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22화
‘어느 쪽이지?’ 왕비는 생각했습니다. 왕은 어느 쪽일까요?
왕은 전장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청년이었습니다.
왕은 심장이 약한 중년이었습니다.
왕은 근대에 접어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땅을 얻으러 나선 활기 넘치는 모험가였습니다.
왕은 동생과 동생의 아들에게 주기 위해 솔베스를 원하던 온화한 군주였습니다.
왕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 무시한 채 바이크를 탔습니다.
왕은 가장 고귀한 이답게 점잖게 말을 탔습니다.
어느 쪽일까요? 대답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꽤 간단할 수도 있습니다. 왕비는 자신이 어느 쪽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왕비는 자신이 둘 모두를 다른 쪽보다 더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왕비는 자신이 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이유를 깨달은 왕비는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예언자를 쳐 다보았습니다.
“어느 쪽이냐고?”
“예. 어느 쪽이죠?”
“무슨 뜻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예언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엾은 것을 보듯 왕비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어요. 하지만 예언자가 가엾게 여기는 것이 왕비인지는 조금 불 확실했습니다. 참을 수 없게 된 왕비가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을 때 예언자의 입이 무겁게 열렸습니다.
“오늘은 덤으로 주지.”
왕비가 파랗게 질렸습니다. 솔베스의 아침, 밤새 데워진 침대, 예언자의 흉터 가득한 등, 그리고 그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 그런 것들이 왕비의 머릿 속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예언자는 그녀의 등에다 대고 말했죠. ‘나의 내일로 너의 내일을 사고 싶어.’
그래서 왕비는 예언자의 등에 손가락으로 썼지요. ‘오늘은 덤으로 주지.’
왕비는 자신의 옷깃을 움켜쥐었습니다.
“그건 내가 아냐.”
“그럼 당신은 누굽니까?”
왕비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왕의 인생을 값있게 하는 여자였지요. 선왕이 패전의 충격으로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은 후 공석이 된 왕위에 오를 만한 인물은 선왕의 조카밖에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선왕의 조카는 패장이었지요. 미망인이 된 왕비가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는 왕위에 오르기 힘들었을 겁니다. 백모와 시조카의 결합은 왕실의 분위기를 일신하면서도 기조를 흔들지는 않는 적절한 패전 처리였지요. 게다가 다 행스럽게도 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게… ‘아냐!’
왕비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왕을 깊이 사랑하는 여자였지요. 그래서 그녀는 동생과 조카의 죽음과 패전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왕 에게 승리를 주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기로 했지요. 하지만 상실된 군사력을 복구하기도 벅찬 바이서스가 당장 승리를 획득할 현실적인 방법은 없었 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초현실적인 수단에 손을 뻗기로 했지요. 바이서스에는 마침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왕비는 예언 을 거부하는 그를 회유하고 고문하다가 마침내 그의 자식을 가지는 방법으로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바이서스 왕가에 예언의 혈통을 추가할 수도 있는 기발한 해결책………… ‘아냐!’
왕비는 프로타이스가 있던 세상의 그녀와 프로타이스가 원래부터 없던 세상의 그녀 중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쪽을 포기할 수 없었 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왕비는 자신이 누군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언자가 말했지요.
“당신은 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