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6권 서장격변(西藏激變)편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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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6권 서장격변(西藏激變)편 : 1화


제48장. 태음신맥(太陰神脈)

동이 트기 직전의 여명(黎明)은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러했다. 텅 빈 대웅전의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진산월의 마음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착잡하고 우울한 것이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얇은 옷 속을 뚫고 들어왔다. 그 차가운 공기보다 훨씬 더 차갑고 싸늘한 무언가가 그의 가슴속을 후벼파고 있었다. 무수한 생각과 생각의 흐름들이 그의 머리 속을 종횡(縱橫)으로 교차하며 지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희뿌연 어둠이 거두어지면서 침침했던 주위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진산월은 그때까지도 가장 구석진 곳의 벽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문득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니 언제 나타났는지 한 사람이 반대쪽 벽면에 자신과 비슷한 자세로 등을 기대고 선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산월은 묵묵히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한쪽에 뚫린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새벽의 미명(未明) 사이로 내비치는 하늘은 그의 얼굴 표정만큼이나 흐리고 침울했다. 맞은편의 사람은 한동안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선 채 진산월을 응시하고 있다가 자신도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지? 분명 주위가 밝아지고 있는데도 새벽의 하늘은 왠지 쓸쓸해 보인단 말이야.”

진산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의 사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년 전에 산(山)을 내려올 때도 그랬지 분명히 앞으로의 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기분은 한없이 우울했지. 그때 보았던 새벽의 하늘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

“지금도 가끔 그때의 하늘이 생각이 나. 그 새벽의 아침, 차가운 공기, 그리고 호흡까지도…”

진산월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혼자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지 겉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나 맞은편의 사람은 그의 반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계속 혼자말처럼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을 줄곧 생각해 왔다. 너와… 영옥, 그 아이를…”

그때 처음으로 진산월이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매가 이곳에 있음을 암시하는 쪽지를 내게 보낸거로군요.”

이번에는 맞은편의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진산월에게로 향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시선은 어둠 속에서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는 그 쪽지를 보낸 게 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구나?”

“당신말고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맞은편의 사람은 물끄러미 진산월을 쳐다보다가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너는 이런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있구나. 나는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낫다고 자부했지만, 가끔은 그런 네가 넘을 수 없는 벽(壁)으로 보이기도 했다.”

맞은편의 사람은 벽에서 등을 떼고 앞으로 두 걸음 걸어나왔다. 창문 밖으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드러난 얼굴은 다름아닌 신목오호 악자화였다. 악자화는 여전히 눈부신 백의를 입고 있었고, 얼굴 또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갑고 냉정해 보였다. 그는 짙은 음영(陰影)이 드리워져 있는 진산월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운자추가 그녀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너에게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알리지 않기로 했지. 너와 나는 어차피 다른 길을 걷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너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산월은 그런데 왜 뒤늦게 생각이 바뀌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의 얼굴에는 한차례 씁쓸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알리든 알리지 않았든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요.”

“그렇지. 운자추가 쾌의당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한 순간, 그녀는 이미 그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운자추는 신목령의 인물이었다. 신목령의 힘에 쾌의당이 가세한다면 진산월과 임영옥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나 운자추의 계획이 어긋났을 뿐이다. 진산월은 힐끗 악자화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당신은 천봉궁의 힘을 빌릴 생각을 했던 거로군요.”

악자화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그것도 알고 있었군. 하지만 정확히는 천봉궁이 아니다. 난 단지 모용 공자에게 짤막한 언질을 주었을 뿐이다.”

이제 보니 천봉팔선자가 임영옥을 구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악자화는 진산월 혼자만의 힘으로 임영옥을 구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은밀히 모용 공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것은 물론 그 자신이 같은 신목령의 휘하에 있는 운자추가 하는 일을 정면으로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산월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운자추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사매를 노리고 있었던 거요?”

진산월의 물음에 악자화는 잠시 침음하다가 뜻밖의 말을 했다.

“너는 혹시 태음신맥(太陰神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진산월은 고개를 저었다.

“구음절맥(九陰絶脈)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태음신맥은 처음 듣는 것이오.”

“구음절맥은 몸 속의 아홉 개 음맥(陰脈)이 점차로 발달하여 나중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절맥(絶脈)이 되는 것이다. 하나 태음신맥은 다르다. 구음절맥 같이 커 갈수록 목숨이 위태롭지도 않고 특별한 부작용도 없다. 오히려 천성적으로 몸 속의 음기(陰氣)가 강해서 여인으로 무공을 익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체다. 그래서 신맥(神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지.”

악자화는 왜 느닷없이 태음신맥의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진산월은 그 이유를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매가 태음신맥을 타고났단 말이오?”

“그렇다. 그녀가 어려서부터 무공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지.”

임영옥이 태음신맥을 타고났다는 것은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진산월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인 임장홍도 죽는 순간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악자화는 평소와는 달리 태음신맥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태음신맥은 음공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가장 원하는 신체이다.
태음신맥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데, 두 가지 경우의 상황이 조금 달랐다.
남자가 이 신맥을 타고나면 최단시일 내에 음공의 최고수가 될 수 있지만, 대신에 선천적으로 강한 음기 때문에 남자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되며, 심하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인(中性人)이 되고 만다.
반면에 이 신맥을 타고난 여인은 아무런 흠도 잡을 수 없는 최고이 음공고수(陰功高手)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태음신맥은 여인의 몸에 나타날 때에만 비로소 본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지 태음신맥은 절맥(絶脈) 중의 절맥이라는 구양절맥(九陽絶脈)이나 구음절맥보다도 더욱 희귀하여 좀처럼 인세(人世)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태음신맥은 절맥과 같은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 보아서는 그러한 신체를 타고났다는 것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심지어는 평생 자신이 그러한 신체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곧잘 있는 형편이었다.

악자화도 신목령주(神木令主)의 휘하에 들어선 후에야 임영옥이 태음신맥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신목령주의 무공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음공(陰功)의 일종이라, 음맥(陰脈)에 해당되는 신체에 대해 아주 정통했던 것이다.
진산월은 악자화의 말을 듣고 있다가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사매가 태음신맥을 타고난 것이 운자추가 그녀를 노린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악자화는 즉각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진산월이 의아함을 느끼고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을 때가 되어서야 악자화는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음공을 익힌 고수가 이 태음신맥을 지닌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되면 비단 태음신맥의 장점을 모두 흡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자의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제약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음공을 익힌 고수들에게 있어 태음신맥을 지닌 여인은 천하의 어떤 영약보다도 더욱 귀한 보물이 되는 것이다.”

진산월은 좀처럼 쉽게 놀라거나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 말을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그렇다면 운자추가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은…”

“그렇다. 운자추는 그녀가 태음신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그녀를 취하여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진산월은 일시지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며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운자추가 임영옥을 노릴 이유가 달리 있을 리 없었다.
임영옥이 비록 종남파의 최고고수라고는 해도 강호무림에서 그녀를 능가하는 고수들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녀가 달리 희대의 절학(絶學)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물을 지녔거나 신분상의 특별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진산월은 운자추가 그녀를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의 목적은 임영옥,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운자추의 계획은 상당히 치밀한 것이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쾌의당에 청부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쾌의당이 수중에 넘어가지 않게끔 이중(二重)으로 공작을 했다.
만에 하나 쾌의당의 누군가가 그녀가 태음신맥임을 알아차리고 중도에서 그녀를 가로채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운자추는 전대(前代)의 거마(巨魔)인 혈수존자 오욕백을 찾아가 부탁을 한 것이다.
오욕백은 신목령주의 최측근인 오천왕(五天王) 중의 한사람으로, 운자추가 아무리 신목령주의 총애받는 제자라고 하지만 감히 그에게 명령을 내릴 신분은 되지 못했다.
하나 운자추를 친아들처럼 귀여워하고 있는 오욕백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오랜 은거지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오욕백은 목극등과 막익을 은밀히 뒤따라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어 목극등과 막익을 죽이고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는 그녀를 운자추의 사제인 심옥당에게 넘겼는데, 심옥당은 미처 뒤처리를 소홀히 하여 흔적을 남기는 바람에 결국 뒤를 밟혀 무영귀 허무극에게 팔을 잘리고 임영옥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그후에 다시 임영옥을 천봉팔선자가 구출했으니, 짧은 순간에 그녀의 운명은 극적(劇的)이라 할 만큼 너무도 여러 차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중에 한 가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그 때문에 일이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던 것이다.”

악자화의 표정이 돌연 무겁게 가라앉았다.
진산월은 악자화의 이런 모습을 좀처럼 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목극등과 막익이 그녀에게 구음향을 사용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구음향을 맡은 여인은 일시지간 음기가 솟구쳐 내공을 사용할 수 없을 뿐, 시간이 흐르면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어 별다른 후유증을 남기지 않게 된다.”

“…!”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다름아닌 태음신맥의 소유자라는 데 있었다. 천성적으로 음맥의 기운이 강한 태음신맥의 소유자에게 음기를 촉발시키는 구음향은 천하의 어떤 독물(毒物)보다도 더욱 무서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악자화의 음성이 무거워지는 만큼 진산월의 얼굴 표정도 어둡게 변했다.

“쾌의당에서는 그녀가 설마 태음신맥을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구음향을 쓴 것이겠지만, 그 때문에 그녀는 음맥에 잠재된 음기들이 모두 솟구쳐 치명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치명적인 상태라니…
입이 무겁고 결코 허언(虛言)을 하지 않는 악자화의 입에서 치명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대체 임영옥은 어떤 상태에 빠져 있단 말인가?
진산월은 감히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악자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체내의 음기가 모두 역류하여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그녀는 끊임없이 솟구치는 체내의 음기(陰氣)에 심맥이 도무 절단되어 숨이 끊어지고 말 것이다.”

진산월은 고개를 떨구었다.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니 손가락 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산월은 아무리 놀랍고 두려운 일을 당해도 한 번도 떨거나 겁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몸 속 깊숙한 곳에서 차가운 오한(惡寒)이 일어나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누구나가 부러워 마지않는 태음신맥의 체질이 지금은 오히려 목숨을 옥죄는 사슬이 되고 말았다. 태음신맥이 아니었다면 그냥 며칠간의 요양으로 간단히 회복될 수 있는 것이 태음신맥 때문에 체내의 음기가 격발되어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진산월은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조금 전에 두청청이 구양신주의 가루를 구해 갔는데, 그것으로도 치유가 안 된단 말이오?”

“약간 경과를 늦추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두청청은 단지 조금이라도 음기의 분출을 억제하려는 생각에서 구양신주의 가루를 구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방법도 없단 말이오?”

진산월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는데, 의외로 악자화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진산월은 평상시에는 쉽게 경동(驚動)하지 않는 사람이었느나,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그게 무엇이오?”

왠지 악자화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창문 너머로 완연하게 드러난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가 풍기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악자화는 예의 무심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천양신공(天陽神功)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연마하게 되면 격발했던 음기를 다스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음맥과 양맥(陽脈)이 서로 통하여 오히려 전화위복의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천양신공…! 구궁보의 천양신공 말이오?”

진산월의 안색이 홱 변했다. 악자화는 순간적으로 핼쑥하게 굳어진 진산월의 얼굴을 조용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렇다. 천하에서 임영옥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구궁보의 천양신공 뿐이다.”

구궁보! 구궁보(九宮堡)는 사실 한 채의 저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저택은 여타의 다른 보(堡)처럼 수십 채의 전각을 거느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식솔(食率)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오직 몇 칸의 잘 꾸며진 정갈한 집들과 작고 아담한 화원이 자리하고 있고, 식솔이라고 해야 모두 합쳐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다. 하나 강호무림에서 누구도 구궁보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구궁보야말로 무림인들이 유일하게 존경하고 있는 일세대협 모용단죽의 처소이기 때문이다. 모용단죽은 모용세가의 인물이었지만 가주(家主)도 아니었고, 모용세가에서 기거하지도 않았다. 그는 안휘성(安徽省) 구화산(九華山)의 산자락 밑에 아담한 집을 짓고 그 안에서만 살았는데, 그 집은 모두 아홉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그 집을 구궁보라 부르게 되었다. 구궁보에 기거하는 사람은 모용단죽과 모용 공자, 그리고 그들의 시종 몇 사람과 집안일을 하는 잔심부름꾼들 뿐이었다. 실로 천하제일의 대협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모용단죽의 거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단출하고 소박한 것이었지만, 천하인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구궁보의 그림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것이었다. 모용단죽이 왜 모용세가의 가주가 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가 왜 모용세가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구궁보를 세웠는지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 무림인들에게 있어 구궁보라는 이름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역(聖域)과도 같은 것이었다.

천양신공은 바로 그 모용단죽이 익힌 광세절학(曠世絶學)이었다. 강호무림에는 신공이란 이름이 붙은 절학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중 진정으로 신공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천양신공은 천하에 산재한 무수한 내가공력 중 첫째 둘째를 다투는 절세의 신공 절학이라 했다. 하나 천양신공의 진정한 위력이 어떠한지는 누구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용단죽의 천양신공만이 임영옥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뜻밖의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임영옥이 구궁보의 사람이 되었다는 엄쌍쌍의 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진산월은 이 점에 대해서 악자화가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를 기대했다. 하나 악자화는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녀는 지금 위독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완쾌하기 위해서는 구궁보의 천양신공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전부이다.”

진산월은 악자화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악자화의 유난히 각진 턱과 굳게 다물어진 입술,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악자화는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정면으로 마주보지도 않았다. 진산월은 악자화가 모든 이야기를 전부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그를 더 추궁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악자화 본인이 입을 다물기로 한 이상, 더 이상의 질문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진산월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 말해 준 것만도 고맙소. 덕분에 나는 안심을 할 수 있었소.”

이번에는 악자화가 진산월을 쳐다보았다. 진산월을 응시하는 악자화의 시선에는 괴이한 빛이 담겨 있었다.

“너는 정말로 내 말만으로 만족을 한단 말이냐?”

진산월의 마음속으로 일말의 불안감이 깃들여 있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나 진산월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소득이오. 더구나 믿을 만한 사람들의 손에 있으니 더욱 안심이 되는구려.”

악자화는 한동안 물끄러미 진산월을 바라보더니 나직하게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강호에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다는 것을…”

진산월은 그의 말속에 무언가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그에게 다시 묻지는 않았다. 아무튼 진산월은 이번 일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하나 내막을 알았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임영옥은 여전히 남의 수중에 있으며, 진산월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마음속으로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안전을 믿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그가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제들이 있는 한, 그는 언제까지고 그녀 한 사람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진산월은 허공을 올려보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사매?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임영옥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악자화는 다시 예의 용의주도한고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진산월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마치 글이라도 읽는 듯 무뚝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그녀에 대한 일 외에도 한 가지 너에게 할말이 있어서였다.”

진산월 또한 평상시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되찾았다.

“말하시오.”

악자화의 시선은 마치 두 개의 서슬 퍼런 칼날처럼 무시무시한 빛을 띠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악자화는 그런 시선으로 진산월을 쏘아보며 나직하면서도 분명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산을 내려와서 제일 처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느냐? ‘이제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가야 가장 빨리 고수가 될 수 있을까?’,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단지 걱정이 되긴 하더군. 고수가 되지 못하는 게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다음에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너보다 뒤처져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무서웠지.”

“…!”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 나는 지난 오년 간을 매진(邁進)해 왔다. 덕분에 남들보다 늦게 령하(령하) 제자가 되었어도 결코 그들에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너를 다시 만났다.”

악자화의 음성은 새벽의 정적으로 잠겨 있는 대웅전 안을 조용하게 뒤흔들었다.

“내가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너는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나는 네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오년 간 나의 땀과 눈물의 결과를… 그리고 확인하고 싶었다. 내 판단이 잘못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입술이 말려 올라가며 하얀 이가 드러났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차가운 미소였다.

“그런데 네 무공은 내 예상과는 너무 틀렸다. 넌 전혀 변하지 않았더군. 그동안 넌 대체 뭘 한 거냐?”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본 파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소.”

악자화는 어이가 없는지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하나 그것은 오히려 칼을 들고 서 있는 것보다 한층 더 음산하고 살기 짙은 모습이었다.

“종남파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고?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네 실력으로 내 손에서 삼초(三招)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진산월의 입가에도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악자화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씁쓸한 고소(苦笑)였다.

“별로 자신 없소.”

악자화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다른 어떤 호통보다도 더욱 준엄했다.

“예전이었다면 모르지만 지금 너는 한 문파의 수장(首長)이다. 그런 신분으로서 그러한 말이 용납되리라고 보느냐?”

“그것은 용납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이냐?”

“예전에도 나는 무공으로는 당신에게 뒤처졌었소. 그러니 오년 후인 지금 당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놀라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오. 장문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무공이 높아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오.”

진산월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해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감정의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악자화는 진산월의 의중(意中)을 탐색하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돌연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예전에는 너의 그런 모습이 제법 괜찮게 생각되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배짱과 여유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허장성세(虛張聲勢)에 불과할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사실 진산월의 속마음은 쓰리고 답답했다.
진산월은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그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무공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씁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한때 동문수학(同門修學)했던 사이였기에 더욱 그러했는지 모른다.
자신과 악자화와의 거리는 오년 전보다 더욱 벌어지고 있는데, 자신에게는 이 거리를 좁힐 만한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것이 그를 암울하게 했다.

“지금이라면 내가 아닌 신목십이호 중의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너를 이길 수 있다. 물론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심옥당처럼 방심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

“그래서 너는 매종도(梅宗都)의 비학(秘學)을 찾아야 한다.”

뜻밖의 말에 진산월은 흠칫하여 악자화를 쳐다보았다.
악자화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두 눈은 알 수 없는 기이한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매종도의 비학을 얻는 것만이 네가 무너져 가는 종남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삼년 내로 종남파는 강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너도 영원히 나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매종도의 비학!
진산월도 물론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종남파의 가장 오래된 비밀이며, 전설(傳說)이었다.
종남파의 문하제자로 매종도라는 이름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왜내하면 매종도야말로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이며, 유일하게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의 지위에 올랐던 태을검선(太乙劍仙)의 본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종남파의 문인들은 그를 존경하는 뜻에서 매검선(梅劍仙), 혹은 태을사조(太乙師祖)라고 부르고 있었다.

악자화가 매종도의 이름을 직접 부른 것은 자신이 더 이상 종남파의 제자가 아니라는 무언(無言)의 시위인 셈이다.

매종도는 살아생전에 검(劍)으로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신화적인 검객(劍客)이었다.
그가 있을 당시 종남파는 강호무림의 최고문파로 명성을 날렸으며, 누구도 종남파의 위세를 부인하지 못했다.
하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홀연히 사라졌으며, 그때부터 종남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매종도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그리고 하필이면 종남파의 최고절기인 육합귀진신공(六合歸眞神功)의 비급이 그의 실종과 동시에 없어져 버렸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졸지에 문파의 최고고수와 최고비급을 잃어버린 종남파의 문세(門勢)가 급격히 쇠락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종남파 문하들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간절한 염원이 생겨나게 되었다.

태을검선은 어딘가에 반드시 자신의 절학(絶學)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그 장소를 찾아 태을검선의 유보(遺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종남파를 다시 천하제일의 문파로 만들 수 있음은 물론이고, ‘군림천하(君臨天下)’ 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유무(有無)조차 확실치 않은 ‘태을비학(太乙秘學)’ 은 모든 종남파 문하들의 꿈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하나 이백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태을비학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종남파의 문하들이 종남산 일대를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으나, 태을검선의 비학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점차로 태을비학은 종남 문하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태을검선이 결국 자신의 유보를 남기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났다고 믿었다.
그리고 종남파를 부흥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 또한 아울러 사라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후로 종남파가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패배감이 종남파 문인들의 마음속에 짙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악자화는 태을비학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쉬쉬하며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았던 태을검선의 비학을…

“나는 매종도의 비학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기꺼이 종남파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후로 나는 오랫동안 남몰래 매종도의 비학을 찾기 시작했지.”

악자화의 말은 진산월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악자화가 종남파에 오기 전부터 태을검선의 비학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는 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악자화는 마치 독백(獨白)이라도 하듯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하나 몇 년이 되도록 매종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때 마침… 그 일이 벌어져서 나는 종남파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일이란 임장홍이 진산월에게 종남파의 적통을 인계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악자화가 태을검선의 비학이 존재한다고 믿은 이유는 매종도도 결국은 무인(武人)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무인이라면 누구나가 자신의 무공을 검증받고 싶어하는 법이다.
매종도가 왜 갑자기 세상을 등지게 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지만, 그가 급사(急死)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절학을 후세에 남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이대로 사라지면 종남파가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가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 악자화의 생각이었다.

악자화의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하나 진산월은 악자화의 생각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것은 자신도 무공을 익힌 무인이면서, 또한 종남파의 안위를 책임진 장문인의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태을검선이라 하더라도 문파를 떠날 결정적인 순간이되면 악자화의 말대로 어딘가에 자신이 절학을 남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태을검선의 비학은 실제로 존재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이백 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을 수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뒤지고 다녀도 찾지 못한 태을비학을 과연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악자화가 던진 화두(話頭)는 숱한 의문과 복잡한 상념들을 불러일으킨 채 진산월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악자화는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진산월을 응시하며 한자 한자 부러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했다.

“네가 매종도의 비학을 얻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네가 지금보다 별다른 발전이 없다면 내 손으로 너를 벨 것이다.”

“…!”

“남에게 모욕당하고 멸시당하며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것이 종남파를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그것이 한때 종남파에 몸을 담았던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악자화는 한 번 더 신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진산월을 쏘아보다가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없이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진산월은 그가 사라진 것도 모르는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나 담담한 그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마음은 짙은 먹구름에 휘감겨 있었다.
너무도 여러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휘젓고 있어 차라리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진산월은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동광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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