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1권 – 12화


은동은 잠에서 깨었다. 잠꼬대를 하다가 퍼뜩 정신 이 든 것이다.

“우왓!”

은동은 눈을 뜨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어스름 밝아오는 새벽길 속을, 자신의 몸이 휙휙 앞 으로 내닫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 어…….”

“깨어났느냐?”

무애는 은동이 깨어난 것을 알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은동은 피곤과 공포 때문에 아직 제정신이 아 니었다.

“어……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염려 말고 푹 쉬거라.”

은동은 비몽사몽의 상태로 말을 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죠? 어떻게……?”

“내 걸음이 조금 빠르긴 하지? 하지만 할 수 없구나. 멀미가 나더라도 참거라.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하니까………….”

“너………… 너무 빨라서………. 제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요?”

무애는 운동을 내려 놓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축지법이란다. 나도 아직 서툴러서 그리 빠르진 않아.”

“축지법도 재주인가요?”

“그래.”

“축지법 말고 또 무슨 재주들이 있나요?”

“많지. 도력이 극에 달하면 귀신을 부리고 천지조화를 바꿀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니게 된단다.”

“무예는요?”

“도력을 무예에 응용하면 천하무적이 될 수도 있겠지.”

“저도…… 저도 그런 것을 배울래요.”

무애는 또다시 씩 웃었다.

“도를 닦는 이유는 그런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 니란다. 그런능력은 도를 닦는 중에 부수적으로 얻 어지는 것이지. 그런데 오직 능력만을 얻기 위해 도 를 닦는 사람은 결국 심성을 버려서 몹쓸 사람이되 기가 쉽단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몹쓸 사람이 되지는 않을 거 예요. 전 왜병들에게 원수를 갚아야… 꼭 그래 …………..”

은동은 말하다 말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무애는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묵묵히 봇 짐에서 돌처럼 딱딱해진 마른 떡 한 조각을 꺼내어 은동에게 주었다. 미싯가루라도있으면 냇물을 떠서 풀어주고 싶었으나 가진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울지 마라. 배 고프면 그것을 먹거라.”

“배 고프지 않아요.”

“그래도 먹어야 산단다.”

그러나 은동은 마른 떡을 쥔 채 계속 울기만 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떡 위로 떨어져내렸다.

할 수 없이 무애는 은동을 등에 업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금강산까지는 아직 멀었다. 무애 는 등에 업힌 채 축쳐져서 흐느껴 우는 은동이 한 없이 측은했다. 무애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 거리기 시작했다.

“가세가세 어서가세만밖의 우리님께만길이 멀다지만 십백리 헤아리며가가면 언젠가는그우신 님의품에언 가는 다가겠지……”

사실 이 노래는 세속을 버린 승려가 부를 만한 내용 의 것은 아니었지만, 무애는 어릴 적에 불렀던 가사 가 얼핏 떠올라 은동을 달랠 겸흥얼거렸던 것이다. 한참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장난기섞인 은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에게 어떻게 님이 있나요?”

“어이쿠, 들켰구나. 하지만 내가 땡초란 걸 노스님께 이르면 안 된다. 허허허…”

“이를 거예요. 꼭 일러서 혼나게 해 줘야지.”

“허허허…… 한 번만 봐다오.”

무애는 웃으면서 등 뒤의 기척을 살폈다. 은동은 단단하게 말라 돌같이 된 마른 떡을 조금씩 먹고 있었다. 무애는 흐뭇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을 내라. 어려운 일이 많더라도 꾹 참고 살아야 하느니라…..’

한참을 달리다 보니, 은동은 다시 잠이 들어 있었 다. 무애는 이마에흐른 땀을 소매로 씻으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금강산까지 아직도 갈길이 먼데, 이렇 게 시간을 많이 소모하였으니…..

‘내가 늑장을 부려서 대사에 차질을 주는 것은 아닐 지 모르겠군. 해동감결을 어서 노스님께 전해야 하는데 ……..’

등에 업은 은동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무애는 자신 의 중요한 임무를 떠올리며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