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9화 : 전초전 (3)
전초전 (3)
“왜 연무장으로 모이라고 한 거지?”
“체력 단련이라도 시키려나 보지. 가뜩이나 이론 공부만 하느라 몸이 찌뿌듯했는데 잘됐어.”
해가 서천으로 향하는 신시 초 무 렵.
인 자조의 관도들이 연무장 쪽으 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들 대부 분은 얼굴에 여유가 넘쳤다. 그 안 에는 설우진도 포함돼 있었다.
“저기 누가 오는데.”
관도들의 시선이 남쪽으로 향했다.
한 사내가 왼쪽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거친 느낌이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머리칼부터 왼 쪽 눈을 가로지른 흉측한 검상까지. 그런데 거기에 방점을 찍는 물건이 오른쪽 어깨에 얹혀 있었다. 겉이 유난히 번들거리는 쇠몽둥이였다. 범상치 않은 사내의 출현에 신입 관도들은 흐트러져 있던 대열을 빠 릿빠릿하게 바로잡았다.
잠시 후 남자가 대열의 후미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쪽에는 정파 계열의 무과생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는 그중 한 명을 붙잡고 다짜고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뭐냐?”
“……”
뜬금없는 물음에 관도는 아무 대답 도 하지 못했다.
이에 남자는 왼손에 쥐고 있던 쇠 몽둥이를 기습적으로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얻어 맞은 관도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 다. 많이 아픈지 옆구리를 움켜쥐며 앓는 신음을 내뱉었다.
“두 번 묻게 하지 마라. 넌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뭐냐?”
남자가 쇠몽둥이 끝으로 바로 옆자리에 서 있던 관도를 지목했다. 바로 앞에서 동기가 얻어맞는 걸 봐서 인지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강호를 수호하는 쌍룡맹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기 위해섭니다.”
참으로 정석적인 답이었다.
이곳에 모인 대다수가 생각하는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황룡에 지원했 단 말이냐?”
“고, 고작이라니요. 이곳을 졸업해 쌍룡맹에 들어간다는 건 크나큰 영 광입니다.”
“크큭,어린놈이 벌써부터 세속의 때가 잔뜩 끼었구나. 쌍룡맹에 들어가는 게 크나큰 영광이다? 그게 아니라 거기 들어가서 부귀영화를 누 리고 싶은 거겠지.”
정곡을 찔렸는지 관도의 얼굴이 붉 게 달아올랐다.
현 강호에서 쌍룡맹의 위세는 하늘 을 찔렀다.
어느 정도냐면 대문을 지키는 수문 위사에게도 다들 고개를 숙일 정도 였다.
십 년 전에 끝난 군림마천과의 전 쟁은 강호의 세력 구도를 완전히 바 꿔 놓았다. 일단 구파와 다섯 개의 수호 가문이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봉문에 들어갔고 오랫동안 사 파의 종주로 군림했던 패천성은 성주가 목숨을 잃은 뒤 세 개의 세력 으로 쪼개졌다.
현재 쌍룡맹은 오대세가와 패천성 에서 독립해 나온 삼사보를 주축으 로 힘의 균형이 맞춰져 있었다. 질 적인 측면에선 오대세가가 삼사보 보다 우위에 있었고 양적인 측면에 서는 반대로 삼사보가 우위를 점하 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수의 젊 은 무인들이 쌍룡맹에 입맹코자 했 다. 물론 그 목적은 강호 정의가 아 닌 개인의 욕심에 맞춰져 있었다.
“네놈은 자격 미달이다. 꿈과 이상 을 품어야 할 그 가슴에 더러운 웅 심만 가득 채웠으니 내 수업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남자가 다시 한 번 쇠몽둥이를 휘 둘렀다.
한 줄기 사나운 바람과 함께 두 번째 희생자가 연무장을 나뒹굴었 다.
남자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남은 관도들은 쇠몽둥이를 맞지 않 겠다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다양한 답을 내놨다.
하지만 결과는 여지없는 몽둥이 세 례였다.
그렇게 대열을 돌고 돌아 남자의 걸음이 낯익은 얼굴 앞에 멈춰 섰다.
조인창이었다.
그는 잠시 긴장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저는 협사가 되기 위해 황룡 학관 에 지원했습니다.”
협사라는 단어에 남자의 적미가 움 찔했다.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내 놀란 기색을 지우고 다 시 대화를 이어 갔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멋있어 보였습니다. 어려움에 처 한 이를 돕기 위해 나서는 그 뒷모습이.”
“푸훗.”
사방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황룡 학관에 들어온 이유로는 너무 터무니없다 여긴 것이다. 그런데 남자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정신이 똑 바로 박힌 관도가 들어왔구나. 그래, 사내라면 모름지기 그 정도의 호연 지기는 품을 줄 알아야지. 넌 내 수 업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남자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조 인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 모습에 남은 관도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답을 준비했다. 잠시 후 조인창 옆에 서 있던 관 도가 자신 있게 답을 외쳤다.
“저도 협사가 되기 위해………… 커 억!”
그런데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부 한복판에 쇠몽둥이가 박혔다. 고 통이 심한지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 에 주저앉았다.
“이것들이 어디서 장난질이야? 내 눈은 장식으로 달린 줄 아느냐! 마 음에 없는 소리 지껄이려는 놈들, 입 열기 전에 충분히 심사숙고해라. 이번엔 배였지만 다음엔 얼굴이다.”
남자가 쇠몽둥이를 가볍게 들고 주 저앉아 있는 관도의 이마를 가리켰 다.
그 뒤로 꼼수는 사라졌다.
대신 작정하고 몽둥이를 맞는 이들 이 생겨났다. 그 시작은 남궁벽이었 다. 그는 남자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여지없이 쇠몽둥이가 날아왔지만 그는 처음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머리를 빡빡 민 소림 속가문 출신의 천승과 거구 에 두툼한 살을 지닌 백산호가 몸으 로 때웠다.
이윽고 설우진의 차례가 돌아왔다.
“넌 이곳에 왜 들어왔냐?”
이번에도 질문은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설우진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 시선의 대다수는 그가 몽 둥이를 맞고 보일 행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우진은 뜻밖의 대답을 했 다. 순간 남자의 얼굴에 이채가 떠 올랐다.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세 상 사람들이 최고라 말하는 황룡 학 관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몸소 겪 어 보고 싶었습니다.”
“겪어 보니 어떻더냐?”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선배 라는 작자들은 벌써부터 세력 놀음 에 빠져 있고 패기가 넘쳐야 할 동 기들은 그런 선배들 눈치 보기 바쁘 고. 지금의 황룡 학관은 치열함이 결여돼 있습니다. 제이의 군림마천 을 막겠다는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현재에 안주해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학관이 유지된다면 필시 제 이의 군림마천이 발호했을 때 힘 한 번 못 써 보고 무너지고 말 겁니다.”
설우진은 신랄하게 황룡학관의 현 재를 힐난했다.
황룡 학관은 쌍룡맹과 시기를 같이 해 문을 열었다. 당시의 설립 목적 은 군림마천과 맞설 유망한 인재들 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이었다. 실제 초기에는 그 목적이 어느 정 도 달성됐다.
군림마천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이 신진 고수들을 다수 배출해 낸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들은 중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에 발생했다.
군림마천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나자 정체성을 상실한 황룡 학관은 권 력 다툼의 도구로 전락했다. 쌍룡맹 의 두 축인 정파와 사파는 맹 내에 서 보다 많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파의 인재들을 황룡 학관으로 밀 어 넣었다.
천자 조와 지자 조로 졸업하는 대다수는 쌍룡맹의 무사로 들어간 다. 천 자 조는 상급 무사로, 지자 조는 중급 무사로. 여기서 얼마나 많은 숫자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차 후 권력의 구도가 달라지기에 정파 와 사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인재 전쟁을 치른다. 그 과정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생겨난 조직들이 바로 황룡삼천이다.
“저 자식 또 잘난 척이네.”
“그러게, 입관 환영연 때도 천자 조 선배한테 겁 없이 대들더니 이번 엔 학관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잖 아.”
“소문엔 상가의 자식이라던데 대체 뭘 믿고 저리 설쳐 대는 거지?”
설우진의 등 뒤로 웅성거림이 전해 졌다.
동기들 대다수가 불쾌하다는 반응 이었다.
‘이것들아, 내 말 고깝게 듣지 마 라.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 지 않으면 네놈들 중 절반 이상은 십년 뒤에 황룡 학관의 졸업생이라 는 꼬리표와 함께 강호에서 사라지게 될 거다.’
설우진은 동기들의 날 선 반응에 실소를 머금었다.
그는 황룡학관의 최후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 뒤. 바로, 군림마천의 이 차 발호가 시 작되고 그 칼날이 쌍룡맹을 향할 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