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13화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 어떤 것도 아닌 것이 눈을 떴습니다.
형용모순은 넘어갑시다. 눈을 떴다는 것 또한 그대로 이해하지 마시고요. 눈 같은 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눈이 있었다 해도 뭘 볼 수는 없었을 테지만.
그것은 그 상황에 반발하여 그것이 되었습니다. 모순에 대해선 이제 말하기도 좀 그렇군요. 때려치우고 그냥 말할게요. 예. 그것은 그 상황이 탐탁치 않았어요. 그리고 탐탁치 않아함으로써 그것은 ‘탐탁치 않아하는 것’이 될 수 있었지요. 뭔가 그 발생부터 꽤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것 같지만, 원래부 터 그것은 그 모양이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그것은 ‘원래부터 그 모양이었던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슬슬 짜증이 나는군요. 그것도 그랬어요. 짜증 이 났지요.
“뭐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것은 뭐야? 이것은 있잖아. 이것이 있어야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잠깐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없어야 하는데, 이런 메두사 머리 땋는 소리가 있나………… 마음에 드는데.”
그래서 그것은 계속 반발해 보았습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계속 반발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발의 대상이 없는 반발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무에 저항하고 있다고 말해도 되겠지요. 그런데 그건 바꿔 말하면 무저항이지요. 무저항은 그것의 본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짐작하셨지요? 그것은 ‘본성부터 무저항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이 무저항을 계속할 수는 없을 거라고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무저항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본성에 저항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무는 거대한 저항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거대하고 강력한 무저항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