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01화
땅의 정령은 오랜 벗의 무반응에 초조함을 느끼진 않았어요. 원래 초조함을 모르거든요. 정령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이루릴은 땅의 정령이 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예상대로 왕비는 코볼드 통로로 다가오고 있었어요. 예언자를 대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자도 있다는 말에 이루릴은 약간의 동요를 느꼈 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집중력 대부분은 그곳에 있지 않은 존재에게 할애되고 있었지요.
전달을 끝낸 땅의 정령은 침묵했습니다. 이루릴은 자신의 가슴을 살짝 끌어안았어요. 그녀의 민감한 귀에 왕지네의 조금 커진 호흡 소리가 들려왔습 니다. 이루릴의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낀 것이 분명했어요. 이루릴은 땅의 정령이 가르쳐준 왕비 방향을 보았어요.
‘그림자 지우개는 저기에 있어.’
그것은 아프나이델의 마지막 바람처럼 구층탑에 천 년 동안 유폐되어서 파괴되어야 했습니다. 이루릴은 그것을 돌려놔야 했어요. 거기엔 의심의 여 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루릴은 알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내부에 떠도는 기묘한 질문이 무슨 뜻인지를.
‘어느 쪽을?’
왕지네가 이루릴의 어깨를 살짝 붙잡았습니다. 이루릴은 그녀를 보았어요.
“욕 할래?”
이루릴은 왕지네의 눈 속에 떠오른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어요.
“당신, 마음 더듬이가 길군요.”
왕지네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이루릴은 빙긋 웃었죠.
“안 해요.”
이루릴은 결정했습니다.
왕은 팔에 격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의 손아귀에서 검이 사라졌어요. 놀란 왕은 쨍그랑 소리에 고개를 돌렸지요. 칼은 저 먼 곳에 떨어져 두 방향으로 구르고 있었어요. 두 토막이 났거든요.
왕은 드래곤 레이디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지요. 새카만 머릿결을 제외하면 그녀와 대단히 비슷한, 마치 머리빛깔만 다른 자매처럼 보 이는 엘프가 한 손에 장검을 든 채 다른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엔 소총을 든 인간 여자가 있었어요. 인간 여자가 소총으로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은 권총을 뽑지는 못했습니다. 왕은 흑발 엘프를 날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시에프리너?”
흑발의 엘프는 아일페사스를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이루릴 세레니얼입니다.”
왕은 정말 놀랐습니다.
“아프나이델을 데려간…………! 아직까지 살아 있었소? 왜 바이서스에 적대하는 거요?”
“나는 친구를 구하러 왔습니다.”
왕은 아일페사스를 보았습니다.
“친구라. 그렇다면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친구를 말렸어야 했다고 생각하진 않소?”
이루릴은 왕의 지적을 무시했습니다. 그녀는 아일페사스의 머리를 자신의 입 가까이로 가져와 속삭였어요.
“꽉 붙잡아요. 펫시. 시에프리너의 곁으로 가겠어요.”
아일페사스가 발작적으로 이루릴의 옷깃을 부여잡았습니다.
“지금 가면 우리도 죽이려 할 거야. 다른 곳으로 가야 해.”
“괜찮아요. 방법이 있어요. 왕지네를 잡아요.”
이루릴의 품에 안긴 아일페사스는 힘없이 손을 뻗어 인간 여자의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