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49화 : 사천 해전
사천해전
“포를 쏘아라! 용감하게 돌진하라! 그깟 총탄이 무 서운가? 화포를쏘아라! 더! 더!”
이순신은 대장선에서 계속 소리쳤다. 사천에서 왜선 들은 이순신의함대가 돌입하자 배를 선창에 급히 매 어두고 산으로 올라가 항전하고있었다. 지난번 패전 으로 왜군들은 함포의 무서움을 알았는지 배를 버리 고 일단 견고한 산 위의 진지로 올라간 것이다. “진지를 먼저 쏘지 말고 배를 쏘아라! 놈들의 조총 탄으로는 배를 뚫을 수 없다. 일단 배를 깨뜨리고 불살라라! 어서!”
이순신이 명을 내리자 대장선 주위의 전령들이 급히 명령을 반복한다음 연을 띄웠다. 그 연은 설이나 동 지께쯤 언덕빼기에 올라 아이들이 히히덕거리며 띄 우는 연과는 달랐다. 크기도 컸고, 각 연에는 화려 한 무늬와 색깔이 칠해져 멀리서도 식별하기가 쉬웠다. 이 연은 통영연 (統營)이라 하였는데, 물론 군 사들이 놀이로 연을 띄우는 것은아니었다. 이 연은 바로 이순신이 독자적으로 생각해낸 군호(軍號)였던 것이다.
당시는 무전이나 기타 통신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명 령의 전달은 주로 깃발이나 악기, 조금 복잡한 명령 은 전령을 직접 파견하는 것으로이루어졌다. 그러나 수군은 육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 깃발신 호가 잘 보이지 않을 경우가 많았으며, 작은 배로 전령을 보내더라도 배의 속도가 느리니 급한 군령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순신은 골몰하다가 그 천재적인 두뇌로 놀 이기구로나 사용되던 연을 군호로 사용할 생각을 해 낸 것이다. 연은 깃발보다 훨씬높이 하늘에 떠서 아 주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으니 군호로 사용하기에 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순신은 이 연을 조합하여 상 당히 복잡한 명령도 내릴 수 있도록 독특한 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진지보다도 배를 먼저 공격하라고 명을 내리자, 각 전선들은 산 위의 진지를 포격하다가 방향을 돌려 비어 있는 채로 포구에 묶여 있는왜선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이순신은 현기증이 일어서 지휘용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부관들이 놀랐으나 이순신은 고개 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 일 없다. 전투에만 신경 쓰라! 우리도 나아가야 한다! 어서 나가 한 척이라도 왜선을 더 깨뜨려라!”
그때 장교 하나가 전령장교를 데리고 달려왔다. 이 순신이 얼핏 보니 그는 원균이 보낸 전령이었다. “경상우수사의 전갈이옵니다. 경상우수사께서는 어 찌 산 위의 적병을 공격하지 않고 빈 배를 깨뜨리느 냐고 성화시옵니다.”
이순신은 몹시 머리가 아파서 인상을 쓰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배를 노려야 하네. 배를 모두 깨고 나면 저 들은 갈 데가 없어! 우리는 수군이니, 육전에는 익 숙하지 못하네. 하물며 이 병력으로저 산 위의 진지 를 공격하는 것은 무리야.”
“하오나 왜병을 공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 247…….”
그러자 이순신도 화가 났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목 베기 전과만을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소심한 사람이었다. 화가 난다고 남에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좌우간 그럴 수는 없네!”
이순신은 전령장교의 항의를 짧게 잘라 버리고 부관 에게 대뜸 소리를 쳤다.
“무엇 하느냐? 어서 모든 화포를 쏘라 이르라! 천 자포는 무엇을 하는 게냐?”
그러자 부관이 말했다.
“지금 산 위까지 닿을 수 있는 포는 천자포뿐이옵니 다. 그것을 무리하게 다 쏘아 버리면…………….”
천자포, 즉 천자총통(天字銃筒)은 당시 조선군이 보 유한 화포 중 가장 구경이 크고 위력이 강했다. 천 자총통은 유효 사거리가 약 1킬로미터가 넘었는데 (지금의 엠-16 소총의 유효사거리는 350미터 정도 이다.), 16세기 당시에 같은 크기의 화포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였다. 당시 스페인이나 포 르투갈의 포들은 미끈한 모양이었고 위력도 높다고 자랑하고 있었으나, 천자총통은 그와 비슷한 크기임 에도 사거리가 두 배가 넘었다. 아무튼 부관의 말은, 천자총통은 화약 소모량이 많아서 나중에 진지를 공 격하기 위해 발사하는 것을 아껴두고 있다는것이다. 이순신이 노기를 띠며 소리쳤다.
“답답하다! 놈들의 배를 깨뜨리면 저놈들이 보고만 있겠느냐? 놈들은 반드시 배를 건지려고 내려올 것 이다! 싸움이 임박하였는데 무기를 아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서 놈들이 내려오기 전에 배 를깨뜨려라! 명을 내려라! 어서!”
명을 내리면서 이순신은 자신의 전선도 앞으로 진격 시켰다. 다시통영연이 하늘로 치솟고 대장선의 기라 졸(旗羅卒)들이 깃발을 어지러이 휘두르자 각 전선 들이 왜선들에 집중사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판옥선 의 주력화포인 지자포, 현자포를 위시하여 커다란 천자포의 둔중한울림까지, 사방을 가득 메웠다.
이순신은 가뜩이나 좋지 않은 몸으로 전투에 나선데다가 긴장을 견디지 못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으나 이를 악물고 소리를 쳤다.
“화력을 집중하라! 집중! 여기저기를 쏘지 말고 한 배를 집중하여깨뜨리고 다음 것을 노려라!”
녹도만호 정운의 전선을 제외하고 다른 배들은 마구 잡이로 화포를쏘아대고 있었다. 그리하면 왜선들을 비록 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완전히 부수기는 어렵 다. 그 왜선들은 모두 목선이니 깨뜨려도 쉽게 가라 앉지 않는다. 가라앉지 않으면 어지간히 부서지더라 도 금방 수리하여다시 쓸 수 있다. 따라서 아예 형 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수고 불을놓아 태워 버려 야 했다. 그러니 마구잡이의 사격으로는 어림도 없 었다. 한 척 한 척 확실히 목표를 잡고 완전히 격침 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산 위의 진지에서는 왜군들이 아우성을 치며 마구 조총을 쏘아대고있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조선군에게 까지는 하나도 닿지 않았다. 이순신은 머리가 빠개 질 듯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눈을 반쯤 감고 있었으 나 귀로는 신경을 곤두세워 상황을 예민하게 살피고 있었다.
“화전을 써라! 포를 아끼고 화전으로 나머지를 불살라라!”
이순신은 다시 고함을 쳤다. 그런데 별안간 왜군 진 지 쪽에서 들려오던 총소리가 뚝 끊겼다. 이순신은 눈을 번쩍 떴다. 여기저기 꽤 큰왜선들이 화염에 휩 싸여 깨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순신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왜군의 총소리가 끊겼다. 분명 놈들은 진지에서 내 려와 배를 건지려는 것이다! 그러니 화포를 정비하 고 화살을 준비하라! 돌격선 두 척에 화차(火車)를 장비하여 신기전을 장전하라!”
돌격선 두 척에는 지금의 다연장 로켓이라 할 수 있 는 화차와 그 탄약인 신기전이 실려 있었다. 이지 역제압용 화기는 신립도 사용한 바있었는데, 이순신 역시 상당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전은배 끼리의 전투에서는 그리 커다란 효능을 발휘하지 못 했다. 하지만 왜군들이 진지를 버리고 배를 구하려 내려올 때는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놈들이 내려오면 배를 약간 뒤로 물린다! 학익진을 펴서 제 일진은남은 왜선을 격침하고, 제 이진은 왜군만을 나누어 사격한다! 어서 명하라!”
이순신이 크게 외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이순신 의 등뒤에서 보이지 않는 흰 그림자 같은 것이 휙 하고 이순신의 앞쪽으로 나아갔다.
그 그림자는 마구 소리치며 몰려 내려오고 있는 왜 군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을 볼 능력을 지 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