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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20화


“으음. 그런데 하일지달. 당신이 여기 천지의 수룡이라고 했수?”

“맞다네.”

“흠. 내가 치성을 드린 걸 아는 걸 보니…혹 댁이 증성악신인의 하강하구 관련이 있는 것 아니우?”

“왜 아니겠나? 맞다네.”

“오오라. 그랬구먼. 이거 인사 받으시우. 나는 이번 에 금수 우두머리가되려고 온 흑호라는 호랑이유.” 

흑호는 말하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천지의 수룡 도 어쨌거나 용(龍)일 것이다. 용은 아무렇게나 되 는 생물이 아니라 매우 귀한 존재인 것이다. 용은 덕과 도를 많이 쌓은 인간이나 다른 생물이 변신하 여 만들어지는생물이며 스스로 번식하는 것이 아니 다. 그래서 귀한 존재로 받을어지고있으며 모든 금 수의 존경을 받는 생물이었다. 물론 용보다도 높다 는 봉황이나 주작 같은 존재도 있지만 흑호는 용을 처음 본 것이다.

“뭐 너무 그러지 않아도 돼. 나는 정식 용이 아니라 아직은 수룡일 뿐이니까. 오래 도를 더 닦아야 용이 될 수 있어.”

하일지달은 퍽 겸손한 척 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을 보니 장난기가 풀풀 풍겼고 흑호 를 퍽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흑호는 더더욱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좌우간 덕을 쌓아 용이 되셨으니 나야 인사를 드리 는게 맞지 않겠수? 좌우간 나는 금수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온 건데..” 

“그건 알아. 그러니 삼칠일 동안 치성을 드리고 있 는 거겠지.”

“맞수. 맞아. 헌데 실은 꼭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뭔가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신 인께 알려 드리고 싶기도 해서..”

“큰 일? 큰 일이란게 뭐지?”

“좌우간 말하자면 길으우. 용님께서는 꼭 좀 도와주시우.”

그러자 하일지달은 다시 흥흥거리는 특유의 소리로 웃었다.

“내가 뭐 힘이 있어야 말이지.”

“아니아니. 어찌 없으시겠수. 사실 일은 한시가 급 하다우. 하루라도 빨리 신인이 내려오셔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흑호는 아무래도 삼칠일동안 자신이 자리를 비운 것 이 상당히 거북했었다. 물론 치성을 드리러 온 것이니 다른 잡생각을 할 수 없어서 애써 마음을 비우고 는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흑호는 동물 특유의 번득 이는 직감 같은 것이 있어서, 비록 태을사자의 실종 에 대해서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일말의 불안감 같 은 것을 이유없이 느껴오던 터였다. 그러나 하일지 달은 고개를 저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신인이 하강하시는 것이고, 정성 이 부족하면 안오시는 것인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그러자 흑호는 쩝 하고 한 번 입맛을 다시고는 순순 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일지달은 흑호의 커다란 머리가 끄덕거리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이유도 없이 흥흥 거리고 웃은 다음 말했다.

“도력이 제법 상당하던데? 얼마나 도 닦었어? 천오백? 이천?”

“팔백년이우.”

그러자 하일지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거짓말.”

“아니우. 정말이우.”

“겨우 팔백년 도를 닦고 그 정도의 지진술을 쓸 수 가 있어? 그 두 배는도를 닦아야 할텐데?”

흑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사계 이판관의 법기를 흡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 하고 싶었지만 막상 말을 하려니 그 긴 이야기를 조리있게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우. 아니우.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좌우간 기 연(奇)이 있었수.”

“기연?”

“그렇수. 기연이지. 그게 기연이 아니면 뭐가 기연이겠수.”

“그럼 이야기를 해 봐. 솔직하게.”

“솔직하지 못할게 뭐가 있겠수?”

“그럼 해보래두. 끝까지 들을께.”

하일지달이 다정하게 말하자 원래가 단순한 흑호는 곧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흑호는 자신이 우연히 태을사자를 만나게 되어 조선 땅을 뒤덮으려는 마수 의 음모를 알게 된 것과 조부의 죽음으로 기인하여 그들에게맞서 싸우고 있다는 긴 이야기를 다소 두서 없이 했다. 흑호는 원래 말재주가 없는 편이라 많은 부분을 빼먹었고 특히 태을사자와 은동, 호유화등이 저승에서 겪었던 일 같은 것은 반 이상 뒤죽박죽이 되어 이해할 수 없을정도였다. 하일지달은 흑호가 이랬다 저랬다 순서 틀리게 이야기를 하고조부의 죽 음 같은 대목에서는 주체를 못하고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것 등을잘 참고 끝까지 흑호의 이야기를 귀담 아 들었다. 흑호가 그럭저럭 황당무계하게 이야기를 마치자 하일지달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거 정말이야?”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수?”

“정말?”

“음냐. 나 흑호,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짓말 같은 건 해본적 없다니깐!”

흑호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하일지달은 무슨 까닭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내가 들은 이야기와는..”

“음? 아니 지금 뭐라고 했수?”

흑호는 이상해져서 물었으나 하일지달은 고개를 살 랑살랑 저었다.

“아니야. 아무 것도. 그나저나 팔백년이나 도를 닦 았는데.. 아니 그 두배는 강해졌지? 그런데도 그 마 수란 것들과 상대하기가 힘들었단 말야?”

그러자 흑호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수. 홍두오공 같은 건 하급괴수 같았는데두 여 간 힘들지 않아으니까. 은동이 녀석의 꾀가 아니었 으면 아마 다 죽었을게요.”

“흠.. 마수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강해졌던가..” 

하일지달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흑호는 하일지달 이 마수를 잘 알고있다는 듯 말하자 놀라서 물었다. 

“아니? 마수들을 아시우?”

“조금. 그러나 지금 너의 이런 법력으로도 상대하기 어렵다면…. 뭔가문제가 있어.”

하일지달은 다시 뭔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가볍게 말했다.

“좌우간 너는 그리 나쁜 녀석 같지는 않은데? 거짓 말 할 것 같지도 않구.”

“당연허우. 음냐. 나는 거짓부렁 같은건 하나두 모 른대두?”

“좋아…. 그러면…”

하일지달은 말하면서 흑호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배 시시 웃었다. 흑호는 영문도 모르고 하일지달이 웃자 그냥 자신도 기분이 흐뭇해져서 덩달아 히죽 웃었 다. 그런데 다음 순간, 갑자기 흰 연기 같은 것이 확 나면서 하일지달의 전신을 에워쌌다. 흑호는 또 다시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다가 커다란손바닥을 휙 휙 휘둘러 연기를 흩어 버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수 룡이라던하일지달의 모습은 간 곳 없고 깜찍한 모습 의 여자 한 명이 서 있지 않은가?

“어..어라라? 하일지달은…”

그러자 그 여자는 다시 살짝 웃었다.

“내가 하일지달이야.”

“어…어..? 댁이?”

“그래. 나는 수룡이지만, 보통은 인간의 모습을해.”

“정말이우?”

그러자 그 여인은 다시 웃어보였다. 몹시 청초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한 듯한, 귀엽기 그지 없는 얼굴

이었다.

“그럼. 세상의 존재들도 가끔 우리 이야기를 할텐데…”

“어? 그렇수?”

흑호는 의아해했지만 바로 다음에 하일지달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입을딱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증성악신인 밑의 팔선녀라고 들어보았나? 나는 그 중의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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