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26화
왕비는 절을 하듯 허리를 굽히고 있는 왕을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보았어요. 예언자가 쏜 탄환은 허리를 굽힌 왕의 등 너머를 통과하여 시에프리너 의 품에 있던 알에 명중했습니다.
알 껍데기가 비산했고 그 안쪽에서 점액질의 액체가 출렁 치솟았습니다. 붉은 색과 갈색, 노란 색 등이 뒤섞인 그 진득진득한 농즙은 아주 짧은 순간 살아있는 생물인 양 허공을 부여잡으려 애쓰다가 그대로 바닥에 좍 뿌려졌고 그중 일부는 시에프리너에게 튀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머리를 숙여 깨진 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녀의 몸에, 그리고 바닥에 뿌려져 있는 농즙을 보던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은 목을 구부렸 습니다. 그녀의 입이 열리며 기다란 혀가 나왔어요.
그녀는 그 붉고 노란 점액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왕지네가 급히 몸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유모차의 손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론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소용없는 짓이었죠. 왕지네는 손을 떼고 맹렬한 구역질을 시작했어요.
예언자는 왕지네를 보진 않았어요. 그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핥는 시에프리너를 보며 무심히 트라이던트 라이플의 레버를 움직였습니다. 철컥 소리 가 나며 뜨거운 탄피가 튀어나갔습니다. 예언자는 다시 레버를 밀었다 당겼습니다. 약실에서 발사를 대비하고 있던 차가운 탄약이 어리둥절한 채 탄 피 배출구로 튀어나왔어요. 예언자는 느릿한 동작으로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그것은 시에프리너의 혀가 움직이는 속도와 비슷했어요.
철컥, 탁, 철컥, 탁.
후룩, 쩝, 후룩, 쩝.
왕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왕비는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시에프리너의 알이 깨졌어요. 왕비는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며 그 사실을 공식화했습니 다.
“파멸의 알이 깨졌어.”
더 큰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초조감 같은 것을 느끼며 왕비는 그 말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파멸의 알이 깨진 거야.”
잘 안되었습니다. 거듭된 충격 때문에 왕비는 기쁨을 느끼기도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깨진 알을 핥고 있는 시에프리너의 모습이 그녀의 정신을 짓눌 렀어요. 그녀는 딱히 어떤 뜻을 담지 않은 채 왕을 향해 팔을 뻗었습니다. 하지만 왕 또한 시에프리너를 보느라 그녀의 손짓을 보지 못했습니다.
왕지네는 그때까지도 자신을 뒤집을 기세로 구역질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왕지네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왕지네는 그 팔을 붙잡았습니다. 그녀는 그 팔의 주인을 끌어안고 싶었어요. 하지만 몸을 편 왕지네는 깜짝 놀라며 어깨를 경직시켰습니다.
거기엔 어떤 인간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법을 사냥감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세계에 살아온 왕지네는 온갖 험악한 인상의 범죄자들에게 익숙했어요. 하지만 그런 왕지네도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는 인간 남자만큼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죠. 눈이 두 개에 코가 하나, 입도 하나 있었지요. 그리고 그것들 모두 통상적인 위치 에 제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지네는 그것들 모두 엄청나게 잘못된 위치에 붙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잘생겼다거나 못생겼다는 수준이 아니라, 어째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수준이었어요. 그 때문인지 왕지네는 남자가 완전한 알몸이라는 건 그리 신경쓸 수도 없었어요.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그렇게 생기면 안 되는 남자가 말했습니다.
“먹지 마. 시에프리너.”
시에프리너가 남자를 보았습니다. 순간 시에프리너에게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지금껏 이 세상이라는 책을 두드리고 긁고 냄새 맡던 그녀가 갑 자기 그것을 펼쳐 읽기 시작한 것 같았죠. 시에프리너는 긴 혀로 얼룩덜룩한 이빨을 핥고는 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프로타이스?”
왕지네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어요.
‘프로타이스?’
프로타이스라 불린 남자는 부드럽지도 험악하지도 않은, 지어선 안 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 시에프리너. 먹지 마.”
시에프리너의 독서가 계속되었습니다. 서두는 넘어간 것 같았어요. 그러곤 예전에 읽던 책이라는 것도 떠올린 것 같았죠. 시에프리너는 고개를 숙여 자신이 핥던 것을 보았습니다.
지그시, 물끄러미, 집요하게.
시에프리너의 입에서 불그스름한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이 바닥에 닿은 순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