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9화 : 사제 재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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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9화 : 사제 재회(1)


사제 재회(1)

설우진의 아버지 설무백은 관부에 끌려간 지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무죄판결 을 받았다. 그래도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는지 얼굴은 많이 초췌해 보였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아니다, 아비가 돼서 못난 꼴만 보이고 너희 들한테 면목이 없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버진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뿐이잖아요.”

설우진은 의기소침해 있는 아버지를 위로했 다. 아들의 위로가 꽤 힘이 됐는지 내내 굳어 있 던 아버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가게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음, 힘들겠지만 다시 열어야지.”

“그럼 이 돈으로 아예 새롭게 시작하세요. 가게도 넓히고, 사람도 더 고용하고.”

설우진이 아버지 앞에 전표 다발을 내밀었다. 전표에는 황금 일백 냥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 이 돈 어디서 난 게냐?”

눈앞에 나타난 엄청난 거금에 설무백은 기함했다.

황금 일백 냥짜리 전표가 무려 열 장이다. 꽤 큰돈을 만져 왔다 자부하는 그조차도 황금 일천 냥은 꿈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돈이었다.

“실은 아는 분한테 투자를 좀 받았어요. 이대로 두면 가게도 망할 것 같아서………..?

“대체 이 많은 돈을 누가 선뜻 빌려줄 수 있단 말이냐?”

‘계약서도 작성한 마당에 얘길 하는 게 좋겠지.’

“이름을 아실지 모르겠는데, 강무호란 분이 빌려주셨어요.”

“강무호? 서, 설마 천중 상단의 그분을 얘기 하는 것이냐?”

설무백은 또 한 번 기함했다.

무한 상계에서 강무호는 재신으로 불렸다. 그 도 그럴 게 맨몸으로 시작해 지금의 거대한 부 를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중 상단은 십대상단의 말석으로 분류됐지만, 정작 단주인 그는 대상인 서열 일 위에 올라 있었다.

“지난번에 손님으로 찾아왔던 제갈세가의 형 에게 소개를 받았어요. 돈도 많으신 분이 참으 로 소탈하시더라고요.”

설우진은 강무호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간 략하게 설명했다. 설무백은 처음엔 긴가민가하 는 얼굴이었지만 개고기를 좋아한다는 얘길 듣 자 이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는 어디 있느냐?”

얘기를 다 듣고 난 후, 설무백이 계약서를 찾 았다. 설우진은 품에 넣어 두었던 계약서를 곱 게 펴 정면에 내보였다.

설무백의 눈이 계약서 위를 훑었다.

대충 읽는 것처럼 보여도 그의 뇌리에는 계약 서의 내용이 고스란히 저장됐다.

“하아.”

설무백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설우진이 찾지 못했던 맹점을 그는 단숨에 알 아챈 것이다.

“아버지, 계약서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 계약서엔 문제가 없다. 단지 이 아비가 그 목표를 달성해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계약서에 명시된 목표는 오 년 안에 황금 삼 천냥을 버는 것이다. 일 년에 고작해야 황금 오 륙백 냥 정도를 벌어 온 그에겐 그 과제 자체가 너무 현실성이 없었다.

“가게를 키우면 수익도 그만큼 늘게 되잖아요 오 년이면 그 정도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지 않나요?”

설우진은 강무호에게 들은 내용을 곧이곧대 로 믿고 있었다. 물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 것은 바로 포목이라는 품목 자체가 원가가 차 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는 사실이다.

포목점의 대표적인 상품인 비단의 경우, 도매 로 들여올 때 보통 한 필에 은전 열 냥을 지불한 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판매할 때에는 두 냥의 이문을 더 붙여 판다.

이때, 발생하는 수입이 은전 두 냥이다.

고로 계약서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오년 동안 비단을 만 필 이상 팔아야 했다.

비단은 대표적인 사치품이다.

오 년이란 기간이 긴 것 같지만 비단의 구매 자들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만 필 이 상 파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눈치 없이 설우결이 두 사람의 대화 에 끼어들었다.

“아버지, 돈도 많이 생겼는데 이참에 어머니 가게 하나 따로 차려 주세요. 어머니 보러 갈 때 면 항상 손님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괴롭다고요.”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가공되지 않은 포목을 파는 것보단 자수를 새겨 넣은 옷 가지들이 훨씬 이문이 많이 남잖아. 그럼 굳이 포목점을 고집할 필요가 없지.’

설우진은 설우결이 무심코 뱉은 말 속에서 계 약서의 내용을 이행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냈 다. 그리고 그 생각을 즉각 아버지에게 알렸다. 

“호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잘만 하면 기존 의 포목점들과 반목하지 않으면서 상생을 꿈꿀 수 있겠다.”

설무백은 곧바로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도 흐릿했던 두 눈에 생기가 흘러 넘쳤다.

“어서 오십시오.”

풍야패의 은신처에 뱀 문양의 옷을 입은 청년 이 걸어 들어왔다. 초조하게 입구를 서성이고 있던 호걸륜은 청년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하지만 청년의 표정은 그와 반대 였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장님도 너무하시지. 뒷돈을 받은 건 자기 면서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나한테 떠넘기느냐고.’

청년 공손월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맘에 안들었다.

자신한테는 떡고물 하나 떨어지는 게 없는데 저깟 주먹패를 위해 무력을 써야 한다는 게 영 달갑지 않았다.

“어떤 놈을 처리해 주면 되지?”

“일단 식사라도 하시면서………….”

“됐고, 이름이랑 용모파기만 알려 줘.”

‘무공 좀 익혔다고 어린놈이 건방이 하늘이 찌르는군. 하지만, 아쉬운 건 이쪽이니.’

“많이 바쁘신 모양이군요. 여기 용모파기를 그려 놓은 초상화가 있습니다.”

호걸륜이 미리 준비해 둔 초상화를 공손월에 게 내밀었다. 그런데 초상화를 받아 든 공손월 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설마 나보고 이 애새끼를 처리해 달라는 거야?”

“어리다고 얕보시면 큰일 납니다. 놈에게 저 희 조직원 대다수가 당했습니다.”

“지금 그 말, 상당히 기분 나쁜데. 설마 너희들과 내가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공손월이 독사 같은 눈빛으로 호걸륜을 쏘아 봤다. 그런데 기세에 눌릴 줄 알았던 호걸륜의 반응이 의외였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그 안에 두려움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 았다.

‘사혁진이 내게 거짓말을 한 건가? 장래가 유 망한 인재를 보낸다고 하더니, 왜 설가 그놈보 다 약하게 느껴지는 거지?”

호걸륜은 의아했다.

그가 선을 대고 있던 사혁진은 분명, 자신의 휘하에 있는 대원들 중 가장 쓸 만한 녀석을 보 내겠다고 약속했었다. 처음엔 그 말을 믿었다. 공손월의 건방진 태도와 넘치는 자신감이 강자 의 여유를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전 기세를 발산하는 모습에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번 설우진이 풍야패의 본거지로 쳐들어 왔을 때는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을 느꼈 었다. 고개를 마주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그 에 반해 공손월이 내뿜는 기세는 봄날의 훈풍처럼 가벼웠다.

“어이,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조장님하

고 사이가 두텁다고 해도 수틀리면 그 모가지 를 비틀어 버리는 수가 있어.”

공손월이 재차 기세를 발산했다.

호걸륜은 아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내 색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답을 내놨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뒷골목 무지렁 이의 헛소리라 여기고 용서해 주십시오.” 

“흠흠,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암튼 이 애 송이만 처리해 주면 되는 거지?”

“네,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백사문으로 돌 아가실 때 노잣돈으로 쓰십시오.”

호걸륜이 아이를 달래듯 공손월에게 미리 준 비해 둔 전낭을 쥐여 줬다. 돈을 본 공손월은 희 희낙락했다. 그 모습에 호걸륜의 불안감은 더 욱 커졌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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