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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20화


이루릴은 어느 쪽이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대신 자신이 들은 것은 당신의 여자라는 말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혼란스러워진 예언자는 며칠 말미 를 달라는 말만 겨우 꺼낼 수 있었어요. 이루릴은 시간 여유를 많이 줄 수 없다며 내일 정오 무렵에 오겠다고 말하곤 떠났습니다. 홀로 남은 예언자는 오락가락하다가 한참 보류했던 일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침대에 쓰러지는 일이죠. 예언자는 그 일을 완료한 후 이루릴이 꺼내지 않은 질문을 스스 로 던졌어요. 어느 쪽? 그게 무슨 말이지?

엄밀히 말해 그것은 무의미한, 완전히 잘못된 질문이죠. 예언자의 여자라는 호칭을 허락한 숙녀가 한 명도 없으니까요. 그 후보라 할 만한 여인이 한 명 있을 뿐이죠. 화가 말이에요. 하지만 예언자는 조금 전 갱도에서 만났던 왕지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루릴이 염두에 두고 있던 여자 는 왕지네일 가능성이 높지요. 그렇다면 예언자에게 괴이한 제안을 보낸 자 또한 왕지네를 겨냥하고 있지 않을까요. 거기까지 생각한 예언자는 약간 의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예, 예언자는 화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요. 구혼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어느 쪽?’이라니오.

침착을 되찾은 예언자는 곧 더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대신 죽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예언자는 3년의 수감 생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점을 거기에 맞춘 예언자는 그제야 분노를 느꼈지요. 죄수가 아닌 빈객으로 대접하겠다는 약속은 품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거절할 수 없게 만 드는 수법이 거의 낭심 가격 수준입니다. 거만하기로는 비할 바도 찾기 어려울 정도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예언자의 그 어떤 것에 대한 존중도 없습 니다. 예언자는 격노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그 정체를 모르기에 욕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요. 그 때문에 예언자는 상대방의 정체를 예언하고 싶 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예언은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요? 물론이지요. 그런데 미래는 현재가 과거가 된 시점이거든요. 따라서 미래를 볼 수 있으면 과거가 된 현재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예언자는 ‘예언자를 감금했던 모모의 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대화를 나누는 미래인들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물론 훨씬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법들도 있을 테고요. 예언자는 그런 방법들을 수십 가지라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수단이 많으면 묘하게도 자제하기 더 쉬워지는 법이지만 예언자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간수가 되려는 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몸이 꼬일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예언자는 천장을 향해 고함을 버럭 질렀습니다.

“정신 차려! 그랬다간 왕지네를 무슨 낯으로 보겠냐!”

다시 왕지네군요. 예언자는 두통을 느꼈습니다. 그는 왕지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몇 분도 가지 않을 결심이었죠. 밤에 올 왕 지네를 위해 술과 고기 등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섰거든요.

해거름 무렵이 되자 사고 소식을 들은 광부의 아내들이며 이웃들이 위문품을 보내왔기에 예언자는 분주히 준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밤이 깊어지 자 왕지네는 약속한 대로 찾아왔습니다. 거의 파성추가 성문 깨는 형국으로 뛰어들었죠.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코볼드들이 어떤 보물을 가지고 있고 그걸 숨기고 싶다면 시에프리너의 레어 가까운 곳에 숨겨두지 않았을까? 아까 내가 말 했던 그 통로 근처에 말이야. 안전하기로 따지면 그보다 더 안전한 곳도 드물지 않겠어?”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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