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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60화


왕지네는 말했어요.

“당신 여전히 거기 있는데.”

“진짜 내가 있어?”

수차례 들었던 반문을 들으며 왕지네는 다시 한 번 계약에 대해 후회했습니다. 프로타이스는 음울하게 말했어요.

“어떡해. 정말 미친 드래곤인가 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걸 보니 내가 여전히 있나 보군.”

“표정 읽는 척하지 마. 옷도 간지럽다고 못 입으면서, 당신 나한테 마법 썼지?”

프로타이스는 왕지네에게 각등을 내밀었어요.

“고장났군. 젠장. 아프나이델이 결국 성공했나 보네. 이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당신 기념품이나 해. 계약은 지킬 테니 걱정 말고.”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나한테 마법 썼어, 안 썼어?”

“그래. 이 물건은 구층탑을 만든 마법사 아프나이델이 만든 거야. 아프나이델은 젊은 시절 영원의 숲이라는 곳에서…”

왕지네는 포기했어요. 그녀는 각등을 받아들고는 프로타이스의 괴상한 말이 귀 옆으로 흘러지나가게 내버려두었습니다. 몇 번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정말 괴상하다는 평가만을 재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녀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확고한 걸음으로 프 로타이스를 등진 채 걸어갔습니다. 물론 프로타이스는 그녀를 따라 걸으며 계속 이야기를 했죠. 견딜 수 없게 된 왕지네는 좀더 강력한 수단을 써보 았어요. 그녀는 크게 혼잣말을 했죠.

“인육의 값은 얼마일까?”

프로타이스가 뜨악한 얼굴로 입을 닫았기에 왕지네는 조금 놀랐지요. 프로타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왕지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너 나한테 살 팔 거야?”

왕지네는 발을 헛디디곤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어요. 가까스로 똑바로 선 그녀는 비명을 질렀죠.

“꺄아악! 무슨 소릴!”

“고기 값이 궁금하다면서. 아. 나 말고 다른 드래곤에게 팔 거야? 네 살 어떻게 할지야 네 자유지만 그런 식으론 체중 감량할 수 없어. 죽어.”

“내가 감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이게 아니지. 드래곤 레이디가 그랬잖아. 인육에 값이 매겨질 때까지 계속 우리를 괴롭히겠다고. 하 도 끔찍하고 기가 막혀서 해본 소리야. 알아?”

“아일페사스가 그런 말을 했어?”

“당신, 당신 저항할 것 말고는 어디에도 관심이 없지?”

프로타이스는 갑자기 허리를 펴며 위엄 있게 말했어요.

“관심 있어.”

그 이상으로 실망스러운 대답을 왕지네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요. 왕지네는 넌더리가 난다는 손짓을 해보이고는 속도를 높여 걸어갔습니다. 그녀를 따라잡은 프로타이스가 말했어요.

“관심 있다고.”

“됐어. 내버려둬. 계약도 그만 파기하자. 나도 당신 원하는 것 못 가져다 줬으니까.”

“나 값도 알아.”

왕지네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녀는 크게 뜬 눈으로 프로타이스를 쳐다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을 이해하면서도 왕지네는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조금 후 왕지네는 쉰 목소리 로 속삭였습니다.

“값을 알아?”

“공짜야.”

“뭐?”

“공짜로 주던데. 자기는 안 먹을 거라면서. 그래서 먹으려다가 관뒀지. 왜 그랬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왕지네는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나마나 먹으라고 하니까 저항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왕지네는 프로타이스가 왜 공짜로 받은 인육을 먹지 않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값이 매겨졌단 말이지? 응? 당신 그렇게 말한 거지?”

“응? 아, 그래. 금액이 0이지만 매겨진 건 맞아. 그건………….., 왜 울어?”

무슨 소린가 하던 왕지네는 볼에 축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눈 주위를 훔쳤어요. 손가락에 눈물이 묻어나왔죠. 왕지네는 당황했어요. 그러 다가 곧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기뻐서 그러지! 가자!”

“어디 가는데?”

“카르 엔 드래고니안이지 어디긴 어디야? 반항할 생각하지 마. 계약은 계약이지?”

프로타이스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가 느끼기에 세상에서 카르 엔 드래고니안만큼 가고 싶지 않은 장소는 없었어요.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왕지네가 말한 것처럼 계약은 계약이었지요. 계약을 맺을 당시 왕지네는 수십 번이나 ‘계약을 어길 거지?”라고 물었어요. 그녀의 예상을 적중시킬 수야 없었지요. 프로타이스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어요.

“계약은 계약이지. 가자. 아아, 젠장. 왜 하필 카르 엔 드래고니안이야.”

“왜? 당신 아일페사스 좋아한다면서.”

프로타이스는 대답을 하기 위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아, 젠장. 왜 하필 카르엔 드래고니안이야.”

왕지네는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나와서 결국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쓱쓱 닦아내야 했지요. 그녀는 프로타이스의 팔뚝을 애교 있게 때리고는 말했어요.

“가자!”

프로타이스는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어, 지금? 잠깐만. 읽던 건 마저 읽고 가지 그래?”

“그거 거짓말이었어.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 그냥 너 일어나라고 아무렇게나 한 소리야. 그러니까, 어, 저기 자리 좋다. 저기에 앉아서………

“욕하고 싶어지네. 범인이 누군지 당신이 말했잖아!”

왕지네는 프로타이스의 말을 단숨에 끊었습니다.

“잘됐네. 오늘 밤엔 자기 전에 읽을 것이 있어서.”

그리고 벽타기꾼은 도무지 말릴 엄두도 나지 않는 경쾌한 기세로 북동쪽을 향해 걸었어요. 그 뒤를 따라 탄탄한 나체 위에 천 조각 하나 걸친 드래곤 이 죽을상을 한 채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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