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78화 : 정면의 칼(刀). 등 뒤의 칼(刀). 품안의 칼(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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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78화 : 정면의 칼(刀). 등 뒤의 칼(刀). 품안의 칼(刀). (2)


3. 정면의 칼(刀). 등 뒤의 칼(刀). 품안의 칼(刀). (2)

내가 단정적으로 묻자, 몽몽은 짧은 사이를 두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가능성 수치를 말하지 못할 정도로 애매한 모양인데, 어쨌든 근거는?

「변경 전 코드명 ‘고요의 저격수’, 념력자가 사용 중인 스텔스 장비는 조금 전 대교님의 검기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인물 자신의 강력한 념 에너지에 의해, 저의 스캔이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허어~ 과학기술에 의한 스캔 차단 말고도 생체 스캔 방지 능력까지 있었던 건가? 몽몽으로서는 최악의 짜증 타입이겠군.

「물론, 현재 가능한 스캔 패턴만으로도 적의 부상이 단시간 회복 불가의 중상임은 판단 가능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황 흐름 데이터를 현 상황에 대입하여 분석한 결과, 불확실한 데이터 기반의 작전 진행에 의한 이상적 결과 도출 율이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훗. 내 식으로 풀어보면, 어려운 상황이 운빨까지 좋게 너무나 잘 풀려서 오히려 뭔가 찜찜하고 불안하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주인님께선 그 불확실 불안 요소들까지, 소위 ‘감’을 잡고 계신 듯합니다.」

-뭐, 대충은. 내가 늘 그렇듯, 이제부터 그걸 ‘아님 말고’ 정신으로 확인해 나가야하지만 말이지.

나는 일단 몸을 돌려 다시 대교에게로 향했다. 대교는 초인들의 무서운 신체 회복력을 의식하고 여전히 념력자에 대한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그녀로부터 몽몽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대교. 난 저 녀석으로부터 알아내야 할 사항이 좀 많아. 그러니까 이제 넌… 음. 몽몽이 알려주는 장소에서 좀 쉬면서 기다려 줬으면 좋겠어.”

“아, 그건… 오라버니께서 원하신다면 따라야겠지만, 이 섬은 아무래도, 전, 그게…….”

똑순이 대교가 내 걱정할 때만 이렇게 버벅대는 것이 더 귀엽긴 하지만, 지금은 역시 대교의 이런 모습 감상할 때가 아니지?

“네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아, 대교. 하지만 그래서 넌 지금 더 빨리 이 ‘행성 에너지 사각지대’를 벗어나서 내력을 회복해야 하는 거야. 나? 나야 믿는 구석이 또 있다는 거 알잖아.”

“하지만 적의 수장, 블랙이 아직…….”

대교가 이의를 제기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나의 소위 ‘오빠 못 믿어?’ 표정을 제대로 읽었는지, 결국에는 피식 웃기까지 했다.


잠시 후.

나는 대교가 서둘러 숲 사이로 사라져가는 것을 확인한 후, 념력자 놈 쪽으로 돌아섰다. 놈은 조금 전과 거의 변함없는 자세였지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있었으며 가쁜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CR들 중에서도 처키급의 회복력? 아니면 역시 첨부터 뺑끼? 혹은 둘 다… 일지도? 흐음. 아무려면 어떻겠어.

나는 천천히 놈에게 좀 더 다가서며 물었다.

“난 너를 잡기위해 내력을 모두 소진했어. 그리고 이 섬에서는 내력 보충도 어렵군. 뭐, 당연한 거겠지. 여긴 너와 블랙이 애써 찾아낸 장소, 기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약한 곳이니까 말야.”

그랬다. 나와 몽몽이 전투 중에 깨달은, 가장 큰 불안 요소는 그거였다. 천 년 전과 달리 행성 에너지의 흐름이 불안정한 현 시대를 조사하면서 몽몽은 이런 곳을 ‘행성 에너지 사각지대’라고 칭했었다.

“그럼, 에도.”

념력자 놈이 조금 힘겨운 기색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력 소모가 심한, 그런 공격을 계속해 오고, 심지어 지금은, 아직 여력이 남은 파트너를… 배제하기까지 했군요.”

“맞아. 너희들의 계획에 적극 협조해 준거야.”

“당신, 진유준은 극히 미약한 내력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전투력을 보여 주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내력 고갈’이라는 작전을 선택했던 것은, 역시 현재 정도의 상태라면 우리도 할 만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할 만하다’라고 표현하지만, 그냥 ‘자신 있다’ 이거지? 하긴, 비루 내공 상태에서는 공격이야 심도를 어떻게든 쓰면 된다 쳐도, 방어에는 구멍이 뻥 뚫려있다고 봐야지. 암중에서 내가 싸우는 걸 계속 관찰해왔다면, 그 정도는 눈치 깠을 거고 말이야.

“훗. 그렇게 잘 계산하고 작전을 짜서 현재의 상황을 이끌어 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거냐? 우선, 그 중상자 코스프레나 좀 그만두지 그래?”

“중상은, 사실입니다. 전 당신께서 지금 일부러 회복 시간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에고야. 내가 너무 앞서갔나?

“크흠, 음. 그랬냐? 그럼 언능 회복에 전념……..

아, 아니지? 슬쩍 말려들 뻔 했네.

“…하라고 할 줄 알았냐? 네가 정말 부상을 입었는지는 몰라도, 회복이 이렇게 늦을 리가 없어. 넌 내가 보기에 CR들 중에서도 최고의 회복력을 가진 처키와 최소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거야. 안 그래?”

내가 단언하듯 묻자, 념력자 녀석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 그걸 다시 풀고, 좀 더 아닌 척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우이씨! 좀 더 대화를 이어가면서, 뭔가 더 확실한 근거를 확인한 다음에 들이댈까 했는데, 내가 먼저 갑갑해서 안 되겠네.

“이봐! 내가 계속 널 고요의 저격수라고 부르지 않고, 네 본명을 묻지도 않고 있는 이유를, 굳이 말해야 알겠냐? 난 이미 네가 누군지 알고… 아니, 계속 짐작하고 있었어.”

쯧. 막판에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가자, 진유준!

“나도 너의 재수 없는 얼굴이 좋은 건 아냐. 하지만 가짜 얼굴 보는 건 더 기분 나쁘니까, 이제 그만 변신 풀어 블랙!”

일순, 놈의 안색이 더욱 확실하게 굳어졌다. 언제쯤 ‘아님 말고’를 외칠까 망설이고 있는 내 눈앞에서, 놈의 얼굴이 먼저 스르륵~ 기묘하게 뭉개지는 것처럼 보였다. 만들다 만 가면처럼 섬뜩한 형상이었던 얼굴의 이목구비가 빠르게 정돈되며 익숙한 본래의 얼굴이 되었고, 예상 및 기대대로 원판의 카피 성공작이라는 블랙이었다.

“처음, 입니다. 저의 변신이 들킨 것은 말입니다.”

“그래? 어, 근데 목소리는 아직도 좀 이상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성대를 포함한 전신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립니다. 아, 부상 때문에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놈의 전신이 동시에 들썩이며 슈트 아래의 몸이 슈욱 커지고 약간씩 꿈틀거리기도 했다.

「우와아! 도저히 못 참겠다!」

응? 요몽?

「전투 상황, 특히 이번에는 절대 나서지 말라고 몽몽 오빠가 협박해서 참았는데! 근데, 더는 못 참겠어요! 대체 어떻게 블랙씨의 변신을 알아내신 거죠? 네?」

포릉~ 모습까지 드러낸 요몽은 약간 씩씩대는 기색이기까지 했다.

-나야 늘 그렇듯, 그냥 찍은 거지, 뭐.

「아이참! 주인님 직관력이 짱인건 알지만, 이번에도 또 그냥 왠지, 그랬던 거라구요?」

-아니 뭐, 이런저런 근거가 있기는 했지만… 어, 쟤 변신 끝난 모양이다.

옷만념력자의 녹색 슈트 차림일 뿐, 체형까지 본래대로 돌아온 블랙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내 앞에 섰다. 요몽은 그런 블랙의 주위를 돌며 ‘어쩜, 정말 완전히 원판씨 그대로 바뀌었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대교가 봤으면 열 좀 받았겠군.”

내가 대교를 언급한 것은, 놈의 찢겨진 슈트 아래의 부상 부위가, 완전히 멀쩡해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블랙 놈도 대교에게 검상을 입었던 가슴부위에 새삼 슬쩍 손을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군요. 그 분을 보내 주셔서 다행입니다.”

“훗. 대교 상대하기가 제일 난감했지? 그녀 자신도 엄청나게 강한대, 어떻게든 그녀를 상하게라도 하면, 성질 더러운 애인이 금단의 마공을

발동해서 날뛸 테니 말이야.”

내가 노골적으로 말하자, 블랙도 쓴웃음을 떠올리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전면에 내세운 당신의 전략, 그것이 이번 싸움에서 제 예상을 가장 크게 벗어난 상황이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상황을 알고 계신다 해도, 그럼에도 당신은 그분을 위험한 작전에 쓰지는 못할 성격이라고 판단했으니까요.”

“그건 맞아. 하지만 이번 싸움은 그녀가 원한거야. 난 대교를 내 생명… 큼. 하여간 아끼지만, 그녀의 자존심도 중요하니까 말야. 더구나,

겪어봤으니까 알잖아. 그녀는 강해. 나보다도 말야.”

“인정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분과는 결코 싸우고 싶지가 않군요.”

“안 그래도 그럴 일 없을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블랙은 낮게 한숨까지 내쉬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께선 지난번 ‘자니’의 죽음 앞에서, 저를 죽인다고 선언하셨었죠.”

나는, 그때의 내 말을 좀 더 정확하게 수정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참았다. 이 녀석에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블랙. 넌 지금 이곳 어딘가에 너와 거의 같은 존재, 너의 진짜 형제가 와있다는 걸 알고 있지?”

“…레인, 말씀이군요.”

역시 알고 있군. 하긴, 보통의 쌍둥이들도 정신적 교류가 강하다는데, 이런 초능력 쌍둥이가 서로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지.

“난 그 레인도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이곳으로 오라고 해뒀다.”

사실이었다. 나는 블랙이 변신을 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몽몽을 시켜, 레인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었다.

“뭐, 어차피 너는 대교나 레인이 바로 이 자리에 함께 있다 해도, 그들이 끼어들 틈도 없이 날 죽일 작전까지 수립해 놨었겠지?”

역시 쓴웃음과 함께 끄덕여지는 블랙의 고개.

“어쩔래? 바로 해 볼래?”

이번엔 고개가 가로로 저어진다.

“한 시간이라,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으신 모양이군요.”

“그야, 음. 그러는 너도 내게 궁금한 게 좀 있지 않냐? 죽기 전에 말이지.”

“…그렇긴 합니다. 오랜 세월 프리메이슨 시스템에 누적되어있는 당신이란 남자의 데이터, 거기에 저의 모든 능력을 동원한 다각도 탐색…!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당신의 진화 속도..! 아니, 그 진화 속도보다도 놀라운 건, 진화의 타이밍과 조건이, 때로 너무나 비논리적입니다. 그래서 더욱 알 수 없는 당신이란 남자, 당신은 대체 어떤 인간, 어떤 존재인 것입니까.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대체…….”

“야, 야! 그만!”

이 자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측하기 어려운 남자’라는 표현을 해서, 쬐끔 기분 좋게 들어주려니까, 갈수록 뭔 얘기가… 이씨, 안되겠다.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하잖아! 난 그렇게 복잡한 놈 아냐. 니들이 자꾸 복잡하게 만드는 거지!”

어랏? 말하다보니, 나름 맞는 답변을 한 것도 같네?

“어, 어쨌든 주제를 좀 좁히고, 정리하는 대화를 해 보자구.”

어째 대화의 수준을 낮추자는 제안을 하는 것 같아서 다소 찜찜했지만, 블랙도 일단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먼저 궁금한 거 하나 묻자면, 음~ 너, 아직 그 요괴작약탄, 그거 한발남았지? 그건 언제 쓰려고 아껴뒀던 거냐?”

블랙은 대화에 앞서, 아직도 한 손에 들고 있던 저격용 총의 몸체 부분에서 총알 하나를 꺼내 들었다.

“조금 전에 보셨 듯이, 저의 변신 능력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한발로 그 시간을 확보하려던 것이었지만, 이제 의미가 사라진 셈이군요.”

그러니 기념품으로 가지라는 듯, 내 쪽으로 총알 쥔 손을 내밀었다.

「주인님! 해당 총탄의 탄두에 아직 수상한 념이 존재합니다! 주의하십시오!」

몽몽의 경고가 있었지만, 나는 그냥 놈에게 다가가 총알을 받아들었다.

「아! 하여간 우리 주인님의 단순무식 돌격 정신은… 아, 알았어 몽몽 오빠. 이제 안 나서고 듣기만 할께!」

요몽이 다소 정신을 산란하게 하긴 했으나, 사실 난 내심 상당히 긴장하여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 요괴탄이 꼭 총으로 발사했을 때만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별 반응은 없고, 게다가 이거 어째… 뭔가 느낌이 생각보다 약하달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요의 저격수로서의 제가 죽는 순간부터, 저격수의 념도 효과를 잃게 됩니다. 어떤 대상에게든, 이번처럼 오랜 시간 공들여 념을 주입했던 건, 저도 처음이라서, 완전히 사라지는데 어느 정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 사라지는 조건은 둘째 치고, 놈이 념의 트랩을 만들거나 어떤 물체에든 념 명령어를 심어 넣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라고 느끼긴 했었어. 만약 즉각적으로 아무 곳에다가 념 능력을 걸 수 있었다면, 내가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형태의 공격이, 아무 때고 얼마든지 가해져 왔었을 테니 말이야. 으음. 근데 이 녀석 방금, 저격수로서의 죽음’이라는 표현을 썼지?

“너의 그 변신 능력도 아무 때나, 막 오갈 수 있는 게 아니었냐?”

“완성된 신체로의 변환은, 언제든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고요의 저격수로서의 저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이를 정도의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죽는 겁니다. 제가 다시 고요의 저격수처럼, 새로운 능력을 가진 신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소한 몇 년의 세월이 걸리겠지요. 아, 참고로 념 능력을 가진 저격수의 몸을 만드는 데는, 정확하게 3년하고도 6개월이 걸렸었습니다.”

이것 봐라? 이건 나도 생각 못했던 시스템일세? 난 블랙 녀석이 념능력을 숨기고 있다가 고요의 저격수 행세를 할 때만 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들은 말대로라면, 이제 블랙은 념 능력을 쓸 수가 없다는 건가?

“본래 없던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변신이긴 한데, 그런 제약 조건이 있는 거라고? 그 변신 능력이라는 거, 장단점이 아주 극단적이군, 그래.”

“훗. 본래 강한, 혹은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는, 포기해야할 것도 있는 법 아닐까요? 그런 자연의 기본 섭리조차 무시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힘을 추가하고 있는, 진유준님이 이상한 겁니다.”

“이쒸! 변신 괴물한테,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거든?”

블랙은 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니. 괴물이란 표현은 좀 그랬네. 미안.”

쯧. 블랙 녀석은 태연한 기색인데, 내가 지래 미안해서 사과까지 했네. 사실 지금의 나도 괴물이란 표현에는 콤플렉스랄지, 하여간 좀 그래서. “이제 저도 한 가지 묻기로 하죠. 저와 고요의 저격수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단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수많은 인체 스캔 장비와 영능력자를 포함한 초인들이 존재하는, 프리메이슨 내에서 조차 말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우으~ 이제야 이 주제로 넘어왔네! 진짜 궁금! 궁금!」

요몽이 또 불쑥 나타났고, 몽몽도 굳이 요몽을 막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어, 그게. 의심의 시작은 그냥 별거 아니었어. 처음에 초롱이가 자신의 동료인 저격수를 직접 본 일이 없다고 했을 때만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지. 너와 저격수를 한 번도 동시에 본적이 없다는 것이 말이야. 그리고 다른 모든 에레보스 멤버들도 고요의 저격수는, 마치 없는 듯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결국 실질적으로는 저격수를 제대로 아는 건 동료들 사이에도 없다는 거지.”

사실 이런 정도는, 저격수의 은밀한 성향과 우연에 의한 상황일수도 있지. 그런 걸 공연히 의심해 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나 자신이 천 년 전에, 원판과 진유준 하사로서 이중생활을 해봤었기 때문일 거야. 암튼.

“거기다가, 이번 싸움이 시작되면서, 너와 저격수의 닮은꼴, 공통분모가 느껴지더군. 블랙 너는 처음 만났을 때 그랬지? ‘표적이 된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래서 표적이 된 사람을 죽일 때 더 보람을 느낀다.’고 말야.”

블랙의 대사가 정확히 저랬던 건 아닌 듯도 하지만 대충 비슷한 의미였지? 이것도 암튼!

“그런데 저격수의 념도 비슷했어. 표적이 된 내가 경계심을 가지기 어려울 정도로 어딘가 ‘정중한’ 느낌의 념을 교묘하게 공격으로 이어지게 하는 식이었지. 그리고 또, 내 동선을 예측하여 정확하게 배치된 트랩 자체가, 음흉 악당 원판의 카피인 너의 냄새가 났지.”

으음. 나름 그럴듯한 근거들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블랙 놈은 고사하고 요몽조차 미심쩍어하는 눈치로군. 이 정도에서 끝이라면,

꿰맞추기 표적수사(?) 같으려나? 역시 나의 결정적 함정 수사(?) 기법까지 밝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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