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12화 : 학관 전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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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2권 – 12화 : 학관 전투 (3)


학관 쟁투 (3)

적사호는 인 자 조에 속해 있는 학사였지만 학관 내 영향력이 대단 했다. 고개가 빳빳하기로 유명한 천 자 조의 학사들조차 그의 앞에선 절 로 고개를 수그릴 정도였다.

그래서 당세기는 처음 황룡 학관에 들어왔을 때부터 적사호의 눈에 들 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의 지지만 얻어 낼 수 있으면 졸업 후 쌍룡맹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 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노력은 적사호에게 수작질로 폄하됐다. 당 시에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다른 경쟁자들도 그와 비슷한 대접 을 받았기에 참아 낼 수 있었다. 한데 학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도 않은 상가 출신의 신입 관도가 적사호의 눈에 들었다니. 도저히 믿 을 수가 없었다.

“대관절 무슨 수로 적사호의 눈에 든 거지?”

“그게,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적사 호 앞에서 신랄하게 학관을 힐책했 다고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황룡 학관은 자식이나 다름없다. 한데 자식을 욕하는 그 미친놈을 맘에 들어 했다니……….”

당세기의 얼굴이 혼란스러운 감정 으로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는 적사호와 황룡학관 사이에 얽힌 숨은 비화를 아버지로부터 들 어 알고 있었다. 그 비화 속에서 적 사호는 황룡 학관을 위해 온몸을 바 쳤었다.

‘적사호 그 인간, 대체 무슨 꿍꿍 이지? 설마 놈을 이용해서 황룡삼천 을 견제하기라도 할 셈인가?’

당세기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적사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으니 대처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바로 그때 당세기의 우장 격인 제 갈균이 입을 열었다.

“회주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신입 관도가 적사호의 지지를 얻었다고 해도 혼자서 조직을 만드는 건 불가 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천회 에서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왜지?”

“중천회주 백무영은 천하 상단의 후계잡니다. 상계에서는 황태자 못 잖은 권력을 누리고 살아온 놈이니 아마 상가 출신의 그 신입 관도가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오르는 걸 그냥 좌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대개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은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 단적인 예가 황궁에서 벌어지는 형제들 간의 골육상쟁이다.

“일단은 그냥 지켜보시죠. 지금은 신입 관도보다 남천회의 기세를 꺾 어 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갈균이 한껏 기세가 오른 남천회 의 동향을 보고했다. 이에 당세기는 설우진에 대한 경계심을 잠시 가슴 에 묻어 두고 당면한 위기를 풀어내 기 위해 새로운 안건에 집중했다.


“너희들 뭘 할지 생각해 봤어?”

“밤새 고민해 봤는데 마땅히 떠오 르는 게 없던데.”

“나도. 웬만한 건 삼천쪽 애들이 다 선점을 해 버려서.”

“그럼 어쩌지? 이번 승무연에서 점 수를 만회하지 못하면 승급 시험은 물 건너가는데.”

황룡학관 곳곳에서 삼삼오오 관도 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한 가지 공통된 주제로 바쁘게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그 주제는 바로 황 룡승무연에서 선보일 경연이었다. 황룡승무연은 학관을 대표하는 행 사로 일 년에 한 번씩 열린다. 천 자 조를 제외한 인자 조와 지자 조의 관도들이 참여해 그간에 갈고 닦았던 기량을 선보이게 되는데 그 종목은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경연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관도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기 준에 따라 포상이 주어지는데 그 포 상은 바로 관도들이 목말라하는 추 가 점수다.

황룡 학관은 짧은 기간에 다양한 과목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열에 여섯 정도는 단 일 점 의 성적이라도 더 거두고자 안간힘 을 썼다.

그런 상황이니 황룡승무연에 임하 는 관도들의 태도는 필사적일 수밖 에 없었다.

“우진아, 어떡하지? 애들이 우리하 고는 같은 조를 하지 않겠다는데.”

조인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문 을 열었다.

설우진이 ‘문무겸전의 인재 양성’ 과목의 장이 된 뒤로 인자 조의 관도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따돌렸 다.

단순한 시기와 질투 때문에?

아니었다.

설우진은 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동기들을 사정없이 굴렸다. 쓸데없 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니 이를 깨끗하게 비워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의 만행에 담당 학사인 적사호는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반항하는 놈들이 있으면 대신 나서서 막아 주고 요령을 피우는 놈들이 있으면 따로 불러내 열외 교육을 펼 쳤다. 덕분에 설우진의 동기들은 하 루가 멀다 하고 온몸을 찌르는 근육 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상황이니 동기들이 추가 점수 가 내걸린 황룡승무연에 설우진을 끼워 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설우진은 천 하태평이었다.

“인창아, 정신 사나우니까 호들갑 좀 그만 떨어.”

“넌 걱정도 안 돼? 단체 경연을 해야 하는데 우리 쪽은 너랑 나 그 리고 자스민 달랑 셋뿐이잖아.”

“사람이야 모으면 되지.”

설우진은 뭐가 걱정이냐는 듯 퉁명 스레 대꾸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조인창이 기대에 찬 얼굴로 설우진 을 바라봤다. 하지만 설우진은 대답 대신 천뢰도를 이용해 흙바닥에 정 체 모를 그림을 그려 나갔다.

좁게 뻗어 있는 길로 여인들이 차 례차례 걸어 나왔다.

그녀들은 특이하게도 다들 노출이 심한 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황룡승무연은 유력 세가의 자제들 에게 점수를 내어 주기 위한 꼼수 야. 이 꼼수를 정면에서 부딪쳐 깨 려면 일반적인 경연으론 안 돼. 사람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색다른 무대가 필요해.’

설우진은 황룡승무연이 지닌 맹점 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황룡승무연에 참여하는 관도들 중 추가 점수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대부분 유력 세가 출신들이다. 그들 은 가문의 이름을 빌려 사람들을 모 으고 가문의 금력을 활용해 보다 화 려하고 강렬한 무대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스민은 언제쯤 온다고 했지?” 

설우진이 자스민을 찾았다.

때마침 교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남자 관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집중됐다.

“아까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던데 이제 결심이 선 거야? 언제라도 말 만 해. 집 깔끔하게 비워둘 테니 까.”

자스민이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설우진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풍 만한 가슴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 모습에 근처에 모여 있던 남자 관도들의 두 눈에 서슬 퍼런 적의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설우진은 주변의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 갔다.

“여자애들하고는 얘기 좀 해봤어?”

“음, 하기는 했는데 다들 반응이 미적지근해. 뭐, 거기엔 너에 대한 소문도 한몫했고.”

설우진은 사흘 전 자스민에게 자신 과 함께 경연에 참여할 여관도들을 모아 달라 부탁을 했었다.

남자 관도들이 자신을 외면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경연에 여관도 들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역시 말로 설득하는 건 무린가? 그럼 눈으로 보여 주고 스스로 오게 만들어야지.’

“자스민, 오늘 밤 시간 어때?”

“자기가 부르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지. 근데 왜?”

“실은 너한테 옷을 한 벌 선물해주고 싶어서.” 

“정말?”

자스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선물을, 그것도 옷을 준다는데 마다할 여자 가 어디 있겠는가.

“언제까지 가면 돼?”

“넉넉하게 시간 잡고 와. 오래 걸 릴지도 모르니까.”

‘오, 오래 걸린다고? 혹시, 옷은 핑 계고 나하고 첫날밤을 보내려는 게 아닐까? 나 정도의 미녀가 이 정도 로 들이대는데 몸이 반응하지 않는 다는 게 더 이상하잖아.’

자스민은 엉큼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지난 삼 개월, 그녀에게는 여자로 서의 자존심을 포기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설우진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앞뒤 재 지 말고 달려들라는 누란의 가르침 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설우진은 목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가슴을 어깨로 비비고 우연을 가장해 손끝을 허벅지로 들 이밀어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해. 그럼 나도 거기에 맞춰 서 준비를 해야지. 때마침 장미가 들어온 게 있으니 그걸로 목욕부터 해야겠어.’

그녀는 부푼 가슴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떠난 후 설우진은 남궁벽을 찾았다.

“벽이는 아마 사자관에 들어가 있 을걸.”

“그럼 당장 사자관으로 달려가서 그 녀석 데려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을 텐 데.”

“내가 한판 붙어 준다고 해. 그럼 두말 않고 달려올 거야.”

그길로 조인창은 사자관으로 달려 갔다. 사자관은 황룡학관 지하에 세워진 개인 연공실로 관도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잠시 후 설우진의 호언장담처럼 남 궁벽이 나타났다.

수련을 얼마나 격하게 했던지 온몸 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역시 몸매가 남달라. 저 몸이면 어떤 옷을 입혀도 여자들이 환장을 할 거야.’

설우진은 땀으로 인해 유독 도드라 져 보이는 남궁벽의 몸을 하나의 작 품을 감상하듯 위아래로 자세히 훑 었다. 땀에 젖은 남궁벽의 상체 근 육은 완벽에 가까운 굴곡을 보여 줬 다. 특히 명치 아래의 배근육에는 직접 새겨 넣은 듯 선명한 王 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싸우자고 불렀으면 어서 칼부터 뽑아라. 오늘이야말로 지난 패배를 설욕하고 말겠다.”

남궁벽이 호전적인 태도로 대련을 청했다.

그는 입관 환영연 이후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설우진에게 집착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대련을 청하고 시 간이 날 때마다 도검을 맞댔다. 하지만 결과는 오 전 오 패.

남궁벽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치욕적인 전적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날 꺾고 싶은 마음 은 이해를 하겠는데 그 전에 내부 탁부터 좀 들어줘야겠어.”

“부탁?”

“별로 어려운 건 아니야. 그냥 황 룡승무연에서 내가 만들어 준 옷을 입고 걷기만 하면 돼. 척 선배랑 함 께.”

“정말 그것만 해 주면 되는 거냐?”

“응. 경연이 끝날 때까지만 얌전히 따라 주면 대련은 질리도록 해 줄 게.”

설우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 에 머금었다.


그날 밤.

설우진의 집으로 한껏 멋을 낸 자 스민이 찾아왔다. 가슴골이 훤히 드 러나는 얇은 상의와 붉은 빛깔의 치마는 육감적인 그녀의 몸매를 한껏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내 남자로 만들고 말겠어.’

자스민은 속으로 굳게 의지를 다지 며 설우진의 집으로 들어갔다. 설우 진의 집은 아담한 크기의 독채로 깔 끔하게 정돈된 정원에 집 뒤쪽으로 운치 있게 청죽림이 조성돼 있었다. 자스민은 마당을 그대로 가로질러 곧장 방으로 향했다. 한두 번 와 본 게 아닌 듯 그 걸음이 매우 자연스 러웠다.

“어,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설우진이 천 조각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방안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녀를 맞았다. 자스민이 뜨거운 밤을 그렸 던 침대에는 비단 금침 대신 옷을 만드는 데 쓰이는 천감과 자수를 놓 을 때 쓰이는 수실 뭉치가 얄밉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자스민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이에 설우진은 그 용도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정말 관심을 보일까? 네 말대로라면 그냥 옷 입고 걷는 게 전부잖아.”

“평범한 사람이 입는다면 그렇겠 지. 하지만 너처럼 특별한 사람이 입는다면 얘기가 달라져.”

설우진이 자스민에게 다가가 그녀 의 몸을 살짝 껴안았다. 기습적인 그의 포옹에 자스민의 얼굴이 홍조 로 물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건 순수한 애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설우진은 양손 끝에 굵은 실을 쥐고 있었다. 치수를 재기 위해 가장 흔 하게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자스민은 우리 학관에서 제일 몸 매가 뛰어나. 특히 소의 그것처럼 탱탱하게 솟아 있는 이 가슴은 명품 중의 명품이지.”

등과 겨드랑이를 거쳐 온 실이 자 연스럽게 자스민의 가슴을 감쌌다. 그 행동이 꽤나 자극이 됐는지 그녀의 입에선 달뜬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설우진은 담담한 얼굴로 가슴에 이 어 둔부를 실로 감쌌다.

“나, 나 좀 어떻게………….”

자스민이 간절한 눈빛으로 설우진 을 불렀다.

한데 치수를 다 재고 난 후 그는 매정하게 등을 돌려 버렸다.

‘나쁜 자식.’

그녀는 설우진의 뒤통수에 대고 야속한 마음을 토로했다.


“다 됐다.”

새벽녘이 다가올 무렵, 설우진은 완성된 옷을 들고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옷은 상·하의가 연결된 독특한 모 습이었다.

가슴에 수놓인 장미 자수만 아니면 언뜻 변방의 군인들이 입는 군복처 럼 보이기도 했다.

‘과연 이 개량형 창파오를 보고 계 집애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남우세스럽다는 말부터 꺼내겠지. 만주족 여인들을 처음 대할 때처 럼.’

그가 밤새 정성을 기울여 완성한 옷은 만주족 여인들이 주로 입는 창 파오를 개량한 것이었다.

개량형 창파오는 옷감이 몸에 쫙 달라붙는 형태로 활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치마의 양쪽 허벅지 부분을 시원하게 절개했다. 덕분에 걸음을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리 안쪽 이 훤히 드러났다.

‘여자들의 아슬아슬한 노출만큼 남 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건 없지. 모르긴 몰라도 황룡승무연에 구경하 러 온 대다수의 남자들은 내 경연에 표를 던지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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