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그림자 자국 – 96화


오크 기술자가 언젠가 이루릴에게 말해 준 것처럼 인간의 신발명품 비행기는 도저히 중무장을 실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비행사들은 드래곤 레이디 를 신중히 겨냥하여… 권총을 쏘았어요.

아일페사스가 느끼기엔 그들이 조종석에 돌을 던지며 공중전을 하자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녀가 비행기 뒤로 날아가는 바람에 뒤로 총 을 쏠 때는 비행기와 탄환의 속도가 상쇄되어 정말로 돌을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었죠. 비행사들의 표정을 본 아일페사스는 그들이 정말 대단한 기술 과 집중력을 발휘하며 분투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어요. 아일페사스는 비행기를 자신의 경고에 대한 대답으로 인정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이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한다. 살고 싶으면 즉시 물러가라!”

바이서스 최초의, 그리고 세계 최초의 전투 비행대를 지휘하고 있던 편대장은 고글 안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의 공격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아일페사스가 그들을 경멸했기 때문에,

그는 기뻤습니다.

아일페사스는 비행기에 대해 아무런 경계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편대장은 마음속으로 아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번 작전에선 기혼자는 제외하 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편대장은 아내가 재작년에 죽은 덕분에 작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실전에서 선을 보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기에 아직 비행기 사이의 신뢰할 만한 통신 수단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이륙하기 전 지상에 서 작전을 협의했지요. 신호는 편대장이 보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적당한 때가 온 순간 편대장은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의 비행기가 아일페 사스의 목 부분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안쓰러울 정도의 미력한 공격으로 아일페사스를 방심시킨 것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지요. 비행기는 무방비 상태의 아일페사스에게 정확히 충돌했 습니다.

거대한 폭발이 아일페사스를 강타했습니다.

바이서스 인들의 비행기에는 연료가 별로 없었습니다. 당장 돌아가더라도 그들이 떠오른 간이 비행장까지 돌아갈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렇게 중량 을 줄인 후 비행사들은 남는 무게만큼 화약을 실었습니다. 예. 그 비행기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여 목표를 추적할 수 있는 대형 포탄이었습니다. 편도 비행만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포탄과 같군요.

비행기도 처음 보는 아일페사스가 그런 공격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편대장의 신호를 받은 비행기들이 사방에서 아일페사스를 향해 쇄도했습니다. 최초의 공격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아일페사스는 계속해서 무방비 상 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상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토벌군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죠. 비행기들은 숨돌릴 틈도 없이 충돌했고, 그때마다 황

금빛 드래곤의 거대한 몸이 이리저리 튕겨졌습니다. 그런 공격을 당하면서도 아일페사스는 모든 기술을 다해 추락만은 피했습니다만 그 때문에 그 광경은 더 처참한 것이 되었습니다. 땅에 쓰러진 사람을 분노한 이들이 둘러싼 채 마구 걷어차는 광경을 생각해 보세요. 피해자는 맞을 때마다 전율 하며 피하려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어서 도망칠 수도 없지요. 그런 모습이 3차원적으로, 드래곤적인 규모로 하늘에서 펼쳐졌습니다. 하늘엔 화염과 연기가 자욱했고 불 붙은 파편과 피, 황금빛 비늘들이 비산했습니다.

편대장의 비행기가 충돌한 후 몇 번 아일페사스를 놓쳤던 마지막 비행기가 충돌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20초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일페 사스와 바라보고 있던 이들은 몇 년이 지난 듯한 기분이었어요. 놀랍게도 아일페사스는 마지막 충돌을 겪은 후에도 추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대로 날지도 못했지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장교들이 넋을 잃은 병사를 다그쳤습니다.

“발사! 발사! 쏴 떨어트려! 정신을 차리게 하지 마!”

병사들은 진저리를 치며 총구를 들어올렸습니다. 많은 것들이 떠다니는 지저분한 하늘을 소총탄과 기관총탄이 갈랐습니다. 포병들은 한 번도 쏴본 적이 없는 각도로 포구를 들어올려 하늘을 쏘기도 했지요. 막무가내의 사격이었지만 과녁이 터무니없이 거대해서 명중탄이 제법 나왔습니다. 드래곤 레이디는 더 이상 비행할 힘을 잃었어요. 그대로 뚝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급강하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그 모습을 보던 왕은 갑작스러운 예감에 입을 벌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며 자신의 예감이 맞는지 확인했어 요. 확신할 순 없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어쩌면?

드래곤 레이디는 땅을 들이받았습니다.

충격 때문에 땅이 흔들리고 군영 내의 깃대들이 쓰러졌습니다. 자세가 불안정했던 이들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지요. 충격은 곧 사라졌지만 그들은 말을 잊은 채 아일페사스의 추락 지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어요.

마침내 흙먼지가 내려앉았을 때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황금빛 드래곤의 처참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예언자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어 요.

‘드래곤 레이디의 방해를 물리치고 저 단단한 바위벽을 뚫고 들어가 시에프리너를 죽일 수 있단 말이오?’

왕은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시에프리너에게 향하는 길을 막고 있던 바위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드래곤 레이디가 충돌하는 바람에 전부 무너져내렸거든요.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