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8화 : 깨어난 미네르바 – 1


깨어난 미네르바 – 1

알파2는 이제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이대로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실험을 시작한 지 벌써 24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그 전의 다른 데스 나이트들과 다름이 없었지만,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데스 나이트의 베슬 속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제한적이긴 하지만 마나를 컨트롤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변화는 없었다.

베슬 속의 마나는 중심부에 계속 쌓여가고만 있었고, 언젠가 허용량이 넘게 되면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다면 이대로 마나를 계속 주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했다.

결단을 내린 알파2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더 이상의 주입은 위험해. 마나 주입을 중지하도록.》

《알겠습니다. 마나 주입 중지!》

생명의 기운인 마나는 언데드의 죽음의 기운과 상극이다. 그렇기에 둘은 절대 한곳에서 공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생명의 기운은 언데드의 식량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생명체에서 생명의 기운을 빨아먹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언데드였으니까.

생명의 기운, 즉 마나는 흑마법의 작용으로 흡수되는 즉시 죽음의 기운으로 바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기운이 그대로 언데드의 몸속에

들어오게 되면 독으로 작용되어 언데드를 사멸시킨다.

언데드는 마나를 흡수하는 데 있어 많은 제약이 있다.

자연에 떠도는 옅은 농도의 마나를 직접 흡수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법진 같은 걸 이용해 고농도로 압축한다고 해서 흡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마나에 노출되었다가는 제아무리 상급 언데드라 해도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언데드는 오로지 생명체가 지닌 마나만을 흑마법을 통해 흡수할 수가 있었다. 즉, 마나라고 해도 다 같은 마나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알파2는 그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걸 알 필요조차 없었고.

‘마나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저 녀석은 어쩌면 지금껏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걸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대기의 마나를 직접 흡수하는 것 말이야. 그리고 어쩌면 주인님이 바라시는 타이탄 조종까지 가능할지도…?

물론 망상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알파2는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언데드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알파2도 우연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기에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일 뿐이다.

어쨌거나 베슬 내를 안정화시킨 건 사실이지만, 데스 나이트의 몸이 상당히 쇠약해져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베슬 속의 마나가 중심부에 뭉쳐버리기 전까지, 베슬 속의 죽음의 기운과 마나가 극심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저놈도 끝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베슬 속의 충돌이 멈췄다.

언데드의 입장에서 봤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베슬 속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데스 나이트의 몸 상태를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야 실험의 성공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테니까.

《성상의 보권을 하나 가져와서 데스 나이트 옆에 놔둬라.》

《알겠습니다.》

《알파17은 지금 어디에 있지?>

알파17 본부에 머물러 있었다. 짐꾼이 없어졌기에 새로운 짐꾼이 배당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시간이 난 김에 알파2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데스 나이트의 직속상관인 알파17을 만나기로 했다.


《실험은 끝났습니까?》

약간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그 물음에 알파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직 실험은 계속되고 있는 중일세.》

지금까지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에 알파17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실험의 총책임자인 알파2가 자리를 벗어나 이곳에 와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

알파2는 느릿한 어조로 물었다.

《베슬이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현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네. 그 데스 나이트는 자네가 포섭해 온 것이었지? 어디서 포섭했었나?》

《예. 크루마의 옛 수도 (신)엘프리안에 있는 무명합장묘에서 포섭한 영혼이었습니다.》

알파2의 시커먼 동공이 희미하게 빛이 났다.

《(신)엘프리안이라고? 혹, 그자의 과거 신분과 같은 정보가 파악된 게 있나?》

(신)엘프리안은 건설 직후 레드 드래곤에 의해 잿더미가 된 것으로 유명한 제도(帝都)였다.

아직 민간에 개방되지 않았던 덕에 사망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공사를 마무리 짓고 있던 인부들과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크루마 제국의 발표대로라면 (신)엘프리안에 기사단이 배치되기 전이었기에 지금 실험을 하고 있는 데스 나이트와 같은 피해자는 없어야 할 터였다.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기에, 협상을 할 것조차 없이 데스 나이트로 만들었지요. 아주 강한 집착과 원념을 지닌

영혼이었던 것에 비해 형편없는 졸작이 나와 실망했었습니다만・・・・・・》

《강한 집착과 원념이라니, 그것이었나………?》

포섭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골을 ‘마신의 은혜’로 오염시켜 강제로 데스 나이트로 만드는 게 가장 편리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었다.

영혼이 없는 만큼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오랜 시간 죽음의 기운을 섭취시켜도 자아를 획득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의 실험에 사용된 데스 나이트는 모두 그런 것들만 썼었다.

실험을 계속하다 보니 더 이상 남는 데스 나이트가 없었기에 알파17의 데스 나이트를 썼던 것이었는데, 이번의 성공이 집착과 원념 때문이라고 한다면 전혀 새로운 발견인 것이다.

《자네의 데스 나이트는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하게. 실험이 끝난 후에 돌려줄 테니까.》

알파17은 의외라는 듯 반문했다. 그는 데스 나이트가 이미 사멸해 버렸을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으니까.

《예? 그 데스 나이트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특이하게도 그렇다네. 실험 전과 후에 데스 나이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 전의 상태에 대해서 자네보다 잘 아는 리치는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파2가 데스 나이트를 알파17에게 돌려보내려는 두 번째 이유는, 만에 하나 데스 나이트의 베슬이 폭발이라도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 참사가 기지 내에서 벌어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파17의 주 활동 범위는 사막이었다. 그런 만큼 혹여나 대폭발이 일어난다 해도 희생자는 알파17로 한정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