듯한 기분 속에서 과거의 두 사람을 보던 예언자는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떠올렸 습니다. 예. 지상이었지요. 예언자는 킥, 킥 하는 소리를 내며 그 둘을 따라갔습니다.
과거의 왕지네는 두 예언자를 빠르게 지상으로 안내했어요. 멀리 광산의 입구가 보였을 때 예언자는 이제 과거를 향해 뜬 눈을 감아야 한다고 생각 했죠. 예언자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저 앞쪽에선 과거의 두 사람이 작별하고 있었죠. 과거의 왕지네가 몸을 돌려 현재의 예언자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과거의 눈을 감아야 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예언자는 다가오는 왕지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거리가 두 걸음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예언자는 두 팔을 뻗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예언자는 허공을 끌어안았죠.
예언자는 두 팔로 자신을 안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서 있었습니다. 조금 후 그는 눈을 떴죠. 그리고 현재만 보면서 걸어갔습니다. 그 현재에서는 동틀 녘의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