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32화
시에프리너가 격노하여 예언자의 탈출을 알려왔을 때 드래곤 레이디 아일페사스는 놀라긴 했지만 그것이 그리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일페사스는 시에프리너가 벽을 들이받은 것을 가지고 농담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났을 때 아일페사스는 더 이상 농담을 떠올릴 수 없었지요. 사람들은 그녀를 ‘강대한’ 드래곤 레이디라고 부르지만 그 표현에 담긴 내용의 빈약함을 생각하면 그 말은 오히려 모독에 가깝습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보통 인간에 불과한 도망자 한 명을 찾아내는 것 은 그녀에게 일도 아니었죠. 그런데도 열흘이 지나는 동안 드래곤 레이디의 그물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일페사스는 예언자가 도망쳤다는 사실보다 그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고 판단했지요. 결국 카르 엔 드래고니안으로부터 강력한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드래곤 레이디가 그녀의 친구, 이웃, 종복에게 우정, 보상, 충성을 대가로 부탁, 요구, 명령한다. 예언자를 찾아라!”
아일페사스의 노호가 울려 퍼지자 세계가 예언자를 찾아 눈을 치켜떴습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새떼들의 기이한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죽을 만큼 술 에 취한 채 나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떠들어대는 벌목꾼들이 나타났습니다. 머리를 치켜세운 거대한 지네에 탄 엽사와 개구리 다리를 가지고 깡총깡총 뛰는 엽견들이 함께 안개 속을 달리는 모습이 노출되기도 했고 무엇인가를 찾듯 강기슭을 향해 흘러 올랐다가 도로 내려가는 강물이 목격 되기도 했습니다. 매일 꿈에 같은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세기도 귀찮을 정도였어요. 그 중에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으로 착각하고 가슴을 콩닥거리는 처녀도 있었지만 갑자기 식음을 전폐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칼을 쓱쓱 갈아대어 가족과 친지들을 공포에 빠트린 청 년도 있었지요.
그리고 드래곤 레이디는 그 모든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 그 모든 사태는 사실 벌어져선 안 되는 거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일페사스가 지시하자마자 곧장, 길게 잡아도 한나절 내에 예언자의 현재 위 치가 발견되어야 하거든요. 그랬다면 사람들이 매일 꿈을 꿀 일도, 수백수천 년 동안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던 신비한 존재들이 공공연히 노출되는 일 도 없었겠지요. 그 모든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어디에서도 예언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 그 녀석은 미증유의 예언자였지. 추적을 예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러니 미리 피할 수 있는 거지!”
아일페사스의 나무랄 데 없는 추리에 이루릴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습니다.
“글쎄요.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둘째치더라도 그는 예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데요.”
“자기 자식이 위험에 처했잖아. 못할 짓이 어디 있겠어?”
“설득력 높은 가설이라는 점은 인정하겠어요. 어쨌든 이 탐색은 중지시키는 것이 좋겠군요. 혼란이 너무 커지면 통제할 수 없게 될 거예요. 다행히 그가 어디로 향할지는 자명하니까.”
“즉각 바이서스 임펠로 가! 이젠 예언의 문제가 아니야. 그 녀석은 깨어 있는 시에프리너를 두 눈으로 목격했어. 예언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가 본 것은 말할 수 있다고 자신을 납득시킬지도 몰라. 반드시 그 입을 막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