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1권 – 19화


신립은 비장한 각오로 조선군 기마 부대의 선두에 섰다.

기마대의 부장인 강효식이 원인 불명으로 혼절하여 마땅한 대장감이 없기도 하였지만, 자신이 스스로 선봉에 서는 것이 군의 사기를 올리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대마저 패배한다면, 도성인 한양까지 왜군을 막을 조선군 부대는 없다. 내가 패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신립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북방에서부터 거느려 왔던 자신의 정예 기마 부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두꺼운 두정갑(비늘을 겹으로 두른 갑 옷. 둥근 비늘을 한 것은 용린갑이라고도 한다)으로 왜군의 조총알을 막을 수 있도록 중무장하였으며, 한결같이 눈이 번쩍이는 것이 필승의 결의에 차 있 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효는 많지 않았다. 완전무장한 정예 기병 은 겨우 오십. 거기에 급히 끌어모은 말에 태운, 정 식기마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가백이십.

‘수천 년 역사의 조선군 기마 부대가 이제는 겨우 이것뿐이란 말인가……………’

신립은 남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는, 총포 부대를 사 열했다. 승자총통으로 무장된 총병이 이십 명 가량. 그리고 대완구총통이 세 대, 소완구총통이 다섯 대, 신기전을 쏘는 화차가 두 대 있었다. 북방에서는이 것 외에도 많은 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이 너무 무겁고 성에 설치된 고정 포들이어서 지니고 올 수가 없었다. 더구나 화약의 재고도 넉넉하지 못했고…….

신립은 이어서 보병 부대를 사열했다. 7천에 이르는 수하 군졸 중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보병 부대였다. 이들은 정예의 군졸뿐 아니라 도 성 내의 포졸, 문지기, 지원병, 갓 징집된 농군이뒤 섞인 한마디로 오합지졸의 병력이었다. 이 병력이 어떻게 싸워 주느냐에 싸움의 승패가 결정 난다고 생각하니 신립은 우울해졌다.

“모두들 듣거라!”

신립은 부대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 다.

“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하느니라.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게 되면한양이 짓밟힌다. 나랏님이 계시는 도 읍이 왜놈들에게 짓밟히게 되는것이다. 우리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그래서 이곳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우리의 뒤는 물뿐이며 물러설 곳이 없 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선 땅을짓밟은 흉악한 왜놈들 을 반드시 물리치자!”

신립의 말에 병사들은 와 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비 록 오합지졸일망정 조선을 침략해 온 왜병들에 대해 서는 모두들 깊은 원한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사 기가 저절로 오르는 것 같았다. 신립은 이럴 때왜병 들이 지니고 있는 조총에 대해 일반 병사들에게 알 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병들은 조총이라고 하는 화약 무기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겁을 먹어서는 아니된다! 조총 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승자총통이나 마찬가지인 무 기이다. 소리가 크고 총알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정 도로 빠르지만 쏘는 대로 맞는 것은 아니니 겁 먹을 것이 없다!”

그러나 화약 무기의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 반 군졸들은 잠시 술렁거렸다. 신립은 입술을 깨물 고 총포 부대의 별감을 불렀다.

“화차에 신기전 스무 발을 장치하여 강 쪽으로 발사하라.”

신립은 다시 병사들 쪽으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우리 조선의 무기를 보면 왜병이 더 이상 겁 나지 않을 것이다. 보라! 이것이 우리가 보유한 화차이며 신기전이다.”

신립이 명을 내리자 별감은 신기전 스무 발을 발사 했다.

신기전이란 길게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화살로, 화 차라고 불리는거치대에 몇십 발을 꽂아놓고 연속으 로 발사하는 화기인데, 요즘의다연장 로켓포에 해당 하는 무기였다. 북방의 여진족들은 이 신기전을보기 만 해도 겁에 질릴 정도로, 비록 명중률은 희박하다 하나 한 지역을 거의 제압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막강하다고 할 수 있는 화력을지닌 무기였다. 사실, 신립은 이러한 화기를 잘 운용하기로 소문난 장수였다. 그러나 승자총통 등 당시의 개인용 소화 기는 대량으로 생산되지 못했고강선이 없어서 그 명 중률이 낮았기 때문에, 개인용 화기를 대량으로 운용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신립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규모가 큰 화기로 적의 기세를 꺾 은 후 기병으로 접전하는 것이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라고 신립은 굳게 믿고 있었다. 신기전에 화수(手) 가 불을 붙이자, 신기전은 긴 불꽃과 연기를 뿜으면 서 핑핑 연속으로 날아갔다. 보통 농민들의 눈에 그 것은 상상도할 수 없던 무서운 무기였고, 이런 무기 를 보유하고 있다면 겁날 것이없다는 생각에 사기가 단번에 올라갔다.

“와!”

병사들의 함성을 들으며 신립은 만족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훈시를 마쳤다.

“비록 왜군들에게는 조총이 있다고 하나 겨누는 대 로 맞는 것은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적진을 돌파 하라. 화포로 적군을 치고 나면 기병 부대가 앞장 서서 돌진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보병이 돌격하면 적진은 무너질 것이오, 남는 것은 왜병들의 목을 따 는 것뿐이리라. 적의 수급을 벤 자는 나라에서 포상 할 것이니, 모두들 나라를 위해 힘껏싸워 많은 공을 세우도록 하라!”

다시 한 번 병사들의 환호성 소리가 일었다.

신립은 맞은편에 위치한 고니시의 진을 말 없이 바 라보았다. 그것은 조선군의 진영보다 압도적으로 컸 고 병력도 두 배는 넘을 것 같았다.

“진군!”

신립은 큰 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몇 문 되지 되지 않는 화포의 엄호를 받으며 기마대를 몰아 수만의 왜병들이 득실거리는 적진을 향해돌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보 병들이 의기만은 드높게 고함을 지르며 뒤따라 달렸 다.

강효식은 그때까지도 영이 빠져 나간 충격에서 헤어 나지 못하고장막 안에 누워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 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자, 그동안 무엇인가에 속고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순간, 밖에서 어지러운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전장 저 전장에서다져질 대로 다져진 무관 강효식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전포와 투구를 쓸 생각 도 하지 못하고 장검만을 움켜쥔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강효식의 눈에, 막 돌격을 시작하는 조선군들의 뒷모습이 보였다.그리고…… 그 앞 멀리의 허공에 떠 다니는 몇 개의 괴이한 형체들이작게 어른거렸다. 

“저… 저것들은 뭐냐! 저것들은…….”

그때 강효식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바로 어젯밤의 일이…………….

강효식은 신립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었고, 또 신 립의 귀에 들렸다는 탄금대에 진을 치라는 말의 진 위를 알아내기 위해 영사를 행했었다. 그 결과 알아 낸 것은…….

‘여인….어느 여인이 있었다. 신립 장군이 자기 옆으로 오기만을소원하는 여인이…. 그리고…000’ 그랬었다. 그 여인은 오로지 그것만 소원하고 있었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탄금대…………. 그 여인은 탄 금대에 진을 치면 신립이 전사하여 자신의 곁에 오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조선군이 전멸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무언가가 움켜쥐었다. 여인의 영을 잡기는커녕 도리어 무언가에 씌인 것이다. 지금 저앞의 허공에 떠 있는 것은바로 그 불길한 괴물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강효식은 장검조차 내던지 고 목이 터져라고함을 지르며 진문 쪽으로 달려갔 다.

“장군! 장군!”

그러나 아무도 강효식의 말을 듣지 못했다. 기세 좋 게 울리는 출진의 북 소리가 강효식의 외침을 파묻 어 버렸다.진문이 열리고, 조선군 최후의 기마대와 보병들이 밀물처럼 쏟아져나가 왜병들의 진지로 돌 입하기 시작했다.

신립은 그 맨 선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