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1권 10화 – 괴물 키메라의 정체
괴물 키메라의 정체
“웁…, 웁…….”
허공에 손을 휘저어 대는 늙은이를 향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복면을 한 사내가 으르렁거렸다.
“가만히 있어! 죽여 버리기 전에…….”
그 노인은 지금 자신이 처한 사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마도 왕국 알카사스의 도시들 중의 한 곳에 있는 그의 저택이었다.
알카사스의 치안은 대단히 튼튼해서 한밤중에 이렇듯 괴한이 침입해 올 가능성은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저택은 견인족(族) 노예 스무 마리가 경 비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견인족들이 경비를 서면서 개처럼 끌고 다니는 네발짐승은 거대한 투견이 아니라 자신이 손수 제작한 난폭하기 그지없는 키메라였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저택의 외곽에는 불의의 침입자에 대처하기 위해 알람 마법진까지 쳐져 있었는데, 상대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이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복면을 쓴 사내가 늙은이를 틀어쥐고 있는 사이, 또 다른 복면의 사내가 재빨리 품속에서 쇠사슬을 하나 꺼내어 그 늙은이의 목에 걸었다. 늙은이는 발버둥을 쳤지 만 상대의 우악스러운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좀, 잘 잡고 있으라구.”
“젠장, 늙은이 힘이 보통이 아니군.”
“목걸이 채웠으면 빨리 입을 봉해.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각하께서 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구.”
“알았어.”
그들은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노인의 입을 틀어막은 후, 팔다리를 묶어서 큼직한 포대자루에 집어넣었다. 복면을 쓴 사내는 노인 한 명쯤의 무게는 아무것 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포대 자루를 등에 짊어진 후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포대 자루를 짊어진 그들이 땅에 착지하자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그 꿈틀거리고 있는 포대자루를 향해 시선을 슬쩍 던졌다.
“잡았나?”
“옛, 각하.”
“퇴각!”
그 각하라고 불린 인물의 지시에 따라 세 명의 인물은 재빨리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달려가는 정원에는 토막 난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우선 초대하는 방법이 예의에 어긋났던 점을 사과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는 그대와 대화를 나눌 길이 없었기에 취한 조치였기에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복면을 쓴 사내가 정중하게 말을 하자 늙은이는 꽁꽁 묶여 있는 자신의 손과 발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과연 그 늙은이는 뛰어난 노마법사답게 배짱 또한 대 단했다.
“어울리지도 않게 정중한 척하지 말고 이것부터 좀 풀어 주는 것이 어떻소? 손발이 저려서 참을 수가 없구먼…..”
그 복면을 쓴 사내가 눈짓을 하자, 그 옆에 서 있던 복면을 쓴 사내가 재빨리 노인에게 다가와서 손발을 묶어 놨던 줄을 풀어 줬다. 그 복면인은 노인의 손발에서 풀 려 나온 줄을 집어 든 다음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의 마법을 봉인하기 위해 마법 도구를 사용했지만, 그걸 사용한 덕분에 이쪽에서도 당신에게 마법을 걸 수 없게 된 것이 문제였소. 안 그랬으면 편안히 잠자 는 사이에 이리로 오셨을 텐데 말이오. 그렇다고 한 대 때려서 기절시키자니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저질스런 방법을 사용했소. 이해해 주시기 바 라오.”
노마법사는 탐탁치 않은 듯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이리저리 당겨 봤지만 이제 마나를 구동시킬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야윈 모습의 노인일 뿐, 그 이상 도 이하도 아니었다.
“젠장, 아주 잘 만든 물건이군.”
“그럴 겁니다. 아주 특별히 제작한 것이니까요.”
“이렇게 나를 납치한다고 해서 네 녀석들 일에 협조할 것 같으냐?”
“아마 협조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우실 테니까요.”
복면 뒤로 희번뜩거리는 상대의 눈초리를 겁먹지 않고 느긋하게 받아 내면서 노마법사는 배짱 좋게 나갔다. 이런 경우 한 번 꺾이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오랜 세월을 빈둥거리며 헛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훗, 이제 다 늙어가지고 아직도 생에 미련은 없다. 키메라는 대단히 위험한 생명체야. 그런 위험한 것의 제조법을 알려 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좋을 대로 해.”
“크라드마 경, 제가 원하는 것은 키메라의 제조법 따위가 아닙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노마법사는 약간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복면한 사내가 주섬주섬 풀고 있는 보따리를 쳐다봤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낫같이 보였다. 하지만 보통의 낫과 다 른 점이 있다면 그 손잡이 부분이 매우 특이하다는 점이었다.
“키메라…인가?”
“예, 우리나라의 대단히 높은 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낸 놈입니다. 겨우 네 마리의 키메라만으로 그분을 경호하던 그래듀에이트 한 명과 경호병들을 해치우고 말 입니다.”
노마법사의 눈이 뭔가 골똘한 궁리를 하는 듯 살짝 가늘어졌다.
“키메라의 크기는?”
“인간 정도의 크기입니다. 대략 2미터 정도…….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진 인간형입니다. 그런데 양팔에는 이런 것이 붙어 있었지요.”
상대의 설명을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고 크라드마는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능해. 그래듀에이트와 대등하게 대결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키메라는 아직도 만들어 낼 수 없었어. 왜 그런지 아나?”
“글쎄요…….”
“그래듀에이트는 오랜 수련에 의해 근력에다가 마나의 힘을 보태서 엄청난 힘을 끌어낼 수 있지. 그 때문에 그래듀에이트는 상상하기도 힘든 속도와 파워를 낼 수 있는 것이고. 그런데 보통의 생명체는 근력만으로 움직이는 거야. 키메라가 아무리 마법의 생명체라고 하지만, 일단 그 뿌리가 되는 동물이 존재해야만 해. 트롤의 몸뚱이에 그래듀에이트의 다리를 붙인다고 해서 그 다리 부분이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실험해 봤다네. 전쟁터에서 사망한 기사의 시체를 이용 한 실험이었지.
하지만 그 다리는 인간의 다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정도의 힘밖에 내지 못했어. 다리만 잘라서 붙인다고 마나가 함께 구동하지는 않았던 것이지. 또, 기사의 몸 통에 트롤의 팔다리를 붙인다고 해서 마나가 함께 움직이지는 않네. 키메라라는 것은 마법 생물. 살아 있는 사람에 그런 것을 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지. 키메라라는 것은 죽은 것을 마법으로 합성시켜 되살리는 것이야. 그 때문에 기사가 살아생전에 익혔던 모든 것이 키메라에게 계승되지는 않는다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에 다른 생명체의 몸을 접합시킬 수는 없을까요?”
“그것을 시도해 보지 않은 마법사가 누가 있겠는가? 키메라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시도를 한 번쯤은 해 봤겠지. 내 선배는 뭔가 실수를 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아집을 가지고 실험을 해 보는 거야. 하지만 모두 실패하지. 나도 노예나 몬스터들을 엄청나게 죽여 놓고 나서야 그 연구에서 손 을 뗐으니까 말이야.”
“흐음…,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군요. 겨우 네 마리가 모여서 본국의 그래듀에이트를 해치운 것이 사실인데, 크라드마 경께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우 기시니 말입니다.”
“우기는 것이 아니야.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노마법사는 신중하게 궁리하고 있는 상대를 힐끗 바라 본 후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뭔가? 저 해괴한 키메라의 제조법인가? 아니면 그걸 만든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대충 짐작을 하셨을 텐데요? 저것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저따위 것을 만들라고 의뢰한 나라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으음…,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떻겠나? 저것을 가지고 내가 연구를 해 볼 수 있게 시간을 좀 주게. 저런 특이한 것이라면 아주 특별한 재료가 사용되었 을 거야. 그 재료를 알아낸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글쎄요. 고작 그런 것으로 도움이 될까요?”
“충분할 걸세. 널리 분포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실험 재료로 다 써먹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세. 오크, 고블린, 트롤, 오우거 등등. . 하지만 저것은 아주 특별 한 속도와 근력을 지닌 존재야. 그 재료가 되는 몬스터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안 그랬다면 내가 그전에 벌써 만들어 냈을 테니까 말이야. 안 그런 가?”
노마법사가 보자기 위에 펼쳐져 있는 키메라의 일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노마법사의 어조에는 자신이 키메라에 있어서는 알카사스에서도 최고봉 에 올라서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대도 그럴 듯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시간을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며칠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