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그림자 자국 – 146화


아일페사스는 쿠궁 하는 소리를 내며 기절한 프로타이스 앞에 내려섰습니다. 프로타이스와 정반대로 그건 추락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착지였지 요. 이루릴이 왕지네의 허리를 붙잡고 뛰어오르지 않았다면 왕지네는 그대로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졌을 거예요. 이루릴은 바람의 정령들에게 부축 받으며 서서히 땅에 내려섰어요.

아일페사스는 몸으로 프로타이스를 가리듯 하며 간곡한 눈길로 시에프리너를 보았어요.

“시에프리너.”

돌아온 대답은 적의에 찬 으르렁거림이었습니다. 푸른 드래곤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눈으로 드래곤 레이디를 쏘아보았어요. 그 눈에 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죠. 아일페사스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어요.

“깨졌어?”

시에프리너는 자신의 앞발을 물어뜯고 꼬리로 땅을 때렸어요. 번개 섞인 흙먼지가 튀어 오르고 땅이 쿵쿵 울렸습니다. 이루릴의 등 뒤에서 왕지네는 왕자를 꼭 껴안은 채 와들와들 떨었어요. 제발 그곳에서 멀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이루릴을 밀치고 앞으로 나가 시에프리너를 얼싸안고 싶었어요. 발가락 하나를 잡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아니, 그 전에 짓눌린 벌레처럼 팍 터져 죽을 것 같지만.

아일페사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어요.

“네가………… 네가…..”

시에프리너가 벼락을 내뿜었습니다. 명중당한 아일페사스의 황금빛 몸이 환하게 빛났어요. 아일페사스는 물러나지 않았고 반격을 시도하지도 않았 어요. 시에프리너가 두 번째, 세 번째 벼락을 내뿜었을 때도 아일페사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요. 시에프리너는 견딜 수 없다는 듯 하늘을 향해 벼락 을 토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일페사스는 울며 이를 갈았습니다. 이루릴이 외쳤습니다.

“시에프리너!”

시에프리너는 이루릴의 말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이루릴은 입술을 깨물었어요.

“드래곤 레이디. 그녀를 어떻게 좀 해봐요.”

“그녀? 시에프리너는 없어졌어.”

“펫시!”

아일페사스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습니다. 한 걸음일 뿐이었지만 그건 드래곤의 한 걸음이었고 심리적인 후퇴는 더 컸어요. 이루릴의 얼굴이 창백해 졌죠.

“저건 시에프리너가 아냐. 바이서스의 재앙이지.”

“내버려둘 건가요?”

“이 상황의 이해 당사자는 저것과 바이서스야. 나와는 관계가 없어. 바이서스가 알아서 할 일이야. 물론 바이서스는 시간을 잘 쪼개 써야 할 거야.”

“예?”

“나도 바이서스에 용무가 있으니까.”

드래곤 레이디가 몸을 돌렸습니다. 혼절한 프로타이스를 잠시 쳐다보던 아일페사스는 다시 시선을 옮겨 천년의 고도를 보았습니다. 밤이 되면 그 위 쪽의 하늘이 부옇게 변할 정도로 빛나던 대도시였지만 지금 그곳의 모습은 바이서스 임펠에서 태어나 자란 이도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하늘이 빛나 긴 했지만 그건 작렬하는 벼락 때문이었지요. 반면 도시는 하얗게 발광하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검은 실루엣이었습니다. 배전망이 다 망가 진 것이 분명했어요. 그 때문에 바이서스 임펠은 천 년된 폐허처럼 보였지요. 아일페사스는 쿠웅 쿠웅 소리를 내며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루릴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무너지고 있었어요. 프로타이스는 기절했고요. 아일페사스는 드래곤 로드의 귀환이라 해도 상관없을 기세로 바이서스 임펠을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어느 쪽을?’

그 질문에 이루릴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 채 이루릴은 어느 드래곤도 아닌 하늘을 보았어요. 시에프리너는 다시 벼락을 토해냈습니다.

프로타이스는 꼼짝도 하지 못했어요. 아일페사스는 한 걸음 더 내디뎠죠. 그리고 고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어치워!”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