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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24화


‘어? 이순신이 시킨 일인가? 근데 백성들을 대량으 로 동원한 것 같은데?

난리통에 저럴 수는 있겠지만 너무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것 같구나. 다시봐야겠어.’

호유화는 슬쩍 다시 승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 고 나서 몸을 숨겼다가 지나가는 아낙네 한 명에게 오늘의 날짜를 물었다. 그러자 아낙네는말했다. 

“오늘? 아니 오늘이 며칠인지도 몰러? 을유년 칠월 초사흘(* 지금의 달력으로는 5월 24일이다. * 주 : 편의를 위하여 앞에서는 모든 날짜를 지금의 날짜 로 환산하여 사용하였고 이후로도 그렇게 쓰기로 한 다. 다만 이 대목은 대사의 부분이기 때문에 당시의 날짜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아니다냐?”

아낙네의 말을 듣고보니 호유화가 법력을 모은 것은 고작 하룻밤 밖에되지 않았다. 그리고보니 법력이 반 밖에 회복되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갈만했다. 아마 도 이것저것 걱정거리가 잠재의식 속에까지 파고 들 어 금방 무아지경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좌우간 날짜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호유화는 아낙네가 사라지자 다시 몸을 날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그러는데 바다 쪽에서 갑자기 펑펑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호 유화가 놀라 돌아보니 그것은 여수 앞바다에서전선 들이 훈련을 하느라 포를 놓은 소리였다. 호유화는 인간들이 포를 놓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 이어 서 흥미롭기도 했다. 비록 호유화가 시투력주의 힘 으로 미래의 비차(飛車: 비행기를 본 것임)며 철우 (鐵 : 지금의 탱크를 본 것임) 등을 보기는 했지 만 그것은 사백년이나 이후의 일이고, 지금 당장 십 여척의 전선들이 나란히 서서 포를 쏘며 나아가는 것을보니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십여척의 전선들은 호유화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여 자못 기세 가 당당했다.

‘저게 공문에서 보았던 그 판옥선 이란 전선이구나. 제법 굉장한데?’

당시 조선의 전선은 판옥선(板屋船)이라 하는 신형 전함으로서 그 전에는 주로 맹선(猛船)이라 하는 배 를 사용했었다. 그런데 왜구들과의 싸움을 경험해보 니, 왜구들은 주로 화살을 쏘아대고 배를맞대고 기 어 올라자기들이 능한 칼질을 주로 하는 전법을 쓰 기 때문에 양 옆에 방패를 세울뿐 아니라 위천장까 지도 덮은 배가 필요해졌다. 또한 맹선은 비록 대맹 선이라 해도 수군 80명을 태울 수 있을 뿐이어서 왜구들과의 육박전이 벌어지면 감당해내기가 어려웠 다. 그래서 선조 바로 직전의 명종 때에 조방장(助 防將 : 기술자로 지금의 공병과 비슷한 직책을 일컬 음)으로 있었고 지금은 이순신 곁에서 전라수군의 조방장으로 있는 정걸(丁傑)이라는 인물이 명을 받 고 야심차게 만들어낸 것이 바로 판옥선이었다. 이 판옥선은 일단 2층의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이름 그대로 배의 윗부분에 천장을 달아화살로부터 수군 들을 보호할 수 있었고, 탑을 거꾸로 태운 것 같은 특이한구조를 하여 물의 저항을 적게 받아 매우 빠 른 속력을 낼 수 있었다.그가판옥선을 만든 것은 1555년, 41세의 나이였는데 이 판옥선은 그 놀라 운 성능으로 인하여 왜구들과의 전선에 투입되자마 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되었다. 수백년 동안 근 절시키기 어려웠던 왜구들이 불과 4년 만에 거의자 취를 감추고 전멸될 정도로 되어 버렸던 것이다. 판 옥선의 위력에 겁을먹은 왜구들은 가까운 조선을 포 기하고 대신 명나라의 해안을 극심하게 공격하게 된 다. 그 이후 판옥선은 그 성능을 인정받아 왜란이 일어난 지금에있어서는 모든 전선이 판옥선으로 대 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호유화는 또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모든 판옥선들은 막상 노를 젓기 시작하자 돛대를 접어 뒤로 비스듬하게 눕혔던 것이 다. 원래 배의 돛대는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인데, 무 슨 이유에선지 모든 배들이 그렇게 개조가 되어있었 다. 그리고 판옥선들의 중간에 판옥선과 크기는 거의 같지만 좀 묘하게 보이는 배가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좌우간 판옥선들은 둥둥 거리는북소리에 맞추어서 일사불란하게 방진을 이루었다가 급히 노 를 저어 넓게펼쳐졌다. 그 앞에는 잡목나부랭이를 엮어 놓은 것이 몇 개 둥둥 떠 있었는데, 전선들은 그 나뭇더미 같은 것을 모의 적선으로 생각하는 모 양이었다. 전선들은 삽시간에 그 나무더미들을 에워 싸는 형세를 취했다.

‘통솔하는게 제법인데? 꼭 새날개 모양으로 삽시간 에 펼쳐지는군! ‘

호유화가 보고 감탄한 그 진법이 바로 이순신이 후 일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용한 학익진(鶴翼陣)이었 다. 비록 단순한 진법이기는 했지만 병졸들의 단련 하여 펼치는 속도가 빠르니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전선들이 일단 날개를 편 형상 으로 진을 벌리자 곧이어 전선들의 중간부분에서 조 금 색다른 모양을 한 전선 한 척이 돌출되어 나왔 다. 아까부터호유화가 재미있게 생각한 배였는데, 그 배는 위가 시커멓게 덮여 있었고사방이 온통 메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세히 보니 배의 앞에 는 짧은용머리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거기서는 누런 연기가 뿜어져 나와 배의사방을 가렸다. 

‘유황연기다! 오호라. 안에서 유황을 태워 연기로 배를 가리는구나. 신기해보이니 적이 겁을 집어먹을 만 하겠다.’

그 배는 사방에서 총통을 펑펑 쏘아대며 적들의 한 가운데에로 똑바로나아갔다. 비록 총통을 쏜다고는 하지만 너무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니 좀 무모할 정도로까지 보였다. 그러나 호유화가 생각해보니 저 배는 사방이 에워싸여져 있으니 화살이나 조총탄 정 도는 모두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소위 돌격선이구나. 아주 재미있군 그래.’ 호유화는 재미있게 전투연습 광경을 바라 보았다. 그 돌격선에는 커다랗게 거북귀(龜)자가 씌여 있었 다. 그러니 그 배는 귀선, 거북배라고 부르는 듯 싶 었다. (* 주 : 후세에는 거북선이라 부르지만 그것 은 어정쩡한 복합어 이므로 당시에는 귀선이나 거북 배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맞다.) ‘비록 용머리가 달려있지만 목이 짧으니 거북이라고 해야겠군. 그런데목은 왜 그리 짧지? 폼 안나게?’

그런데 호유화는 왜 그런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 었다. 아까 유황연기를 뿜던 용머리에서 이번에는 화포가 발사된 것이다. 좀 작은 화포인 것같았지만 글자그대로 용머리가 불을 토하는 것이 보이자 호유 화는 재미있어서 킥킥 웃었다. (*주: 현재 거북배 의 용머리는 길게 위로 솟아 있는모습이라 알려져 있으나 당시의 그림이나 어떤 문헌을 보아도 용머리 가 길다는 표현은 없다. 오히려 여러 문헌이 목이 짧아서 그야말로 거북의 형상그대로라는 것을 입증 하고 있으며 후에 그림으로 남겨진 문헌들도 마찬가 지이다. 그 용머리는 일종의 충각(衝角)으로도 사용 되었으며 포를 쏘고유황연기를 내는 구멍이기도 했 으니 목이 짧고 거의 머리모양의 조각이 앞에 붙어 있는 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본인이 조사해 본 결과 당시 거북배의 구조를 나타내는 문헌과 자료가 상당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모에치중하여 역사적 고증을 그르쳐 왔으며 심지어는 거북배를 잠수함으로 묘사한 일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고증과 대조할 때 현재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는 거북배의 모습들의 대부분은 거의 터무니 없을 정도로 변조되어 멋대로 만들어진 형태를 갖추고 있다. 심히 통탄스러운 일 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 거북배의진실한 모습을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은 또한 다행 한 일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그렇구나. 용머리로 화포를 쏘려니 목이 길면 안되겠지. 보는 건 재미있 지만 당하는 쪽은 정말 겁에 질릴만 하구나. 좌우간 정말 재미있는 설계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그 거북배는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한바탕 휘젓더니 갑자기 빙그 르르 선회해서 뒤로 돌았다. 그 선회하는반경이 너 무 작아서 호유화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 였다.

‘어라라? 무슨 술법을 쓴 것 아니야? 배가 저렇게 빙그르르 돌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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