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9권 – 5화 : 두 번 사로잡고 두 번 놓아주다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9권 – 5화 : 두 번 사로잡고 두 번 놓아주다


두 번 사로잡고 두 번 놓아주다

남만왕(南蠻) 맹획도 듣는 귀는 있어 공명이 슬기로 옹개의 무 리를 가볍게 깨뜨렸다는 걸 알았다. 이어 공명이 자기 땅으로 진군 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제 밑에 있는 삼동(三洞, 부족. 흔히 동굴에 근거하였으므로 그렇게 나타냄)의 원수(元帥)들을 불러들였다. 첫 째 동의 원수는 금환삼결(金環結)이요, 둘째 동은 동도나(董荼那), 셋째 동은 아회남(阿이 원수였다.

“제갈량이 대군을 이끌고 우리 땅을 침범해 오고 있으니 서로 힘 을 합쳐 맞서지 않을 수가 없다. 너희 셋은 길을 나누어 군사를 내고 제갈량과 싸우라. 이기는 자는 바로 동주(洞)로 삼겠다.”

맹획이 셋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기세도 좋게 길을 나누어 나아갔다. 금환삼결은 가운데 길을 잡고, 동도나는 왼편 길을, 아회남은 오른편 길을 잡았는데 이끄는 군사는 각기 오만이었다.

이때 공명은 진채에서 장수들을 모아놓고 앞길을 의논하고 있었 다. 문득 살피러 나갔던 군사가 나는 듯 말을 달려와 말했다. 

“오랑캐의 삼동 원수가 세 길로 나누어 밀고 들어옵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먼저 조운과 위연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들에게는 아무 말도 않고 다시 왕평(平)과 마충(馬忠)을 부르더니 둘에게 먼저 영을 내렸다.

“지금 오랑캐 군사가 세 길로 나누어 오고 있다. 나는 자룡과 문 장(文長, 위연의 자)을 보내고 싶으나 그들은 이곳 지리를 잘 몰라 쓰 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대들 둘을 먼저 보내려 하니 왕평은 왼 길 로 나가 적을 맞고, 마충은 오른 길로 나가 적을 맞으라. 나는 자룡 과 문장을 뒤따라 보내 그대들의 뒤를 받쳐줄 것이다. 오늘 군마를 정돈해 내일 아침 떠나도록 하라.”

왕평과 마충이 영을 받고 물러나자 공명은 다시 장의와 장익(張 翼)을 불렀다.

“그대들 두 사람은 군사를 이끌고 가운데 길로 나아가 적을 맞으 라. 오늘 군마를 정돈한 뒤 내일 아침 왕평, 마충과 시각을 맞추어 떠나면 된다. 나는 자룡과 문장을 보내고 싶으나 이 두 사람은 지리 를 잘 몰라 쓰지 못하고 있다.”

공명이 그렇게 영을 내리자 장의와 장익도 소리내어 답하고 물러 갔다. 조운과 위연은 공명이 끝내 자기들을 쓰지 않자 성난 빛을 드 러냈다. 공명이 그런 그들을 보고 짐짓 달래듯 말했다.

“나는 장군들을 쓰지 않으려 함이 아니다. 장군들이 험한 곳을 깊숙이 들어갔다가 오랑캐들의 계책에 떨어질까 두려워 쓰지 못하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 군사들의 날카로운 기세만 꺾어놓는 꼴이 되지 않겠소?”

그러자 조운이 불끈거리며 받았다.

“만약 우리가 이곳 지리를 잘 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어쨌든 그대들은 조용히 물러나 있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도록 하시오.”

공명이 기어이 두 사람을 잡아놓자 조운과 위연은 좋지 않은 기 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싶었던지 조운이 위연을 자기 진채로 불렀다.

“우리 두 사람은 선봉이면서도 지리를 모른다는 이유로 오늘 쓰 이지 못했소. 후배들에게 할 일을 뺏겼으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 니겠소?”

조운이 그렇게 말하자 위연이 얼른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러지 말고 우리 두 사람이 몸소 한번 가서 살펴보는 게 어떻습 니까? 토박이라도 하나 붙잡으면 길잡이로 삼아 오랑캐들을 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운도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이에 두 사람은 말에 올라 가운데 길로 달려 나갔다. 몇 리 가기도 전에 멀리서 티끌이 자욱이 이는 게 보였다. 산 위에 올라가 살펴보니 오랑캐 군사 수십 기가 말을 몰아 달려오고 있었다.

덮치기 좋은 길목에 숨어 있던 조운과 위연은 그들이 가까이 오 자 양쪽에서 뛰쳐나갔다. 오랑캐 군사들은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 달아나기 바빴다. 조운과 위연은 그런 그들을 뒤쫓아 각기 몇 명씩 사로잡았다.

진채로 돌아온 두 사람은 붙들어온 오랑캐 군사들에게 술과 밥을 주며 근처의 지리를 물었다. 그 중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앞에는 금환삼결 원수의 대채가 있는데, 산어귀에 자리 잡았습니 다. 그 대채 동서로 두 갈래 길이 나 있어 하나는 오계동(五溪洞)으 로 통하고 다른 하나는 동도나와 아회남의 진채 뒤로 이어집니다.”

조운과 위연은 그 말을 듣자 곧 날랜 군사 오천을 골라 사로잡은 오랑캐 군사를 길잡이로 삼고 진채를 나섰다. 때는 밤 이경 무렵인 데 달은 밝고 별은 빛났다. 달빛 속에 길을 재촉해 금환삼결의 대채 에 이르니 거의 날샐 무렵인 사경이었다.

만병들은 벌써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날이 밝는 대로 한바탕 짓 쳐나올 요량인 듯했다. 조운과 위연은 두 갈래로 길을 나누어 그런 만병들의 진채를 들이쳤다. 그 갑작스런 공격에 만병들은 금세 어지 러워졌다.

조운은 똑바로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가다 금환삼결과 정통으로 맞닥뜨렸다. 금환삼결이 맞섰으나 원래 조운의 적수가 못됐다. 두 사람의 말이 한차례 엇갈리는가 싶더니 금환삼결은 조운의 창에 찔 려 말 아래로 떨어졌다. 조운이 그 목을 베어들자 그의 졸개들은 그 대로 흩어져 달아나버렸다.

금환삼결의 진채를 휩쓸자마자 위연은 군사 절반을 갈라 동쪽 길 로 밀고 들어갔다. 기세를 몰아 동도나의 진채마저 휩쓸어버릴 작정 이었다. 그걸 본 조운은 남은 절반을 데리고 서쪽 길로 아회남의 진채를 덮쳤다. 두 사람이 각기 목표한 만병의 진채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위연이 밀고 들어간 쪽은 동도나의 진채 뒤쪽이었다. 진채 뒤로 촉군이 밀려들고 있다는 말을 들은 동도나는 곧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맞싸우려 했다. 그때 갑자기 진채 앞쪽에서 함성이 일어 만병들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왕평이 이끈 촉군이 벌써 그리로 밀어닥치고 있 었다.

위연과 왕평이 앞뒤에서 들이치자 동도나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 다. 이리저리 쫓기는 졸개들을 버려두고 길을 앗아 달아났다.

조운도 위연과 비슷했다. 아회남의 진채에 이르러 보니 벌써 마충 의 군사들이 진채 앞으로 밀고 드는 중이었다. 조운이 뒤에서 들이 치자 아회남 역시 견뎌내지 못하고 몸을 빼쳐 달아났다.

조운을 비롯한 촉장 네 사람이 군사를 거두어 진채로 돌아가자 공명이 물었다.

“세 동(洞)의 만병들이 무너져 달아났다면 그 우두머리 세 사람의 목은 어디 있는가?”

그 말에 조운이 금환삼결의 목을 들어다 바쳤다. 다른 장수들이 분하다는 듯 입을 모았다.

“동도나와 아회남은 말을 버리고 산마루로 달아나는 통에 뒤쫓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공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그 둘은 내가 이미 사로잡아놓았다.”

하지만 조운을 비롯한 네 장수는 그런 공명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서로 알 수 없다는 듯 얼굴만 마주보고 있는데, 문득 장의와 장익이 적장 둘을 묶어 끌고 들어왔다. 장의가 끌고 오는 것은 동도 나였고 장익이 끌고 오는 것은 아회남이었다.

모두 놀랍고도 궁금해 공명을 바라보자 담담히 그 경위를 밝혔다. 

“나는 여개(呂凱)의 지도를 보고 이미 저들이 진채를 세울 곳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자룡과 문장의 예기를 격동시켜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한 것이다. 자룡과 문장이 금환삼결의 진채를 먼저 쳐부수 고 길을 나누어 양쪽의 적 진채로 짓쳐들 때 왕평과 마충을 보내 호 응하게 했는데, 그 같은 일은 자룡과 문장이 아니고는 해낼 수가 없 다고 보았다. 또 나는 동도나와 아회남이 반드시 산길로 달아날 것 도 미리 헤아렸다. 그래서 장의와 장익에게 복병이 되게 하고 관색 은 그 둘을 도와 동도나와 아회남을 사로잡게 하였다.”

그제서야 모든 장수들이 엎드려 절하며 감탄했다.

“승상의 헤아림은 실로 귀신도 알아맞히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명은 조용히 웃으며 그들을 보다가 문득 영을 내렸다.

“저 두 사람을 풀어주어라.”

동도나와 아회남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군사들이 동도나와 아회남을 풀어주자 공명은 다시 그들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좋은 옷을 내리며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너희 동으로 돌아가거라. 다시는 나쁜 일을 거들 어서는 아니 된다.”

꼭 죽는 줄 알았던 동도나와 아회남은 그 같은 공명의 너그러움에 감격했다. 엎드려 울며 감사하고 샛길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간 뒤 공명은 다시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내일은 반드시 맹획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덤벼들 것이다. 그 틈을 타 사로잡아야겠다.”

그러고는 먼저 조운과 위연을 불러 각기 오천의 군사를 주며 어 디론가 보냈다. 그다음은 왕평과 관색이었다. 공명은 그들에게도 각 기한 갈래 군마와 함께 계책을 주어 어디론가 보냈다.

한편 맹획은 삼동의 원수를 보내놓고 소식을 기다리는데 홀연 사 람이 들어와 알렸다.

“세 동의 원수는 모두 촉군에게 사로잡히고 그 군사들은 흩어져 버렸다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맹획은 크게 노했다. 곧 자기가 거느린 만병들을 휘 몰아 싸우러 가다가 왕평의 군마와 마주쳤다.

양군이 둥그렇게 진을 쳐 맞선 가운데 왕평이 나가보니 말 탄 만 병의 장수 수백 기에 싸여 맹획이 나오는 게 보였다. 머리에는 보석 을 박은 자줏빛 금관을 쓰고 몸에는 붉은 비단 전포를 걸쳤으며, 허 리에는 사자를 새긴 옥대요, 발에는 매부리 모양의 녹색 가죽신이었 다. 한 마리 털이 굽슬굽슬한 적토마를 타고 두 자루 보검을 차고 있 는 게 자못 위풍이 당당했다.

가만히 촉진(蜀陣)을 살펴보던 맹획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매양 제갈량은 용병을 잘 한다더니 오늘 저 진을 보니 별것도 아니구나. 깃발은 어수선하고 대오는 뒤얽혀 어지러우며, 창 칼이나 다른 병기도 나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전에 들 은 말이 틀렸음을 이제야 알겠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훨씬 일찍부터 맞서보았을 것을.

자, 이제 누가 촉의 장수를 사로잡고 우리의 위세를 떨쳐 보이겠느냐?”

그러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장수가 소리치며 나섰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맹획이 보니 망아장(忙長)이란 장수였다.

망아장은 한 자루 끝이 뭉툭한 큰 칼을 들고 황표마(黃驃馬)를 몰 아 왕평에게 덤볐다. 왕평이 그와 맞섰으나 몇 합 싸우기도 전에 달 아났다. 신이 난 맹획은 군사를 휘몰아 달아나는 촉군을 뒤쫓았다. 관 색(關)이 다시 나왔으나 또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촉군이 달아나기를 이십 리 남짓, 맹획이 한창 신이 나서 그런 촉 군을 뒤쫓는데 문득 함성이 크게 일며 장의와 장익의 두 갈래 군마 가 쏟아져 나와 맹획이 돌아갈 길을 끊어버렸다. 달아나던 왕평과 관색도 되돌아서서 맹획을 들이쳤다.

촉군이 앞뒤에서 짓두들기니 만병들은 금세 뭉그러졌다. 맹획은 거느린 장수들과 죽기로 싸워 한 가닥 길을 열고 금대산(錦山) 쪽 으로 달아났다. 그 뒤를 촉군의 세 갈래 군마가 급하게 뒤쫓았다. 맹획이 정신없이 말 배를 차고 있는데 다시 앞에서 크게 함성이 일 며 한 떼의 군마가 길을 막았다. 앞선 장수는 상산의 조자룡이었다. 놀란 맹획은 금대산 좁은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조자룡은 그런 맹 획을 덮쳐 한바탕 만병을 죽이고 나머지는 사로잡았다. 맹획은 겨우 수십 기만 거느리고 산골짜기로 들어섰다. 등 뒤에는 뒤쫓는 군사들 이 바짝 다가오는데 갑자기 길이 좁아져 말이 나갈 수가 없었다.

맹획은 말을 버리고 산등성이를 기듯 하며 넘어갔다. 산마루를 넘자 비로소 온전히 벗어났는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문득 그쪽 산골짜 기에서 다시 북소리가 울리며 촉군이 쏟아져 나왔다. 공명의 명을 받고 거기 숨어 기다리던 위연의 오백 보군이었다.

그래도 맹획은 어떻게 뚫고 나가보려 했으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맹획이 위연에게 사로잡히자 그를 따르던 장수들도 모조리 항복했 다. 위연은 사로잡은 맹획을 이끌고 공명에게로 갔다.

그때 공명은 맹획을 맞을 채비를 갖춰놓고 있었다. 소와 말을 잡 아 잔치를 차리게 하는 한편 장막 안에 일곱 겹으로 무사를 세워 그 들의 창칼에서 뿜는 빛은 가을 서리와 겨울 눈 같았다. 스스로는 천 자에게서 받은 황금 부월(斧鉞)을 손에 잡고 자루 구부러진 덮개를 받치게 하여 단정히 앉았다. 북소리 피리소리 은은한 가운데 좌우에 어림군을 늘어 세우고 그렇게 앉아 있으니 공명의 위의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해 보였다.

먼저 끌려 들어오는 것은 수많은 만병들이었다. 공명은 그들을 묶 은 끈을 풀어주게 하고 부드럽게 달랬다.

“너희들은 모두가 착한 백성들인데 불행히도 맹획에게 얽매여 이 렇게 놀랍고 두려운 처지에 빠졌구나. 내가 생각하기에 너희들의 부 모형제와 처자는 문에 기대 너희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것 이다. 만약 이번 싸움에 너희들이 진 걸 알면 그들은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비틀리는 듯한 슬픔으로 피눈물을 쏟을 것이다. 이제 너희들 을 풀어줄 터이니 모두 돌아가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주라.”

그러고는 술과 밥을 먹이고 곡식을 나눠주며 정말로 모두 놓아주었다. 만병들은 그 은혜에 깊이 감동해 울며 절하고 돌아갔다.

공명은 다시 무사들을 불러 맹획을 끌어내 오게 했다. 오래잖아 맹획이 무사들에게 앞뒤로 에워싸여 끌려왔다. 맹획이 장막 아래 무 릎 꿇리어지자 공명이 그를 보고 가만히 물었다.

“선제께서 너를 박하게 대접하지 아니하셨는데 네 어찌 감히 모반했느냐?”

그러자 맹획은 조금도 굽히는 기색 없이 되받았다.

“동천, 서천의 땅은 원래 모두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땅이었 다. 그런데 네 주인이 힘으로 그걸 뺏어 마침내는 천자에까지 올랐 다. 거기 비해 나는 대대로 이 땅에 살아왔다. 너희가 무례하게 우리 땅을 침범했는데 어찌 맞서 싸우지 않겠는가?”

겁없고 비위에 거슬리는 소리였지만 어찌 된 셈인지 공명은 성내 는 기색이 없었다.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이제 내게 사로잡혔다. 그래 놓고도 마음으로는 항복할 수 없다는 것이냐?”

“산이 험하고 길이 좁아 재수없게 네 손에 떨어졌을 뿐이다. 어찌 마음속으로까지 네게 항복하겠는가?”

맹획이 여전히 그렇게 뻗대었다. 요샛말로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 끄는 지도자다운 기개였다. 공명은 그런 맹획을 한동안 살피다가 물 었다.

“네가 복종할 수 없다면 너를 놓아 보내주는 수밖에 없구나. 어떠 냐? 너를 놓아 보내주랴?”

전에 마속이 한 말도 있었지만 자부심이 강한 인간 특유의 호승심이 발동한 것도 사실이었다. 맹획이 그 말을 받아 씩씩하게 대답했다.

“만약 네가 나를 놓아준다면 나는 다시 군마를 정돈해서 너와 자 웅을 가려보겠다. 만약 다시 나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때는 네게 진심으로 항복하마.”

그러자 공명은 그 자리에서 맹획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새 옷을 입히고 술과 밥을 먹인 뒤 안장 얹은 말까지 내주며 맹획을 보내주었다.

애써 잡은 맹획을 그냥 놓아주는 걸 보고 장수들이 공명에게 물었다.

“맹획은 남쪽 오랑캐들의 큰 우두머리올시다. 이제 다행히 사로잡 아 남쪽 지방을 생각보다 빨리 평정했다 싶었는데 승상께서는 어찌 하여 그를 그냥 놓아 보냈습니까?”

공명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저를 사로잡기는 주머니에 든 물건을 꺼내는 것이나 다름 이 없다. 그가 마음으로 항복해야만 이 땅이 온전히 평정될 것이니, 나는 그때까지 기다리겠다.”

그러자 장수들은 아무래도 그 말을 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편 공명에게서 풀려난 맹획은 그날 하루를 달려 노수(濾水)가 에 이르렀다. 마침 거기에는 싸움에 져서 쫓겨온 만병들이 몰려 있 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그들은 사로잡혀 갔던 맹획이 멀쩡하게 돌아온 걸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궁금해 물었다.

“대왕께서는 어떻게 몸을 빼 돌아오실 수 있으셨습니까?”

맹획이 멀쩡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촉나라 놈들이 나를 장막 안에 가두어두길래 틈을 타 그놈들 여 남은을 해치우고 밤을 틈타 달아났다. 오다가 보초를 서고 있는 마 군을 또 만났으나 그때도 그놈을 죽이고 빠져나왔지. 이 말은 바로 그놈에게서 뺏은 것이야.”

그 말에 속은 졸개들은 다시 힘을 얻었다. 맹획을 받들어 모시고 노수를 건너 새로 진채를 얽었다. 그리고 인근 여러 동(洞) 우두머리 를 불러들이는 한편 촉군에게서 놓여난 만병들을 찾아 모으니 어느 새 그 군세는 다시 십만이 넘어섰다.

이때 동도나와 아회남은 각기 저희 동에 있었다. 맹획이 사람을 보내 부르자 겁이 나서 저희 졸개들을 데리고 맹획에게로 갔다. 저희 편이 대강 다 모였다 싶자 맹획이 영을 내렸다.

“나는 이제 제갈량의 계책을 다 알았다. 그와 싸워서는 안 되니, 싸우게 되면 반드시 그의 속임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 곧 저들 촉의 군사는 먼 길을 와서 지치고 고단한 데 다 날까지 이렇게 찌는 듯한데 무슨 수로 오래 견디겠느냐? 우리에 게는 노수의 험함이 있다. 배와 뗏목을 모두 남쪽 언덕에 끌어다 놓 은 뒤 토성을 높이 쌓고 도랑을 깊이 파 그 속에서 제갈량이 무슨 꾀를 내는지 구경이나 하자.”

자못 밝게 보고 하는 소리였다. 모든 추장은 그 말에 따라 배와 뗏 목을 남쪽 언덕에다 끌어 놓고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강가 산기슭 에다 높은 성루를 세우고 거기다가 활과 쇠뇌며 돌을 날리는 기계를 설치하여 오래 견디어낼 채비를 했다. 군량과 마초는 각 동에서 대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니 모든 게 빠짐없이 갖춰진 셈이라, 그로부터 맹획은 조금도 제갈공명을 걱정하지 않았다.

한편 공명은 군사를 휘몰아 내려오다가 노수 가에 이르게 되었다. 먼저 살펴보러 갔던 군사가 달려와 알렸다.

“노수가에는 배 한 척 뗏목 한 대 남아 있지 않은데, 물살은 세고 물은 매우 깊습니다. 또 물 건너 언덕에는 토성이 쌓여 있고, 그 위 에서는 만병들이 파수를 보고 있습니다.”

이때가 마침 오월이라 원래도 한여름인데 남쪽으로 내려왔으니 그 더위는 더 심했다. 군사와 말은 갑주를 걸치기는커녕 홑옷조차 꿰고 있기 어려웠다.

공명은 몸소 노수 가로 가서 맹획의 대비를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꼼꼼히 살피더니 대채로 돌아가 장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지금 맹획은 노수 남쪽에 머물면서 성벽을 높이 쌓고 도랑을 깊 게 파우리에게 대항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군사를 끌고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않은가? 그대들은 각기 군 사를 이끌고 산기슭 숲가로 가서 나뭇잎이 무성한 곳에 진채를 읽고 사람과 말을 함께 쉬게 하라.”

그러고는 그곳 지리에 밝은 여개를 보내 노수에서 백 리쯤 떨어 진 시원한 곳에 두 개의 진채를 얽게 하고 왕평, 장의, 장익, 관색 넷 을 보내 둘이서 하나씩 맡아 지키게 했다. 또 진채 밖에는 풀로 엮은 덮개를 둘러치게 해 그 아래 말들이 더위를 피하게 하고 장졸들도 서늘한 곳에서 편히 쉬게 했다.

참군 장완이 그걸 보고 제갈공명을 찾아가 말했다.

“제가 여개가 얽은 진채를 보니 몹시 좋지 아니합니다. 지난날 선 제께서 동오에게 낭패를 보실 때의 잘못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합 니다. 만약 만병이 노수를 건너와 갑자기 진채를 들이치고 불로 공 격해 오면 어떻게 막으실 작정입니까?”

그러자 제갈량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 묘한 계책이 서 있소이다.”

하지만 장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 속셈을 알 수 가 없었다.

그럴 즈음 후주가 마대를 시켜 더위 먹은 데 쓰는 약과 군량을 보내왔다는 전갈이 왔다. 공명이 불러들이자 마대는 절하며 공명을 보고 온 뜻을 밝히는 한편, 가져온 약과 곡식을 각 진채에 나누어주었다.

그 일을 끝내고 돌아온 마대에게 공명이 가만히 물었다.

“그대가 끌고 온 군마는 얼마나 되는가?”

“한 삼천 됩니다.”

마대가 왜 그러냐는 듯 공명을 보며 그렇게 대답하자 공명이 다시 물었다.

“내가 이끌고 온 군사는 지금 거듭되는 싸움으로 지쳐 있다. 그대 의 군마를 좀 썼으면 하는데 한번 해보겠는가?”

“제가 이끌고 온 군마도 모두 나라의 군마입니다. 어찌 이쪽저쪽 을 가를 수 있겠습니까? 승상께서 쓰실 작정이라면 죽더라도 마다 않고 한번 나가보겠습니다.”

마대가 그렇게 흔연히 대답했다. 공명이 그런 마대에게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던 계책을 털어놓았다.

“지금 맹획은 노수에 의지해 항거하고 있어 건널 길이 없다. 나는 그 곡식 대는 길을 끊어 맹획의 군사가 절로 어지러워지게 만들려 한다.”

“어떻게 그 곡식 대는 길을 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백오십 리쯤 내려가면 노수 하류에 사구(沙口)란 곳이 있 다. 그곳은 물살이 느려 아무렇게나 엮은 뗏목으로도 건널 수가 있 을 것이다. 그대는 이끌고 온 삼천 군마를 이끌고 거기를 건너 똑바 로 오랑캐들의 마을[洞]로 들어가라. 가서 먼저 그 양식 대는 길을 끊은 뒤, 동도나와 아회남 두 동주(洞)를 만나 그들로 하여금 안에 서 호응케 하면 일이 그릇됨은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마대는 그 자리에서 군사를 몰아 사구로 갔다. 사구 에 이르러 보니 물은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만큼 얕았다. 이에 군사 들은 태반이 뗏목을 타지 않고 벌거벗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벌거벗고 물에 들어간 군사들이 물을 반쯤 건너기도 전에 픽픽 쓰러지는 게 아닌가. 급하게 물가로 끌어냈지만 한결같이 코와 입으로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깜짝 놀란 마대는 밤길을 달려 공명에게 그 일을 알리게 했다. 공 명도 놀랐다. 곧 인근에 사는 그곳 토박이들을 불러오게 해 그 까닭 을 물었다. 토박이 한 사람이 그 까닭을 일러주었다.

“지금이 몹시 뜨거운 철이라 그렇습니다. 노수에 괸 독기가 해가 내리쬐어 강물이 뜨거워지자 피어오른 것입니다. 그때 물을 건너는 사람은 반드시 그 독기를 쐬게 되고, 만약 그 물을 마시면 반드시 죽게 됩니다. 굳이 그 물을 건너려면 밤이 되어 물이 식은 다음에 건너야 합니다. 그때는 독기가 피어오르지 않아 밥을 든든히 먹고 건너 면 별 탈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그 토박이를 길잡이로 삼고 가려 뽑은 장사 오, 육백과 함께 마대에게로 보냈다.

마대는 그 말대로 한밤중에 뗏목을 타고 그 물을 건넜다. 정말로 아무 일 없이 건널 수 있었다. 마대는 이천 군마를 몰아 오랑캐 부락 으로 밀고 나가다가 그들이 양식 나르는 모든 길의 길목이 되는 좁 은 산골짜기를 차지해버렸다.

협산곡에는 양편 산 사이로 한 가닥 길이 나 있는데 그게 얼마나 좁은지 말 한 필에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골 짜기를 차지한 마대는 군사를 나누어 거기다가 진채와 목책을 세우 게 했다.

그걸 알 리 없는 만족들은 오래잖아 다시 그 길로 맹획이 쓸 곡식 을 옮기려 했다. 마대는 그런 만족을 덮쳐 백여 대의 곡식 수레를 모 조리 뺏어버렸다.

한편 그때 맹획은 하루종일 진채 안에서 술만 마시고 군사 부리 는 일은 돌보지 않았다. 고작 한다는 일이 추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큰소리나 치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제갈량과 바로 맞서게 되면 반드시 그의 속임수에 빠 지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 노수의 험한 물에 의지해, 성을 높 이 쌓고 도랑을 깊게 한 채 기다리고 있다. 촉나라 것들은 이곳의 더 위를 못 이겨서라도 반드시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 나와 너희들이 힘을 합쳐 그 뒤를 들이치면 제갈량을 사로잡기는 어렵지 않다.”

맹획이 그렇게 떠들자 한 추장이 말했다.

“사구 쪽은 물이 얕아 촉병들이 몰래 건널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매우 해로우니 마땅히 군사를 쪼개 그곳을 지 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 맹획은 호탕한 체 껄껄거리며 면박을 주었다.

“너는 이곳 토박이면서 어째 그렇게도 모르는가? 촉병이 그곳을 건너는 것은 내가 오히려 바라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그곳을 건넌 다면 모조리 물 가운데서 죽고 말 것이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곳 토박이들이 밤중에 건너면 된다는 걸 일러준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추장이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듯 다시 그렇게 물었다. 맹획은 그래도 큰소리만 쳤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우리 땅에 사는 사람이 설마 적을 돕기야 하겠는가?”

그러는데 문득 급한 전갈이 왔다.

“수는 얼마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병들이 노수를 건너 협산곡으 로 난 우리 양식 길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대장이 쓰는 깃발에는 ‘평 북장군 마대’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미 칼끝이 목 어름까지 이른 셈이건만 아직도 맹획은 급한 줄을 몰랐다.

“그까짓 어린애들을 가지고 무어 떠들 게 있느냐!”

그렇게 허세를 부리며, 부장 망아장에게 삼천 군마를 주어 협산곡으로 달려가게 했다.

마대는 만병들이 몰려온다는 말을 듣자 이천 군사를 이끌고 산아래에다 진을 쳤다. 이윽고 만병이 이르러 양군이 둥글게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망아장이 말을 달려 나와 마대에게 덤볐다.

망아장의 기세는 볼만했으나 솜씨는 마대에게 미치지 못했다. 겨 우 한 번 부딪고는 그대로 마대의 칼에 맞아 말 아래로 떨어졌다. 대 장이 그렇게 죽자 졸개들은 그대로 뭉그러져 달아났다. 쫓겨간 망아 장의 졸개들이 숨을 헐떡이며 맹획에게 돌아가 자기들이 본 일을 그 대로 전했다.

그제서야 맹획도 걱정하는 꼬락서니가 되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누가 나가서 마대와 한번 맞서보겠는가?”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동도나가 얼른 나섰다. 모두들 움츠러들어 눈치만 보는데 동도나가 나서주니 맹획은 반가웠다. 기꺼이 삼천 군사를 떼 어주어 보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촉군이 또 노수를 건널까 봐 사 구로도 아회남을 보내 삼천 군사와 더불어 그곳을 지키게 했다.

동도나가 협산곡에 이르러 진채를 내리자마자 마대가 군사를 이 끌고 달려 나와 맞섰다. 둘이 막 맞붙으려 하는데 촉군 하나가 동도 나를 알아보고 마대에게 일러주었다.

“저 사람이 바로 동도나란 동주올시다.”

그러자 마대는 동도나 앞으로 나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의리를 모르고 은혜를 저버린 것아. 우리 승상께서는 너를 불쌍히 여겨 목숨을 붙여주었건만 너는 어찌 또 배신하였느냐? 도대체 너도 부끄러움을 아는 놈이냐?”

동도나가 거기 대답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얼굴 가득 부끄러 운 빛을 띠고 섰다가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가버렸다. 마대는 그 뒤 를 한바탕 후려주고 자기 진채로 돌아갔다.

맹획에게로 쫓겨간 동도나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싸움의 결과를 말한 뒤에 덧붙였다.

“마대는 뛰어난 장수라 당해낼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맹획이 벌컥 성을 내며 소리쳤다.

“나는 네가 전에 제갈량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싸워보지도 않고 쫓겨온 게 아니냐? 이는 바로 적에게 싸 움을 팔아먹는 수작[賣陣之計]이다.”

그러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영을 내렸다.

“저놈을 끌어내다 목 베어라!”

그 갑작스런 불호령에 놀란 추장들이 나서서 맹획을 말렸다. 여럿 이서 갖은 말로 동도나를 살려주기를 빌자 맹획도 마침내는 영을 바 꾸었다.

“저놈의 목숨은 붙여주되 큰 몽둥이로 백 대를 때려 내쫓아라!” 

이에 무사들은 동도나를 끌어내 대곤(大) 백 대를 때린 뒤 자기 진채로 돌려보냈다.

여러 추장들이 늘어져 누운 동도나를 찾아보고 말했다.

“우리들이 비록 오랑캐 땅에 살고 있으나 일찍이 중국을 감히 침범한 적이 없었고, 중국도 일찍이 까닭없이 우리 땅을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맹획이 몰아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모반 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명의 헤아릴 길 없이 놀라운 꾀 는 조조와 손권도 두려워하였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오랑캐가 어떻 게 맞서겠습니까? 거기다가 우리들은 모두 붙들렸다가 목숨을 용서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그 보답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 니까? 이제 우리는 목숨을 걸고라도 맹획을 죽여 공명에게 항복하 는 게 낫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 동(洞)의 무고 한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함이 옳습니다.”

그러나 동도나는 맹획이 시킨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슬몃 그들을 떠보았다.

“그대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러자 공명에게 붙들렸다가 놓여난 사람들이 목소리를 합쳐 소리쳤다.

“믿어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원수님과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나서니 동도나는 비로소 마음을 굳혔 다. 강도(刀)를 빼들고 그들 백여 명과 더불어 맹획의 대채로 달려 갔다.

그때 맹획은 술에 몹시 취해 장막 안에 잠들어 있고 장수 둘이 장 막 밖에서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동도나가 칼끝으로 그 두 장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도 또한 제갈승상에게서 죽음을 용서받은 자들이다. 마땅히 그 은혜를 갚도록 하라.”

그러자 두 장수가 한꺼번에 대답했다.

“그런 일이라면 장군께서 손을 쓰실 것까지도 없습니다. 저희들이 맹획을 산 채로 묶어다 승상께 갖다 바치겠습니다.”

그러고는 장막 안으로 뛰어들어가 술 취해 쓰러져 있는 맹획을 꽁꽁 묶었다.

그들은 맹획을 끌고 노수 가로 가서 배에 태우고 물을 건넜다. 똑 바로 공명이 있는 북쪽 언덕에 배를 댄 뒤 먼저 사람을 보내 그 소 식을 알렸다.

이때 공명은 풀어둔 세작들을 통해 이미 그 일을 훤히 알고 있었 다. 가만히 영을 내려 각 진채의 장졸들에게 무기와 깃발 등을 정돈 해두게 한 뒤 비로소 동도나와 추장들이 보낸 사람에게 말했다. 

“우두머리 되는 추장만 맹획을 끌고 들어오고 나머지는 모두 본 채로 돌아가 기다리도록 하라.”

이에 동도나만 맹획을 끌고 공명을 찾아갔다. 공명은 먼저 동도나 를 불러들여 무거운 상을 내림과 아울러 좋은 말로 그 수고로움을 달래주었다. 마음이 흐뭇해진 동도나는 공명에게 절하여 작별하고 추장들과 함께 자기들 진채로 돌아가버렸다.

공명은 다시 맹획을 끌어오게 했다. 맹획이 칼과 도끼를 든 군사 들에게 등을 밀리며 들어서자 공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에 네가 말하기를 ‘앞으로 다시 사로잡히게 되면 항복하겠소’

했다. 자, 이제 어떡하겠느냐?”

맹획이 뻣뻣이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이번 일은 네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 내 밑엣것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끼리 서로 해쳐 이 꼴이 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항복할 수 있겠느냐?”

“좋다, 그럼 내가 다시 한번 너를 놓아주면 어찌하겠느냐?”

공명이 별로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맹획도 약 간 기세가 수그러졌다.

“내가 비록 오랑캐 족속이나 병법은 좀 알고 있소. 만약 승상이 나를 놓아주어 우리동중(洞)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면 나는 다시 한번 군사를 이끌고 나와 승상과 승부를 가려볼 것이오. 만약 이번 에도 승상이 나를 사로잡으면 그때는 진심으로 항복하겠소. 딴소리 하지 않겠소이다.”

전과 달리 제법 정중하게 말했다. 공명이 한 번 더 다짐을 주었다. “이번에 사로잡히고서도 또 항복하지 않으면 그때는 가볍게 용서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좌우를 보며 영을 내렸다.

“맹획을 풀어주어라.”

이에 무사들이 밧줄을 풀어주자 공명은 맹획을 장막 안에 앉힌 다음 술과 밥을 내주며 말했다.

“나는 초려를 나온 뒤로 싸워서 이기지 못함이 없었고, 쳐서 빼앗 지 못함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 오랑캐 땅[邦] 사람들은 항 복하지 않느냐?”

그러나 맹획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술자리가 끝난 뒤 공명은 맹획과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진채를 돌았다. 그냥 놓아 보내는 게 아니라 각 영채를 두루 구경시켜서 보 낼 뜻인 듯했다. 따라서 맹획은 촉군의 진채와 나무 울타리 []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며, 군량과 병기는 어디에 쌓여 있는가를 모두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공명은 그것들로 맹획의 기를 죽이려는 듯 이것저것 다 보여준 뒤 맹획에게 말했다.

“그대가 내게 항복하지 않겠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빼어난 군사들과 용맹한 장수들에다 넉넉한 곡식과 말 먹이 풀이며 갖가지 싸우는 연장을 갖추고 있는데 그대가 어찌 나를 이길 수 있겠는가? 만약 일찍 항복하면 천자께 말씀드려 네 왕위를 잃지 않게 할 것이요, 자자손손 이 땅을 다스리게 해주겠다. 어떠냐? 이래도 항복할 뜻이 없느냐?”

맹획도 공명의 진채를 구경하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는 듯 태도 가 달라졌다. 갑자기 말투가 공손해져 항복의 뜻을 비쳤다.

“제가 비록 항복을 한다 하더라도 동중의 다른 사람들까지야 마 음으로 항복하겠습니까? 만약 승상께서 놓아 보내주신다면 돌아가 는 대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달래보겠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마음이 한가지로 된 뒤에 승상께로 귀순하겠습니다.”

그러자 공명의 얼굴에 기꺼워하는 빛이 가득했다. 맹획을 데리고 다시 대채로 돌아와 날이 저물도록 술잔을 나눈 뒤에야 돌려보냈다. 그것도 공명이 몸소 노수까지 나가 배에 오르는 맹획을 배웅할 만큼 은근한 태도였다.

하지만 노수를 건너 자기의 본채로 돌아온 맹획은 공명 앞에서와 는 딴판이었다. 언제 항복하겠다고 했느냐는 듯 이를 악물고 싸울 채비에 들어갔다.

그 첫 번째가 이미 공명의 사람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동도나와 아회남을 없앤 일이었다. 맹획은 먼저 장막 안에 도부수를 감춰놓고 믿을 만한 졸개를 동도나와 아회남의 진채로 보냈다. 공명이 사자를 보냈으니 어서 와보라는 거짓 전갈을 주어서였다. 그리고 거기 속은 동도나와 아회남이 오자 감추어두었던 도부수를 호령해 모두 죽인 뒤 그 시체를 개골창에 내던졌다.

공명의 불찰이었다. 이왕에 맹획을 놓아 보낼 양이면 자기편이 된 동도나와 아회남은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아 둘 다 그토록 끔찍하게 죽음을 당하 고 말았다. 항복하겠다는 맹획의 말에 속았던 것일까, 아니면 원주 민 협력자의 안위에 대한 정복자의 비정이나 다름없는 소홀함이었 을까.

아회남과 동도나를 죽여 내부의 걱정거리를 없이 한 맹획은 다시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그 둘이 지키던 길목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있는 대로 군사를 긁어모아 협산곡으로 달려갔다. 마대를 쳐없앰으로써 노수를 건너 만들어진 촉군의 발판을 없애버 리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마대가 있던 협곡에 이르러 보니 촉군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리둥절해진 맹획은 근처에 사는 백성들을 불러 물어보았다.

“여기 있던 촉군들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그러자 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어젯밤 진채를 뽑고 군량과 마초까지 챙겨 노수를 건너가버렸습니다.”

그 같은 말에 그야말로 닭쫓던 개 울만 쳐다보는 격이 된 맹획은 하릴없이 군사를 돌려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마음 속에 세워둔 계책이 있는지 별로 움츠러드는 기색은 없었다. 곧 제 아우 맹우를 불러 의논하는데 매우 자신에 차 있었다.

“나는 지금 제갈량의 허실을 모조리 알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 것이니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렇게 큰소리부터 쳐놓고 이어 귓속말로 무언가를 일러주어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