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10화 : 쌍룡무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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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10화 : 쌍룡무회 (3)


쌍룡무회 (3)

진추성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연기처럼 방 안에서 사라졌다. 그가 떠나고 난 뒤 기다렸다는 듯 위가렴 이 방으로 들어왔다.

“해공, 전 놈을 믿을 수 없습니다. 언제고 놈의 손에서 큰 사달이 날 것입니다.”

“마음이 여려서 그런 것을 어쩌겠 는가. 그리고 자네가 뭐라 해도 성 아는 우리 가족일세. 아직 일어나지 도 않은 일 때문에 제 식구를 내쫓자니, 안 될 말일세.”

해천인이 위가렴을 나무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 니다.”

“알았으면 됐네. 자넨 성아가 일을 시작하면 거간꾼들로 하여금 자연스 럽게 소문이 퍼지도록 만들게. 서로 에게 의심이 싹트면 분위기는 걷잡 을 수 없이 타오를 걸세.”

“그 일이라면 염려 마십시오. 이미 하오문에 연락해 두었습니다.” 

“그럼, 우린 비무 대회나 보러 가 세. 적성이 점찍어 둔 아이도 출전 한다고 하니.”

해천인이 방을 나섰다.

놀랍게도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쌍룡맹의 귀빈들이 머무는 취선청이었다.


일회전 경기가 열리는 비무대 위. 당세기가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여인과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 는 철권으로 이름 높은 사천벽가의 장녀 벽해월이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참 얄궂네. 널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벽해월이 주먹을 말아 쥐며 당세기 에게 알은척을 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 사이였다. 물론 한쪽의 일방적 인 생각이었다.

“후훗, 너야말로 낄 자리 안 낄 자리 구분 못 하는 건 여전하구나.” 

당세기는 그녀를 대놓고 무시했다. 이에 벽해월은 입술을 깨물며 전의 를 다졌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야. 그리고 벽가의 철권은 네가 생각하 는 것처럼 약하지 않아.”

벽해월이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발끝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정면으로 쇄도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당세기는 여유만만 했다. 그녀의 주먹쯤은 가볍게 막을 수 있다는 듯.

이윽고 거리를 좁힌 그녀가 매섭게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지나는 자리에 거센 바람이 일었다.

‘전보다는 제법 빨라졌네. 하지만 그뿐이야. 내 눈에는 그 움직임이 훤히 읽힌다고.’

당세기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오 른손을 뻗었다. 투로를 알고 있으니 맨손으로 그녀의 주먹을 잡겠다는 심산이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주먹 이 손에 들어왔다. 묵직한 힘이 느 껴졌다. 하지만 아픔이 전해질 수준 은 아니었다.

그런데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찌릿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했다. 마 치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순간적 으로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빈틈, 벽해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십팔연환권을 당세기의 몸에 꽂아 넣었다. 투로가 훤히 읽히는데도 당세기는 벽해월의 주먹을 막지 못했다. 그런 데 더 미치겠는 건 벽해월의 주먹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 뒤에 찾아오는 찌릿한 열기였다. 

“저거 변태 아니야?”

“에이, 설마, 다른 곳도 아니고 당 문의 자젠데?”

“저길 보라고, 벽 여협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온몸을 부르르 떨잖아. 내가 아는 어떤 놈도 맞으면 희열을 느낀다고 하던데.”

군중 속에서 큰 소요가 일었다.

귀빈석에서 조카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당규철은 수치심에 얼굴을 감싸 쥐며 심사관에게 전음을 보내 경기를 조속히 끝내도록 했다.


“방금 전 시합, 네 솜씨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데.”

“시치미 떼지 마. 학관에서 뇌기를 다룰 수 있는 건 네가 유일하잖아.” 

‘자식, 보기와 다르게 눈치가 빠르 단 말이지.’

“그래, 내 작품이다. 주제도 모르고 설쳐 대기에 몸 안에 재밌는 걸 좀 심어 뒀지.”

설우진은 당세기와 시비가 붙었을 때 정강이를 차는 척하면서 그 안에 폭뢰를 심었다. 물론 살상용은 아니 었기에 그 양은 적절히 조절했다. 폭뢰는 외부의 충격에 민감하게 반 응했다. 멀쩡하던 당세기가 벽해월 의 주먹을 막아 내고 난 뒤 발작을 일으킨 것도 그 이유였다.

“대체 그런 무공은 어디서 익힌 거 지? 네 고향인 호북 쪽에는 뇌기를 기반으로 하는 문파가 없는 걸로 아 는데.”

남궁벽은 실로 설우진의 진신내력 이 궁금했다.

반년 넘게 함께 붙어 지냈지만 그 가 설우진의 무공에 대해서 아는 건 동물적인 움직임을 기반으로 약간의 뇌기를 섞어 쓴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그걸 알려 주면 넌 나한테 뭘 알려 줄 건데?”

“…….”

“쯧쯧, 네 녀석은 거래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거래는 서로가 원하 는 걸 주고받는 행위야. 네가 내 무 공 내력을 알고자 한다면 너도 그에 준하는 걸 내줘야 한다는 거지.” 

“원하는 게 뭐냐?”

남궁벽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에 설우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손을 대고 제왕帝王 이라는 글자를 그렸다.

“서, 설마 제왕검형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야? 내 무공 내력을 알려면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지.”

설우진의 뻔뻔함에 남궁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제왕검형은 남궁세가의 직계 후손 에게만 전해지는 비전검의다. 심검 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데 그 오의가 워낙 심오해 삼백 년 이 넘는 남궁가의 역사 속에서도 이 를 연성해 낸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왜,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제왕검형은 본가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한데 어찌 그것 과 네 무공 내력을 견주겠느냐?”

“맞아, 제왕검형 대단한 물건이지. 근데 내 기준에선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그게 무슨……?”

“냉정하게 생각해 봐. 제왕검형은 평생 검술에만 매진해 온 이들도 깨 달음을 얻기 힘든 무공이야. 한데 여태껏 칼만 휘둘러 온 내가 제왕검 형의 구결을 얻는다고 해서 그걸 익 힐 수 있겠어? 괜한 시간 낭비지.” 

“그럼 왜 제왕검형을?”

“네가 제왕검형을 생각하는 만큼 나도 내 무공 내력을 중요하게 여기거든.”

‘그리고 뭣보다 그것이 알려지면 위험한 작자들이 날 잡으러 올지도 몰라.’

설우진은 뇌리에 마천오룡을 떠올렸다.

이차 마천 겁난기에 마천오룡은 각 지역을 누비며 파상 공세를 펼쳤 다.

자연지기를 바탕으로 한 그들의 마 공은 쌍룡맹의 무사들에게 재앙 그 자체였다. 정도 무공의 정순함도 마 천오룡이 펼쳐 내는 마공 앞에선 힘 을 쓰지 못했다.

설우진은 자신이 익힌 벽뢰진천이 마천오룡의 하나인 뇌룡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뇌룡이 선보였던 무공의 특징들이 벽뢰진천에서 그대로 재현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 무식한 놈들과 부딪칠 때가 아니야. 벽뢰진천의 사 단계를 넘어서지 않고선 상대가 못 돼.’

설우진은 그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아니, 되도록이면 죽을 때까지 그 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싸워서 득이 될 게 없었기에.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참으로 묘했다.

얄궂게도 그가 피하고 싶었던 이들 중 둘이나 서안에 모습을 드러낸 것 이다.


“이 싸움은 상관추가 일방적인 승 리를 챙겨 가겠군. 그럼 저쪽의 무 공을 훔쳐야 하는 건가?”

군중 틈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앞서 흑성이라 불렸던 진성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참 치열 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무대를 주 시하고 있었다.

‘거룡패도 상관추. 혈사보 소속으 로 천생 신력을 바탕으로 중도를 구 사하는 자. 성정이 거칠고 사나워 상대를 크게 해할 가능성이 높아 이 간계의 재물로 삼기에 적합하다.’ 

진추성은 상관추에 대한 정보를 머 릿속에 되뇌었다.

이름과 가족 관계, 성격과 사용하 는 무공까지.

그런데 특이하게도 시선은 상관추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와 맞상대를 하고 있는 운 검문의 공걸이었다.

운검문은 산서에 터를 두고 있는 정도 계열의 중소 문파로 가볍지만 빠르고 날카로운 검법을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경기 초반엔 공걸이 우위를 점했다.

빠른 발을 활용한 치고 빠지기로 발이 느린 상관의 빈틈을 공략한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공격은 하는데 결정적인 한 방이 터지질 않았다.

결국 체력이 소진된 시점에서 분위기가 상관추 쪽으로 넘어갔다. 쾅쾅쾅.

상관추는 자기 키만 한 대도를 풍 차처럼 맹렬하게 휘돌리며 공걸을 압박했다. 힘으로는 당해 낼 수 없 다는 걸 알기에 공걸은 검으로 맞부 딪치기보다는 빠른 발을 이용해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어디 이번에 도 도망칠 수 있나 보자.”

상관추가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 대결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사용 하는 보법이었다. 순식간에 둘 사이 의 거리가 좁아졌다.

그의 느린 발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공걸은 미처 피할 틈을 잡지 못했다. 공걸은 무리인 걸 알면서도 내력을 끌어올렸다.

캉.

공걸의 가슴 어름에서 날카로운 충 돌 음이 일었다.

충격이 큰지 금세 얼굴이 창백해졌다.

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 이었다. 결국 공걸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손에서 검을 놨다. 활짝 열린 가슴팍.

상관추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거 침없이 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도신을 따라 붉은 핏물이 비산했다.

승패가 확실해졌음에도 상관추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경기장 아래에서 초조하게 그 모습 을 지켜보던 운검문의 무사들이 발 을 동동 굴렀다.

‘네놈 따위가 감히 날 망신 주다 니. 다시 그 손에 검을 쥐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상관추가 도를 회수한 뒤 재차 공 걸의 오른손을 노렸다.

하지만 도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 가지 못했다. 갑자기 난입한 검 한 자루가 간발의 차이로 도신을 쳐올 린 것이다.

“그쯤하지, 승부는 난 것 같으니.” 

명인전의 심사관 남궁천호가 검을 거두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는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칠검 중 하나였다.

상관추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그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 천천히 도를 거뒀다.

“혈사보 상관추 승!”

남궁천호가 승패를 결정지었다. 무대 왼편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터 져 나왔다. 그곳에 자리한 이들은 대부분 사파에 적을 두고 있었다. 상관추는 그들의 환호에 도를 머리 위로 치켜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칼 끝을 남궁천호 쪽으로 돌렸다. 노골 적인 도발이었다.

하지만 남궁천호는 그쪽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무대 위에 쓰러져 있 던 공걸을 부축해 아래로 내려갔다. 이에 사파 쪽의 함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하하, 형님, 축하드립니다. 운검 문의 공걸이 검좀 쓴다기에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역시 대단하십니 다.”

일회전을 가뿐하게 승리로 장식한 상관추는 대회장 근처 술집에서 그 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사내와 축하 주를 나누고 있었다.

사내는 상관추의 친동생인 상관홍 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읜 상관추는 하나뿐인 동생을 자기 자식처럼 아꼈 다.

하지만 그 과한 애정 탓에 상관홍 은 어느새 개망나니가 되어 있었다. 사소한 시비로 사람을 줘 패는 건 예사고, 여자가 고플 때는 여염집 규수를 찾아가 강제로 욕구를 풀기 도 했다.

그런데 그 무수한 죄를 짓고서도 상관홍은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피 해자들이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상 관추가 무서워 죄를 고변하지 못해 서다.

“동생아, 이번 쌍룡무회를 계기로 상관가문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 다. 넌 이 형을 대신해 가문을 이어야 하니 부지런히 패력도를 익히도 록 해라.”

상관추의 두 눈에 강인한 의지가 드러났다.

그의 뿌리인 상관세가는 한때 강호 의 한 축을 담당했을 정도로 크게 흥했었다. 전성기에는 방계를 모두 합쳐 그 숫자가 오백에 이를 정도였 다.

그런데 과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가세를 키우던 와중에 중천오가 중 하나인 북리세가와 충돌한 것이다. 그 시점에서 사과를 했으면 전쟁까 지 비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깝 게도 당시의 가주는 욕망에 눈이 멀 어 있었다. 결국 상관세가는 북리세가에 의해 지도상에서 그 이름이 지 워지고 말았다.

“형님,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드리 려고 했는데 최근에 패력도가 육성 의 경지를 넘어섰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네, 형님과 비교하면 아직도 많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더 노력 할 겁니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십년 내에 이 형의 경지를 분명히 넘어설 수 있을 게다. 자, 마시자.”

상관추가 먼저 술잔을 시원하게 들 이켰다. 이에 질세라 상관홍도 급하 게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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