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86화 : NWG (Neo Wind Gate). (1)
6. NWG (Neo Wind Gate). (1)
에레보스와 싸움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대교와 서울의 우리 집, 나의 방에 함께 앉아있었다.
“얘야! 아가~!”
어머니 목소리였다. 내가 결가부좌를 틀고 있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있던 대교가 즉각 반응했다.
“네에! 어머님!”
대교는 나와 CR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던 중이었지만, 미련 없이 영상에서 시선을 거두고 방을 나선다. 행동은 군기 발랄한 이등병 모드라도, 표정은 지극히 밝았다.
흐음. 엄니가 대교를 ‘아가’라고 부르신 거 보니, 오늘은 더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군. 대교는 대교대로 ‘아가’라고 불리는 거 자체가 좋은 거고 말이지. 하긴, 나도 ‘아가’라는 호칭은 그 의미도 의미지만, 어감부터 왠지 듣기 좋아.
-요몽, 지금 보던 건 나중에 대교와 함께 다시 봐야겠다.
「네엡, 딱 대교님이 시선을 거두신 시점에서 키핑 해 놉지요.」
요몽의 영상 모니터는 곧바로 사라졌지만, 내 얼굴의 흐뭇한 웃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대교와 함께 보던 영상 속의 CR아그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각성 캡슐에서 재탄생된 것도, 역시 일주일 전. 하지만 저 귀염둥이들의 각성은 아직도 진행형이야. ‘짧은 수명’과 ‘부상을 회복할 때의 노화현상’, 이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이미 기본적으로 고쳐졌어. 다만, 본래의 나이와 용모에서 한참 벗어나있던 아이들의 외형 회복이 문제였는데, 이건 각자의 어긋났던 정도와 타고난 회복력의 차이 때문에 일괄적이지 못하다고 했지. 그렇지만, 외형 회복이 더디다고 불만인 녀석은 아무도 없는 것 같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날이 조금씩,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행복해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리고 물론, 그런 녀석들의 모습을 매일 영상 중계로 확인하고 있는 나와 대교도 매일 녀석들처럼 웃을 수가 있고 말이다.
「근데요, 주인님.」
요몽, 이 녀석. 슬며시 내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뭔가 수상하군.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원판 씨가 귀가하지 않고 있네요.」
역시나.
「설마 원판씨도 한 달이나 오지 않으려는 건 아니겠죠?」
-내가 그 녀석 일정을 어떻게 알겠냐. 정 궁금하면 니가 연락해 보던가.
「예? 진짜요? 정말 제가 그래도 되요? 장난치시는 거 아니죠?」
내 반응이 뜻밖이었는지, 요몽은 내 얼굴 가까이 날아와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래, 임마. 대신, 몽몽에게 보안 교육을 다시 확실하게 받고나서…….
요몽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와아앗! 고마워요, 주인님! 주인님 최고!」
요몽은 정신없이 사방에 빛의 방울을 뿌리며 기쁨의 비행을 하다가, 마침 과일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대교와 나에게 번갈아 플라잉 뽀뽀를 날리고 나서야 포릉! 사라졌다.
그 녀석, 내가 원판에게 따로 연락해도 된다고 했더니, 저러는 거야.
-어머. 그러셨어요? 요몽은 아직 화이트 씨와 직접 대화해 본적이 없다니,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네요.
-뭐, 지금까진 보안 문제로 금지시켜 왔었는데, 이제 슬슬 풀어줘도 될 거 같아서 말야.
나의 의미심장한 말과 표정 때문에, 대교가 빠르게 내 의중을 눈치채는 것 같았다.
-프리메이슨 측에, 오라버니와 화이트 씨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는 걸 살짝 강조하시려는 거군요.
-그런 거지. 아무리 위장이라도, 그놈과 돈독한 사이씩이나 되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기왕에 망가진 거.
나는 쩝, 쓴 입맛을 다셨고, 대교가 자기처럼 예쁘게 깎아 놓은 과일로 입안을 정화(?)해야 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오라버니. 이런 얘기, 아직 이르다는 건 알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가 승리하는 그날이 되면요. 훗, 결국 한 식구가 되는
거잖아요, 화이트 씨, 아니 진하운 도련님,까지 말이에요.
으흑! 대교, 이것이 그런 끔직한 미래를 기어이 발설하다니!
-그, 그건! 그게 그러니까… 젠장!
-대교! 요몽도 아니고 네가 날 메롱시키기야?
-후후, 죄송해요. 너무 화내지 말아주세요.
-아니, 뭐. 화를 내는 건 아니고…….
쳇. 요몽이라면 야단이라도 칠 수 있겠지만, 대교에게는 당할 수가 없네. 그리고 지금까지는, 애써 현실도피를 하면서 잊으려고 해왔지만,
현실적으로 대교의 말이 맞기는 해.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나중에는 프리메이슨과 함께 원판 놈도 떼어버릴 묘책을 강구하긴 해야 하는데… 으음. 아니지! 아서라, 진유준. 모처럼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에 암초 같은 주제를 붙잡으면 안 돼. 이건 좀 나중에 생각하자!
-헌데 오라버니.
이런, 대교의 얼굴에 아직도 짓궂은 표정이 남아있네.
-지금 바로, 거실에서 어머님과 하운 도련님 얘기를 나누셔야 해요.
젠장! 현실은 어쩔 수가 없는 건가?
난 이미 오래전에 걸린 원판의 거미줄을 실감하며, 하는 수없이 거실로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얘야, 유준아.”
설마 했더니, 역시나였다. 어머니께선 시내의 재래시장에서 사온 듯한 봄 점퍼를 들고 가늠해보고 계시다가, 내가 나오니까 바로 내 몸에 대보시며 입을 여셨다.
“너한테는 많이 끼겠지만, 하운이에게는 맞겠다.”
“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원판 놈이 걸치고 있는 옷은, 옷이 아니라 거의 다이아몬드 수준이라서, 이런 시장통 옷의 수백 수천 배 가격이라는
것이었지만, 울 엄니께서는 다른 의미로 살짝 눈살을 찌푸리셨다.
“에그… 그 아이는, 왜 그렇게 항상 춥게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야, 그것도 지 나름의 폼생폼사…는 둘째치고.
“엄니 걔 엄청 부자인 거 아시잖아요. 비서까지 따라다니는 판국인데 굳이 챙겨 주실 거 없어요.”
기본적인 사항을 말씀드려봤지만, 별로 소용없는 거 같았다.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다. 얘가 그래 보여도 아직 어린데…….” 미치것네.
“이번에 오면 이거주고, 암튼 좀 단디 챙겨 입고 다니라고 해라.”
엄니 입장에서는 원판의 평소 복장이 엄청 추워 보이는 건 알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 자체가 추울 수밖에 없었다.
“하운이 걔가 참 무던한 거 같더라, 지 애비보다 속이 깊어서… 에그, 하여간.”
여기서 ‘지 애비’란 닥터 제이를 말한다. 원판과 하은이를 쌍둥이 남매로 알고 계시고, 닥터 제이가 바로 그 둘의 아빠이니 말이다. “암튼, 니 말로는 니 이모부도 조금 정신을 차린 거 같다니까, 조만간 좀 보자고해라.”
“아, 예.”
난감함을 넘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어서 어떻게든 하긴 해야 할 거 같긴 했다.
일단 대충 웃어드리며 방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새삼 복잡한 관계가 실감났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원판을 상당히 신경 쓰시고 관심을 보이시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원판의 나이였다. 원판이 하은이와 쌍둥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려면, 당연히 둘은 동갑일 수밖에 없어. 그걸 기준으로 하면, 원판도 올해 겨우 막 성인이 되는 나이인 거지. 어머니 입장에선 아직은 여러모로 보살펴주고 싶은 대상일 수밖에 없는 거지.
으. 모르겠다. 역시 껄적지근한 일들은 나답게 뒤로 미루고, 당장은 즐거움에 매진해야겠다. 저녁 식사가 한 시간 전에 끝난 상황이니까, 이제 두어 시간 후면, 취침에 들어가실 시간이지. 두 분이 깊은 숙면에 빠지시는 걸 확인한 직후! 나는 드디어 꽤 오래 벼르던 일을 저질러 버릴 생각이야. 흐후~ 왠지 벌써 살짝 흥분되는군.
-대교! 드디어 오늘 밤이야.
나는 침대에 올라앉아 거실의 대교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니면 대교가 내방으로 올래?
-제, 제가 갈게요.
훗. 대교, 이 아가씨, 뭘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고 그래? 큼. 뭐, 암튼!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천천히 준비해 볼거나?
두어 시간 후,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끝내고, 대교를 기다리게 되었다. 침대의 침구를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했으며, 시간이 남아서 책상 위며 방안 여기저기도 공연히 정돈했다. 불을 끄고 기왕이면 촛불로 그녀가 좋아할만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지만, 일단 책상위의 작은 스탠드로 대신하기로 했다.
안방의 부모님들께서 고른 숨소리를 내시기 시작한 건 이미 이십분쯤 전, 대교도 나 이상의 고수인 이상,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음. 왜 오지 않고 있는 거지?
-대교!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 아니어요. 제가, 가, 갈게요.
대교는 평소답지 않게 약간 버벅이는 전음을 보내오고도 얼마간을 더 뜸을 들인 끝에야 조심스럽게 자신의 방을 나오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내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서는 대교의 태도가 어느 때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고 말았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그런 게 아닌데도 왠지 나쁜 짓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
-훗. 사실 나도 막상 이렇게 진행되니까, 기분이 묘하긴 했어.
나는 공연히 은근한 태도로 대교에게 다가서며 대교의 손을 잡았다.
-흐흐~ 다음엔 정말 내가 나쁜(?) 의도로 대교의 방에 침투할지도 모르지.
-아이참! 오라버니도!
윽! 앙탈(?)과 함께 가슴을 치는 손바닥에 내공을 싣다니!
어멋! 죄송해요! 무심결에 그만!
-하핫! 괘안아, 괘안아.
젠장. 역시 빨리 내 본신의 단전을 회복하여 내공을 되찾아야지. 농담이나 장난치다가 맞아 죽겠네.
「주인님. 오늘밤 두 분이 확인하실 새로운 시스템. NWG의 첫 가동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의 핵심, 순간이동 능력자 산드라는 현재 ‘어사조 본부’에 마련된 ‘1차 게이트’에서 대기 중입니다.」
으음. 잠시 엄하게 흐르려던 분위기를 몽몽 선생이 다잡아 주는군.
-좋아. 산드라 호출해.
명령을 내림과 거의 동시에, 내 침대와 책상 사이의 공간에 산드라가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일주일동안 가끔 볼 때는 보통 인간 아가씨처럼 눈에 띄지 않는 차림새였는데, 오늘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중세 수도승 복장이었다. 두 손을 교차해서 가슴에 대며 정중히 상체를 숙이는 인사가 아직도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산드라의 얼굴은 지극히 밝았다.
‘오늘부터, 정식으로 두 분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로드.’
어찌됐든 손님이 내방까지 들어오는 상황이라 방안 정리를 애써 했는데, 산드라는 딱히 눈여겨 보는 것 같지는 않네. 뭐 어쨌든.
-우리야말로, 오늘부터 잘 부탁해, 산드라,
‘별 말씀을! 우선 1차로 모시겠습니다.’
산드라가 내민 손을 대교가 잡았고, 나와 대교는 이미 손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파팟!
마음의 준비고 뭐고, 그야말로 눈 한번 깜박이고 나니까 우리는 새로운 공간에 이동해 있었다. 산드라의 순간이동을 체험해보는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아직은 조금 어이없달지, 하여간 낯선 기분이 많이 들었다.
그나저나, 여긴 본래 그냥 평범하고 작은 원룸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완전히 SF영화 속의 기계 장비의 내부인 것 같네 그려. 기왕이면 이런 식의 인테리어가 좋겠다고 한 건 나였지만, 정말로 이렇게 그럴듯하게 꾸며놓을 줄은 몰랐네.
-자룡대주가 분위기까지 신경 많이 썼네? 정말 SF영화 속의 순간이동 장치에 들어 온 기분이야. 아, 가만? 몽몽, 이거 혹시 네가 디자인해 준 거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보안상 저희가 제작된 시대의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저희 시대 장비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입니다.」
-오호! 역시 그런 거였어?
나와 대교는 새삼 묘한 기분으로 찬찬히 실내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솔직히, 몽몽 남매들의 고향이랄 수 있는, 미래 디자인의 인테리어 자체에 대한 감흥은 비교적 짧았고, 나로서는 다른 사항이 더 궁금했다.
-몽몽, 여기 이거 열리는 거지?
말하면서 이미 벽 한쪽의 작은 창문 같은 걸 옆으로 밀어보았더니, 아주 약간 내 얼굴 폭 정도만 열려졌다. 상하는 더 좁아서 결국 눈만 겨우 댈 수 있는 잠망경 느낌이었다.
「역시 보안상, 본래의 창은 폐쇄되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바깥에서 보면 그냥 보통 건물의 평범한 창문으로 보일 것이다. 아니, 확실하게 그렇게 보인다.
여기서 반대로 우리 집 마당을 보니까 기분 참 묘하네. 아까 낮에도 저기 우리 집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 방과 건물을 보았었는데 말야.
-대교, 너도 좀 봐. 우리 집을 이런 각도로 보는 건, 너도 처음이지?
-예, 왠지 재밌네요.
여기 이 1차 윈드 게이트는 사실, 우리 집의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해 있다. 우리 원룸 건물보다 조금 더 큰 이 주상 복합 건물은, 그동안 자룡대주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우리 어사조의 본부화되고 있었는데, 1층에서 장사 잘하고 계신 점포 몇 군데를 제외한, 건물 전체를 확보한 것이 보름쯤 전이라고 했었다.
-어머? 이쪽에서 보니, 우리 집 마당 구석의 지저분한 물건들이 너무 잘 보여요. 내일 당장 치워야겠어요.
-저기, 대교. 그 삽자루 같은 것들은 이미 십년 넘게 그 자리에 있는 거거든?
-아, 하지만 어머니께서 보시게 되면…….
-훗, 알았어. 내가 내일 당장 정리 할게.
내 생각에, 저런 구석은 날씨가 좀 더 따뜻해져야 어머니께서 화단 정비하시다가 발견하실 것 같은데, 결국 귀찮지만 바로 해준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저 3층 난간이 저렇게 지저분하게 보일 줄이야!
-거긴 원판 족쳐서 그놈이 치우게… 아, 알았어. 그것도 내가 치워줄게.
-후후, 고마워요, 오라버니.
젠장, 나름 역사적인(?) 윈드 게이트 시운전 시작부터 이게 뭔 분위기야?
-어머? 옥상도 이쪽에서 보니까 엄청 산만하고 지저분…….
-저기, 대교!
-아, 죄송해요. 제가 그만.
대교는 비로소 조금 민망해하며 작은 창으로부터 얼굴을 떼었고,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산드라를 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드라는 다행히 우리끼리의 전음대화를 못 들어서인지, 그냥 별생각 없이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큼, 몽몽. 여기 어사조들에게는 오늘 우리 일정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NWG의 실체를 아는 인원을 최소화 한다는 의미와 일상적인 보안 관리 수준을 점검하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 코스로 가자, 산드라.
‘예, 로드.’
산드라가 다시 대교의 손을 잡는다 싶은 순간, 다시 파팟!
으음. 뭐랄까, 거의 비슷한 공간인데 실내 공간만 좁아진 느낌?
2차 목적 포인트, ‘징검다리 1호’에 무사히 도착하셨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작은 쪽 창문이다 싶은 곳을 열고 바깥을 살펴보았다. 좀 전처럼 우리 집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 낯익다싶은 주차장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 징검다리 1호, 이동형 NWG는 현재 어사조 본부 건물로부터 32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상태입니다. 현재 운전자는 은사도객
8호입니다.」
우리가 순간이동으로 들어와 버린 이 컨테이너 박스 차량을 이용한 이동형 NWG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몽몽 선생이 낸 것이었다. 사실 어제까지 산드라가 모든 윈드 게이트를 직접 방문하여 공간을 전부 ‘리드’해 놓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별로 필요 없는 옵션이긴 했다. 하지만 앞으로 실전 상황에 잘만 이용하면 산드라의 능력 활용에 있어서 아주 유용할 것 같았다.
“어이~ 은사도객 8호!”
나는 한쪽 벽면의 모니터를 향해 한손을 들어 보였다. 운전석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 속의 젊은 청년, 은사도객 8호가 화면에 대고 포권하며 인사했다.
“자네가 운전 실력만은 은사마군 못지않다며?”
“그, 저는 아직 도주를 따르지 못합니다.”
말이 그렇지, 운전만큼은 꽤 자신있어하는 눈치로군. 은사도객들이 은사마군을 자신들의 ‘도주’라고 칭하는 건, 뭐, 그렇다 치고.
“뭐, 얼마간은 이 징검다리가 가동될 일이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일이 발생하면 상당히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땐 잘 부탁해.”
“명심하겠습니다, 천주!”
나는 재차 포권하는 은사도객 8호에게 가볍게 답례를 보내며 산드라를 돌아보았다. 이제까지는 사실상 우리 경공으로도 순식간에 올 수 있는, 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장소로만 이동한 참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장거리 워프를 경험할 차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