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59화
삼신대모와 염라대왕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 자 태을사자는궁금해졌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마수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두 분은 짐작이 가시는 듯하온데………….”
삼신대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말하기는 이르네.”
곁에 있던 염라대왕도 한 마디 거들었다.
“조금 더 조사해 본 후 필요하면 알려주겠네.”
“……그렇습니까?”
태을사자는 궁금했으나 원래가 마음을 비운 저승사 자였기에 얼른호기심을 거두웠다. 흑호나 호유화였 다면 궁금해서 참지 못했을 테지만…………….
“좌우간 마수들은 인간의 영혼을 힘의 바탕으로 삼 는 것 같네. 그래서 마수들 하나하나의 법력이 상당 한 게야. 물론 자네들은 기연을 여러 번 얻은 후라 법력이 극도로 강해져 있으니 하나하나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네만……”
느닷없이 저만치에서 비추무나리가 번쩍이는 섬광을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삼신대모가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아, 비추무나리께서 좋은 것을 알려주시었군. 태을사자?”
“예?”
“지금 생계에 내려가 있는 마수는 모두 열둘이라고 하네. 열두 마리만 찾아내어 처치하면 되는 것이 네.”
“열둘이라구요?”
그 말을 듣자 태을사자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 었다. 만약 마수가 수천 마리 내려가 있다면 흑호와 둘이 어떻게 감당해낼지 걱정이되었던 것이다. 어떻 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비추무나리가 그렇듯소상 한 것까지 알려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태 을사자는 내친김에 물었다.
“그러면 그 마수들은 어떤 종류입니까?”
“그것까지야 알 수 있겠는가? 좌우간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다행이네. 좌우간 자네들은 힘껏 그들을 물리치고 천기를 바로잡는 일에 애써주게나.”
“그러겠사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당부하네만, 절대 자네는 사람 들에게 그 어떤것도 알려서는 아니 되며, 영향을 주 어서도 아니 되네. 천기란 몹시 중요한 것이야. 과 거 조선에서 어느 선인이 천기를 짚어보고 미래를 투시한 다음 그것을 누설한 일이 있었다네.”
“어떤 것입니까?”
“호유화가 알고 있는 사백 년 정도 후의 일이었어. 정확하게는 지금으로부터 삼백오십팔 년 후이지.” “그때의 천기가 어찌 되었기에……?”
“그때 조선땅에서는 난리가 난다네. 나라가 남과 북, 둘로 갈라져큰 전쟁이 나지 (1950년에 일어난 6.25를 의미함).”
“그러하옵니까?”
“그래. 그 참혹함에 놀란 선인은 그러한 사실을 자 신도 모르게 몇몇에게 알리고 말았네. 그때는 조선 이 건국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던때였는데, 불행히도 그 내용이 조선 실권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네. 그래서 조선은 서북이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일으킨다하여 서북사람들은 관직에 오르지도 못하게 억압하게 되었다네. 단 한마디의 천기가 새 어나간 관계로 수많은 서북출신의 사람들이 벼슬에 도 오르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야.”
그에 대해서는 태을사자도 약간 알고 있었다. 조선 조에는 소위 서북인들의 상은 ‘출림맹호(出林猛 虎)’, 즉 숲에서 뛰쳐나온 호랑이의 상과 같다 하여 몇몇 말직이나 현지의 직무 이외의 높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실제로 법제화된 것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서북 출신의 인물들이 등용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마도 논리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없는 무엇인가의 영향 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법보다도강한 관습이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법이라고 착각하고 있 었다. 그이면에 이러한 배경이 있는 줄은 태을사자 로서도 처음 안 것이다.
“알겠는가? 약간의 누설만으로도 이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야. 절대 조심하여야 하네. 마수들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보다도, 자칫 잘못하면 천기를 누설하는 편이 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네.” “꼭 그리 하겠사옵니다!”
태을사자는 씩씩하게 대꾸하면서 흑호와 같이 나서 려 했다. 바로그때, 언제부터 그들을 보고 있었는지 몰라도 하일지달이 뛰어나왔다.
그 모양새를 보고 증성악선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일지달, 왜 그러느냐?”
“쇤네도 내려가게 해주십시오.”
“너도? 어디로 말이냐?”
“쇤네는 저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저도 내려가게 해주소서.”
어이가 없는지 증성악신인이 웃었다.
“허허…………, 너 내 뒤에서 듣지 못하였느냐? 지금까 지 연관이 없었던존재들은 신계의 명에 따라 누구도 저들을 도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쇤네는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옵니 다.”
그러자 삼신대모가 나섰다.
“네가 어찌?”
“세 가지 이유가 있나이다! 쇤네는 생계에 내려가 흑호와 호유화를데리고 왔나이다. 그때 그들은 천기 의 변동을 막는 일을 하고 있다고쇤네에게 변명을 했사옵니다. 그러니 쇤네도 그들의 일에 전혀 연관 이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그 첫째이옵고 …!”
증성악신인과 삼신대모는 둘 다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는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일 지달이 계속 말했다.
“두 번째는 그들을 쇤네가 데리고 옴으로써 그들의 일이 방해받을가능성이 있나이다. 그렇다면 쇤네가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삼신대모가 고개를 저으며 되받았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들 모두 그들을 도우러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은동이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하 지만 그건 안 돼. 그런 이유만으로는 모자란다.”
하일지달은 물러서지 않고 이내 덧붙였다. 그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도 없었고, 오히려 약간의 장난기 까지 있어 보였다.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하옵니다. 쇤네는 저들을 돕고 싶으며, 저들은 누구라도 도울 사람이 필요하 다고 여겨지옵니다! 반드시 돕게해주소서!”
하일지달의 말에 삼신대모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성악신인은 조금 질린 듯한 표정으로 삼 신대모에게 막 무엇인가 변명하려했다. 그러나 삼신 대모는 꾸중할 듯하다가 하일지달의 장난기 어린 얼 굴을 보고는 ‘허참!’ 하고 한숨을 내쉬며 웃고 말았 다. 그러고는 근엄하게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하다. 허나…… 그래, 네가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지금 은동이는 다쳐서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없단다. 그러니 네가 일단 그곳을 지키거라. 그러나 절대 함부로 행동하지 말 것이며 행여 마수 들이 무슨 짓을 꾸미거든 즉시 우리에게 알리거라. 마수들이 은동이를해치러 나선다면 나나 여기 계신 분들이 직접 갈 것이다. 그것은 마수들이 천기를 본 격적으로 깨치려는 것이니까.”
사실 하일지달은 흑호가 왠지 마음에 들어 흑호를 도우러 가고 싶었다. 팔선녀 중에서도 가장 막내이 며 장난기가 유달리 많고 행동이엉뚱한 데가 있는 하일지달은 이번에도 공연히 튀어나온 것이다. 삼신 대모는 허락하지 않으려 했으나 은동의 몸을 돌보는 것이 중하므로 그일만을 하도록 못을 박았다. 원래 는 삼신대모가 은동이를 데려다주는것이 맞았다. 허 나 호유화를 돌보아야 하므로 대리인을 시킬 요량을 하고 있었는데, 하일지달이 나서니 그녀를 그 일에 쓴 것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