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44 화 : 봄날의 할로윈 파티. II. (2)
5. 봄날의 할로윈 파티. II. (2)
으음. 오늘은 사적인 자리에 오신다고 개인 소유 차량으로 오셨군. 그런데 저 ‘홍’이라는 여자 살수는 두 번째 보는 건데, 오늘은 어쩐지 전과 다른 느낌인걸? 전처럼 상하의가 연결된, 붉은 색 전신 슈트 차림인 것도 그렇고, 용모를 이루는 요소들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풍기는 기운이 뭔가 다르다고 할까? 뭐, 일단, 그건 그렇고,
“장인어른, 오셨습니까?”
“음. 귀찮았지만,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와봤네.”
“아, 예에, 그게, 소위 ‘별스런 구경이긴 할 겁니다.”
에고. 그러고 보니, 이 양반에게는 다시 처음부터 모두를 소개해야 하는 건가? 이 양반은 천우신과 달리, 이미 알고 있는 존재들이 많긴한데, 누구부터 리바이벌해야 될지를 잘 몰라서 곤란한, 아, 난 더 신경 쓸 필요가 없으려나?
“아버지!”
대교의 목소리에 이어, ‘사영 아빠’라는 호칭을 쓰는 소미령이들의 목소리까지 이어지자, 사영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충성스런(?) 사위감들 보다 한발 늦긴 했어도, 세 명의 딸래미들도 자기 파더를 마중 나왔던 것이다. 그는 잠시 자신의 사랑스런 딸래미들을 감상한 후에야 시선을 돌려 파티장을 스윽- 살펴보았다.
“훗~ 과연, 너희들 말대로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아 보이는구나.”
흐음. 아무래도 대교 자매들이 지들 아빠한테는 사전 정보를 많이 흘려놨던 모양이군. 지금 파티장 분위기는, 다들 몇 잔씩 걸치고 풀어져서
천우신이 도착했을 때보다 좀 더 할로윈스러워진 상태인데, 그래도 사영은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고 계시네.
“뭐, 사윗감 잘 둔 덕에, 앞으로는 이보다 심한 꼴도 봐야할 테니, 어쩔 수없이 익숙해지기도 해야겠지.”
“아이 참, 아버지도!”
곱게 눈을 흘기는 큰 딸래미 대교의 손에 이끌린 사영이 못 이기는 척, 준비된 자리로 향했고, 여자 살수 홍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영은 그렇다 쳐도, 저 ‘홍’이라는 아가씨가 의외로 대단하네. 전체적인 요괴판 분위기를 사영 못지않게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인 건 물론이고, 술에 약한 웨어 울프 몇 명이 늑대로 변신하여 씩씩대고 있는 테이블 근처를 지나면서도 거의 동요의 기색이 없어. 우리 은사마군 못지않게 감정을 잘 제어하도록 훈련받은 살수인 건가? 아니 잠깐, 혹시?
-장인어른 이 홍이라는 아가씨, 혹시 오컬트 계열의 능력자 아닙니까?
아무래도 궁금해서 물었더니, 사영은 비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난사위감답게, 잘도 알아채는군. 그래, 홍은 본래 ‘귀문(鬼門)’ 출신이야.
-몽몽! 저 아가씨가 ‘귀문’ 출신 이란다.
「귀문, 중국에선 소위 오컬트 계열 종사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며, 동명의 비밀 별개 조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코드명 홍은 현재, 해당 계열의 능력자인 ‘수라문(修羅門)의 덕방’과 유사한 장비를 다수 보유한 것으로 스캔되고 있습니다.」
사영의 간단한 대답과 몽몽 선생의 친절한 부가 설명을 종합하자면, 저 아가씨는 본래 ‘덕방 녀석처럼 오컬트 교육을 받은 처자로서, 오늘은 지난번과 달리 부적이나 각종 주술 도구를 챙겨 왔다는 얘기로군. 내가 지난번과 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은 그런 장비들 때문인 모양이고 말이지. -지금까지는 귀문 출신을 쓸 일이 없었으나, 앞으로는 필요할 거 같아서 불러 두었었지.
사신 S가 뱀프가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오컬트 계열의 인력 보충이 있었던 거군. 이 양반 성격상, 달랑 한명만 키워놨을 것 같지는 않고, 만약 내가 때마침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혈의문 만으로도 도널드 놈을 상대하려 들으셨을지도 모르겠네.
-홍에게는 자네가 이 방면에도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두었지. 앞으로 홍에게 많은 지도 편달 바라네.
-훗. 이 아가씨도 보통이 아닌 거 같은데, 누가 누굴 지도하겠습니까. 어쨌든 앞으로는 이 아가씨와 저희쪽의 긴밀한 협조를 지시해 두겠습니다. 사영은 비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홍에게 전음을 보내주었는지,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대인.
으음. 전음도 가능했군.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일단 은사마군급의 살수 겸, 덕방급의 주술사라는 것으로 상정해 두어야겠지? 프리메이슨 놈들 쪽에도 오컬트 계열 능력자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까고 진작부터 이 계열 능력자들까지 양성해 두신 듯한데, 하여간 우리 장인어른은 여러모로 킹왕짱이라니까?
나는, 킹왕짱 장인어른의 저력에 새삼 감탄했고,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즉각, 술 한잔 조공부터 바쳤다. 우리 마군황 패밀리 전용 테이블은 러브하우스 건물에 가장 가까운 위치였고, 전체 파티장을 폭넓게 살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영은 내게 받은 술잔을 기분 좋게 비우고 나서는 다시 천천히 파티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와 같은 테이블이기는 했으나 한쪽 끝자리를 자처한 홍도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가만 보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살수답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긴 해도, 눈빛을 완전히 감출 정도는 아니로군. ‘어머, 서양 요괴들 중에는 킹카들도 제법 있었네?”,정도까지는 아니라도, 꽤나 흥미롭게 관찰 및 감상을 하고 있는 눈치야. 가만있자, 저 새로운 오컬트 아가씨와 협조 시스템을 구성하려면, 역시 또 산드라가 나서 주어야 하려나?
산드라를 찾아보니, 그녀는 예상대로 시그마와 함께 뱀프 타운의 뱀프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산드라를 찾은 것은 그녀를 호출해서 홍과 합석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아무래도 그건 나중으로 미뤄야할 것 같았다. 산드라와 시그마의 러브러브 모드를 방해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으나, 또 그녀를 동원하는 거 자체가 찜찜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요 며칠 산드라를 너무 혹사시켰어. 오늘은 맘 편히 놀게 하고, 앞으로도 업무 분담을 해줄 오컬트 인재가 더 필요할 거 같아. 리치몬드는 내 수하가 아니니까 일단 제외하고, 그 밖의 인재가… 젠장! 없군! 몽몽과 산드라의 과중한 업무를 분담해줄 인재가 의외로 없었어! 나 자신을 포함한 지하무림 인재들 태반이, ‘쌈박질 전문’이었어. 길모르가 두뇌를 겸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도 오컬트 전문이라고하긴 어렵지. 우쒸~ 막상 따져보니, 이거, 은근 문제가 있었네?
오랫동안 몽몽이, 최근에는 산드라까지 가세해서 너무 잘해주는 바람에 놓치고 있던, 조직 시스템의 불균형을 새삼 깨닫게 된 셈이었다. 이번 싸움을 계기로 많은 인재들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긴 했으나, 그중에서도 믿음직한 ‘오컬트 현장 지휘관’급은 없지 싶었다.
뭐, 우리 지하무림에도 오컬트 전문, ‘귀혼마군(鬼魂魔君)’이 존재하긴 해. 과거 데이터에 의하면, 수라문의 덕방 녀석 못지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말이지. 하지만, 그 친구는 아직 수련중이라서 나도 여태 코빼기 한번 못 봤고,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고 했었지? 어쩐다? 당장 급한 대로 덕방 녀석이라도 스카웃 해?
떠오름과 동시에 고개부터 절래 절래 저어지는 생각이었다. 그 정신산만한 길치 녀석에게 일을 맡겼다가는, 적보다 내가 먼저 속 터져 죽지 싶은 것이다.
덕방 녀석은 빼고, 여하간 외부 용병 수입을 고려해 보긴 해야 하려나? 사실, 인호 일행이 딱이긴 한데, 그 친구들을 세계정화재단에서 빼오긴 어려울 테고, 으으으음~ 어쩐다?
-저어, 오라버니.
-응? 왜, 대교?
이번에는 쓸데없는 무한 망상에 빠져있던 것이 아니어서, 비교적 당당하게(?) 대교를 돌아볼 수 있었다.
-갑자기, 무어 걱정거리라도 생기셨어요? 저의 식구들과 천우신님까지 함께하는 자리인데도 신색이 좋지 않아요.
-응? 내가 그 정도였어? 으음. 그럼 안 되지. 인재 불균형이고 뭐고, 지금은 노는데 좀 더 집중해야겠군.
나는 심기일전하여 술잔을 들었고, 대교와 건배를 했다.
-으음. 잊으시겠다는데, 물어서 죄송하지만, ‘인재의 불균형’이라고 하셨나요?
-어, 그게.
나는 조금 전까지의 고민을 대교에게 얘기해 주었고, 대교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산드라씨가 신경 쓰이기는 했어요. 지금 한창 시그마씨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텐데 말이어요.
-그치? 저 뱀프 커플은 이제 막 에레보스의 사슬에서 벗어나, 거의 신혼 분위기일 텐데 말이지.
-음. 오라버니께선 내키지 않으신 거 같지만, 그래도 덕방을 잠시 쓰시는 건 어떨까요? 적어도 그의 ‘풍부한 지식’만은 유용하지 않을까요? 어랏? 그런가? 그 녀석에게 직접 일을 시키는 건 문제라도, 데리고 다니면서 소위 ‘기술 자문’으로 이용하는 건 나쁘지 않을 거 같네?
-그 생각은 미처 못했군. 그런 식이라면 그녀석도 아쉬운데로 도움이 되겠어.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 녀석은 우리 대교님을 교주로 섬기는 대교교 신도이니, 대교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하지도 못할테고 말야.
-아이 참.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보다, 귀혼마군의 폐관수련도 조기에 종료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귀혼마군에게는 미안하지만, 실전을 통해서 더 빨리 당대의 귀혼마군으로 완성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훗. 역시 대교도 실전 중시 사상은 나와 같군. 나도 조금 전에, 귀혼마군에 대한 건, 대교와 같은 생각을 했었어. 좋아. 두 건 다, 우리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자.
울 이쁜 대교 덕분에 중요한 사안을 비교적 쉽게 정리한 나는, 더 기분 좋게 술잔을 들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고민 흐름을 끊어주기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나의 대교는 내가 놓칠 뻔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짚어주며 고민의 원천을 해소시켜 준 것이었다.
‘대교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옛말이, 음, 있었던가? 뭐, 그거야 어쨌든, 이렇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이쁜 딸래미를 탄생시킨,
대교 아빠 사영! 이 양반은, 뻑하면 사윗감에게 심심풀이(?) 칼질하는 습성만 좀 고쳐 주시면, 나도 과감하게 존경씩이나 해버릴 텐데 말야.
나는, 새삼 사영을 보았고, 그는 옆에 붙어 앉은 막내 미령이의 수다를 그윽한 표정으로 들어주고 있었다. 이젠 익숙해져서 가끔 잊곤 하지만, 새삼 가만 보니, 사영이 얼마나 빼어난 미중년, 중년 상남자인지를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윗감을 횟감(?) 취급하는 버릇만 좀 어떻게, 에효, 그건 일단 어쨌든.
생각해보면, 이번 싸움에서 사영은 나를 나름 챙겨주기도 했었다. 처음 도널드 놈 패거리와 나 혼자 맞짱 뜰 때, 나는 쫀심 때문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고 혼자 설쳐대고 있었는데, 적절한 타임에 러브 하우스의 우리측 뱀프팀을 불러준 것은 바로 사영이었다. 그 덕분에 ‘리버’ 녀석 하나라도 잡아서 유리한 전황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거였다.
뿐인가? 내 친구 천우신의 건강을 생각해서 강적의 출현을 얼마간 숨기는 세심함을 보여주기까지 했어. 원숙한 중년 상남자답게 전체 판세를 잘 읽고, 거기서 포인트를 잡아내는 능력도 탁월한 킹왕짱 장인어른인 것은 틀림없는데, 왜 날 횟감 취급을, 쳇~! 나에 대한 부당하고 삐딱한 대접은 일단 잠시 접어두고, 끄으음. 그래도 사윗감 된 도리로서 아부는 좀 해야겠지?
-저기, 장인어른.
-뭔가, 유준.
오. 그러고 보니, 이제 장인어른 소리를 거부하시지는 않게 되었네?
-이번에 우리와 싸웠던 웨인가, 그곳의 주인이 도널드 놈에서 호크 웨인이란 자로 바뀌게 되었다는 얘기는 들으셨겠죠?
-그래. 그 호크 웨인이란 자는 도널드 웨인과 달리,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타입이라고도 들었네.
훗. 표정을 보니, 역시 그 소식 때문에 이렇게 기분 좋게 파티에 참석하신 거였군.
-도널드란 놈과는 형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남자 같더군요. 오늘 이 자리에도 오고싶다고 해서, 환영한다는 답신을 해주었습니다. -호오. 벌써, 그리고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단 말인가?
-예.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인어른도 맘에 드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사영은 새삼 가만히 내 표정을 살피는 듯 하더니, 결국 거의 처음으로 보는, ‘심하게 만족해 하는 미소를 떠올렸다.
‘장인어른은 처음부터 웨인가의 힘을 캔들 리 진영에 보태고 싶어 하셨죠? 그래서 제가 더 엄청 신경 쓰고 뺑이쳐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겁니다. 저 이쁘죠?”라는, 딸랑딸랑 아부 대사는 생략! 크흠! 암큰!
-대교, 나 이쁘… 아니, 큼. 장인어른의 지금 표정, 대교가 보기엔 어때?
-아, 예! 아버지께서 이런 표정이신 건 저도 오랜만에 뵈어요. 대체 무슨 말씀을 드리신 거예요?
-그냥, 조금 있으면 호크 웨인이 올 거라는 사실을 알려 드렸을 뿐이야. 장인어른이 웨인가의 힘을 원하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군.
-아~ 그랬었군요! 어쩐지, 앞으로는 오라버니의 목숨을 노리지 않겠다고 하셔서 이상했, 아, 아니, 어쨌든, 축하드려요!
뭐, 뭐야? 그럼 지금까지의 심심풀이 칼질이 진심이었단 거야? 이런 젠장! 앞으로는 횟감 신세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좋아해야 할지, 그동안 용케 살아남았다는 것을 기뻐해야할지, 으~ 하여간, 좋긴 좋은 일인 건가? 젠장!
나는 기쁘면서도 매우 찜찜한 기분까지 만끽해야했다. 사영은 그런 나의 기분은 아랑곳없이 태연하게 딸래미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비우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어찌 얼결에(?) 생명의 위협은 잘 넘기게 된 셈이지만, 그래도 계속 방심하면 안 되겠지? 아, 그러고 보니, 천우신도 나와 같은 처지였던가? -이보게 우신!
천우신은 별 생각 없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지만, 나는 나름 심각하게 물었다.
-우신. 자네 혹시, 장인어른에게 뭔가 위협을 받았다던가, 그런 일은 없었나?
-위협이라니? 저 어르신이 날 왜?
-아, 아니, 안 그러셨으면 다행이지만, 어쨌든 앞으로는 조심하게, 소령이와의 사이가 진전될수록 더 말이지.
천우신은 소령이를 흘끔 보며 약간 민망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웬일인지 사영에 대한 경계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소령이를 생각하면, 어르신 대할 때 어려운 마음이 들기는 하네. 그렇지만, 어르신은 아직 한 번도 나와 소령이 사이에 대해 나쁜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네. 소령이가 아직 너무 어린 점을 언급하시며 걱정하시는 듯 했지만, 그래도 가끔 우리 둘 다 격려도 해주신다네.
-뭐, 뭐야? 격려,씩이나? 자네한테는 그런다고?
-음. 여러모로 고마운 어르신이지. 그런데 왜? 자네에게도 잘 대해 주시지 않나?
잘 대해줘? 싱싱한(?) 횟감 취급만 받았을 뿐인데? 이거 뭐야? 그동안 나만 차별 대우 받았었던 거야?
나는 갑자기 사영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지며 분노에 사로잡혔고, 사영은 불연 듯 나에게 자기가 채운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공손하게 잔을 받았다.
“앞으로 더 잘해주게. 우리 대교, 고생 시키지 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인어른,”
으흑! 내 몸과 입이 왜 이런다냐? 칭찬받고 인정받았다고 갑자기 이렇게 비굴해지면, 그러면, 그게, 그러니까, 안될 건 없는 거였나?
나는, 결국 비굴 모드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하사받은 술을 원샷했다.
「주인니임! 드뎌, 완소 희귀 상남자, 호크 웨인씨가 보스턴에 도착했대요오!」
-그래? 여기까진 어떻게 오겠다냐?
「보통 인간들처럼 승용차를 이용할 건 가 봐요. 내비 찍게, 주소를 알려 달라는데요?」
훗. 별거 아닌데, 왠지 신선하군.
자신이 잠들어있던 세월동안 변해버린 도시, 보스턴을 구경하면서 오겠다는 뜻도 있을 것 같으니, 실제 도착 시간은 아직 많이 남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대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술을 깨고 만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서 더 마시는 건 쫌 그렇지?
-후후, 그래요. 저와 잠시 산책을 하시면서 마중 나가기로 해요.
나는 대교말대로 산책을 겸한 코스를 가늠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가기도전에 누군가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
“천주! 두 분만 어딜 가십니까! 가시더라도 제 술 한잔 받으시지요!”
“훗. 천음마군, 나도 당신과 한 잔하고 싶어. 하지만 잠시 참아줘. 곧 호크 웨인이 오기로 했거든.”
천음마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호크 웨인? 그가, 여기에 말입니까?”
-그래. 나도 조만간 그와 술자리를 가질 생각이었는데, 호크 웨인은 나보다도 성격이 급한가봐.
나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으나, 주위에서 듣고 있던 자들 중 상당수가 안색이 변하며 술잔을 든 팔을 내려트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직은
웨인가 소속인’ 뱀프들과 웨어울프들이었다. 그들은 놀라는 한편, 동료와 시선을 교환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이들보다도 당혹한 표정이 되어있는 것은 우리의 천음마군이었다.
“지나! 그 여자도 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