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11권 혈사지미(血事之迷)편 :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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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11권 혈사지미(血事之迷)편 : 11화


제111장. 삼보회동(三堡會同)

초가보의 지붕 위에 아침 햇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초가보의 모든 고수들은 동터 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이다.
마침내 삼보회동이 열리는 날이 밝아온 것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초가보는 종남산 자락의 작은 문파가 아니라 강북무림을 진동시키는 거대문파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이다.
초가보의 식솔(食率)이든 아니면 단순한 식객(食客)이든 모든 사람들은 가슴 벅찬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또 한 사람.
창문 밖으로 내보이는 아침 해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무영신군 초관.
삼십을 조금 넘은 나이에 단신(單身)으로 초가보를 세우고 불과 십여 년 만에 그것을 거대한 집단으로 만든 불굴의 승부사(勝負士)!
지금 그의 심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랜 동안의 고통스런 노력 끝에 마침내 오늘을 맞이하게 되었다.
초관은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오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오늘부터 초가보는 새롭게 태어나며, 초관의 인생(人生) 또한 전혀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
초관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거처를 벗어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맨 앞에는 초관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한 사람이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악 총관.”

악종기는 초관을 향해 더할 나위 없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보주님.”

“그동안 고생 많았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닙니다. 축배는 나중에 들어도 됩니다.”

“옳은 말일세.”

초관은 언제 보아도 믿음직한 악종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물었다.

“준비는 끝났나?”

“예, 모두들 보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가지.”

초관이 움직이지 주위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다.
하나 그들은 점차로 떨어져 나가고 삼보회동이 열리기로 한 수정전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다섯 사람만이 초관을 따라올 뿐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초가보의 수뇌이며, 초관의 가장 충실한 수하들이었다.
수석총관 악종기, 삼대공봉(三大公奉)인 천왕도 해청, 신편(神鞭) 갈태독(葛太獨), 현음상인(玄陰上人) 냉구유(冷九幽), 그리고 초관의 수신대장(修身隊長)인 혈화창(血花槍) 우문화룡(宇文化龍)이 그들이었다.
초관을 따라 수성전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에도 뿌듯한 자긍심과 설렘이 떠올라 있었다.
수성전은 초가보의 중앙에 세워져 있는 건물로, 원래는 초가보의 대소사(大小事)를 회의하는 취의청(聚議廳)이었다.
하나 삼보회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초관은 선뜻 이곳을 회동 장소로 선택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수정전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대청에는 세 개의 원목(原木) 탁자가 삼각형으로 배열되어 있었고, 각 탁자의 뒤에는 각각 여섯 개씩 의자가 놓여 있었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마주보는 탁자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다른 양쪽의 탁자에는 이미 여섯 명씩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초관을 비롯한 초가보의 수뇌들이 대청으로 들어서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시오, 초 보주.”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은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비단장포를 입은 우람한 체구의 중노인이었다.
그가 바로 장성(長城) 일대를 석권하고 있는 삼월보(三月堡)의 첫째 보주인 금월(金月) 선초(宣焦)였다.
삼월보는 특이하게도 세 명의 보주(堡主)가 있는데, 그들은 피를 나누지 않은 의형제들이었다.
둘째가 그의 옆에 서 있는 비쩍 마른 체구의 은월(銀月) 맹동야(孟東野)였고, 셋째는 오늘 이곳에 오지 않고 삼월보에 남아 있는 동월(銅月) 양중초(梁中初)였다.
삼월보는 그들 세 사람이 전력의 팔 할을 차지한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무위(武威)가 압도적이었다.
삼월보 고수들의 반대쪽에는 검보의 고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검보의 보주인 서문장천을 필두로 검보쌍기 중의 한 사람인 소일서생 사공언과 오대검객(五大劍客) 중의 금천검(金天劍) 막웅(莫雄), 은명검(銀命劍) 방구홍(方九虹), 비룡검 위소룡, 그리고 칠숙(七宿) 중의 강장마환(剛掌魔環) 현일풍(玄一風)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곳에 모인 고수들 개개인의 면목을 보면 그야말로 현재 강북무림의 최고 고수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었다.
삼보회동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화려한 진용이 아닐 수 없었다.
초관이 자리에 앉자 모든 사람들이 착석을 했다.
그것은 장소를 제공하고 모임을 주선한 사람에 대한 예의였다.
당연히 먼저 입을 연 사람도 초관이었다.
초관은 신광(神光)이 갈무리된 눈으로 주위를 한차례 쓸어보고는 나직하면서도 힘있는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강북무림의 역사가 다시 쓰이는 새로운 날이오. 오늘같이 뜻깊은 날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 준 서문 보주와 선 보주, 맹 보주께 충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바이오.”

서문장천과 선초, 맹동야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시치레가 끝나자 초관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세 문파는 서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소. 지난 몇 년 사이에 능히 강호를 주름잡을 만한 힘을 키웠지만, 반면에 가장 가까운 곳에 무시 못할 적(敵)들을 가지고 있어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소.”

그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다. 실제로 하북의 수많은 명문 중 하나로만 꼽히던 서문세가가 검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명성을 쌓게 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하나 그들이 하북제일의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하북팽가(河北彭家)였다. 검보가 아무리 세력을 확장시키고 많은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하북팽가를 넘지 못한다면 결코 하북제일(河北第一)로 거론될 수 없을 것이다.

삼월보 또한 장성 일대에서는 최고의 세력을 구가하고 있지만, 그들의 남쪽에는 산서(山西) 오대파(五臺派)라는 오래된 명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서 오대파는 비록 구대문파에는 속해 있지 않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산서성의 맹주(盟主)로 군림해 오던 문파였다. 삼월보도 그들을 꺾지 않고서는 장성에서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시킬 수 없었다.

초가보는 더욱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비록 손꼽히는 명문정파였던 종남파를 쓰러뜨렸지만, 그들의 지척에는 구대문파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위세를 자랑하는 대(大) 화산파(華山派)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가보와 화산파의 일전(一戰)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섬서성은 물론 강북무림 전체의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다른 두 문파와는 달리 초가보와 화산파의 싸움은 모든 것을 건 총력전이 될 것이다. 이긴 쪽은 전부를 차지할 수 있지만, 패하게 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검보와 삼월보는 한결 여유가 있었다. 검보가 설사 하북팽가를 능가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북팽가가 검보를 섬멸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존에는 문제가 없었다. 삼월보 또한 오대파에 패하더라도 원래의 거점인 장성 이북으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하나 초가보는 화산파와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두 번 다시 재기의 기회 따위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막강한 화산파의 세력으로 새싹조차 돋아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밟아 버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삼보회동을 초가보에서 앞장서서 주창(主唱)하고 자신들의 거점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초관은 그런 마음속의 절박함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힘있는 음성을 내뱉었다.

“옛말에 ‘동일지폐동야불고(冬日之閉凍也不固)면 춘하지장초목야불무(春夏之長草木也不茂)’ 라 했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작은 시련이 훗날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오.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의 난관을 극복해 나가야만 하오. 오늘 이 자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힘을 뭉쳐 모두의 앞에 놓인 난관을 뚫고 나가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오.”

‘동일지폐동야불고, 춘하지장초목야불무’ 란 말은 ‘겨울에 땅이 얼어붙는 추위가 없으면, 봄과 여름의 초목은 무성하게 자라지 못한다’ 라는 뜻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초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문파의 현 상황과 난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관심 어린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초관은 마음속에 담고 있는 말들을 뜨거운 음성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수성전에서 멀지 않은 작고 아담한 누각에서도 몇 사람이 만나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수성전에 모인 숫자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단출했지만, 그들이 모인 의미는 오히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이게 얼마 만 입니까?”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삼십대 초반의 남의청년이 약간 마른 체형의 회의중년인을 향해 활짝 웃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회의중년인은 날카로운 눈으로 남의청년을 힐끔 쳐다보더니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얼마 만 이긴, 작년 중추절(仲秋節)에 보지 않았느냐?”

남의청년은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일 년하고도 육 개월 전 아닙니까? 형제끼리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흥, 너만 집에 자주 들른다면 해결될 일이다.”

“하하… 형님이야 서안과 낙양이 별로 멀지 않으니 명절 때마다 집에 가시는 게 어렵지 않을지 몰라도 소제(小弟)가 있는 장성에서 낙양까지는 아득한 거리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낄낄거리며 누각 안으로 들어섰다.

“흐흐… 그건 성의 문제 아니냐? 보정에서 낙양까지는 가까운 거리인 줄 아느냐?”

유달리 눈이 작은 삼십대 중반의 홍의인(紅衣人)이었다. 그를 보자 남의청년은 우거지상을 했다.

“아이구, 넷째 형님. 우리끼리는 서로 긁지 맙시다.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우리끼리라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는구나. 그런 놈이 작년에 내가 찍어 둔 목화솜을 날치기하다시피 가로채서 팔아먹느냐? 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손해를 본 줄 아느냐?”

“형님,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작년 겨울이 좀 추웠습니까? 장성 일대는 완전히 얼어죽는 사람 천지였어요. 다른 무엇보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 따뜻한 솜옷이 필요했단 말입니다.”

“그쪽만 추웠느냐? 내가 있던 보정도 추운 건 마찬가지였다.”

남의청년은 넉살좋게 웃었다.

“하하… 장성 이북과 하북성 이남이 어떻게 똑같습니까? 아무튼 그때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너무 다급해서 형님이 예약해 놓은 물건인 줄도 모르고 일단 덥석 사고 말았습니다.”

남의청년이 거푸 사정하자 홍의인의 안색이 조금씩 풀어졌다.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회의중년인이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넷째, 너는 그런 식으로 자꾸 다섯 째의 꼬임에 넘어간다면 언젠가는 한번 호되게 경을 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애초부터 확실하게 잡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남의청년과 홍의인은 둘 다 모두 움찔하여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남의청년이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지나간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넷째 형님은 이번에 얼마나 쓰실 생각입니까?”

홍의인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왜 나부터 먼저 물어 보냐?”

“누가 먼저 말하건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럼 제가 먼저 밝히죠.”

남의청년은 한차례 헛기침을 하고는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홍의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십만 냥? 너무 적은 게 아니냐?”

“이십이 아니라 이백입니다.”

홍의인은 흠칫 놀랐다.

“그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홍의인뿐 아니라 회의중년인 또한 다소 의외인 듯 남의청년을 쳐다보았다. 남의청년은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일은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형님들이 잊으셨나 본데 우리의 상대가 누구입니까? 큰형님입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지금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진단 말입니다.”

홍의인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큰형님이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하시려고…”

“그건 넷째 형님이 모르셔서 하는 말입니다. 큰형님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정말 용서가 없다고요. 오죽했으면 작은 아버님께서 큰형님에게 돈만 밝히는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욕을 했겠습니까?”

홍의인은 한차례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나도 무서웠다. 그래도 명색이 작은 아버가 평생을 쌓아온 가산(家産)인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몽땅 빼앗아 버리다니 과연 큰형님답다고 생각했지.”

“그러니 작은 아버님 같은 꼴을 안 당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단 말입니다. 자, 이제 형님은 얼마를 내시겠습니까?”

홍의인은 망설이다가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남의청년이 송충이처럼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겨우 백입니까? 좀더 쓰세요.”

“너는 작년에 솜 장사 해서 돈 좀 벌었을 지 몰라도 나는 하는 일 없이 노는 바람에 벌어 놓은 게 없다. 네가 꿔준다면 또 모를까…”

홍의인의 말에 남의청년은 어이가 없는지 허공을 쳐다보며 웃었다.

“하하… 아니, 돈 빌릴 일이 따로 있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고 강호무림의 정세가 바뀌느냐 마느냐 하는 이런 중대한 판에 남의 돈을 빌려서 뛰어든단 말입니까?”

“우리가 남이냐?”

“안 됩니다. 형님도 자기 돈 투자하세요. 북경 보석재(寶石齋)에 있는 가게 중 몇 개만 팔아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홍의인은 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건 안 된다. 이 사기꾼 같은 녀석! 아예 나를 알거지로 만들 셈이냐?”

“엄살부리지 마세요. 아무튼 전 안 빌려줍니다. 형님도 이백 내놓고 뛰어 들든지 아니면 지금 물러나세요.”

“광호(廣昊)야.”

“글쎄 안 된다니까요.”

“너 정말 이럴 거냐?”

홍의인은 몇 번을 어르고 달래도 남의청년이 요지부동이자 이내 버럭 화를 냈다.

“알았다. 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아! 내가 더러워서 낸다. 대신 나한테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 아주 요절을 내버릴 테니…”

남의청년은 껄껄 웃으며 홍의인의 어깨를 탁 쳤다.

“하하… 사내대장부가 겨우 그런 일로 화를 내십니까? 대신 제가 술 한잔 깍듯하게 대접해 올리겠습니다.”

“일 없다.”

홍의인은 휑하니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나가 버렸다. 남의청년은 그의 뒷모습을 빙글거리며 보고 있더니 이내 시선을 회의중년인에게로 돌렸다.

“셋째 형님도 그 금액으로 하실 거죠?”

회의중년인은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네놈이 이미 다 결정했으면서 무얼 물어 보는 거냐?”

“하하… 형님도 아시다시피 큰형님과 대결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 자금은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돈 쓸 데가 세 군데지만 큰형님은 한군데로 집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삼보회동이 유야무야(有耶無耶)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남의청년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무얼 믿고 그리 자신하는 거냐? 강호인(江湖人)들이란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라고 네 입으로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이번 일을 다릅니다.”

“뭐가 다르단 말이냐?”

남의청년은 여전히 싱글벙글한 채 말했다.

“눈앞에 보이는 떡이 너무 커서 그들로서는 손을 뻗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니까요.”

“…!”

“생각해 보십시오. 현 상태로는 검보가 하북팽가를 이겨 보았자 결국 하북성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삼월보 또한 오대파를 뚫고 나온다고 해도 섬서성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야망을 충족시키는 길은 오직 하나, 섬서성뿐만 아니라 강북무림을 실제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화산파를 무너뜨리는 길 뿐입니다.”

남의청년은 부리부리한 눈에 정광(精光)을 번뜩이며 계속했다.

“무림인들이란 참으로 이상한 족속들이라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다가도 막상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나면 다른 곳을 돌아볼 줄을 모릅니다. 강북삼보가 화산파를 쓰러뜨리면 자신들이 강북을 제패할 수 있다는 길을 발견한 이상 다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회의중년인은 그의 말을 가만히 음미하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그들로서는 다른 어떤 방법도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보회동의 최종 결과는 초가보와 화산파와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로 판가름되는 건가?”

남의청년은 그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초가보가 아니라 강북삼보입니다. 초가보 혼자로는 절대로 화산파를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이번 싸움은 강북삼보 대(對) 화산파의 격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판돈을 강북삼보에 걸었고요.”

“강북삼보가 이긴다면 우리는 일약 거부(巨富)가 되겠군.”

“하지만 패한다면 몇 년 동안 모아 놓은 재산을 홀랑 까먹고 푼돈이나 만지며 살아가는 신세가 되는 거죠.”

회의중년인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반드시 이겨야겠군.”

남의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죠.”

이날 벌어진 짧은 회의로 강북무림 전체가 전운(戰運)이 감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만 네 사람, 강북삼보와 화산파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석가장(石家莊)의 십이지공자 중 네 사람만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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