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06화 : 마계 콜로세움. (3)
2. 마계 콜로세움. (3)
“인간 여자! 너의 강함을 몰랐다면, 이렇게 나의 창을 여자에게 쓸 생각도 못했겠지만.” 말과 함께 조금 들어 올려진다 싶었던 놈의 창이, 별안간 벼락처럼 대교에게 내리쳐졌다.
꽝!
창날이 찍힌 경기장 바닥이 폭발하듯 패이고, 그 지점부터 사방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져나갔다. 분명 무서운 위력의 일격이었으나, 가볍게 옆으로 피한 대교도 이미 일격필살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번쩍! 꽝!
대교의 뇌전일식(雷電式)이 작렬한 투르가의 방패에서도 비슷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마족 투르가의 방패는 경기장 바닥처럼 깨지지는 않았지만,
투르가는 조금 뒤로 밀리는 것 같더니 몸을 바로 하며 외쳤다.
“우리를 속였구나! 넌, 넌 인간이 아니라, 제우스의 딸이었나?”
나도, 대교도 웃었다. 대교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서양 신이라, 동양의 무공을 전혀 모르는군요. 그럼 제가 오늘, 당신의 견문을 넓혀 드리겠어요.”
청명검이, 아니, 대교와 청명검이 다시 춤추며 무섭고도 아름다운 절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그건 대지의 검이었나? 가이아 여신과는 무슨 관계냐?”
생사금마도결의 지독아(地)에 걸려서 비틀대며 내뱉은 소리였다.
“으흑! 아폴로의 힘까지?”
유성공포탄(流星恐怖彈)을 피해 바닥을 구르면서 뭔 소리래?
“아, 아르테미스의 화살?”
이건 요하검결(曜夏劍訣)의… 에이, 그만하자. 지 맘대로 갖다 붙이는 걸 따져서 무엇 하리. 저 투르가라는 녀석, 고대 유럽에서만 자주 소환되었었나 본데, 아직까지 그때의 세계관이 전부인가 봐.
나는 차츰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껴야했고, 대교도 처음의 어이없음과 약간의 짜증이 흐려지며, 어느 정도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대교는 계속해서 자신의 다양한 절기들을 마음껏 선보였고, 투르가인지 하는 놈은 계속 겨우겨우 피하고, 피하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그리스 로마
신화속의 신들과 신병이기(?)들의 이름을 늘어놓고 있었다.
-산드라! 웨인 놈은 아직도 대교쪽에 집중하고 있는 건가?
「“예, 로드. 대교님께선 정말 대단하시구요. 과거 신으로 추앙되던 마족을 저렇게 일방적으로·
-저기, 대교 칭찬은 고마운데, 지금은 웨인 놈에게 좀 더 집중해줘. 웨인 놈이 아무리 싸움에 집중해 있어도, 현재 자신이 숨어있는 장소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순간도 있을 거 아냐.
「“아, 죄송합니다, 로드. 저도 모르게 그만.”」
울 이쁜 대교의 인기가 너무 많아도 문제로구먼. 숨어있는 적의 보스나, 그 놈을 쫓는 산드라팀까지 대교에게 너무 집중해 있어. 으으음. 그렇다고 대교에게 디따 잼없게 싸우거나, 그냥 후딱 싸움을 끝내라고 하기도 애매한데… 어쩐,다?
「“로드!”」
음? 산드라의 음성이 긴장되어있다?
「“웨인의 시점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 캔들 리, 캔들 리입니다!”」
뭐? 웨인 놈이 설마, 오페라 극장에?
-웨인 놈, 자신의 시점인가? 그걸 알 수가 있어?
「“그건 아직 불확실… 아, 로드, 로드의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나? 웨인 놈이 나까지 보고 있다고? 이런 썅!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침과 동시에 맥이 탁 풀리는 기분까지 만끽해야했다. 나는 지금 웨인 놈의 뒤통수를 치기위해서, 대교까지 혼자 보내고 대기하는 중이다. 그런데 웨인이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거라면, 나는 지금 아무 의미 없는 뻘짓을 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침착하자, 진유준! 나 자신의 감각을 믿자! 무엇보다 나는 지금, 그 어떤 수상한 시선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지금 내 눈앞에 활짝 열려져있는 이 창문으로도 말이야.
솔직히,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창을 닫으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자제하고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만약의 경우, 웨인 놈이 내 감각까지 속이고, 내 행동을 빤히 보고 있었던 거라고 해도, 그래도 그걸 알기만하면, 다시 또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어. 그 어떤 상황이라도 티를 내지 않는 것이 기본이야.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웨인 놈이 직접 나에게 근접하여, 보고 있다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1차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상은, 지금 나와 같은 공간 안에 어정쩡하게 대기 중인 무명의(?) 뱀프 여자였다. 산드라는 아까 길모르를 수송해 올 때, 리버의 서브중의 한 명, 그러니까 현재 산드라의 도시락(?) 역할을 하게 된, 여자 뱀프 한 명도 데려왔었다.
-산드라! 웨인 놈의 시야에, 내가 어떤 각도로 보이지? 정면인가? 아니면 약간 뒤쪽에서 보는 건가?
나는, 이름 모를 뱀프 여자를 티나지 않게 주목하면서 그렇게 물었다.
「“정면에 가깝습니다, 로드.”」
하아아~ 일단은 다행이다. 저 이름 모를 여자 뱀프는 그런 각도로 날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그렇다면 정면의 창 쪽에서? 이 창문은 평범한 유리로 보이지만, 사실은 바깥에서 안을 보려하면, 실제 안의 상황과 상관없는 영상을 투영해주는, 특수 스크린 유리라고 했어. 그런 과학적인 가드를 뚫고 안을 엿볼 수 있는 수단이… 아, 가만? 나 지금, 가장 결정적인 사항 체크를 잊고 있었잖아?
-산드라, 지금 웨인 놈이, 캔들 리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는 거야? 아니면 동시에 보고 있는 거야?
산드라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조심스럽게 대답해왔다.
「“시점의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시선을 돌린 것뿐이니, 로드와 캔들 리는 같은 장소에… 아, 로드께선 혹시, 오페라 극장에
가시지 않은 것입니까?”」
우쒸! 괜히 긴장탔었네!
-그래, 산드라, 나는 아까의 위치 그대로야. 지금 캔들 리와 함께 오페라 극장에 있는 녀석은 내가 아니라, 조담놈이야.
그래, 자룡대주에게, 조담놈의 덥수룩한 수염을 밀고 헤어스타일이라던가, 여러모로 나처럼 깔끔하게(?) 다듬어서 오페라 극장으로 보내라고 한 건 바로 나였지. 젠장! 그래 놓고도 웨인 놈이 나를(?) 역으로 보고 있다는 말에 과도하게 동요하여 버벅댔다니, 으~ 쪽팔려라!
「“그랬었군요. 으음. 웨인의 의식은 지금 대교님쪽과 캔들리, 아니 가짜 로드쪽을 거의 동시에 보고 있어서, 리버와 저도 꽤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양쪽의 느낌이 비슷한 것을 보면, 웨인은 어느 쪽에도 직접 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좋아, 산드라 당장은 그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어. 으으음. 힘들겠지만, 조금 더 집중해줘. 웨인 놈도 곧 뭔가 허점을 드러낼 거야.
이 내가 과도한 긴장의 연속으로 잠시 버벅댔을 정도니, 웨인 놈도 분명 그럴 거야,라는 판단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일 리가 없지만, 그거야 어쨌든! 생각해보니, 중요 체크 사항이 하나 더 있었어.
-아, 그런데 산드라 웨인 놈의 눈, 아니 의식에는 내 모습이 어떻게 투영되고 있지?
그래. 산드라가 읽고 있는 웨인의 의식은 ‘대상에 대한 감정’도 함께 투영되는 거라고 했어.
-어때? 대교를 두려워하게 된 것처럼, 나도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그 정도가 아니라,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악마… 아, 죄송합니다, 로드.”」
-훗, 역시 그렇군.
현재 오페라 극장에서, 웨인 놈의 눈이 되고 있는 뱀파이어가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정황상, 나를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친위대 중 하나일 거야. 그러니, 나를 직접 만나본 적이 있어서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 것은, 웨인 놈 자신이라는 얘기지. 역시 쥐시키는, 쥐시키!
내가, 웨인 놈의 본성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큰 전략의 줄기를 놓치지 않고 세세한 전술을 점검하면서, 다시 대교쪽의 상황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으으음. 꽤 길게 딴청(?)을 피운 것도 같은데, 흐름에 큰 변동이 없는 것 같군. 대교의 화려한 검무는 여전히 위력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중이고, 대교는 아직 별로 지친 기색도 없어. 과연 마중제일녀(魔仲第一女)답다고 할까?
인간계 최강의 여자 고수, 대교의 무위는 더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대교의 공격에도 상당 시간 버티고 있는, 마족 투르가도 대단한 놈이기는 했다. 놈이 강한 덕분에 싸움이 길어지고, 웨인 놈이 싸움 관전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의식이 탐지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도 있기는 한데, 투르가 놈은 더 이상 그런 역할을 계속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군. 언제부터인가 일그러지기 시작한 얼굴이,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괴물의 형상이 되어 버린 상태야. 엘리트 마족 전사 입장에서, 인간 여자에게 계속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가 어려워진 거야. 이제 곧 폭발할 거 같은데… 아, 지금인가?
“크으으으…”
이를 악무는 기색과 함께, 창을 쥔 팔에 불끈 힘줄이 솟으며, 마력이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았다. 큰 절기를 쓴 직후에 약간 뒤로 신형을 물리던 대교는 처음으로 수세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놈의 마력이 검은 불길처럼 휘감아 돌기 시작한 창이, 무서운 기세로 던져졌다.
카우우웃!
강력한 바람을 휘몰아치며 대교의 신형을 스치고 날아간 창이 경기장 외벽에 꽂혀버렸다. 그 직후, 외벽 너머의 관중석 쪽이 퍼엉! 폭발하며
흩어졌다. 창이 박힌 벽보다, 그 너머로 무서운 파괴 에너지가 작렬한 것이다.
아무리 대교라도 위험했을 정도로 무서운 위력! 하지만 대교는 어렵지 않게 피했고, 투르가 놈의 창 공격은, 관중석의 상당 부분과 자기 동족들까지 날려버렸을 뿐이야. 투르가, 저 놈, 지금 뭐한거야?
나는 어이가 없었고, 대교도 폭연과 비명이 가득한 관중석을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짓이죠? 당신 동족 분들이 다쳤잖아요!”
“왜 그런 걸 신경 쓰지? 싸움을 구경하다가 죽을 정도면, 마족 전사의 자격도 없는 쓰레기일 뿐이야!”
대교의 눈매가 드물게 사나워지고 있었다. 마족 투르가는 한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옆으로 던져 버리고는, 허리춤에서 커다란 칼을 뽑아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각오해라, 여자! 크으으으!”
투르가의 몸이 부욱 커지며 피부색이 어두운 청동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완전히 마족의 본성을 드러낸 얼굴은, 불가의 수호신 사천왕처럼 위압적이고 무시무시했으며, 반쯤 벌어진 입의 상어같은 이빨 사이로 불길이 일렁였다.
쉬이익! 챙!
대교의 청명검이 눈부신 속도로 공기를 갈랐지만, 투르가의 목줄기에선 날카로운 불꽃만 튀었을 뿐이었다. 대교의 손과 청명검이, 마치 금강석을 치기라도 한 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뭐야! 저 놈의 몸이 청명검을 튕겨낼 정도로 강화되어 버렸단 말야? 저렇게 변신할 수 있는 놈이, 첨엔 뭐 하러 방패 같은 걸 들고 나왔던…건지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저걸 어떻게 깨야하는 거지?
“후훗! 설마, 이 내가, 인간계에서 변신까지 해가며 싸워야 할 상대를 만날 줄이야!”
투르가 놈은 그렇게 지껄이면서 칼을 치켜들었다.
휘웅! 꽝!
말이 칼이지, 크기부터 대교의 몸만큼이나 큰 칼이 해머처럼 경기장 바닥을 부수며 박혔다. 이미 옆으로 피한 대교가 다시 일검을 날렸으나, 그 역시 투르가의 가슴을 뚫지 못하고 튕겨졌다.
신 급의 마족이란 말이 거짓이 아니었나? 저런 철갑 괴물을 대체 어떻게 공략하면… 아, 정석대로인가?
대교의 검기가 투루가의 눈을 노리고 쏘아졌다. 그러나 놈은 가볍게 얼굴을 틀어 피하면서 무지막지한 칼질로 반격해왔다. 대교의 절묘한 보법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칼질은 아니었으나, 휘두르는 풍압에 대교의 옷자락이 거칠게 날릴 정도로 무서운 기세의 칼질이었다.
투르가 저 놈, 변신 전부터도 대교의 공격에 암 생각 없이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지금 몇 번의 칼질만으로도 대교의 보법이 불안정해지게 만들고 있어. 그동안 대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흐름을 감 잡았다는 얘기야.
“뭐하는 거냐, 여자! 이제 겁을 먹은 건가? 왜 도망치기만 하는 거지?”
투르가는, 거칠면서도 느물대는 음성으로 대교를 도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교는 섣불리 반응하지 않고, 좀 더 신중하게 보법을 밟으며 투르가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오행미종보(五行迷踪步)를 대교식으로 약간 바꿔 펼치는 듯 했고, 단순해보이면서도 지극히 오묘한 보법이었다.
“또 다른, 이상한 걸음인가? 여자의 싸움은 정말 어쩔 수가 없군.”
대교의 새로운 보법을 단시간에 간파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말로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건데, 이번에는 성공했군. 대교가 천천히 보법을 멈추고 말았어. 투르가 놈, 나 같은 잔머리까지 쓰다니.
“호오. 이제 그건, 그만 두는 건가? 그렇다면 내 쪽에서도 보상이 있어야겠군. 나의 유일한 약점을 알려주도록 하지.”
“필요 없어요. 당신의, 그 단단한 몸, 어디라도 베어 보이겠어요.”
‘어디라도’라고 표현했지만, 대교의 일격필살 기세와 시선은 투르가 놈의 목줄기에 다시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았다. 투르가 놈은, 대교가 정말로 자존심 때문에 불리한 싸움을 선택할지는 몰랐었는지, 새삼 감탄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대교라고 했나? 마계에도 그대처럼 자긍심 높은 전사는 드물다. 지금까지의 내 무례를 사과해야겠군.”
저 놈, 갑자기 칼끝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면서, 진짜 사과의 뜻을 보이네? 저것도 뺑끼일까? 아니면 ・・・ 쭛! 대교의 기세가 이미 한풀 수그러들고 있어.
“하지만, 그대! 나와 동등하게 싸우려면, 나의 약점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피부는 설사 신족의 무기라 해도, 작은 상처조차 입힐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어머니께서 마계 중심부에 흐르는 ‘제노스 강에 나를 담그어………….”
응? 뭐냐, 이 낯익은 얘기는, 설마 아킬레스건 얘기?
“혹시, 발뒤꿈치가 약점이라는 얘긴가요? 당신 어머니의 손끝 때문에 강물이 닿지 않은 부분이라서?”
대교가 먼저 말하자, 투르가의 눈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커졌다.
“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냐?”
대교는 대답에 앞서, 작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서양 신화에 나오더군요. 당신이 아닌, 아킬레스라는 이름의 인간 영웅 이야기로 전해지긴 하지만요.”
“그, 그럴 리가! 인간들이 이미 내 비밀을 알고 있었다고?”
“그래요. 전 세계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지요.”
“그, 그럴 리가!”
투르가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고개를 저으며 잠시 싸울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들은 나에 대해서 또 뭘 알고 있지? 설마, 내가 인간인 척하고 인간들의 전쟁에 끼어들었던 것까지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으음. 당신이 트로이라는 곳을 침공한 군대의 장군 중에 당신도 있었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럴 수가! 그건 당시의 신족들도 몰랐던 일인데, 어떻게, 어떻게 인간들이!”
투르가는 점점 더 싸움을 잊고 대교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그, 그럼 혹시, 내가 신족들과의 협정을 위반하고, 몰래 스파르타의 왕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그건・・・ 음. 당신은 그때 혹시, 300명, 혹은 299명의 인간들만을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을 무찌르지 않았던가요?”
“그래. 그런 적이 있었어. 재미있었지. 놈들의 군대에는 ‘어쎄신’들도 있었는데, 그 암살부대에는 강력한 마법을 쓰는 자도 있어서 쉽지는 않았지만..”
오래전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투르가의 얼굴에 기분조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에는 썩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뭐,냐, 저 놈. 나참. 얼씨구. 아예 칼을 내려트린 채, 계속 대교에게 당시의 즐겁고 신나는 전쟁 경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 갑자기 진지하고 무서운 모습을 선보여서 우리를 놀라고 긴장타게 하더니, 뜬금없이 맥 빠지게도 하네.
「주인님!」
응? 몽몽? 왜?
「적의 소환술사, 코드명 피비. 그녀의 마법진 분석이 70퍼센트 이상 끝났습니다.」
-어? 그래? 그럼 저, 왠지 난감한 마족 녀석이나, 다른 놈들도 네가 돌려보낼 수 있다거나, 그럴 수 있는 거냐?
「그런 단계는 소환술사 자신만이 가능합니다. 저는, 현재 대교님이 상대하고 있는 마족을 변신 전으로 되돌릴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이, 몽몽 선생.
일단 잘됐군. 지금 분위기 같아서는, 더 이상 싸움이 이어질 것 같지도 않아서, 몽몽이 한 발 늦은 느낌도 있지만, 어쨌든 이제 여러모로 안심을… 응?
꽈쾅~!
별안간 들려온 폭음은, 경기장 외벽의 또 한 곳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이번에는 바깥으로부터 안쪽으로 폭발한 것이었지만, 그쪽의 관중석이 함께 날아가며 마족 관중들이 피해를 당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르곤? 저 놈이 다시 경기장을 부수며 뛰어든 건가? 그런데 어째,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저런 듯한… 음? 역시.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듯 했던 고르곤은 결국 제풀에 털썩 쓰러지고 있었다. 전신이 피와 흙먼지로 뒤덮여 처절한 몰골이기도 했다. 그런 고르곤과 달리, 새롭게 뚫린 거대 구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길모르의 우람한 몸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없어 보였다.
끄으으음~ 대교와 길모르, 과연 마군황 패밀리답다고 할까? 내가 출동한 것도 아닌데, 마계 콜로세움이 난장판이 되어 버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