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1권 14화 – 아주 재미있는 정보
아주 재미있는 정보
“이 녀석인가?”
“옛, 이자가 연구소의 책임자라고 하더군요.”
복면을 쓰고 있는 이 괴이한 사내들은 마법진 위로 나타난, 깡마르고 괴팍하게 생긴 노인을 자세히 노려보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 수고했다. 뒤처리는 잘했겠지?”
상관의 말에 복면을 뒤집어쓴 부하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연구소에서 일하던 수련 마법사 한 놈을 납치해서 모든 것을 실토할 때까지 철저하게 고문을 가했 고, 그놈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 후 완벽하게 처리했던 것이다. 시체가 발견되려면 며칠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실종’으로 처리될 것이다.
사실 하위직에 있던 수련 마법사 한 명이 없어졌다고 해서 큰 문제로 삼는 것은 아니었기에 놈들도 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고, 또는 일이 힘들다고 도망치는 하급 마법사들은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예, 깨끗하게 처리했습니다.”
“좋아, 행동은 오늘 밤에 하기로 하지. 마법사라는 것들은 마법 도구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도망칠 수 있으니 그게 문제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들의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마법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이보게, 오늘 저녁에 행동을 시작할 건가?”
“예, 납치해서 이곳으로 데려올 테니 기다리십시오.”
노마법사는 오늘 밤에 또 한 명의 마법사가 여기에 들어오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들과 함께 행동해 보니 마법사 둘을 제외하고 여덟 명 전원이 그래듀 에이트들이었다. 이 정도 패거리가 돌아다니기는 매우 힘든 노릇이었지만, 또 그런 만큼 그들이 지닌 능력은 엄청났다. 철저하게 대비를 하지 않는 한 이들의 행동 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자신의 집에 있던 키메라들과 견인족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듯이, 오늘 납치되어 올 마법사의 집에 있던 경비들도 뭐가 되었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과연 그들은 다섯 시간쯤 후에 퍼덕거리는 자루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다시 나타났다. 알카사스와 달리 코린트의 경우 키메라 연구가 그렇게 진척되어 있지 못했 다. 키메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었고, 일부 마법사들의 흥미 위주에 의해 연구되는 수준이었기에 경비도 취약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아 주 간단하게 납치되어서 이 자리에 끌려왔다.
“이런 나쁜 녀석들! 네 녀석들의 정체가 뭐냐?”
재갈이 풀리자마자 냅다 욕설부터 퍼붓는 늙은이를 향해 한 복면을 쓴 사내가 험악한 눈초리를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이봐, 죽기 싫으면 닥치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것을 보고 또 다른 복면인이 나무랐다. 그러자 처음에 으르렁거리던 그 복면인은 조용히 물러났다.
“이봐, 말버릇이 그게 뭔가? 이보십시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그대를 납치해 왔지만, 몇 가지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만 해 주신다면 조용히 보내 드릴 것을 약속 드리겠습니다.”
그런 후 복면의 사내는 저쪽 구석에 앉아 있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크라드마 경, 시작하시죠.”
크라드마 경은 한밤중에 납치되어 와서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있는 그 마법사에게 다가가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키메라요. 나도 그 때문에 납치되어 왔소. 하지만 저기 있는 대장이 하는 말은 정확하니까 살아서 풀려나고 싶다면 협조하시는 게 좋 을 거요. 아아, 그런 눈초리로 바라보지 마시오. 나도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요. 혹시 이런 데이터를 낼 수 있는 키메라의 제조법에 관해서 들은 적이 있소?”
크라드마가 내미는 종이에는 수치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바로 그것은 키메라의 데이터가 아니라 그래듀에이트급 기사의 데이터를 조금 고친 것이었다. 그래듀 에이트를 해치우는 데 그와 비슷한 체격 조건이라면, 아마도 그 데이터 또한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물론 기사의 경우 검술이라는 것과 마나라는 부가적인 요소가 들어가기에 그 정도의 속도를 근력만으로 내기 위해서 데이터의 수치는 좀 더 높여져 있었다. 깡마른 노인은 그 종잇조각을 대충 훑어보더니 콧방귀를 뀌면서 빈정거렸다.
“나를 놀리는 거요?”
“설마……. 왜 사람을 납치까지 해 와서 농을 건단 말이오. 이건 확실한 데이터요.”
“이 엄청난 근력! 폐활량……. 이런 것을 키메라 따위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오? 만들 수 있다면 내 눈앞에 한번 가져와 보시오. 그럼 내가 믿어 줄 테니.”
“그대는 이런 키메라가 있다는 소문도 들어 본 적이 없소?”
“없소.”
“이상하군. 본국을 제외하고는 코린트가 마법에 있어서는 최고를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는 알카사스인이오? 그런데 어떻게 알카사스에서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이오? 알카사스는 키메라를 실전에 배치했을 정도로 엄청난 기술이 쌓여 있지 않소? 본국은 타이탄 제작에 있어서는 최고를 달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키메라에 있어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오. 그것도 모른단 말이오?”
이때 복면을 쓴 사내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죄송하지만, 그대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코린트가 그렇게 키메라 제작에 있어서 불모지라는 것은 믿기 힘듭니다.”
“이런 제기랄! 못 믿겠다면 그만 둬. 본국의 윗분들은 타이탄만으로도 세계를 제패했는데, 겨우 키메라 따위의 연구에 돈을 쏟아 부을 필요를 느꼈을 것 같아? 또 6년 전에는 엄청난 전쟁이 있었고, 그 때문에 기사단이 절단 났는데 키메라 연구에 돌릴 여력이 어디에 있었겠어? 에잉!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그래도 당신의 말을 믿기는 힘드니 조금 강도 높은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봐!”
그러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복면을 쓴 인물 둘이 접근해 왔다. 그들은 다른 복면인들과는 달리 가느다란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마법사의 몸에서 모든 장신구를 모두 다 찾아내어 제거했다. 그것들이 마법 도구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였다.
한 사람이 중얼중얼 뭔가 주문을 외우는 사이 또 다른 한 사람은 납치해 온 마법사의 목에 걸어 놓았던 마나가 모이지 못하게 막는 마법 도구를 없앨 준비를 했다. 그런 후 동료가 마법을 시행하는 그 순간 마법 도구를 없애 버렸다. 동료가 시행한 주문은 매료(魅了)의 주문으로서 적을 동료처럼 느끼게 만들어 모든 것을 털어놓 게 만드는 아주 지독한 정신계 마법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그 마법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낱낱이 실토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정신계 마법은 부작용이 크기에 아무리 적이라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 부작용으로 약간의 두통 정도로 끝나는 사람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정신 이상 에 걸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 무자비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부작용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 마법사는 타국의 인물이었 고, 또 그는 포로였기 때문이다.
“전하 재미있는 정보가 입수되었사옵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 오는 베르딘에게 로체스터 공작은 궁금증이 밴 어조로 물었다.
“무엇인가?”
“예, 토리아를 정복한 후 피로써 장악하고 있던 시드미안 후작이 숙청되었다는 보고이옵니다. 하기야 그의 철권통치는 너무 심하다고 들었으니까요.”
베르딘의 보고에 로체스터 공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베르딘에게 여태껏 보고받은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시드미안은 숙청될 정도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토리아 왕국에 입성한 후 귀족이라면 어린애까지 다 처형한 것이 좀 심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로체스터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는 충분히 이 해할 수 있는 행위였다.
시드미안은 전쟁 후 무력을 듬뿍 동원하여 치안을 확실하게 유지했는데, 이때 애매하게 도매급으로 얽혀서 처형당한 시민들도 꽤 있었다. 그야말로 숨소리 하나 제대로 못 내도록 철저하게 때려잡으려고 들었기에 파생된 결과였다.
그러면서 전후 불안정한 시기를 틈타 물가를 올리려고 든다거나, 상품을 재어 놓고 안 판다거나 하는 상인들을 철저하게 잡아내어 족쳤기에 물가는 꽤 안정적이었 다. 그리고 전쟁 덕분에 거리에 넘쳐나는 유랑자들을 몽땅 다 잡아들여서 파괴된 요새나 도로 등을 수리했다.
그들을 매우 저렴한 인건비로 부려먹기는 했지만, 일단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로 품삯을 지급했기에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는 것 외에도 치안 유지라든 지 상업이나 공업이 다시 활기를 띨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물론 그 부차적인 것은 몇 달 후가 되어야 효력이 발휘되기 시작하겠지만, 로체스터 공작의 경험으로 봤을 때 시드미안의 점령지 관리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효과 적이라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별로 재미있는 정보라고는 볼 수 없군. 그는 상당히 뛰어난 기사였는데……. 적이라고 해도 뛰어난 기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 설마 공개 처형당한 것 은 아니겠지? 만약 그를 처형했다면 트루비아 국왕은 정말 형편없는 녀석이야.”
로체스터 공작의 말에 베르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옵니다. 트루비아 최고의 기사인데 처형할 수는 없었겠지요. 불시에 방문한 국왕이 점령지의 탄압 실상을 본 후 그에게 공작의 작위를 내릴 계획을 취소했 고, 곧바로 본국 소환 명령과 함께 1만 골드의 벌금형에 처했다고 하옵니다.”
“벌금형이라고? 그렇다면 그 외의 직위는 보존된 것이군.”
“예, 전하.”
베르딘이 자신의 말을 인정하자 로체스터 공작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베르딘이 처음에 들어오면서 아주 재미있는 정보’라고 했던 말의 뜻이 무엇을 뜻 하는 것인지 눈치 챈 것이다.
“으하하하핫! 그래, 그렇게 된 것이군. 자네 말대로 아주 재미있는 정보야. 초기의 강력한 탄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시민들의 불만을 시드미안에게만 뒤집어씌운다 이거로군. 그러면서 그 녀석은 본국으로 빠져 군대의 통솔에만 힘쓸 테고……. 하기야 그가 해임되었을 때쯤에는 점령지에서 거의 불만 세력은 뿌리 가 뽑혀 버린 후일 테니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안정을 찾게 되겠지. 상당히 재미있는 작전이야. 그런데 어떤 녀석이 그런 얄팍한 수를 생각해 낸 것이지? 설마, 그 새 파란 국왕 녀석인가?”
“그것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사옵니다, 전하.”
“좋아. 그 정도로 머리를 쓸 줄 알고, 또 힘이 있다면 토리아를 넘볼 자격이 있다고 봐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