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5권 촉로지난(蜀路之難)편 : 5화
제44장. 혈라장인(血羅掌印)
풍덩!
물 속으로 들어가자 말할 수 없이 냉랭한 한기(寒氣)가 뼈속까지 스며들어 진산월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날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지라 강물은 겉으로 보던 것과는 달리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것이다. 그는 황급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몇 차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동중산과 상원건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은 채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푸우!”
갑자기 그의 옆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두 개의 머리통이 불쑥 솟아 올랐다. 낙일방과 응계성이었다. 낙일방은 응계성의 몸을 반쯤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응계성은 이미 몇 모금의 물을 마셨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채 연신 코와 입을 벌렁이며 양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푸… 어푸…”
뒤에서 그의 몸을 안고 있던 낙일방이 소리쳤다.
“응사형. 그냥 나에게 맡겨두고 가만히 좀 있어요. 이러다 정말 위험해 진단 말이에요.”
“이 망할 놈이… 네… 네놈도 나처럼… 꿀꺽!”
응계성은 버럭 고함을 내지르려다 강물이 입안으로 들어오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나 다시 한 모금을 마시게 되어 얼굴은 물론 눈알까지 빨갛게 변했다. 진산월은 응계성을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유독 임영옥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진산월은 급히 상원건을 돌아보았다.
“상대협. 제 사매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상원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진장문인이 물 속으로 뛰어든 후 바로 배를 벗어났소. 아직 올라오지 않았소?”
진산월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급히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내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찾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물 속으로 채 일 장도 들어가기 전에 진산월은 임영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수중에서 두 명의 괴인들을 상대로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목극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전신에 기름을 먹인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대머리의 사나이였다. 대머리 사나이는 양손에 한 자 반 남짓되는 월아권(月牙圈)을 들고 있었는데, 그 월아권을 쓰는 솜씨가 가히 놀라웠다. 원래 월아권은 물 속에서 사용하기에는 그리 적당한 병기가 아니었으나, 대머리 사나이의 손에 들린 월아권은 물 속에서도 전혀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뻗고 거두는 수발(收發)동작이 어찌나 매끄럽고 민첩하던지 마치 정상적인 땅 위에서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목극등은 여전히 아무런 병기도 들고 있지 않았는데, 기이한 것은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물살이 갈라지며 매서운 장력(掌力)이 임영옥을 향해 휘몰아쳐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특이한 분수장(分水掌)의 일종을 익힌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수공(水功)에 상당한 달인들 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임영옥은 두 고수들의 합공 속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대적하고 있었으나 조금씩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공세가 워낙 괴이하고 신랄한데다, 물 속이어서 그녀가 마음먹은 대로 검법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전문적인 수공(水功)을 익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호흡에 문제가 일으켜 점점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 뿐이 아니었다. 진산월 일행보다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들었던 다섯 명의 장한들이 일제히 물 위에 떠 있는 상원건과 낙일방 등을 향해 공격해 가는 모습이 진산월의 시야에 들어왔다. 상원건이나 동중산은 몰라도 응계성은 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낙일방 또한 수영을 전혀 못하는 응계성 때문에 제대로 운신(運身)할 수가 없는 형편이어서 상황은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임영옥을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낙일방과 응계성을 먼저 구할 것인가? 진산월은 재빨리 머리를 굴린 다음 이내 마음을 결정했다. 임영옥은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일방과 응계성은 잠시도 견뎌내기 힘들 것이다.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려 장한들의 뒤를 따라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그는 우선 중인들에게 경각심을 줄 생각으로 그들이 있는 쪽을 향해 일장(一掌)을 내갈겼으나, 그의 손에서 나온 장력(掌力)은 채 반 장도 뻗어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진산월은 이번에는 다시 가장 후미에서 올라가고 있는 장한을 향해 두 개의 지공(指功)을 날렸다. 지공은 아무래도 장력보다는 물의 압력을 덜 받기 때문에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 지공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선은 마음 먹은대로 지공을 펼칠 수 없을 뿐더러, 기껏 발출한 지공 또한 장력과 마찬가지로 몇 자 가지도 못해 물 속으로 맥없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확실히 목극등처럼 분수공력을 연마하지 않고서는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장력이나 지공을 펼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급해진 진산월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오른 손으로 장검을 뽑아 위로 휘둘렀다.
쫘아아…!
물살이 반으로 갈라지며 가장 후미에서 올라가고 있던 장한의 몸에서 핏물이 뿜어나왔다. 나머지 네 명의 장한들 중 한 명이 몸을 돌려 진산월에게 다가왔고, 다른 세 명은 계속 낙일방 쪽으로 헤엄쳐갔다. 낙일방과 응계성은 물 밖으로 나오는 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전혀 무방비였으나, 다행히 수면(水面) 아래에서 핏물이 솟아 오르는 것을 발견한 상원건이 장한들의 습격을 짐작하고 재빨리 그들의 몸을 잡아끌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장한들의 손에 피를 뿌리고 말았을 것이다. 상원건은 당황해 하는 낙일방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말했다.
“저자들은 나와 동대협이 상대할테니 자네는 어서 응소협을 데리고 뭍으로 가게.”
“부탁합니다. 상대협.”
낙일방은 허우적거리는 응계성을 이끌고 강가로 가려 했으나, 그것도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응계성은 자신들의 물 주위가 시뻘겋게 물들고 아래에서 장한들이 공격하고 있음을 알자 더욱 당황하여 마구 몸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놔라… 내 물고기 밥이 되는 한이 있어도 저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응사형. 우선은 밖으로 나갑시다. 나가서 저놈들을 혼내주어도 늦지 않다구요.”
낙일방은 응계성을 잡아 끌다가 문득 발 밑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내려다 보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장한 한 명이 그의 발 밑 바로 아래에서 칼을 찔러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낙일방은 황급히 옆으로 몸을 이동하려 했으나 응계성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장한이 사용하는 칼은 분수아미자와 비슷한 형상이어서 물 속에서도 바깥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영활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여서 낙일방이 혼자였더라도 완벽하게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할 수 없이 낙일방은 왼손으로 응계성의 등을 떠밀어 한쪽으로 밀어놓고는 오른손으로는 재빨리 장검을 뽑아 장한의 칼날을 막아갔다.
“어어…”
졸지에 낙일방에게서 떨어진 응계성은 마구 허우적거리다가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낙일방은 마음이 불같이 급했으나, 장한의 칼이 워낙 날카로워서 쉽사리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가 어려서부터 장강(長江) 일대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수공을 익히지 않았어도 물 속에서 싸우는데 그리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낙일방은 초조한 마음에 전력을 다해 장한을 공격해 들어갔다. 하나 장한의 무공이 녹록치 않은데다 장한의 칼이 물 속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것이어서 단시간내에는 승부를 판가름할 수가 없었다. 낙일방이 세차게 공격하는 와중에 뒤를 힐끗 돌아보니 응계성의 몸은 벌써 저쪽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큰일났구나.’
낙일방은 그쪽에 신경을 쓰다가 하마터면 장한의 칼에 격중당할 뻔했다. 낙일방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장한이 갑자기 칼 끝의 방향을 바꾸어 그의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낙일방은 전력을 다해 몸을 비틀어 간신히 장한의 칼을 피했으나 그 바람에 수세에 몰려 도저히 더 이상 응계성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상원건과 동중산도 각기 한 명씩의 장한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물 속에서의 싸움이라 평상시처럼 암기를 날려 도와주거나 단숨에 상대를 처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수공을 익힌 사람이 없으니 자기 한 몸 돌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응계성의 몸은 거의 강 바닥까지 내려앉고 있었다. 응계성은 처음에는 눈을 부릅뜨며 마구 발버둥을 쳤으나, 물을 몇 모금 더 마시고는 점차로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는지 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낙일방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마치 해초(海草)처럼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 속 깊숙히 가라앉고 있는 응계성의 몸이었다.
‘응사형!’
낙일방은 마음 속으로 절규하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하나 장한은 얄밉도록 능숙한 솜씨로 물 속을 유영(遊泳)하며 그의 검을 피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는 낙일방의 힘을 빠지게 하여 수공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낙일방은 다급한 김에 수비는 도외시하고 무조건적인 공격을 했으나 물 속이라 운신에 제한이 있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이와 같은 물불을 안가린 공격이 효과를 볼지도 몰랐으나 물의 수압(水壓)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느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낙일방의 몸이 헛점투성이라고 생각했는지 피하기만 하던 장한이 어느 순간에 날카로운 반격을 해 왔다. 그때 낙일방은 장검을 두서없이 마구 휘두르고 있었는데, 장한이 슬쩍 그의 검을 피하며 아랫배를 찔러왔던 것이다. 낙일방은 움찔 놀라며 몸을 옆으로 비틀었으나, 장한의 칼은 이미 그의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옷이 잘려지며 낙일방의 앞가슴에는 가느다란 혈선(血線)이 생겨났다. 일도(一刀)를 격중시킨 장한은 낙일방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으려는 듯 더욱 매섭게 다가서며 칼로 낙일방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막 목이 칼에 잘려지려는 순간, 낙일방의 몸이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졌다. 장한의 칼은 아슬아슬하게 낙일방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잘려진 머리카락이 물 속에 퍼져나갈 때 낙일방을 공격했던 장한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느 사이엔지 하나의 장검이 그의 아랫배를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낙일방의 장검이었다. 장한은 자신의 아랫배를 뚫고 지나간 장검을 붙잡으며 어이없다는 듯 무어라고 입을 열려다 시뻘건 피를 질펀하게 흘려내며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장한의 몸은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핏물을 뿜어내며 강 바닥으로 가라앉아갔다. 그제 서야 낙일방은 그의 몸에서 장검을 뽑아내며 황급히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사실 조금 전에 그는 장한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헛점을 보였던 것이다. 장한이 헛점을 노리고 달려들었을 때, 낙일방은 가벼운 일도를 맞아주고 대신 기회를 보아 천근추(千斤墜)의 수법으로 상대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한 다음 전력을 다해 상대의 아랫배에 검을 틀어박은 것이다. 그가 이렇듯 위험한 모험을 한 것은 응계성의 생사(生死)가 걱정되어 마음이 다급해 진 것도 있었지만, 물 속에서 너무 오래 있어 숨이 막혀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낙일방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잘려진 가슴에서는 아직도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낙일방은 지혈(止血)도 하지 않고 깊은 숨을 몇 차례 몰아쉬더니 다시 심호흡을 한 후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강물 속으로 사라진 응계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한데 그때 누군가가 그의 팔을 움켜잡았다. 낙일방이 흠칫 놀라 돌아보니 그는 뜻밖에도 진산월이었다.
“장문사형. 빨리 응사형을…”
낙일방은 다급하게 소리치다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진산월의 왼쪽 팔에 축 늘어진 응계성의 몸이 들려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진산월은 응계성을 낙일방에게 넘기며 말했다.
“빨리 뭍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을 토해내게 해라.”
낙일방은 번뜩 정신이 들어 반색을 하며 응계성을 받았다.
“장문사형이 이미 응사형을 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전 응사형이 무슨 변이라도 당한 줄 알고…”
낙일방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다. 시체처럼 늘어진 채 물 속으로 사라지는 응계성의 모습을 보았는지라 그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지 않았을까하고 속으로 몹시 불안해 했던 것이다. 진산월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 다음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늦기 전에 어서 밖으로 나가라. 나는 조금 후에 따라가마.”
“장문사형은…”
낙일방이 무어라고 더 물어보기도 전에 진산월의 몸은 다시 물 속으로 사라졌다. 낙일방은 어쩔 수 없이 응계성의 몸을 안아들고는 물 밖을 향해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진산월은 조금 전에 임영옥이 두 명의 고수들과 싸우던 곳으로 빠르게 잠수해 들어갔다. 전력을 다해 물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마음은 초조하고 착잡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라 임영옥이 무사히 버티고 있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설사 그들에게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 시간이면 호흡이 곤란해져 자칫 의외의 낭패를 봤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검을 쥔 채 강 속 깊숙이 내려가던 진산월의 얼굴에 한 줄기 당혹어린 빛이 떠올랐다. 임영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임영옥이 두 명의 나습고찰 고수들과 싸우고 있던 장소까지 왔건만 주위는 텅 비어 있었다. 진산월은 혹시 자신이 잘못 찾아왔나 하여 일대를 둘러 보았다. 멀지 않은 곳의 강바닥에 사람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었고, 근처의 암석에는 칼자국이 적지 않게 새겨져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임영옥을 보았던 그 장소였다. 그렇다면 대체 임영옥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 그녀와 같이 싸우고 있던 두 명의 고수들도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진산월은 평소에는 여하한 일에도 쉽게 경동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침착하자. 침착해지자…’
진산월은 속으로 몇 번이나 이 말을 되뇌이고서야 간신히 흔들렸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진산월은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다시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자잘한 모래와 자갈, 진흙으로 뒤덮인 강 바닥에 몇 개의 발자국이 나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핏물은 보이지 않았다. 핏물이 흘렀다 할지라도 강물에 휩쓸려 알아차릴 수도 없었을테지만, 진산월은 그것만으로도 일단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졌다는 어떠한 징표도 없었다. 그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죽었을 리가 없다. 그녀같은 사람은 결코 쉽게 죽지 않는 법이다. 진산월은 강 바닥에 새겨져 있는 몇 개의 발자국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발자국은 모두 일곱 개였다. 그중 네 개는 맨발이었다. 발자국 모양이 어찌나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는지, 발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진산월은 임영옥을 공격했던 두 명의 인물 중 월아자를 사용하는 검은 옷의 대머리가 맨발이었음을 기억해 냈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은 대머리 흑의인의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머지 세 개중 두 개는 짚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사람의 것이었다. 목극등은 뱃사공으로 변장하느라 가죽신 대신 짚신을 신고 있었다. 이 발자국은 그의 것일 것이다. 남은 발자국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흐릿해서 그 발자국의 주인이 어떠한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자국은 맨발도 아니었고, 짚신의 자국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발자국은 마치 엄지발가락 부분으로 살짝 땅을 찍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진산월이 보고 있는 와중에도 물살에 떠내려오는 모래에 조금씩 묻혀가고 있었다. 진산월은 한 차례 더 주위를 살펴보고는 위로 올라갔다. 더 이상 이곳에 있어보았자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푸우…”
물 위로 올라와 깊은 숨을 토해냈다. 신선한 공기가 폐속으로 가득 밀려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며 사태를 조금 낙관적으로 볼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그녀는 그들을 물리치고 이미 물밖으로 나와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의 무공으로 보아 그들에게서 몸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진산월은 유달리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사방을 둘러 보았다. 마치 늦게 보면 볼수록 그녀의 모습이 자신의 시야 어딘가에 나타나게 되기라도 하듯이. 하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몇 명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문사형. 여기에요!”
강변가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던 낙일방이 진산월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상원건과 동중산도 함께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응계성이 누워 있었다.
모두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을 발견한 진산월의 얼굴이 더욱 무겁게 굳어졌다.
모두 무사한데, 임영옥만 없었다.
마치 주위가 텅 빈 것 같았다.
진산월은 확인을 하듯 다시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의 공허함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산월은 천천히 뭍으로 헤엄쳐 갔다.
“장문사형. 무사하셨군요. 다친 곳은 없으세요?”
낙일방이 급히 그에게 달려오며 물었다.
진산월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고는 바닥에 누워있는 응계성에게로 다가갔다.
응계성은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낯빛은 백지장처럼 핼쓱했으나, 다행히 호흡은 많이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다만 간간이 몸을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차가운 물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오한(惡寒)이 든 것 같았다.
상원건이 그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물을 많이 먹어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었소. 다행히 응급조치를 빨리 해서 위험한 고비는 넘겼소. 방금 조양단을 먹였으니 잠시 후면 정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을거요.”
이어 상원건은 품속에서 하나의 작은 알약을 꺼내 들었다.
“진장문인도 하나 드시오. 몸의 추위를 몰아내는데는 그런대로 쓸모가 있소. 우리는 모두 하나씩 먹었소.”
진산월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조양단을 받아 복용했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몸 속에서 후끈한 열기가 솟아 오르며 추위를 말끔하게 쫓아내는 것이었다.
상원건의 말과는 달리 조양단은 나름대로 신묘한 효과를 지닌 영단(靈丹)임이 분명했다.
낙일방이 쭈삣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산월의 눈치를 살폈다.
“장문사형. 그런데 사저는…”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찾지 못했다.”
낙일방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네? 그… 그럼 사저는…”
“아직은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니 확실한 사실을 알 때까지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마라.”
진산월의 말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낙일방은 울상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임영옥이 강물 속에 들어간 지 벌써 일각(一刻)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한 가지 경우밖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진산월조차 그녀를 강에서 찾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낙일방의 눈에 금새 눈물이 고였다.
낙일방은 아직 마음이 여리고 감정의 변화가 심해서 가슴속에 담고 있는 생각이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편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진산월은 좀처럼 속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혼자 천하를 떠돌면서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형성된 성격 탓일 것이었다.
지금도 진산월의 마음은 낙일방보다 몇 배나 더 초조하고 불안하며 터질 듯 답답했으나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상원건을 돌아보며 침착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상대협께서는 이 근방의 지리를 잘 아십니까?”
상원건은 그가 묻는 의도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글쎄. 이쪽은 나도 처음이라…”
그때 동중산이 재빠르게 나섰다.
“제자가 이 일대의 지리는 약간 알고 있습니다.”
“잘됐구나.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이 근처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어디냐?”
“그야 물론 적미현(赤眉縣)입니다.”
진산월은 다시 물었다.
“그곳에서 가장 큰 객잔은?”
“적미현 북쪽 끝에 수강루(水江樓)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일대에서는 그곳이 가장 크고 음식도 괜찮습니다.”
“잘됐다. 그럼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자꾸나.”
의외의 말에 동중산은 물론이고 상원건과 낙일방까지 깜짝 놀랐다.
“장문사형께서는…”
진산월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나는 사매를 찾은 다음 그곳으로 가겠다. 너희들은 상대협과 함께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거라.”
낙일방이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장문사형. 저도 장문사형을 따라가겠어요.”
진산월은 엄격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너는 계성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를 잘 지키는데 신경쓰도록 해라. 그리고…”
진산월은 손을 불쑥 내밀어 낙일방의 벌어진 앞가슴을 슬쩍 들쳐보았다.
“상처가 작지 않은데, 부상이 덧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잊지 말아라. 번화한 곳에서는 그들도 함부로 너희를 습격하지 못할 것이다.”
“장문사형…”
“내일 묘시(卯時)까지 내가 오지 않으면 너희들끼리 다음 집결지로 출발해라.”
낙일방의 얼굴이 금새 새빨갛게 변했다. 마침내 그의 눈가로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낙일방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자 진산월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라. 반드시 사매와 함께 너희들을 따라가마.”
낙일방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진산월은 한 번 더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 준 다음 서슴없이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상원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도 진장문인과 함께 임소저를 찾아 나서겠소.”
진산월은 고개를 저었다.
“상대협께서는 그보다 저의 사제들을 돌보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또 다시 습격해 올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상원건은 무어라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진산월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응계성이 정신을 잃고 있는 지금, 낙일방과 동중산만으로는 결코 안심하고 길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흩어져 임영옥을 찾는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결국 상원건은 풀이 죽어 있는 낙일방과 동중산, 그리고 아직도 의식을 잃고 있는 응계성을 데리고 진산월과 헤어져 적미현으로 향해야만 했다.
진산월은 일단 강변을 집중적으로 수색하기로 했다. 임영옥이 목극등 등에게 해를 입어 그들에게 끌려간 것이 아니라면 필시 강변 쪽으로 피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외의 다른 경우는 일부러라도 생각치 않으려고 했다. 임영옥은 필시 혼자의 힘으로 몸을 피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이 지금의 진산월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진산월은 강변을 따라가며 모래 사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를 타고 떠났던 강 저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이 사천으로 가려면 다시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건널 수단도 마땅치 않은 지금 반이나 건넜던 강을 다시 되돌아갈리는 없었다.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며 강변을 헤짚고 다니던 진산월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백 여장 떨어진 북쪽의 모래사장에서 몇 개의 발자국을 발견했던 것이다. 진산월은 발자국들을 유심히 살폈다.
발자국들 중에서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몇 개의 맨발이었다. 발가락 하나하나의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마치 조각을 새겨 놓은 것 같았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그것은 대머리 흑의인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대머리 흑의인의 발자국 보다는 선명하지 않았지만 몇 개의 짚신 자국도 보였다. 그것은 목극등의 것이리라.
진산월은 그 두 종류의 발자국을 제외한 나머지 발자국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나머지 발자국들은 대부분이 한 사람의 것이었다. 그 사람의 발자국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조금 작았고, 폭도 좁아서 여인의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진산월은 그 작은 발자국을 손으로 재보았다. 한 뼘과 둘째 손가락의 손마디 하나를 합친 길이! 그것은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임영옥의 발과 같은 길이였다.
발자국의 표면이 다른 것에 비해 유달리 매끄러운 것은 틀림없이 그녀가 단화(緞靴)를 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산월은 한 차례 숨을 몰아 쉬었다. 이제 그는 임영옥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녀의 발자국이 다른 두 사람의 것과 뒤섞인 정도를 비교해 볼 때, 그녀의 발자국이 가장 먼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남들에게 끌려온 것이 아닌, 제 발로 이곳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이 뒤쫏고 있는 것이리라.
진산월은 절로 마음이 조급해져서 발자국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그때 그는 제사(第四)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 발자국은 목극등의 것도 아니었고, 대머리 흑의인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임영옥의 것도 아니었다. 마치 발끝으로 살짝 찍어 놓은 듯한 흐린 발자국 하나! 그것은 바로 강바닥에서 발견했던 일곱 개의 발자국 중 하나가 아닌가? 그때 진산월은 그 발자국이 물결에 휩쓸려 희미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원래부터 그러한 형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산월은 너비가 이십 여장이나 되는 백사장의 주위를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희미한 발자국은 오직 그것 하나 뿐이었다. 진산월은 물에서 이 발자국까지의 거리와, 다시 백사장이 끝나고 풀숲이 시작되는 곳까지의 거리를 대충 가늠해 보았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이 희미한 발자국의 주인은 물에서 십여 장을 단숨에 날아 이곳을 한 발로 살짝 찍은 다음 다시 십여 장을 날아 숲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진산월이 강호에 나와서 지금까지 만났던 고수들 중 가장 신법이 탁월한 사람은 신목오호인 악자화였다. 그때 악자화는 단숨에 칠팔장 씩을 건너뛰어 뒤에서 쫒아오던 진산월을 경악케 했었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발자국 주인은 한 번 도약에 십 이삼 장을 뛰어넘은 것이다. 진산월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당금 무림에서 이와같은 경인(驚人)할 신법을 펼칠 수 있는 고수는 오직 열 사람 밖에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당대에서 경공(輕功)으로 성명(聲名)을 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들 중 가장 유명한 고수들은 십대신법대가(十大身法大家)들이다. 진산월은 일전에 그들 중 한 사람인 매신 종리궁도를 만난 적이 있었다. 십대신법대가들은 흑백도(黑白道)를 망라한 인물들이며, 나이나 강호상에서의 지위도 제각기 틀렸다. 그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은 점창파(點蒼派)의 가장 젊은 장로인 비응검협(飛膺劍俠) 사빙심(謝氷心)이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우내사마 중의 일인인 유령인마(幽靈人魔) 방복(龐福)이고,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은 무림구봉의 일인이며 개방의 용두방주인 만리무영개 나자행이다.
하나 그들의 지위나 나이가 어찌 되었건, 그들의 명성은 당금 강호에서는 중천(中天)에 떠 있는 해 만큼이나 혁혁한 것이었으며 신법에 관한 한 누구도 그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 걸음에 십 장이 넘는 거리를 뛸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들 십대신법대가 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십대신법대가 중 한 사람이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십대신법대가 중 한 사람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나타났으며, 그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정체는 열 명의 고수들 중 과연 누구일까?
진산월은 머리 속으로 떠오르는 숱한 의문을 뒤로 한 채 발자국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보다 정확한 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임영옥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발자국이 향하는 곳은 서남쪽이었다.
그곳은 공교롭게도 진산월 일행이 당초에 목표로 했던 형자관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진산월은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면서도 계속적으로 흔적을 찾았다.
흔적은 군데군데에 널려 있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어지럽게 밟혀진 풀, 그리고 더욱 빠르게 도약하기 위해 걷어찼음이 분명한 바위의 깨어진 자국들이 사오장 간격으로 눈에 띄었다.
개중에는 일부러 낸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도 있었는데, 아마 임영옥이 혹시라도 진산월이 쫒아 왔을 때를 대비하여 만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오 리(里)쯤 갔을 때였다.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울창한 죽림(竹林)이 나타났다.
진산월은 발자국들이 죽림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신형을 날려 죽림으로 날아갔다.
죽림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답고 푸른 대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나무들이 어찌나 빽빽하게 나 있는지, 아무리 안력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숲 속의 사정이 어떤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진산월은 신중한 동작으로 대나무 사이를 뚫고 죽림으로 들어섰다.
대나무 특유의 짙은 향기가 코로 가득 밀려들었다.
계절은 늦가을이라 대부분의 산들은 짙은 단풍(丹楓)으로 물들어 있는데, 이곳만큼은 푸른 대나무 잎만이 무성할 뿐이었다.
평상시에 이와 같이 아름다운 대나무 숲을 보았다면 풍취에 젖어 시라도 한 수 읊었겠으나, 지금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몇 걸음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아 밑동이 날카롭게 잘려져 나간 몇 그루의 대나무를 발견하게 되자 진산월로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산월은 잘려진 대나무의 밑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예리한 검이나 도에 의해 잘려진 자국이었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크아악!”
고요한 숲의 정적을 일순간에 찢어놓듯 비명소리는 긴 여운을 남긴 채 사라져 갔다.
진산월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하나 그 비명소리가 남자의 것임을 알고 그는 곧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적어도 비명소리의 주인이 임영옥은 아니었던 것이다.
진산월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비명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또 하나의 비명이 터져나온 것은 그가 채 십 여장도 전진하지 못했을 때였다.
“아악!”
이번의 비명은 정말 크고 처절해서 듣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 정도였다.
진산월은 달려가는 와중에도 짙은 의혹이 일어남을 어쩔 수가 없었다.
두 개의 거듭된 비명으로 상황이 굉장히 긴박한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이십 여장쯤을 전진하니 죽림 가운데 제법 넓다란 공지가 나타났다.
공지의 너비는 이십 여장쯤 되어 보였는데, 공지의 중앙에 몇 명의 인물이 쓰러져 있었다.
진산월은 한달음에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쓰러져 있는 인물은 모두 두 명이었다.
그들을 본 진산월은 내심 경악과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닥에 질펀한 피를 뿌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이 아닌가?
대머리 흑의인은 머리가 박살난 처참한 모습이었고, 목극등은 목뼈가 부러져 목이 이상하게 구부러진 채로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들의 참혹한 모습에 진산월은 절로 눈쌀을 찡그렸다.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을 이런 꼴로 만든 사람이 임영옥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검술은 비록 뛰어났지만, 이런 식으로 인명(人命)을 살상하는 성격은 절대로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의 상처는 검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들을 이토록 무참하게 쓰러뜨렸단 말인가?
그리고 임영옥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진산월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 외에는 전혀 다른 사람의 종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그가 이곳으로 달려온 시간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을 해친 사람은 순식간에 이들을 쓰러뜨리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자가 임영옥을 데려간 것일까?
임영옥은 순순히 제발로 그를 따라간 것일까?
아니면 그의 손에 제압 당해 끌려간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는 애초에 이곳에 있지 않았던 것일까?
숱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에 떠올랐지만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였다.
“으으으…”
목뼈가 부러져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목극등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진산월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목극등의 상세를 살피던 진산월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목뼈가 완전히 부러진 데다 전신의 혈맥(血脈)이 터져 도저히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로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목극등은 홍라공이라는 무서운 외문무공을 익혀 검에 격중당해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인물인데, 도대체 무슨 수로 그의 목을 수수깡처럼 부러뜨렸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진산월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목극등의 등 뒤 명문혈(命門穴)에 진기를 주입시켜 끊어져 가는 그의 숨을 조금이나마 연명시키는 것뿐이었다.
“크으으으…”
목극등의 입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그의 내장과 심맥은 박살이 나서 식도를 타고 시커먼 핏물이 꾸역꾸역 입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진산월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누구에게 당했소?”
목극등은 마치 막이 씌운 것처럼 뿌연 눈을 들어 한참이나 그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네… 네놈이구나… 느… 늦었다…”
“늦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검게 그을린 목극등의 얼굴에 어느 덧 붉은 반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목극등은 입으로 검은 핏물을 토해내면서도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어깨를 흔들며 킬킬거렸다.
“네… 네놈의 여자는 이미 그자가 가져갔다… 너… 너는 용케도 우리를 찾았지만… 이미 늦었다…”
진산월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끼고 황급히 목극등을 향해 물었다.
“그자가 대체 누구요? 누가 내 사매를 데려갔소?”
“그… 그는…”
목극등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으나, 나오는 것은 오직 잘려진 내장조각이 섞인 검붉은 핏물 뿐이었다.
“누구요? 그자가 대체 누구요?”
진산월은 다급함을 참지 못하고 평상시의 그 답지 않게 목극등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 그는…”
목극등의 몸이 세찬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진산월은 자신의 손을 힘껏 움켜잡은 채 식어가고 있는 목극등의 얼굴을 한동안 묵묵히 내려보다가 천천히 피묻은 그의 손을 잡아뺐다. 죽기 전에 목극등이 얼마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손이 얼얼하고 뼈마디가 아파왔다. 진산월은 손을 몇 번 주물럭거린 후 목극등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목극등을 해친 흉수가 임영옥을 데려갔다. 그러니 누가 목극등을 죽였는지 알아야만 다시 임영옥을 찾아올 수 있다. 그것만이 현재 알려진 사실의 전부였다.
목극등의 몸은 실제로 만져보니 단단한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돌로 만든 인간을 연상케 했다. 언뜻 보기에는 왜소한 듯 했지만, 사실은 잘 발달된 근육이 질기고 강한 피부와 결합하여 강인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몸에 특이한 외문무공까지 익히고 있었으니, 임영옥의 검을 맨손으로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몸의 소유자가 목뼈가 부러지고 혈맥이 으스러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좀처럼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목극등의 몸 앞쪽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진산월은 목극등의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이내 목극등의 사인(死因)을 알아냈다. 찾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목극등의 목덜미 바로 아래쪽에 하나의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붉은 색이 아른거리는 선명한 장인(掌印) 하나! 장인이 어찌나 뚜렷하던지 손가락의 지문까지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진산월은 그 장인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장인이 새겨진 목극등의 목뼈 부분은 완전히 으스러져서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그 장인 외에는 전혀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목극등은 이 한 수(手)에 목뼈가 부러지고 심맥과 혈맥이 모두 끊어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홍라공을 익혀 온 몸이 무쇠와도 같았던 목극등의 몸을 단 일격에 파괴해 버린 이 무서운 장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진산월은 혹시나 하여 대머리 흑의인의 시신도 살펴보았다. 머리가 박살난 참혹한 모습이었으나, 자세히 보지 않아도 머리 한쪽에 붉은 색의 장인이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도 대머리 흑의인의 머리는 목극등의 몸처럼 단단하지 않아서 붉은 색 장인에 격중되는 순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모양이었다.
목극등의 말대로라면 이 장인의 주인은 대머리 흑의인과 목극등을 일격에 격살하고 진산월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짧은 순간에 임영옥을 제압하여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아니면 임영옥은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고 순순히 그에게 끌려간 것일까?
진산월은 다시 한 번 장인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이와 같은 장인에 대해 이야기 들은 적이 있음을 기억해 냈다. 바람도 없는데 진산월의 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이것은 혹시 혈수존자(血手尊子) 오욕백(吳欲魄)의 혈라인(血羅印)이 아닐까?’
혈수존자 오욕백은 삼십 년 전에 천하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마명(魔名)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그의 혈라인은 마도의 십팔대장공(十八大掌功)중 하나로, 그 장인에 격중되게 되면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로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오욕백은 당년에 이 혈라인으로 천하를 무풍지대처럼 휩쓸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가 한 사람에게 패해 그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나, 누구도 그 소문의 진위(眞僞)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욕백의 혈라인이라면 강철같은 몸을 자랑하던 목극등이 단 일수만에 목뼈가 부러지고 전신의 혈맥이 터져 죽은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하나 이것이 과연 혈라인일까? 또 이것이 혈라인이라 하더라도 시전한 사람이 오욕백 본인일까? 그렇다면 지난 삼십 년간 강호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던 오욕백이 무슨 일로 이곳까지 나타나 임영옥을 끌고 갔단 말인가?
진산월은 한동안 말 못할 착잡함과 우울함에 젖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임영옥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종남파에 들어온 구 년 전이었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임영옥은 줄곧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보아 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그의 곁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그녀의 자의(自意)가 아닌 타의(他意)와 강압에 의한 것임이 분명해 진 지금, 진산월의 마음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분노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진산월은 몇 차례나 심호흡을 한 다음에야 겨우 냉정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마음이 가라앉자 그는 지금까지 벌어진 사태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백토강으로 가는 산중(山中)에서 맹파와 호용의 습격을 받았을 때부터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그들의 습격이 우연히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단하를 건널 때 벌어진 목극등의 공격은 보다 노골적인 것이었고, 그 공격은 사전매복과 수중격투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임영옥은 일행들과 떨어져 그들에게 쫒기다가 결국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진산월은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누군가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암습을 계획했단 말인가?
진산월 일행은 이번 천룡사와의 결전에 출전하는 무림맹의 주축세력도 아니었고, 무슨 중차대한 임무를 띤 밀사(密使)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특별히 천룡사 고수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행적도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들에게만 이런 일이 닥쳤단 말인가?
이상한 점은 그 뿐이 아니었다.
습격을 해 온 인물들은 진산월 일행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습격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두 번째로 습격해온 목극등은 일행의 우두머리인 진산월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유독 임영옥에게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것은 이미 진산월이 부상중이며, 그녀가 그들중 가장 강한 고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 문득 진산월의 머리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어서 한 순간 진산월의 낯빛은 핼쓱하게 변하고 말았다.
만약 그자들의 목표가 진산월 일행 전체가 아니고 처음부터 오직 임영옥 한 사람 뿐이었다면?
처음의 습격부터 단수에서의 암습까지의 모든 과정이 임영옥을 일행에서 떼어놓아 그녀를 노리고 치밀하게 진행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자들이 왜 단수강변에서 더 이상의 습격을 하지 않고 임영옥의 뒤만을 집요하게 쫓았는지 설명이 되었다.
아울러 맹파와 목극등의 그녀를 향한 집요한 주시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목표가 임영옥이었다면,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이 그녀의 뒤를 쫓은 것은 혹시 그녀를 더욱 무서운 함정으로 몰아넣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임영옥의 평소 실력으로 볼 때,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만으로 그녀를 제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희미한 발자국의 정체는?
그것은 물론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을 도와 임영옥을 제압할 방수(幇手:같은 무리)의 것이었을 것이다.
임영옥이 허겁겁 물 밖으로 도망친 것도 그 방수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그녀는 죽림으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방수에게 제압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수는 뒤이어 달려온 목극등과 대머리 흑의인을 격살하고 그녀를 데리고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살인멸구(殺人滅口)의 방식이었다.
진산월의 짐작이 맞다면 그 방수야말로 맹파와 목극등을 사주하여 진산월 일행을 습격하도록 지시한 인물이고,
아울러 임영옥을 끌고 완벽하게 몸을 감춘 암중(暗中)의 흉수(兇手)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진산월이 그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다섯 가지였다.
그 자는 한 번 도약에 십이삼장을 건너 뛸 수 있는 가공할 신법의 소유자이고,
단 일수에 외문무공의 고수를 격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혈라인을 익힌 인물이며,
아울러 맹파와 목극등같은 새외(塞外)의 고수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자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고 잔인하며, 무엇보다도 진산월 일행에 대해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진산월은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보았으나 선뜻 뇌리에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진산월은 두 구의 시신 옆을 서성거리며 이제 자신은 임영옥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대로 무작정 임영옥의 행방을 찾아 이 일대를 샅샅이 뒤지거나,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단하 강변에서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일단은 뒤로 물러나 사천으로 향하는 길을 계속 가는 것 뿐이었다.
그중 어느 한 가지도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문제는 그것들 외에는 다른 선택의 길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가 이렇게 하염없이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휙!
갑자기 어디선가 그에게로 빠른 물체 하나가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진산월은 흠칫 놀라 피하려다 그 물체가 암기가 아님을 알고 손을 내밀어 물체를 잡았다.
과연, 그것은 돌돌 말린 종이조각이었다.
진산월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누군가가 멀지 않은 곳에서 이것을 던졌을 텐데 진산월은 그가 누구인지는커녕 어느 쪽에서 날아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만큼 종이조각을 날려보낸 인물의 무공이나 수법이 진산월보다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진산월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종이조각을 펼쳐보았다.
<석천현(淅川縣) 서북쪽 동광사(東光寺).>
종이 안에는 밑도 끝도 없는 짤막한 글이 씌어 있었다.
처음에 진산월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나 이내 안색이 변해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돌연 서북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곧 그의 신형은 죽림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