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0권 양대호리(兩大狐狸)편 : 3화
제92장. 쌍쌍인랑(雙雙人狼)
진산월은 천천히 후원의 그늘 속에서 나와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 정산이 그를 보고 황급히 다가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그녀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왔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잠시 후원에 머물러 있었지.”
정산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지독한 아가씨입니다. 그런 짓을 하고도 태연하게 이곳에 다시 찾아 오다니…… 무식한 건지, 배짱이 좋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진산월이 온 것을 보고 동중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화도 주춤거리며 일어서려는 것을 진산월이 제지했다.
“앉아 있어라.”
동중산은 진산월에게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지 표정이 경직되어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에 그자들을 보셨습니까?”
“남포를 입은 중년인과 마의청년 말이냐?”
동중산의 얼굴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알지 못한다. 다만 무척 사나운 기(氣)를 지니고 있더구나. 내가 서 있는 곳에서도 그 살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누구냐?”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일전에 아주 무서운 솜씨를 지닌 두 명의 살수(殺手)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용모라든지 풍기는 기도로 보아 아무래도 그들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진산월이 묻는 시선을 던지자 동중산은 즉시 입을 열었다.
“혹시 쌍쌍인랑(雙雙人狼)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습니까?”
진산월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구나.”
“그럴 겁니다. 그들이 출현한 지는 불과 이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동안 이십여 명의 유명한 고수들이 그들 손에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 살행(殺行)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그들의 진실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나 살인을 저지르고는 다시 또 종적이 묘연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의혹과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옆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승표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쌍쌍인랑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잔인한 놈들인지 짐작이 가는군 그래.”
“그자들은 별호보다 더욱 악랄하고 무서운 인물들일세. 그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주위가 피바다가 된다고 하네.”
장승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조금 전에는 그냥 나갔지?”
“그래서 이상하다고 한 걸세. 그자들이 여기에 나타난 이상 틀림없이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왜 순순히 물러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단 말일세.”
동중산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닥 문득 눈을 빛내며 진산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장(掌)…… 공자님의 존재를 알았을까요?”
동중산은 장문인이라고 부르려다 그의 칭호를 살짝 바꾸었다. 그것은 옆에 있는 방화 때문이었다. 방화에게 아직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 주어도 될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자신들이 종남파의 고수들임을 드러냈다가 자칫 그 소식이 초가보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낭패스러운 일이 벌일지도 몰랐다.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몇 번인가 내 쪽으로 강한 살기를 보낸 것으로 보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중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이 여기에서 손을 쓰지 않은 게로군요. 후원에 있는 공자님의 존재가 신경 쓰여서 그냥 순순히 나간 것일 겁니다.”
장승표가 움찔하며 물었다.
“그럼 그들의 목표가 우리란 말인가?”
“아니, 그들이 나가기 조금 전에 이곳을 먼저 떠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 그 똑 소리 나게 생긴 아가씨 말이로군?”
“그렇지. 그들이 제대로 식사도 하지 않고 바로 일어선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들의 목표는 그녀였던 것 같네.”
“그자들이 그렇게 무서운 인물들이라면 그 아가씨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로군?”
장승표가 안타까운 듯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주루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조금 전에 그들이 화제에 올렸던 발고 그 소녀가 아닌가? 그녀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낭패스럽기 이를 데 없는 몰골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문득 진산월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당신……”
진산월을 응시하는 그녀의 두 눈에서는 금시라도 눈물 방울이 주르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하나 진산월의 시선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주루의 입구로 향해 입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
언제 나타났는지 주루의 입구에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남포중년인과 마의청년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 또한 진산월에게 못박이듯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세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켜들면서 주위의 공기가 급격히 냉각되었다. 문득 남포중년인의 얼굴에 특유의 유령과도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미친 듯이 이곳으로 뛰어들어오길래 영문을 몰랐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군.”
서문연산은 그의 음성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진산월의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평소에는 당돌하리만치 쾌활하고 제멋대로인 그녀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무서운 살수 앞에서는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진산월이 아무런 대꾸도 없자 남포중년인은 다시 얄팍한 입술을 살짝 벌렸다.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렸는데, 막상 이렇게 얼굴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군. 역시 해치워야겠지?”
그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마의청년이 거의 알아차릴 수도 없을 만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남포중년인은 천천히 진산월에게로 다가왔다.
“진작에 그랬으면 해결될 일을 너무 끌었어.”
마의청년도 그와 보조를 같이했다. 두 사람의 걸음은 그리 빠르지 않았으나,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을 느끼고 자신들도 모르게 한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오직 진산월만이 처음의 위치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거리가 이 장여로 좁혀졌을 때, 동중산은 문득 진산월이 병기를 지니지 않은 것을 깨닫고 황급히 자신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던져주려 했다. 하나 그때는 이미 싸움이 시작된 후였다. 먼저 공격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던 마의청년이었다. 일단 움직이자 그의 몸은 무섭도록 빨랐다. 눈앞에 갈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싶은 순간, 그의 갈퀴 같은 손가락은 어느새 진산월의 관자놀이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진산월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숙여 그의 손가락을 피하며 그의 앞가슴을 향해 일장(一掌)을 내갈겼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의 이 수는 장괘장권구식 중의 천성탈두(天星奪斗)라는 초식으로, 가까운 거리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지닌 수법이었다.
팡!
진산월이 내갈긴 일장은 정확하게 그의 앞가슴을 가격했다. 한데 그순간, 진산월은 자신이 마치 솜뭉치를 친 듯 손바닥에 별다른 작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이히히히……”
마의청년은 일장을 정통으로 맞고도 조금도 충격을 느끼지 않았는지 귀곡성(鬼哭聲)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계속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수비를 전혀 도외시한 그의 공격은 무섭고 날카로워서 하마터면 진산월은 그의 손가락에 어깨를 쥐어뜯길 뻔했다. 진산월은 옆으로 한걸음 이동하며 삼비박룡(三臂撲龍)의 수법으로 빠르게 손을 세 번 앞으로 내찔렀다. 세 줄기의 강력한 장력이 마의청년의 앞가슴과 양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도 마의청년은 조금도 피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퍽퍽퍽!
마치 고무인형을 치는 것 같은 음향이 터져 나왔다. 진산월의 손은 정확하게 마의청년의 가슴과 양쪽 옆구리를 가격했으나, 마의청년은 전혀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갈퀴처럼 구부린 양손으로 진산월의 늑골을 움켜쥐려 했다. 진산월의 몸이 한차례 빙글 회전했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은 어느새 마의청년의 뒤쪽에 가 있었다. 그 기경(奇景)할 신법에 중인들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터졌다.
“아!”
진산월이 펼친 것은 이어룡(이於龍)이라는 보법으로, 짧은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는 수법이긴 했으나, 지금과 같은 묘용은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것이다. 진산월은 몸을 회전하여 상대의 시야를 현혹시키고 이어룡 보법으로 상대의 겨드랑이 사이로 몸을 빼내 뒤로 돌아갔던 것이다. 마의청년이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진산월은 오른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빠르게 강타했다.
뿌득!
마의청년의 몸이 앞으로 휘청거리며 목이 옆으로 확 꺾였다. 누가 보기에도 목뼈가 완전히 부러져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마의청년이 두 손으로 자신의 꺾여진 머리를 잡더니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뿌드득!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음성과 함께 그의 목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마의청년의 얼굴에는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몇 차례 목을 까닥거린 마의청년은 다시 괴소를 터뜨리며 진산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히히……”
아무리 담력이 센 인물이라도 이런 상황을 맞게 되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력에 맞고도 멀쩡하고, 목뼈가 부러져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덤벼드는 괴인을 보고 누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진산월의 신형도 순간적으로 주춤거리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한쪽에 서 있던 남포중년인이 어느새 허공을 훌훌 날아 진산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소맷자락이 칼날처럼 빳빳하게 서 있는 광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앞뒤에서 두 괴인의 공격을 받게 된 진산월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것 같았다. 하나 진산월은 태산(泰山)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양손을 질풍처럼 휘두르며 그들에 맞서갔다.’
파파파팍!
별로 넓지 않은 주루 안이 삽시간에 그들이 뿜어내는 장영(掌影)과 경풍(勁風)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렸다. 동중산과 서문연상 등은 경풍이 여력을 이기지 못하고 구석까지 물러나고 말았다. 마의청년은 어떠한 장력에도 끄떡없는 괴이한 마공(魔功)을 연마한 것 같았다. 그래서 진산월의 공세는 아무래도 그보다는 남포중년인에게로 집중되었다. 하나 남포중년인의 무공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양쪽 소맷자락을 주로 이용한 공격을 펼쳤는데, 그 방식이 좀처럼 보기 드문 것이었다. 빳빳해진 소맷자락을 마치 검(劍)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찌르고 베는 동작이 검법을 전개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 위력은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쐐쐐쐐액!
연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파공음이 터져 나오며 진산월의 옆구리 옷자락 일부가 찢겨져 나갔다. 정확히 가격된 것도 아니고 소맷자락에 뿜어 나오는 경기(勁氣)에 스치기만 했는데도 마치 예리한 검에 베어진 듯 잘려져 나간 것이다. 남포중년인 또한 진산월의 장력에 옆구리를 한 대 맞고는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뒤로 비틀 물러나고 있었다. 하나 다시 몸을 쭉 편 그는 조금 전보다 더욱 맹렬하게 진산월을 향해 달려 들며 소맷자락을 십자(十字)로 휘둘렀다. 그와 함께 마의청년의 갈퀴 같은 손가락이 호선을 그리며 진산월의 뒷덜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두 사람의 공격은 빠르고 날카로울 뿐 아니라 기묘할 정도로 잘 배합이 되어 있어서 완벽하게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진산월은 등뒤에서 다가오는 마의청년의 공격은 아예 무시하고 남포중년인의 소맷자락 공세 속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남포중년인은 십자로 교차시킨 소맷자락을 마치 쌍검(雙劍)처럼 휘두르며 진산월의 목덜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진산월은 피하지 않고 오른손을 앞으로 쭈욱 내뻗었다.
콰앙!
갑자기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폭음과 함께 남포중년인의 몸이 뒤로 삼 장이나 주르르 밀려나더니 몇 개의 탁자를 부수고 벽에 반쯤 파묻혔다. 그의 옷은 갈가리 찢겨졌고, 이마에 묶었던 끈이 풀어져 검은 머리가 폭포수처럼 얼굴가 목을 뒤덮고 있었다. 안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벽에 처박힌 남포중년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코와 입에서 시커먼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 나오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진산월이 펼친 것은 대천장(大千掌)이라는 무공이었는데, 빠르고 강맹한 맛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경인(驚人)할 위력을 지닌 수법은 아니었다. 진산월은 대천장에 중봉의 석실에서 익힌 태진강기(太震?氣)를 처음으로 섞어 보냈는데, 그 효과가 실로 흡족할 만했다.
하나 상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진산월의 뒤쪽에서 다가오던 마의청년의 손가락이 어느새 그의 목덜미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다음 순간, 진산월의 몸이 마치 그 자리에서 꺼지듯 없어져 버렸다. 사실은 아래로 반쯤 주저앉은 것인데, 그 동작이 어찌나 빨랐던지 순간적으로 바닥으로 꺼져 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덕분에 마의청년의 손가락은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진산월은 반쯤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돌리며 오른손을 살짝 흔들었다. 무언가 부드러운 기운이 마의청년의 아랫배에 닿았다.
뿌드득!
순간 마의청년이 갈비뼈 쪽에서 뼈마디 으스러지는 음향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바닥을 다섯 바퀴쯤 구른 다음에야 마의청년은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입과 코, 양쪽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로 무시무시한 약류장(弱柳掌)의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의청년은 몇 차례 바둥거리더니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으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얼굴을 쓰윽 훔치더니 양손을 늘어뜨려 자신이 아랫배를 감싸안았다. 그런 다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양손을 세게 오므렸다.
뿌득!
듣기 괴로운 음향과 함께 부러졌던 갈비뼈들이 모두 제자리를 되찾았다. 얼굴에서 흘러 나오는 핏물은 여전했지만, 마의청년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는지 어깨를 빙빙 돌리고는 웃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상처 입은 한 마리 맹수 같았다. 중인들은 마의청년의 끔찍한 모습에 그저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마의청년은 입고 있던 마의를 천천히 벗었다. 잘 발달된 근육으로 뒤덮여진 상체가 나타났다. 그의 몸에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처들이 나 있었는데, 그 상처들과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뭉쳐져 공포스런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의청년은 벗어든 마의를 뒤적거리더니 옷감 안쪽에서 두 개의 얄팍한 병기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한 쌍(雙)의 륜(輪)이었는데, 어찌나 얇았던지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더구나 마의청년의 손에서 움직일 때마다 펄럭거리고 있어 어린아이의 장남감 같기도 했다. 하나 그 륜을 보자 동중산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귀왕무영륜(鬼王無影輪)!”
그의 음성 속에는 억제할 수 없는 경악의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저것은 마도(魔道)의 십팔대기문병기(十八大奇門兵器) 중 하나인 귀왕무영륜입니다.”
진산월은 귀왕무영륜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마도의 십팔대기문병기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기문병기들은 각각의 위력이 초절(超絶)할 뿐 아니라, 사용하는 방식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기궤(奇詭)하고 사이(邪異)하여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고수라 할지라도 제대로 막아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때 음산하면서도 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들려 왔다.
“흐흐…… 귀왕무영륜을 알아본다면 이게 무언지도 알겠지?”
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던 동중산의 몸이 흠칫거렸다. 태진강기가 실린 대천장에 맞고 삼 장 밖의 벽에 처박혀 있던 남포중년인이 어느새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산발한 머리카락과 백지장처럼 핼쑥해진 얼굴이 그야말로 유령을 보는 것 같았다. 남포중년인의 손에는 허리춤에서 푼 듯한 길다란 물체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길다란 채찍이었다. 그 채찍은 모두 아홉 등분이 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마디마다 작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그 채찍을 유심히 살펴보던 동중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절상문편(九節喪門鞭)?”
남포중년인은 입으로 계속 검붉은 피를 게워내면서도 징그럽게 웃었다.
“흐흐…… 하나밖에 안 달린 눈으로도 제법 볼 줄 아는구나.”
구절상문편 또한 마도 십팔대기문병기 중의 하나였다. 놀랍게도 이 조그만 주루에 강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마도의 열여덟 개 기문병기 중 두 가지가 나타난 것이다. 남포중년인의 시선이 진산월에게로 향했다.
“너의 무공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내 철자수(鐵刺袖)와 둘째의 유마혼(幽魔魂)을 이토록 간단하게 깨뜨린 자는 네가 처음이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병기를 꺼내게 했으니 네게는 너무나 불행한 일이지.”
남포중년인은 손에 든 구절상문편을 천천히 돌리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너는 이제 전신의 살이 한 조각씩 잘라지는 고통에 몸부림 치다가 숨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 표정과 음성의 악독함은 실로 치가 떨릴 정도였다. 동중산은 황급히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진산월에게 던지려 했다.
“여기 제 검을……”
“그럴 필요 없다.”
진산월은 고개를 내젖더니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이 장 밖의 부서진 탁자 파편 속에서 탁자 기둥 한 개가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진산월은 탁자 기둥을 손을 잡고는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 기문병기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번 볼까?”
남포중년인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흐흐…… 접인신공(接引神功)이 대단하구나. 하지만 그깟 나뭇조각 하나로 감히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너는 곧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착각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딜 것이다.”
우웅!
그의 손에서 회전하고 있던 구절상문편의 속도가 점차로 빨라지며 괴이한 음향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마의청년 또한 웃통을 벗은 채로 양손에 귀왕무영륜을 하나씩 들고 어슬렁거리며 진산월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의 다가오는 모습은 조금 전과 비슷했으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살벌함은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목의 관절을 뚝뚝 꺾으며 진산월을 향해 곧장 다가오던 마의청년이 돌연 오른손을 앞으로 쭈욱 내뻗었다. 소리도 없이 무언가 차갑고 예리한 것이 진산월의 코앞으로 쏘아져 왔다. 진산월은 슬쩍 고개를 옆으로 이동했다.
파앗!
그의 귀밑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허공에 나풀거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중인들이 무엇이 어찌돈 영문인지 알기도 전에 마의청년은 진산월에게로 돌진하며 재차 왼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진산월의 몸이 빙글 돌며 옆으로 일 장이나 이동했다. 그가 방금 전가지 서 있던 자리의 바닥이 쩌억 갈라지며 파편들이 허공에 난무했다. 마의청년은 계속 진산월에게로 달려들며 양손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진산월은 이리저리 몸을 피했고, 주변의 바닥과 벽들이 마구 갈라지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마의청년이 손장난을 하고 진산월이 그 손짓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 중인들은 왜 그렇게 진산월이 반항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나 마의청년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과 벽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눈치 빠른 동중산이 제일 먼저 상황을 알아차렸다. 마의청년의 손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얄팍한 륜들이 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륜들은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해서 허공을 날아갈 때도 아무런 소리도 틀리지 않았고,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의청년은 자유자재로 륜을 회수했다가 발출하고 있었다. 계속 마의청년의 공세를 피하던 진산월의 몸이 남포중년인에게서 이 장쯤 떨어진 곳에 막 내려섰을 때였다. 지금까지 구절상문편을 빙글빙글 돌리며 장내의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남포 중년인의 오른손이 크게 휘둘러졌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회전하고 있던 구절상문편이 빛살처럼 일직선으로 진산월의 목덜미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상상(想像)을 뛰어넘을 정도로 빨라서 남포중년인의 오른손이 움직이는 순간에 구절상문편의 끝부분이 진산월의 목에 도달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앗!”
서문연상이 놀란 외침을 토해내는 순간, 지금까지 피하기만 하던 진산월이 처음으로 들고 있던 막대를 움직였다.
딱!
불가사의하게도 그토록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던 구절상문편의 끝이 막대에 부딪혀 튕겨지고 말았다. 하나 더욱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가던 구절상문편의 두 번째 마디가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지며 진산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진산월은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혀 구절상문편의 두 번째 마디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다시 세 번째와 네 번째 마디가 진산월의 앞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구절상문편이 마치 살아 있는 한 마리의 독사(毒蛇)처럼 기기묘묘하게 꿈틀거리며 다가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진산월은 몸을 뒤로 젖히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 두 개의 마디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진산월의 수중에 들린 막대가 기이한 움직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스슥!
장내에 갑자기 한 가닥의 선풍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 선풍은 삽시간에 구절상문편을 휩쓸어 버렸다.
따따땅!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연거푸 터져 나오며 선풍이 작게 수축되는 듯 했다. 그러다 다시 눈부신 속도로 확산되는 것이었다. 그 무섭게 확산되는 선풍은 구절상문편을 조종하고 있던 남포중년인의 전신을 에워싸 갔다. 남포중년인은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채 사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수중에 들려 있던 구절상문편은 어느새 세 개의 마디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다급한 김에 그 마디를 진산월을 향해 집어던졌다. 마의청년 또한 그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쏜살같이 양손을 휘둘러 귀왕무영륜을 진산월에게로 날려보냈다. 진산월으 몸이 한 마리 학(鶴)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동중산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한 무더기의 구름뿐이었다. 그 구름은 남포중년인이 내던진 구절상문편을 먼지로 만들어 버리고 이내 그의 몸마저 휘감아 갔다.
파팍!
두 개의 거의 보이지도 않는 귀왕무영륜이 그 구름 속으로 날아갔으나 이내 종적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구름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남포중년인과 마의청년의 몸을 휩쓸어 버렸다.
“크악!”
“크으윽!”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두 가닥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 왔다. 구룸이 걷혔을 때, 중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포중년인과 마의청년의 모습이었다. 마의청년은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자신이 흘린 피바다 속에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고, 남포중년인만이 바둥거리며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이…… 이게 무슨 검법이냐?”
남포중년인이 입을 벌릴 때마다 그의 입 밖으로 잘려진 내장 조각과 검붉은 선혈이 꾸역꾸역 흘러 나왔다. 진산월은 여전히 나무막대를 든 채 담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돌연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지산, 이게 무슨 초식인지 알아보겠느냐?”
중인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입구 쪽에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다름아닌 소지산과 방취아였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격전을 모두 지켜보았는지 얼굴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소지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운검법 중의 운무중첩(雲霧重疊)이군요. 이 초식에 이런 위력이 있을 줄은 정녕 상상도 못했습니다.”
남포중년인의 얼굴에 마구 경련이 일어났다.
“유…… 유운검법?”
그의 몸이 한차례 거세게 떨리더니 이내 고개가 떨구어졌다. 진산월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유운검법의 묘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너희들이 이 검법을 중(重)히 여기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검법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지산과 방취아, 동중산은 일제히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명심하겠습니다.”
거듭된 장내의 격변에 놀라 있던 서문연상이 이 광경을 보고 무언가를 느낀 듯 뾰쪽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제 보니 당신들은 모두 같은 일행들이군요. 당신들의 정체가 대체 뭐예요?”
아무도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산월은 손에 들고 있던 나무막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그 말은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이었소. 소저는 누구요? 무엇 때문에 이자들이 소저를 살해하려 했던 거요?”
서문연상은 그의 시선을 받자 얼굴이 붉어지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나…… 나는…… 저들이 누구인지 몰라요. 왜 나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해요. 그리고 내 이름은…… 말해 줄 수 없어요.”
“그렇다면 소저는 조용히 돌아가시오. 나도 아무 것도 묻지 않을 테고, 소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오.”
서문연상의 아래턱이 가늘게 떨렸다. 지금의 그녀에게 돌아가란 말은 지옥(地獄)으로 떨어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이런 무서운 살수들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숙소로 돌아간다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았다. 더구나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세 명의 숙부들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더니 이윽고 마음을 결정한 듯 고개를 번쩍 쳐들고 진산월을 쳐다보았다.
“좋아요, 말하겠어요. 대신 당신이 누구인지 먼저 알려 주세요. 그러면 나도 모든 걸 밝히겠어요.”
진산월은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그 눈을 마주보았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진산월은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홍조가 어리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종남파의 이십일대 장문인인 진산월이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