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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75화


이른 아침, 독수리가 날개 아래쪽에 빛을 받으며 날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들이 좋아하는 비행 시간은 아니죠. 그처럼 큰 새에겐 땅이 뜨거워져 공기가 하늘로 치솟는 시간이 날기에 편합니다. 분명 괴벽이고, 괴벽은 함부로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독수리의 경우 하마터면 총에 맞을 뻔했습니다.

왕비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독수리를 겨냥했던 리볼버를 다시 꽂아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얼이 빠진 채 쳐다보는 경계병에게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프로타이스인 줄 알았소.”

경계병은 겨우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언제 프로타이스가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한 곳입니다. 아무래도 산책은 그만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멀리 가진 않을 거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까지만 갈 예정이오. 이렇게 좋은 아침에 화약 냄새 물씬 풍기는 저 안에 있어서야 나도 왕자도 숨 이 막히지 않겠소.”

경계병은 허락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좋은 군인다운 태도였지만 왕비는 칭찬을 하는 대신 유모차를 밀고 그를 지나침으로써 그를 상심케 했지요. 가장 존엄한 여인을―게다가 권총까지 차고 있는 물리적으로 제지하기 어려웠던 경계병은 그녀의 등에 대고 멀리 가지 말라고 말한 다음 참호 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비는 유모차를 밀면서 생각했습니다.

‘프로타이스가 올지도 모른다고? 그게 아냐. 프로타이스는 반드시 와.

왕비가 그런 아침에 산책에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죠. 예언자는 이 시각에 프로타이스가 이곳을 향해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미리 나와 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녀를 끌고 돌아가려고 애쓸 시녀들까지 떼놓은 채 말입니다. 궁정 예절이 거의 무시되거나 약화되는 전선이었기에 가능 한 일이었지요.

우마차와 트럭이 오가며 길을 다져놓았기에 유모차를 밀면서도 왕비는 수월하게 속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몇 분 정도 걸은 왕비는 미리 봐두었던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왕비를 쌍안경으로 좇던 경계병들은 안도했습니다. 왕비가 만약 숲속으로 들어갔다면 쌍안 경으로도 그녀를 볼 수 없었겠지요.

물론 왕비가 경계병들을 안심시키려고 언덕에 올라간 것은 아닙니다. 프로타이스의 접근을 알아차리기 위해선 개방된 장소가 필요했던 거죠. 언덕 정상에 유모차를 멈춘 왕비는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러곤 허리춤에서 그림자 지우개를 풀어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머릿속으로 목표를 결정하고, 그림자 지우개로 겨냥한 후, 덮개를 연다.

왕비는 싱긋 웃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산책이 될 거예요. 예언자가 말한 것처럼 프로타이스는 반드시 올 테지만, 그래서 대단한 혼란이 일어날 테지 만, 프로타이스는 곧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가 될 겁니다. 소동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될 테고 왕비 자신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른 채 산책에서 돌아갈 겁니다. 왕비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어요. 원래 없었던 드래곤이나 원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춤추는 성좌를 없애버린 일을 기억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죠.

‘왕의 장애물일 뿐이야. 기억해 줄 필요 없어. 그 이름은……………

“프로타이스! 프로타이스다!”

왕비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습니다. 경계병들이 프로타이스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종을 울려대고 있었습니다. 상념에 빠져 있던 자신을 꾸짖으며 왕비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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