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12화


“곡주님.. 때가 많이 지났습니다.
시장하시지 않을까 하여 감히 방해를 하였습니다.”

밥 먹고 하자고?
흠…! 그러고 보니 별로 움직인 것도 없는데 출출하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몸을 일으켰다.
엣-?
별안간 비틀대는 나를 대교가 재빨리 부축해왔다.

“고, 곡주님?”

“어- 괘안아, 괘안아-!”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괜찮다는 뜻으로 한 손을 내밀어 저어 보였다.
그러나 실은 하나도 안 괜찮았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것 같더니
계속 어질어질하고 멍- 하다.

“아,하,하, 허헛-!”

나는 무지 어색하게 웃으며 대교에게서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태연한 채 하며 먼저 연못 옆 석재 탁자 앞에 앉았지만
뒤따라 오는 대교는 여전히 무지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빌어먹을… 그 놈의 각막 스크린 기능인지 뭔지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오래 썼다가는 사람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몽이 말한 ‘신경 적응력’인가 하는 거..
난 그게 부족한 건가?

으… 아냐! 아냐!
이건 필시 원판 극악서생 놈의 몸이 개판이어서 그럴 거야, 틀림없어…
어떤 악조건에서도 적응하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던 것이 나였는데… 쓰블!

나는 공연히 짜증이 나서 대교가 꺼내 놓은 음식들을
으적, 으적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먹었다.
먹자, 부지런히 먹고 운동해서 이 한심하고 비리비리한
몸을 좀 키우자!

“음, 으물- 으적! 으적! 꿀꺽! 으음.. 대교야!”

“넵-! ..곡주님!”

으으.. 뭐 먹을 땐 말 걸지 말아야겠다.
급히 대답하는 대교의 입에서 내 쪽으로 뭔가가 튀었다.

“….요, 용서를.. 소, 소녀가 그만 대죄를 범했습니다.”

“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고개를 숙인 대교의 귀 밑, 목뒤까지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언젠가, 친구 놈이 아주 맘에 드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같이 밥 먹다가 수다를 떨며 자기한테 음식 찌꺼기를 날리는 바람에
정이 뚝,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짜샤!
키스하면서 설왕설래하는 건 좋고,
똑같은 입 안에서 튀어나온 물질은 왜 불쾌하다는 거냐?
상대가 키스해도 좋은 여자라면
그녀의 입술이나 그 안에서 나온 기타 등등(?)이나
똑 같은 거 아냐?
안 그래 임 마?

……..흠, 내가 정말 원판처럼 변태인지는 몰라도
암튼,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그 기타 등등(?)이 튀었을지도 모를 위험 지역의 음식을
태연하게 집어들고 먹었다.
고개를 든 대교의 미묘한 표정변화는 무시하기로 했다.

“딴 게 아니고.. 너 말야.
내공으로 니 몸 주위에 보호막을 칠 수 있니?
음.. 대충 몸에서 한 뼘 정도 거리까지 말이야.”

“…예? 설마.. 소녀가 그 정도 거리를 격하여
외문강기(外雯剛氣)를 형성할 수 있냐고 물으신 것입니까?”

….일단, 대답하고 보자.

“응, 그래. 그거.. 외문강기..”

“곡주님.. 그 정도 외문강기를 형성하려면
적어도 3 갑자의 내공이 필요할 것이고..
그 정도의 웅후한 내공을 지닌 자는 강호에도
손꼽히는 몇몇 뿐일 것입니다.
본 곡에서도 아홉 장로님들 정도가 가능하실 것입니다.
소녀의 일천한 내력으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경지이옵니다.”

대교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보호막인지 ‘강기’인지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아까 그 가상의 화천루주가 쓴 ‘월형환무’라는 것을
단순히 눈속임 수법이라고 치부하는 건 좀 미안한(?) 노릇인가?

“그래..? 흠, 여러모로 너와 화천루주의 격차가 매우 크긴 큰 데 말야.
단시간 내에 그 것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그게 문제야.
단 기간에 말이야…”

나는 무슨 종류인지 모를 ‘육포’를 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기간이 문제이다.
아직 며칠 남았다고 확정이 된 건 아니지만..
그 장청란이란 계집애가 지 삼촌이 여기 잡혀 왔다는 걸 알고
구하러 달려 올 때까지 그리 긴 기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별로 길지 않은 기간 내에 대교를 초고수로 키우려면…

흠!
결국 무협지의 일반론(?)이 적용되어야 하나?
다른 절정고수들의 내공을 전수시키거나,
울트라 짱 ‘신비영약’을 먹여 대뜸(?) 내공을 키운 다음,
최고의 무공서를 교재로 제공하여 갈킨다… 흠…

톡!톡!톡!

“이봐 몽몽, 대교의 내공을 단번에 화천루주 수준으로
끌어올릴.. 그런 아이템이 있을까?”

[ 이 곳에 소장된 ‘영약’을 최대한 활용하여
저 여자의 ‘내공’을 급속히 향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가장 빠른 기간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이 곳에 있는 72종의 영약을 사용하여 2주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단, 같은 아이템을 쓰더라도 1갑자 정도의 내력을 지닌 자의
적극적인 보조가 없을 경우, 기간은 1주가 추가됩니다. ]

“흠… 2주에서 3주라.. 아니, 지금은 도우미를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얄짤 없이 3주라는 얘긴데..
더 짧은 시간에는 안될까?”

[ 참고로 이 시대의 행성 에너지 수치는 주인님 시대의
약 34배, 제가 제작된 시대의 140배입니다.
행성 에너지 집중도가 높은 물질인 ‘영약’의 이 시대
인체와의 조화율 계산은 오차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제가 해당 여성의 신체구조를 정밀 스캔하면
보다 정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

“……….”

나도 그리 나쁜 머리는 아니니까(?),
한 번 정리해 보자.
소위 ‘내공’이란 것이 이 지구라는 행성의 에너지,
즉, ‘자연의 기’를 끌어 모아 형성되는 것인데…

당근, 이 시대 자연의 기가 내가 온 시대나 몽몽이 만들어진 시대보다
왕성하므로.. 계속 여기서 살아오고 또 내공 수련 경력이 있는 사람이
영약을 소화해내는 정도는 단순 계산으로 뽑아내기 어렵다는 거로군.

“좋아, 일단, 대교를 스캔해봐!”

[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 신체의
다양한….. ]

쳇! 이 것도 복잡하군.
톡!톡!톡!

“대교야, 식사 다했니?”

“예, 곡주님”

“음… 좋아, 그럼.. 좀 쉬었다가.
내가 시키는 대로 좀 따라 줄래?”

대교는 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모았다.

“소녀는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명하십시요.”

“아냐.. 10분 간 휴식은 지켜야지.
좀 있다 하자구.”

대교를 의자에 앉힌 후, 나는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다시 찬찬히 검토해 보았다.

우선.. 화천루의 무공을 철저히 분석하는 작업에는
추가로 그 무공을 쓰는 냉화절소 장청란에 대한 정보도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무공이란 게 그 쓰는 자에 따라 발휘되는
위력이 다를 테니까…

흠.. 일단, 대충 정리된 건 이렇다.

첫째, 대교를 이 곳에 계속 머물게 하면서
몽몽이 알려주는 대로 ‘신비영약’이든 뭐든 먹이면서
내공을 키우고, 상위 무공을 가르킨다.

둘째, 그 동안 나는 총관을 시켜 장청란의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그 것을 몽몽을 통해 분석하고
추가 데이터베이스화 한다.

셋째, 잔득 키운(?) 대교와 장청란의 가상 대결
시뮬레이션을 계속 반복하며 ‘필승’의 전략을 수립한다.

세세한 건 진행하면서 다시 따져 보기로 하고,
일단 진행하기로 했다.

시작하기 막막한 일도 밀어붙이다 보면 되기 마련이다.
까짓 거 해보자!

“…대교! 시작하자, 준비됐지?”

“존명!”

비장의 각오를 한 표정으로 발딱 일어서는 대교에게는
미안하지만, 몽몽 말대로 대교의 신체를 정밀 스캔하기 위한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처음 부를 때와는 달리 나는 좀 겸연쩍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거기, 평평한 바위 위에..
에.. 난 눈 감고 있을 테니까.
옷을 좀 벗고.. 누워 줄래?”

“..존명..!”

대교가 내 전방 2미터 정도 떨어진 바위 앞에서
슴없이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천장을 향해 누워서.. 음..
되도록 긴장을 풀고.. 그리고 너도 눈을 감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믿고.. 결코 눈을 떠서는 안돼!
알았지?”

“존명!”

나는 몽몽의 지시대로 앞으로 세 걸음을 옮긴 후,
몽몽이 팔찌처럼 채워져 있는 왼 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두께는 고작해야 1CM가 조금 넘을 듯하고
내 팔목에서 풀려 펼쳐진다고 해도 길이 20CM 정도일 몽몽이
우웅-하는 낮은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팔목에 전해지는 실제적인 진동은 거의 없었다.

“아..?”

어느 순간, 대교의 입에서 당혹해 하는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모야.. 무슨 상황인 거야? 몽몽, 너 혹시 기계 변태..?

[ 주인님. 다시 한 번 여성에게 경고해 주십시오.
신경계통에 약간의 충격이 느껴지기 시작할 텐데,
지금 여성이 눈을 뜨게 되면 제가 평범한 팔찌가 아니라는 것이
발각될 것입니다. ]

“…대교! 지금부터 니 몸에 이상한 충격 같은 것이
느껴질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뜨라고 하기 전에는
절대 눈을 뜨면 안돼! 알겠어?”

“조, 존명!”

그래- 욕을 해라 욕을 해… 제기, 매번 까먹네
저 말 쓰지 말라고 했놓고…

“..으흡..! 아, 아아아….!”

대교의 입에서는 참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흘러
나오는 것이 분명한 신음소리가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쒸! 눈 감고 있어서 볼 수는 없고,
무지막지하게 궁금하다.

야! 몽몽, 너 설마 진짜 변태 기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