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31화 : 사제 재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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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31화 : 사제 재회(3)


사제 재회(3)

“누가 술 귀신 아니랄까 봐 문밖에서부터 주 향이 코를 찌르네. 주가야, 나 왔다. 상천의 호랑이 천호가.”

팽천호가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잠시 후.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런데 살가운 인사 대신 잔뜩 날이 선 창날이 그 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데 팽천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런 공격이 날아올 줄 미리 예상한 듯 보였다.

그사이, 창두가 미간까지 치달았다.

그제야 팽천호의 오른손이 허리를 향했다.

쉬익- 캉.

번개처럼 뽑아 든 칼날이 간발의 차이로 창두 를 옆으로 쳐 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그림 같 은 발도였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첫 번째 공격 때보다 더 기세를 품고 무수한 잔영을 그리며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비풍참영.

군부에 전해지는 양가창의 절초였다. 금방이 라도 팽천호의 온몸이 창두에 꿰뚫릴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런데 무수히 쏟아지는 창날 에도 팽천호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그 비밀 은 옅은 붉은빛으로 빛나는 두 눈에 있었다. 팽천호는 두 눈으로 창이 날아드는 궤적을 미 리 읽고 있었다.

초식에 기반을 둔 공격은 기본적으로 그 안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했다. 그 말인즉슨 약속된 궤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가 익힌 야수안은 바로 그 약속된 궤적을 단번에 읽어 냈다. 일견하기엔 사기처럼 느껴 질 수도 있는 능력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뚜렷 한 한계도 존재했다.

소위, 강호에서 고수라 불리는 이들은 초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면 그것이 초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야 수안을 아무리 발동해도 약속된 궤적을 읽어 낼 수가 없다.

카카캉.

잠깐 사이에 창두와 칼날이 요란하게 맞부딪쳤다.

야수안으로 궤적을 읽은 덕분에 팽천호는 단 한대의 공격도 몸에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격이 계속 막힘에도 상대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주가야, 이쯤하지 그러냐. 오랜만에 친우가 찾아왔는데 다짜고짜 창질이나 하고, 솔직히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냐?”

“너무해? 그건 오히려 내가 할 소리지. 지난 번에 네놈이 몰래 훔쳐 간 그 술,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기나 하냐?”

“그따위 건 알아서 뭐하게. 배 속으로 들어가 면 그저 오줌에 불과한 것을.”

“니미럴, 그거 한 병 담그는 데 무려 금전 쉰 냥이 들어갔다. 풍미를 높이려 어렵게 구한 백 년 묵은 설삼까지 넣어서 담근 건데………… 그걸 술맛이라곤 개뿔 모르는 네놈이 마시면 어쩌자 는 거냐!”

분노에 찬 울부짖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폭발 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일격참.

창두에 기운을 응집시켜 한 점을 꿰뚫는 일격 필살의 초식이었다. 이번만큼은 팽천호도 긴장 이 되는지 칼을 쥔 오른손에 잔뜩 힘줄이 돋아났다.

쾅!

둘 사이에 요란한 굉음이 일었다.

뒤이어 사나운 기파가 사방에 먼지구름을 일 으키며 그 충돌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느닷없는 먼지 세례에 구경꾼들은 황급히 자 리를 피했다.

잠시 후, 먼지구름이 걷히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격렬하게 싸운 것치고는 둘 다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화는 좀 풀렸냐?”

팽천호가 먼저 칼을 거두며 말을 걸어왔다.

“징그러운 놈, 한 대라도 맞아 주고 그런 소릴 해라. 괜히 헛심만 잔뜩 썼잖아.”

주천기가 잘생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앞으 로 내뻗었던 창을 머리 위로 바로 세웠다. 

“그나저나 일 년도 안 돼서 여긴 무슨 일로 찾 아왔냐? 지난번에 술 훔쳐 떠날 때, 적어도 이 년은 걸릴 거라고 하더니.”

“그게………… 일이 좀 더럽게 꼬였다. 본래 맡기 로 했던 장기 의뢰가 하나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일에 냉무열 그 자식이 연관돼 있었다.”

“아직도 녀석에 대한 감정을 풀어내지 못한거냐?”

“아무리 윗선의 명령이 있었다고 해도…………… 녀석이 날 친구로 생각했다면 그리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팽천호의 두 눈에 진한 살의가 떠올랐다.

이에 주천기는 다급히 대화의 화제를 다른 곳 으로 돌렸다.

“그럼 두 번째로 맡은 의뢰는 뭐냐?”

“어느 비동의 기관을 해체하는 일이었다. 손 을 놓은 지 오래돼서 맡지 않으려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보수가 많았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맡 고 보니 다 비싼 이유가 있었지.”

팽천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간의 사정을 설 명했다.

그는 매서운 칼 솜씨만큼이나 기관지학에도 능했다. 젊은 시절 수학했던 와룡 학관의 영향 이었다. 와룡 학관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 가가 운영하던 교육기관으로 기본적인 학문과 더불어 실전 위주의 기관지학과 진법론을 가르 쳤다.

워낙에 그 수준이 높아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재들도 중도에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는데 팽천호는 당시 차석으로 당당히 졸업장을 거머쥐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기껏 비동을 찾아 들어갔 더니 보물은 온데간데없고 먼지만 그득했다?” 

“그래, 근데 더 기막힌 건 기관을 해체한 방식 이 내 것과 거의 동일했다는 거다.”

“그럼 와룡학관 누군가가 다녀갔다는 거네? 네 기술은 모두 거기서 나온 거잖아.”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지. 근데, 방식 이 미묘하게 달랐다. 내 응용식처럼.”

팽천호는 아직도 그날의 일이 이해가 되지 않 았다. 그 응용식은 분명 자신만이 알고 있는 방식이었다.

“그나저나 돈은 받았냐? 네 말대로라면 의뢰 인 쪽에서도 상당히 열이 받을 상황인데.”

“받았으면 내가 기루로 갔지 여기로 왔겠냐! 나보고 목숨을 건진 걸 천운으로 여기고 꺼지라고 하더라.”

“호오, 그 소릴 듣고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 천하의 팽천호가?”

“나도 처음엔 뒤집어엎으려 했다. 근데, 대장 으로 보이는 작자가 분에 못 이겨 검을 휘두르는 걸 보고 그 마음을 완전히 접었지.”

“설마, 검강이라도 본 거냐?”

주천기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에 팽천호는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강은 단단하게 응축된 검기를 뜻한다. 일반 적인 검기에 비해 그 강도가 수십 배는 더 강하 기에 걸리는 건 무엇이든 베어 버릴 수 있었다. 뛰어난 공능만큼 현 강호에서 검강을 다룰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공이 삼 갑자를 넘겨야 하고, 검술의 수준 또한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간에 알려진 검강지경의 고수는 겨 우 열 명 정도 에 불과했다.

“자식, 고생했다. 역시 명출 하나는 네가 최고다.”

주천기가 팽천호 앞에 엄지를 척 올려 세웠다.

‘어휴, 저걸 하나뿐인 친구라고.’

팽천호는 끓어오르는 울화통에 허리로 다시금 손을 가져갔다.

그렇게 이 차전이 벌어지려는 찰나.

등 뒤에서 방해꾼이 등장했다.

어렵사리 집안일을 해결하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한 잔의 술로 달래러 온 설우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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