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1부 – 34화


  • 34 –

소령이가 다소곳한 태도로 내 잔에 술을 따르는데, 자그마한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순진무구하고 귀여운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띤 모습이 가까이에서 보였기 때문일까.

내 신체의 특정부위(?)는 다시 ‘반란’을 일으킬 조짐을 보였지만, 흥… 그 정도는 이제 쉽게 진압할 수 있다.

음… 일단 분위기를 좀 바꿔볼까?

나는 소령이가 따라 준 술을 마시기 전에 공연히 코로 킁킁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배, 백일취 아닙니다. 귀주 인회현(仁懷縣) 특산 모태주(茅台酒)로써 향은 강렬하지만 청정수로 농도를 엷게 하여… 그리 독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루?”

“그… 그렇습니다, 곡주님.”

그래도 내가 미심쩍은 얼굴로 잔을 내려놓자, 소령이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가서, 소교와 미령이를 좀 불러와.”

소령이는 의아한 기색을 보였으나 곧, 처연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후후… 자매들 성격이 각각 다르지만, 네 명 다 순진한 구석이 있어 장난칠 맛이 난다.

소령이가 따라준 술을 한 모금 마셔보니, 이 ‘모태주’라는 술… 꽤 괜찮았다.

백화주에 비해 향은 조금 더 독한 듯했지만, 뒷맛의 산뜻함은 백화주와 뒤지지 않는다.

‘쓸만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안주를 집어먹으려는데, 세 자매가 우르르 들어왔다.

평소보다 빠르다… 자매 중 한 명이 첫 수청을 들게 될 날이라고 다른 두 명도 초조하게 가까운 곳에서 어슬렁거린 게 아닐까 싶었다.

세 자매를 앉히고 표정을 살펴보았다.

소령이는 소박맞은 여자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고, 소교는 언니로서의 책임감에 잔뜩 긴장한 채 내 눈치를 살폈다.

막내 미령이는 그저 호기심을 띤 표정이었다.

나는 이 자매들에게 내가 이들을 침상에 끌어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모두 부른 것이었다.

소령이를 거부하면 그녀가 매력이 부족해서 내 눈에 들지 않았다고 해석될까봐… 소령이도 불쌍하고, 이후 다른 자매들의 공격이 이어질 우려도 있었다.

“음…”

막상 부르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 막막하고, 공연히 술잔을 비우며 망설였다.

내가 말없이 술을 마시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결국 소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령이는 너무 어리고 미숙하여 곡주께서 즐기시기에 부족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송구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 주신다면…”

지도해…? 뭘…?

“지난날 비취각주께서는 소령이가 경험이 없어 그렇지, 일단 개화하면 특출한 명기가 될 소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곡주께서 길을 터주시면…”

“그만! 거기까지.”

역시 이 집안에서는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 되겠다. 쬐깐한 것들이 못하는 소리가 없으니…

제기… 일단 한 잔 더 원샷…!

“너희들… 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니? 나는 너희들을 천한 시비로도, 잠자리의 노리개로도 여기지 않는다고 한 말…”

그러고 보니 정확하게 노리개 운운한 적은 없었나…? 뭐, 하여간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뜻은 제대로 전달된 것 같다.

“어젯밤은 내가 술이 과해서 약간의 실수를 했지만… 너희들도 알잖아, 내가 어젯밤 실제로 소령이를 안지 않았다는 걸…”

음… 술을 몇 잔 마시고 입을 열어서 그런지 좀 쑥스러운 표현도 쉽게 나오는 것 같다.

“그건 말이야. 소령이나 너희들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야…”

에…? 방송사고닷! 갑자기 하던 말과 생각이 얽혀버린다.

애초에 내가 전달하려던 내용은 ‘너희들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없는 아직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이었는데, 여자로서의 매력이 충분하다고 말하면… 논리적인 모순이…

“…소령이는 물론이고 소교, 그리고 미령이도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들이야. 하지만…”

제기… 자매들, 특히 막내 미령이가 빤히 날 바라보고 있다.
암팡진 고양이 같은 미령이의 두 눈을 마주치니, 대교에게 했던 그 ‘느끼한 대사’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미령이는 자매들 중 유일하게 나에게 게긴 전력도 있다.
대교와는 다르게 미령이는 내 말에 얌전히 수긍하지 않을 것 같다.

‘난 너희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고 싶어…’
‘왜요?’
‘응…? 왜라니?’
‘저희는 모두 곡주님 소유예요. 생명은 가지고 몸은 가지지 않으시겠다는 건, 저희가 너무 못난 소유물이라서…?’
‘야, 그게 아니라…’
‘그럼 왜 저희를 가까이 두셨어요? 일부러 총관의 무예까지 전수하면서…?’
‘……………’

혹은…

‘난 너희들을 안고 싶지 않다.’
‘왜요?’
‘너희들은 너무 어려.’
‘우리가 뭐가 어리죠? 곡주님은 전에 화산파 장문인의 손녀인 12살 소녀를 납치해 즐기신 적도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그건 내가 아니… 하여간 그건…’
‘역시… 저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시는군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럼 왜 저희는 안 되죠?’
‘………’

원판에서의 미령이 성격을 생각하니, 대충 이런 식으로 시뮬레이션이 그려진다.
사실, 원판의 변태 행각이 얼마나 어린 소녀까지 탐했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막내 미령이도 이미 성숙한 몸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살던 20세기가 아닌, 이런 옛날 세상에서 애들이 저렇게 자라는 게 신기하다.

우씨…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막상 말을 꺼내려니 말이 꼬인다.
나는 ‘하지만…’에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미령이와 눈싸움(?)을 하다가 무심결에 그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미령이는 반사적으로 그 잔에 술을 따랐고, 나는 천천히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서 말할 게 없을 때 이렇게 시간을 벌곤 하지.
그러는 사이, 다시 생각해봤다.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뭐가 좋을까? 음, 하나 생각났다.

“…흠, 내가 가끔 혼자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걸 너희들도 본 적 있지?”

내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자, 자매들은 잠시 서로 의아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소교가 먼저 기억해내고 입을 열었다.

“곡주께서 이번 잠행(潛行)에서 얻은 고대 종파의 성스러운 주문이라 알고 있습니다. 매우 신비한 효험이 있는 주문이라고…”

하… 몽몽과 대화할 때는 한국말을 쓰고, 가끔은 그냥 한국말로 노래도 흥얼거리곤 했다.
‘코요태’의 ‘순정’ 같은 걸 부르면, 의아해하는 이들에게는 신비한 종교의 주문이라고 둘러댔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바라는 주문 중 하나라고…

“종파 명은 ‘고리아 교(敎)’라고…”
“코리아!”
“고리아…!”
“…….”

역시 영어는 얘들한테 좀 무린가…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