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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42화


그러나 이순신이 보기에 그것은 자신이 함포로 일껏 궤멸시켜 놓은배에 보기만 그럴 듯하게 난입하여, 다 죽은 송장들의 목을 베어 오는데에 지나지 않았 다. 게다가 이순신의 함대에는 사상자가 거의 나오 지않은 것에 비해 원균의 함대에서는 전선의 숫자가 적음에도 불구하고사상자가 상당수 나왔다. 배끼리 충돌할 때 다치는 자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또한 아 무리 함포로 부서 놓았다고 해도 부상자나 생존자들 이몇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적선에 돌입할 때마 다 원균 휘하의 장졸들은 다쳐서 더욱 발악적이 된 왜군들과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래서사상자가 더 많 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원균은 그 왜군의 목 사냥 에급급하여 부하들을 마구 몰아대고 있었으며, 목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그런 원균의 망측 한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원균이 용감히 싸운다.

원균은 몸을 사리지 않는 용장인 모양이다. 오히려 원균의 그러한 행동 때문에 이순신은 싸움을 피하고 겁을내며 원균이 혼자 용감히 싸웠다고 수군 거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조정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물며 이순신의 부하들조차 그러했 다. 이순신이 짠 조직은 너무도 빈틈이 없었기 때문 에 일반 병졸들은 왜군의 수를 헤아릴 틈도 없이 얼 굴이 시커매질 정도로 화포만을쏘아대고 노를 젓기에만 바빴다. 그러다 보니 전투가 끝났다는 징소리 만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에 보니 자신이 과연 싸움을 한 것인지,무엇인지도 모를 허탈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순신의 전술에 혀를 내두른 것은 각 전선을 지휘 한 만호, 첨사 들정도였을 뿐, 갑판 아래서 명령에 따라 노만 젓고 화포만 쏜 부하들은오히려 맥이 풀 릴 정도로 이순신의 전략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던 것 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이순신 의 전략이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순신이 몸을 사 려 자기가 공을 세우지 못했다거나 왜군이 이렇게 약한데 이기는 게 당연하다는 위험한 여론까지 조성 되는판이었다. 왜군이 온다고 덜덜 떨던 일조차 이 미 몇몇 부하들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단지 전투의 상황을 몸소 겪은 상급지휘관들만이 이순신에게 깊 이 감복하였다.

좌우간 지난번의 싸움 때는 이순신도 몹시 긴장하였 다. 그러나 그부대는 수송부대여서 저항도 거의 없 었고 전과도 컸다. 그러나 정작그 와중에서 이순신의 함대에는 단 한 명의 경상자가 나오는 것에 그친 반면, 원균은 적선에 무리하게 돌입하려다가 두 명 의 중상자를 냈다. 그러면서도 원균은 부하들을 나 무라고 욕을 해대며 어서 들어가목을 베라고 호통만 쳐대고 있었다.

그런 원균에게 이순신은 정말로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순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자신과 함께 싸워줄 부하들의 목숨뿐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그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을 세우는수단 으로만 여기어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 었다. 그 때문에 이순신은 원균을 볼 때마다 욕지기 가 치미는 듯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노릇은, 자 신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원균의 인기가 자못 높다 는,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냐,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

이순신 옥포해전을 치르고 난 후 정운, 나대용, 방 답첨사 이순신등과 함께 통하여 대취한 일이 있었 다. 그때 정운이 술에 취해 한소리가 자꾸 이순신의 귓전에 어른거렸다.

– 수사 나으리, 정말 장계에 왜적의 머리를 벤 것이 둘이라고만 쓰실 참입니까?

– 그렇네.

– 우리는 적선 사십 척을 격침했습니다! 활에 맞 고 불에 타고 물에빠져 죽은 적의 수는 몇 만에 달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을 벤 것은 실제로 둘 뿐이지 않은가?

– 왜군은 갑주를 입고 있어서 물에 빠지면 모두 가 라앉아 버립니다. 그런 와중에 어찌 목을 벤단 말입 니까? 그 둘은 요행히 우리 배에까지 난입하다 죽 었기로 목을 베었지만………… 실제로 죽은 왜놈들은 수 만 명일 것입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제 눈으로 본 것만 오천 명은넘습니다! 그런데 어찌….. 어 찌 둘뿐이라고······.

– 우리가 목을 벤 것은 둘뿐일세. 그러니 그렇게 쓸 수밖에 없네! 하지만 주상께서도, 조정에서도 알 아주실 것일세. 어찌 그 정도 짐작하지 못하시겠는 가? 아무튼 목을 베는 데 급급하다가는 우리 병사들이 상하네. 일단은 왜놈들을 하나라도 많이 죽이는 것이 더 급한 일이네. 알겠는가?

이순신은 그때 부하들의 불만을 얼버무리고, 장계에 도 적을 죽이는것이 급하며 목을 베는 것은 중하지 않다고 누누이 구차할 만큼 기록해 두었다. 설마 아 무리 그래도 적선 사십 척을 오갈 데 없는 바다에서 깨부수었는데 타고 있는 왜적이 둘뿐이라 여기겠는 가 싶었던 것이다.

적게 잡아 판옥선과 같은 인원이라 하더라도 오천명 이상이 아닌가?

그러나 이순신으로서도 놀랍게도, 조정에서는 그 이 상의 논공행상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순신은 그 일에 분통이 터졌으나 내색은 하지않았다. 

‘이게 무언가? 어찌 그만한 생각들도 하지 않는 것 일까? 이러고서 어찌 부하들더러 용감히 싸우라고 한단 말인가? 누구라도 공을 세워상을 받고 싶어할 터인데…………….’

이순신은 할 수 없이 개인적인 권한이 닿는 선에서 잘 싸웠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표창해 주었다. 그리고 문득 문득 자신이 잘못하여부하들이 공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번민에 빠졌다. 그러나 이순신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아니다.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있을 테지. 설마 조 정에서 그만한 것도 모르랴. 일단은 왜적을 죽이는 것이 급선무이다. 목을 베는 것은 중하지 않다, 중 하지 않아. 그러다가 행여 한 번 패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이순신이라고 어디 공 을 세우고 싶지않을까?

‘약간 위기에 빠졌다가 이기는 편이 공들을 세우게 할 수 있는 것이아닐까? 내가 너무 완벽하게 이겨 서 오히려 결과가 안 좋은 것은 아닐까? 목베기를 시켜볼까?’

그러나 이순신은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된다, 아니 돼. 내 부하들은 고작 몇 천, 왜군 은 몇 십만인지모른다. 이건 수백 대 일의 싸움이 야. 목을 백 개 베더라도 내 부하 한명을 잃으면 그 만큼 손해가 나는 것이다. 유혹에 빠지기에는 너무 사태가 절박하다.’

이순신은 멍하니 저편 하늘을 보았다. 원균의 말로 는 적선이 사천선창에 있다고 했다.

“어서 가자. 사천 방향으로 급히 노를 저어 나간다. 돛은 모두 내리고 지포(布)에 싼 화약을 충분히 준비하라.”

결국 이순신은 공을 세우고 싶은 참기 힘든 유혹을 다시 한 번 떨쳐버렸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함포 사격만을 철저히 하도록 명할 뿐, 그 이상의 진격이나 적선에의 돌입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함대는 서서히 사천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 비록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허공에떠서 이순신 함대 의 뒤를 따르는 요기 어린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마수들이었다.


무명령이 고함을 치자 호유화는 뜨끔했다. 사실 호 유화는 전에 태을사자가 장계를 보고 이순신이 왜란 종결자일지도 모른다는 전언을 남겼던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런데 호유화가 지금 태을사자가 왜란 종결자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태을사자에게 이순신 이 왜란종결자가 맞다고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었 다.

무명령은 과연 일계의 대표답게 날카로웠다. 그러나 호유화는 억지를 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 좀 풀어진 본색(?)의 말버릇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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