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39화
몸에 와 닿는 바람의 습기와 냄새를 무의식적으로 검토하며 동쪽으로 날아가던 시에프리너는 충분한 구름이 모일만한 바람을 느끼자마자 다시 선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래에는 유서 깊은 이라무스 시가 있었지요. 이라무스 시민들은 시에프리너의 모습을 보자마자 집 안으로 도망쳤지요. 토벌군이 간 방향에서 푸른 드래곤이 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자명하니까요. 상황 판단은 나무랄 데 없지만 솔베스에서 일어난 일을 고려해 볼 때 그 들의 대책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시에프리너가 하늘에 매달아 놓은 뒤집힌 산에서 다시 벼락이 쏟아졌습니다.
화염 폭풍이 이라무스시를 휩쓸었습니다. 거대한 아궁이로 변해버린 이라무스에서는 연기도 제대로 솟아오르지 못했어요. 강력한 대류풍이 휘몰아 치고 있었기 때문이죠. 연기 대신 솟아오른 것은 수백, 수천 큐빗짜리 불꽃들이었습니다. 불의 크라켄이 땅 위에서 요동치는 것 같은 광경이었지요. 그 위를 선회하며 시에프리너가 포효했습니다.
“내 알!”
황금빛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일페사스가 도착해서 본 것은 묘하게 깨끗한 이라무스 시의 폐허였습니다. 일반적인 대화재와 달리 화염 폭풍 은 연기와 재를 모두 하늘 위로 날려버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마도 조만간 검은 비가 내리게 되겠지만 그녀가 목격한 이라무스 시는 시커먼 빛뿐임 에도 불구하고 표백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라의 정갈함이라고 할까요. 하늘을 돌며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아일페사스도 그것이 지나치게 깨끗한 방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논밭에 불을 지르는 간단한 방법 놔두고 힘을 너무 쓰는군. 서로를 잡아먹게 될 때까진 몇 달도 안 걸릴 텐데.”
아일페사스의 목 뒤에 앉아 있던 이루릴은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지만 그녀 곁에서 왕자를 안고 있던 왕지네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마세요. 드래곤 레이디.”
“농담?”
“방금 한 농담 말이에요. 그런 농담은 좀 그렇잖아요.”
이루릴은 왕지네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조금 늦었죠. 모든 드래곤의 조언자이자 후원자이며,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자식을 잃어야 했던 어미의 친구인 아일페사스가 외쳤습니다.
“드래곤 레이디가 그녀의 친구, 이웃, 종복에게 우정, 보상, 충성을 대가로 부탁, 요구, 명령한다. 바이서스 인의 논밭을 불태우고 가축을 전부 죽여라! 어선을 침몰시키 고 해안을 죽음으로 물들여라! 그러나 인간은 내버려둬라. 그리하여 바이서스 인이 바이서스 인을 먹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