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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23화


왕비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비명과 증오의 불륜에서 태어난 사생아 쯤 될 듯한 웃음이었지요. 왕비는 히릭, 히릭 하는 소리를 내며 웃다가 힘겹게 말했습니다.

“그건 아냐.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아냐!”

“왜지요?”

“어처구니없는 소릴 하고 있군. 당연하잖아! 그건 내가 만들어낸 가짜니까! 그런 여자는 없어!”

“저는 그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왕비는 폭언을 퍼부을 듯한 얼굴로 예언자를 노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았어요. 왕비는 그런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하며 왕을 돌아보았습니다.

왕은 예언자와 왕비의 대화를 듣고 있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아귀가 맞지 않는 자신의 기억들과 싸우기에도 벅찼거든요. ‘나는…………… 604 언덕에서… 저격을 당했어. 야전 병원에 실려가………… 간호병의 손이 이상할 정도로 매끄러웠지. 약품 때문일까……… 그래서 내 조카 는………… 이틀이나 괴로워했다고? 빌어먹을. 내 조카에게 줄 진통제도 없었나! 조카? 무슨 말이지………… 왕의 조카… 그건 나? 하지만 나는 바이서스로 돌아갔는데………… 전하께서 심장발작으로 왕위를………… 하지만 내가 먼저 죽었는데? 나 하나 쏴죽였다고………… 솔베스의 독사니 하는 웃기는 별명을 얻은………… 에이다르 바데타가 내 조카를………… 나를 죽였어. 아닌데. 죽은 것은 선왕인 나야…………… 심장 발작으로………… 나는………… 누구………… 지…………?”

왕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본 왕비는 몸에 힘이 쫙 빠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녀는 다시 예언자를 보았습니다. 예언자는 그녀가 아닌 그녀를 보고 있었 어요. 확신을 담은 그 눈빛은 그녀를 해부하는 수술칼 같았습니다. 부끄러운 근육, 부끄러운 뼈, 부끄러운 내장. 기이한 말들이 왕비의 머릿속을 흘러 갔습니다.

“아냐!”

예언자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왕비는 턱이 가슴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어요.

“아냐!”

왕비는 얼굴을 다시 들었습니다.

“이 세상은 나의 왕에게서 나온다. 화가에게 허락된 세상은 없어.”

“그 왕은 도대체 누굽니까!”

“나의 왕이야!”

예언자가 호흡을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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