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15화
시선 방향으로 보아 내 옆의 총관은 분명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내 뒤에 서있는 대교 자매들에게 웃은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키며
‘나 말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자가 내게는 대꾸도 없이 피식 웃더니
남자의 목에 두 손을 감으며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위에서 용을 쓰고 있던 남자가 아쉬운 듯 동작을 멈추었다.
나는 기왕에 들었던 손의 새끼손가락으로 천천히 귀를 후비며
두 남녀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여자…
워낙에 이쁜 대교 자매들과 한동안 지내서 그런지 처음엔 잘 몰랐는데,
찬찬히 보니까 상당히 예쁜 얼굴에 몸매는 엄청난 글래머이다.
남자는 한참 열이 오를 때 방해를 받아서인지 불만스러운 얼굴이긴 했지만,
민망해하는 표정도 뚜렷했다.
헌데 여자 쪽은 그런 것도 없이 태연하다.
민망해 하기는커녕 내게 보이려는 의도인 듯 옷을 찾아 걸치는 동작도 완만했고,
그 동안 계속 나에게 야릇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내참-! 이 여자, 정파의 여자 맞아?
“이- 요망한 것!”
내 뒤쪽에서 일갈한 것은 대교 자매 중 둘째인 소교였다.
“감히 뉘 앞에서 그런 요사한 술수를…”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며(허리의 연검을 뽑으려?) 앞으로 나서던 소교를
총관의 엄한 목소리가 가로막았다.
“멈춰라, 소교!”
찔금하는 소교를 향해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경망스럽구나. 아무려면 곡주께서 이 정도의 음공(淫功)에 동요하시겠느냐”
그제서야, 소교는 힐끔 내 얼굴을 살피더니 황망히 뒤로 물러섰다.
뭔 소리야? ‘음공’이라니?
나는 영문을 몰라 멀뚱한 눈으로 총관과 대교 자매들을 돌아본 다음,
다시 철창 안의 여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장명의 마누라는 조금 전까지의 느끼한(?) 표정을 거두고 서늘한 표정으로 돌변해 날 노려보고 있었다.
“과연… 비화곡주가 비록 무공을 지니지 못하는 몸이나,
독(毒)과 사술(邪術)에는 강하다 하더니 오늘 그 것을 제 눈으로 확인했군요.”
몽몽이 설명을 덧붙였다.
[ 조금 전 저 여성은 pme91계열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주인님 신체의 성감을 자극하려 했습니다.
주인님 신체의 비정상적인 외부 자극에 대한 내구력 때문에
주인님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
몽몽이 ‘pme’ 말머리 붙이는 에너지의 종류는 음양(陰陽) 중에서 ‘음’인 것 같았다.
음기(陰氣)로 특정 상대 몸의 성감대를(?) 원격으로 자극하려는 시도…
내 육체의 비정상적인 외부 자극에 대한 내구력….
정리하면, 저 장명의 마누라가 계속 나한테 쪼갰던 것이 실은
내가 음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음공’을 구사한 것이었는데,
나 ‘극악서생’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영혼)야 본래 벌건 대낮에 대교 자매들을 포함한 여러 명과 동행한 상황에서
첨 보는 여자의 눈웃음에 갑자기 음탕한 마음을 먹을 변태는 아니지만,
‘껄떡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원판의 육체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는 건 조금 뜻밖이다.
어쨌든, 그건 나중에 따져 볼 문제고
지금 총관이 스윽- 한 걸음 나서는군.
“장부인, 비록 부인은 출신이 분명치 않다고 하나
부군인 장총령은 정파의 중견인물인데, 부부가 노상의 개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사(房事, sex)를 벌이다니
부끄러움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려.”
총관의 질책성(?) 발언에 여자는 씨익 비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여기가 무슨 노상이라도 되오?
엄연히 폐쇄된 공간에서 부부가 지락을 나눈 것이 무에 흉이 되리오.
냄새 맡고 구경 온 자들이 바로 개가 아니오?”
여자의 노골적인 반격에 총관의 관자놀이에 불끈 힘줄이 솟게 했다.
“삼홍랑 구월화…! 듣던 것 이상으로 입이 험하구나.
허나! 네가 우리 사마외도에서도 천히 여기는 음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다른 정파의 인사들이 알게 되면 어떠할지 궁금하구나.”
대뜸 반발로 바뀐 총관의 위협적인 말투에도 여자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음공을 천하다 하면, 고대의 황제께서도 소녀(素女)를 모셔 방중술을 전수받기 간청한 것은
어찌 생각하나요? 호호호-?!
당대의 사마제일검께서 어설픈 정파 인사들 흉내를 내는 분일 줄 몰랐네요.
하지만 그보다…”
여자가 다시 내게 도발적인 시선을 던져오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 음사(淫事)야, 천하의 극악서생이시라면 눈에 차지도 않을 터.”
이번엔 뒤쪽에서 셋째 소령이가 불쑥 나서며 소리쳤다.
“감히 곡주님께 무례한 혀를 놀리다니. 내가 네 년의 혀를 잘라내야겠다.”
에구구, 소령아, 니 이미지 망가진다. 그런 말 마라…
다행히(?) 여자는 소령이를 무시하고 날 향해 요사스런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깔-! 이제 보니 소문보다 취향이 조촐하시군요.
비린내 나는 어린 계집 셋이라니-!”
이제 소교, 미령이까지 각자의 검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살기를 뿜어내는 그녀들을 저지했다.
“뒤로 일보!”
내 위엄 있는(?) 명령에 대교 자매들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고,
나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너그들은 나서지 마!”
“조, 존명!”
다음은 총관.
음… 총관은 알아서 눈을 깔며 내게 전부 일임한다는 자세로 슬며시 반보 정도 물러선다.
나는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천천히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이로써 철창 너머의 남녀와 눈 높이가 비슷해졌다.
“무얼 하느냐! 빨리 좌자를 대령…”
“됐어. 필요 없어.”
나는 당황해하는 총관에게 의자를 가져오지 못하도록 했다.
갑자기 바닥에 앉아버린 내 행동에 약간 의아해하는 기색의 여자에게
나는 씨익-! 음흉스럽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몽몽에게 톡!톡!톡!
“몽몽, 지금부터의 상황을 모두 녹화 떠놔!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톤을 강하게 해서 끊어 말하는 단어는
그 관련 자료를 잽싸게 알려줘!”
톡!톡!톡!
이제 준비는 됐고…
흠, 이 여자 이름이 그러니까…
“..부인께선 삼홍랑 구월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분은 부군이신 장명 선생이시라고요..?”
일단은 점잖게 시작했다.
“강호 말단 해남파의 ‘총령’직을 맡고 있는 자이지요.
어디 가서 미움은 받지 않는 성격이나, 잠자리가 시원찮은 것이 흠이지요.”
구월화의 옆에서 처연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명이 그제서야 얼굴을 들었다.
“부, 부인. 아까부터 말씀이 지나친 것 같소.”
“닥쳐욧! 변변치 못한 사내 같으니라구!”
괜히 한 번 입을 열어봤다가 여자의 일갈에 찔금 고개 숙인 사십대 남자,
축 처진 어깨의 ‘장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불쌍한 사내에게 나는 쯧쯧 혀를 차주었다.
“호호홋-! 이 시원찮은 사내와 달리 곡주의 방중술이 출중하시다 들었습니다만,
외람되오나, 겉으로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군요.”
하긴…
겉으로 우람한 ‘코만도’나 ‘람보’가 정력까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 나의 신체 외장이 매우 사내답지 못하다는 것은 나도 절감한다.
헌데, 우리의 주인을 씹는 건 곧 우릴 씹는 것이라는 의식 때문일까?
내 뒤쪽에서 총관과 대교 자매들이 뿜어내는 살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그들아, 쫌만 기다려, 내가 복수해줄 테니…
친구들 사이에서 초말빨, 사악한 구라로 악명을 떨치던 이 놈이시다.
감히 말로 날 도발해?
좋아… 본격적인 ‘극악 모드’로 대해주지!
“어이- 장부인, 댁은 소위 정파의 인물 아냐? 그런 자각이나 있는 거요?”
“흐응- 천하의 극악서생께서 그런 걱정을 다해 주시다니…
솜털이 가시지 않은 애들만 안다 보니 같이 어려지셨나요?”
비웃는 말과는 달리, 구월화의 표정은 ‘요염’ 쪽으로 바뀌어 있었고,
눈웃음에 교태가 묻어난다.
이제 대교 자매들의 살기는 장난 아니게 상승해서 내 등줄기가 서늘하게 추워질 정도였다.
“애들을 안아서 어려졌다…? 그럼 장부인을 안으면 나이를 좀 먹으려나?”
“후후- 제가 곡주의 침상을 차지하면 저 세 마리 암코양이들이 절 할퀴려 들 텐데요?”
“문제는 쟤들이 아니고, 장부인의 능력이오.
내가 보기엔 이래도 ‘운우지락’에는 일가견이 있는 몸.
장부인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우선, 본좌가 터득한 방.중.술.을 논하자면…”
내가 ‘방중술’이란 말을 강조하자 몽몽은 기본적인(?) ‘소녀경’에서 시작해
온갖 고대 중국의 ‘성교육 지침서’와 ‘성 테크닉’ 서적의 목록과 주요 내용을
줄줄이 알려주기 시작했다.
난 몽몽이 알려주는 대로 차마 여기 올리기 어려운
온갖 남녀관계의 체위와 그 속에 담긴 오묘한 뜻(?)을 풀이하는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구월화도 지지 않고 맞장구를 쳤지만,
한 40분 정도가 지나자 지식(?)이 딸리는지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고,
한 시간이 지나자 얌전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계속 신나게 떠들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다.
흐… 우히히!
담에 다시 살펴봐야겠다.
‘비밀서고’에 이런 전문서적(?)들도 잔뜩 있단 말이지?
…흠! 암튼… 두 시간째로 접어들었을 때, 구월화가 참지 못하고 승부수를 던져왔다.
“호호-?! ‘명불허전’이라더니, 곡주의 해박한 지식에는 저도 당하지 못하겠네요.
허나… 실제 침상에서도 말씀하신 것들을 실현하실 수 있을지…”
“흐… 나야 당근 아니, 당연히 가능하지.
헌데, 처음 말했던 대로 장부인이 문제요.
흠! 부군인 장명 선생과 함께 ‘소녀경’의 제 9번 1조 ‘용번’과
8조 ‘어접린’을 지금 내 눈앞에서 실현해 보여주시오.
흐흐…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나 내가 부인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체위들이니 말이오.”
“무, 무슨…?”
“어이- 막내 미령아, 이 안이 너무 어두운 것 같다.”
건물 구조상 창문이 없긴 하지만, 갇힌 이들의 동정을 살피기 쉽게 복도에는 횃불이 가득했다.
그러나 미령이는 군말 없이 복도의 횃불 두 개를 뽑아 들고 와서 철창 앞에 들고 섰다.
나는 더 밝아진 조명 아래의 구월화에게 한껏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난… 너무나 기대가 되는구려.
장부인의 기교를 우선 눈으로 감상한 후, 눈요기의 대가는 내 침실에서 지불해 주겠소.”
창살에 바짝 다가서며 흥미로운 빛을 번득이는 내 시선을 대하면서
구월화는 ‘진짜 변태에게 잘못 걸렸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최후의 발악을 하려는지 애써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곡주! 제게 자신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많은 이들 앞에서 절 핍박하며 뜸을 들이시는 걸 보니…”
난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대체 뭐가 핍박이라는 것이오?
아까도 우리가 올 때까지 부부의 방사를 즐기지 않았소?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할 건 또 뭐요.
거참… 나야말로 장부인이 갑자기 요조숙녀 흉내를 내니 흥이 깨지는구려.”
나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힐끗 보니, 모질게 이를 악문 구월화가 옷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부인, 아니 되오!”
갑자기 나보다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장명이
구월화의 알몸을 감싸 안는가 싶더니 함께 쓰러져 버렸다.
“부인! 함께 죽읍시다.
우리 죽어서 오명을 남기지 맙시다.”
“닥쳐욧! 당신이나 죽어버려욧!”
나는 급하게 총관을 불렀다.
“총관, 둘 다 자결하지 못하게 해!”
“존명!”
총관의 한 손이 번쩍 들리더니, 나는 그의 검지 손가락 끝에서 무언가가 쏘아지는 것을 보았다.
아마 ‘탄지공’이라는 기술인 듯했다.
그의 ‘탄지공’은 정확하게 장명 부부에 적중했는지,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힘을 잃고 바닥에 추욱 늘어졌다.
음… 자세가 좀 흉하긴 하지만, 구월화의 몸매는 글래머다.
동양 여인의 얼굴에 서양 여자 몸을 합성한 듯한…
“이 놈들아! 날 죽여라! 더 이상 나와 부인을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죽여라!”
“흥! 당신 때문에 나까지 죽으라는 거에요?
당신은 내 오빠의 복수도 못해줬으면서 무슨 염치로…”
장명과 구월화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총관에게 눈짓했고, 총관은 ‘탄지공’으로 그들의 입을 막았다.
나는 말도 못하고 씩씩대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감정을 넣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여자는 음탕하고, 사내는 시원찮다. 결론을 내리지.
총관! 구월화를 지하로 옮겨라. 혀를 자르고 사지의 힘줄을 모두 끊어 자결하지 못하게 한 다음,
곡내의 모든 사내들에게 저 년을 제공하라.
밤낮을 가리지 말고 끊임없이 진행해라.
그리고 장명은 몸은 상하지 않게 하되, 자결은 못하게 해라.”
“존명!”
좀(?) 오버한 듯도 하지만, 그래도 계획했던 대사를 끝낸 후 나는 철창 앞을 떠나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면, 별로 오버한 것도 아니다.
좀 더 ‘극악’하게 하려면 여자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광경을 장명에게 계속 목격하게 하는 것인데,
그건 내 계획에서 어긋나니까 안 된다.
3층 복도 끝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옥전 무사에게 내가 내린 명령을 지시하려던 총관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그냥 내려가. 좀 전의 명령은 최소다.”
“예..?”
의아해하는 총관을 무시하고 1층까지 내려와서 다시 명령을 하달했다.
“조금 전에 말한 것 중에서 장명을 자결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 실행해.
그리고 구월화는 지하 고문실에서 잔뜩 겁을 주다가 기절만 시켜.”
“그, 그럼…”
“뺑끼야!”
“예?”
“아, 속임수라는 뜻이지. 총관… 아직 모르겠어?
장명과 구월화는 내 앞에서 각각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어.
죽다 살아난 구월화의 입을 통해 숨겨진 사연을 좀 들어봐야겠어.”
“아…!”
총관과 대교 자매들이 동시에 감탄성을 터뜨렸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야. 내 판단이 맞는다면, 냉화절소 장청란은 예상보다 빨리 이곳으로 달려올 거야.
전체 비상 걸어서 곡의 방비를 좀 더 철저히 하도록 하고,
월영당은 최대한 빨리 장명과 구월화 부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가져오도록 해.
구월화는 그다음에 깨워서 심문하겠다. 실시.”
역시 곡주님은 뭔가 다르다는 존경의 눈초리들…
흐… 나,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곡 내외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하는 총관이란 자가 나보다도 눈치가 없으니,
아무래도 이곳의 구성원들은 무공만 하고 포악하고 잔인하기만 했지 ‘두뇌파’는 없는 것 같다.
총관이 내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총총히 사라지자, 나는 대교 자매들과 함께 지옥전을 떠났다.
초여름의 풋풋한 태양빛 아래 비화곡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난 진짜 천재….?
아아- 결국 걸리고 말았나봐, 왕자AIDS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