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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42화


바이서스 임펠에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기이한 시간이 찾아들었습니다.

시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분명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그리고 바이서스 임펠 시내는 하늘에서 작렬하는 벼락 때문에 환했어요. 환하다는 말 은 좀 어폐가 있을 수도 있군요. 지속적인 조명이 아닌 점멸하는 조명이기 때문에 세상은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이며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죠. 시 간적 모자이크라고 할까요. 그 헐겁게 기워진 현실 속에서 바이서스 임펠 시민들은 서로를 부여안고 방안에서 하릴없이 떨거나,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거나, 그렇지 않으면 트럭의 시동을 걸려고 애썼어요. 마지막 시도에 대해서만 약간 부연하죠. 시동이 제대로 걸리는 차는 스무 대에 한 대도 찾기 어려웠어요. 전시였기 때문에 좋은 부품들이 귀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어요. 마치 바이서스 임펠의 공기가 시에프리너의 위세에 겁을 집 어먹고 엔진 흡입구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기는 피스톤 룸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점화했어요. 수도의 골목과 지붕 위에 인화가 둥둥 떠다녔습니다. 뾰족한 꼭대기마다 코로나 방전이 일어났고 전선을 따라 구전이 치달렸으며 그보다 높은 곳에는 아무리 봐도 극광이 분명한 것이 흐 르기도 했지요. 바이서스 임펠은 극광을 볼 수 있는 위도도 아니거니와 극광은 원래 구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생기지 구름 아래에 나타나지는 않는데 말이에요.

바이서스 임펠 시민들은 솔베스에서, 그리고 이라무스에서 일어난 일을 아직 알지 못했지만 그 모든 전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 요.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 없었던 거대한 벼락이 바이서스의 수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모른다는 것은 차라리 행복한 무지 라 하겠군요. 그들은 마침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권총이나 라이플, 혹은 크랭킹 핸들을 팽개쳤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 높이 외 쳤습니다. 그들은 이유를 묻고 중지를 호소했고 대화를 요구했습니다. 음. 그렇게 많은 천둥이 치지 않았더라도 시에프리너에게 그들의 목소리가 닿 긴 어려웠을 거예요.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도 제대로 듣기 어려웠습니다.

시에프리너의 선회에 따라 하늘에 산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뻗어내려 오는 거대한 ‘분화구’를 보며 이성을 잃었습니다. 몸 을 숨겨야 된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행동에 옮긴이는 드물었어요. 생존을 위해 선조로부터 선물 받은, 그리고 스스로 깨우친 모든 관점과 이해력이 무 의미해지는 초월적인 광경 아래에서 그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깊고 깊은―높고 높은분화구 속에서 별이 반짝이는 모습은 차라리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그건 익숙한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들의 반가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별들마저 그들을 배신했지요. 몇 시간에 걸쳐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별들이 급속히 움직였습니다. 마치 별들 이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았지요.

증오에 차서 아래를 쏘아보던 시에프리너가 갑자기 위쪽으로 주의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분화구 속에서 별자리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곤 으르렁거렸 어요.

“프로타이스!”

저 유명한 춤추는 성좌 프로타이스였습니다. 인간은커녕 드래곤이라 해도 그 시점의 시에프리너에겐 접근하길 꺼릴 테지만 춤추는 성좌는 아랑곳하 지 않았어요. 그는 대범하게 접근하며 자신의 의사를 마법에 담아 보냈어요.

‘거기서 뭘 하는 거지,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

‘네가 무슨 상관이야? 가!’

분노 때문에 시에프리너는 재치를 부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가라니오. 프로타이스를 가게 하려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말이지요. 과연 프로타이스 는 접근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어요.

‘당신은 알을 품고 있어야 하지 않나? 왜 여기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바이서스 인들이 괴상한 예언 때문에 당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이야 기를 들었는데. 그들에게 경고를 하려는 건가?

시에프리너는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가장 똑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슬픔과 격노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녀가 프로타이스에게 전할 수 있는 것도 그것뿐이었지요.

‘그들이 내 알을 깼어.’

시에프리너에게 날아들던 프로타이스가 주춤했습니다.

‘아아. 그래서…… 그렇군.’

‘그들이 내 알을 깼어! 내 면전에서! 엄마가 보고 있는 데서! 어떻게………… 어떻게!’

프로타이스는 보물과 보석으로 뒤덮인 몸을 공중에 띄운 채 말없이 시에프리너를 바라보았어요. 우레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 광경엔 형언키 어려운 고요함이 있었지요. 잠시 후 프로타이스는 그 고요에 저항했어요.

‘돌아가.’

‘프로타이스!’

‘돌아가. 당신 자식의 주검에 뿌릴 피라면 당신 눈에서 충분히 흘러내리고 있어. 드래곤의 힘으로도 그보다 더 값비싼 피를 살 순 없어. 그러니 돌아 가. 추락하지 마.’

이어서 프로타이스는 시에프리너에게 처벌이나 복수를 해야지 난동을 부려선 안 된다는 취지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지요. 시에프리너가 그를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기 때문이죠. 물론 프로타이스는 저항을 포기하고 고분고분 당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건 그에게 불가능 한 일이니까요.

바이서스 임펠의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섬광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드래곤이 격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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