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13화 : 분란 조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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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13화 : 분란 조장 (2)


분란 조장 (2)

상관추가 동생의 상처 부위에서 떼 어 낸 살점 조각을 석곡산에게 던졌 다. 석곡산은 살점을 받아 들고 그 안쪽에 남아 있는 흔적을 확인했다. 선명한 부채꼴 모양.

자신이 알고 있던 선풍검의 특징과 거의 일치했다. 석곡산은 혹시나 하 는 마음에 강명국을 쳐다봤다. 하지 만 그는 완강히 부인했다.

“이런 흔적이 왜 남겨졌는지는 모 르겠지만 절대 우리가 한 일이 아니오.”

“역시 구역질 나는 정파놈들 답구 나.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부인을 하다니. 뭐, 좋아, 어차피 네놈들하 고 한가하게 대화나 나누려고 찾아 온 건 아니니까. 대신 각오해야 할 거다. 진심으로 네놈들을 때려죽일 생각이니까.”

상관추가 비호처럼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운검문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상관추의 대도가 떨어 졌다.

그 충격에 식탁이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운검문의 사형제들은 부랴부랴 검 을 뽑아 식탁 파편들을 쳐냈다.

하지만 워낙 순간적으로 들이치는 상황이라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형제들 중 가장 무공이 약한 채 월이 가슴에 파편을 얻어맞고 휘청 거렸다. 여자에게는 급소나 다름없 는 곳이라 충격이 꽤 커 보였다. 

“월아!”

석곡산이 다급히 채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보다 상관추가 한발 앞서 움직였다.

푹.

섬뜩한 파륙음이 일었다. 채월의 가녀린 목덜미에 상관의 대도가 틀어박혀 있었다.

도를 뽑아내자 피가 분수처럼 뿜어 져 나왔다.

그 피는 한발 늦게 찾아온 석곡산 의 몸을 적셨다.

“워, 월아.”

석곡산이 채월을 끌어안고 애타게 그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목덜미에 도가 박힌 순간 숨이 끊어졌다.

“어떠냐? 친인을 잃은 심정이.” 

상관추가 도에 묻은 피를 털어 내 며 석곡산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분노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석곡산은 검을 고쳐 잡고 맹 렬하게 상관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그 기세에 비해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상관추는 제자리에서 사위에 휘몰아쳐 오는 선풍검 을 가볍게 튕겨 냈다.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웠지 만 단단한 바위를 무너뜨리기엔 힘 이 달렸다.

결국 채월에 이어 석곡산도 가슴에 일격을 허용했다.

지혈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처의 정도가 깊었다.

상황이 그 지경이 되자 석곡산은 남은 사형제들만이라도 살려 보내기 위해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다들 도망쳐!

상관추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던 사형제들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우리 힘으론 놈을 못 당해. 내가 잠시라도 놈의 발을 묶어 둘 테니 곧장 이곳을 나가 쌍룡무회 집행부 를 찾아가.

-어떻게 사형만 놔두고 가요? 강명국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 낼 듯한 얼굴로 석곡산을 바라봤다.

-대사형으로서 너희들에게 마지막 으로 하는 부탁이다.

석곡산이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전해지기도 전에 그의 가슴팍에서 도신이 삐죽 튀어 나왔다.

그의 신경이 사형제들에게 가 있는 사이 상관추가 기습적으로 뒤로 돌아 나가 등을 찌른 것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너희 사형제들은 이곳에서 단 한 명도 살아 나가지 못한다, 내 동생의 목숨값을 갚기 전까진 누구도.”

상관추가 석곡산의 몸에서 도를 빼 낸 뒤 남은 세 명에게 살기 가득한 눈빛을 뿌렸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두려움. 세 사람은 상관추가 뿜어 대는 살 기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눈앞에서 대사형을 잃은 게 충격이 컸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바들바들 떨 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렸 다. 그리고 그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설우진이었다.

설우진은 피로 얼룩진 식당을 바라 보며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기분 좋게 밥 먹으러 왔는데 초장부터 그 기대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거 밥 먹긴 글렀군. 애들 불러 서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설우진은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비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 다.

그런데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 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살기에 눌려 있던 강명국이 가까스로 용기를 내 설우진에게 달려온 것이다.

“도와주십시오. 저 악적이 저희 사형제들을 모두 죽이려 하고 있습니 다.”

강명국이 절박한 심정으로 설우진 에게 구명을 청했다.

하지만 설우진의 반응은 시큰둥했 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상황이다. 눈앞 의 장면만 놓고 본다면 칼을 든 쪽 이 악당 같지만 복잡하게 은원이 얽 혀 있는 경우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었다. 해서 설우진은 강명국의 청 을 거절하고 다시 후원으로 발걸음 을 돌렸다.

설우진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생각했다, 애송이, 네놈이 철모 르고 끼어들었다면 내 칼에 그 희멀 건 얼굴이 반쪽으로 갈라졌을 거 다.”

그 말에 밖으로 나가려던 설우진이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문고 리를 손에서 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 다.

“방금 전의 그 말, 나한테 지껄인거냐?”

시선이 교차하는 중에 설우진이 거 칠게 말을 뱉었다. 갑작스러운 설우 진의 태도 변화에 상관추는 살짝 당 황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기세 싸움 에서 질 수 없다는 듯 두 눈에 잔 뜩 힘을 주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 네놈한테 한 소리다. 꼴에 사내라고 자존심이 상했나 본데, 조 용히 놔줄 때 꺼져라. 이 도가 네놈 을 표적으로 삼는 순간 넌 죽는다.” 

“누가 들으면 도왕쯤 되는 줄 알겠 네. 건방지게 입으로만 떠들어 대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보시지.”

둘 사이에 심한 언쟁이 붙었다. 양쪽 다 자존심이 강한 성격인지라 누구 하나 쉽사리 수그리려 들지 않 았다.

결국 거친 말다툼은 피 튀는 몸싸움으로 번졌다.

선공은 상관추의 몫이었다. 연장자 라서 선공을 양보한다? 그런 배려따윈 사파에 존재하지 않았다.

쾅쾅쾅.

상관추의 도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누가 중도 아니랄까 봐 그의 공격 이 지나간 자리에는 큼지막한 상흔 이 남았다.

가장 고통을 받는 건 역시나 식탁 과 의자였다.

그는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은 모두 도로 쳐 냈다. 타고난 신력 에 내력까지 더해지니 그 위력은 가 공 지경이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공격이 이어짐 에도 정작 쓰러뜨려야 할 대상은 멀 쩡했다.

설우진은 야수안을 십분 활용해 상 관추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흘려보냈다. 쾌도가 아니었기에 피 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만, 이참에 뇌력침이나 한번 시 험해 볼까? 보아하니 절정의 초입에 는 든 것 같은데.’

설우진은 성난 소처럼 정신없이 달 려드는 상관추를 보면서 최근에 완 성한 뇌력침을 떠올렸다.

뇌력침은 이름 그대로 뇌기를 머금 은 바늘을 뜻했다. 비상시에 암기 대용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만 든 것인데 마침 바지춤에 하나가 들 어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요리조리 잘 도 피하는구나. 하지만 더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설우진이 뇌력침을 어떻게 쓸까 고 민하는 사이 상관추가 한껏 기세를 끌어 올렸다. 요리조리 공격을 피해 가던 설우진을 식당 구석까지 밀어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 주마.” 

운신의 폭이 좁아진 설우진을 향해 상관추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천봉낙도.

패력도의 후반 삼절초 중 하나로 태산도 부술 정도의 강맹한 위력을 자랑했다.

부웅.

상관추의 거도가 웅혼한 기세를 뽐 내며 설우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 렸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라 아까처럼 피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설우진이 바지춤에 손을 가져가더 니 이내 머리 위로 힘차게 무언가를 내던졌다.

그의 손끝에서 빠져나온 것은 은은 하게 빛나는 뇌력침이었다. 자수를 놓는 데 썼었는지 그 끝에는 붉은 수실이 달려 있었다.

푸욱.

뇌력침이 상관추의 도보다 한발 앞 서 그의 오른쪽 손목을 꿰뚫었다. 상관추는 불의의 일격에 꽤나 당황 한 눈치였지만 이번 한 번만 공격에 성공하면 끝나는 일이었기에 고통을 참고 끝까지 도초를 이어 갔다.

설우진의 눈앞에 도가 떨어지고 있 었다. 그대로 공격이 이어진다면 몸 이 반쪽으로 쪼개질 수도 있었다. 한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설우진 은 입가에 한 가닥 미소를 그리며 수실을 쥐고 있던 손을 오른편으로 거칠게 휘둘렀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상관추의 도가 설우진의 오른편에 틀어박혔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허무하게 공격이 막혀 버린 상관추 가 놀란 얼굴로 설우진을 바라봤다. 이에 설우진은 대답 대신 손에 쥐고 있던 수실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 순간, 상관추의 손목 근처에서 바늘 하나가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이, 이건……?”

“네 회심의 공격을 망쳐 버린 원흉 이야. 녀석의 꼬리에 붙어 있던 이 수실을 이용해서 마지막 순간에 도 세의 방향을 틀어 버렸거든.”

설우진이 바늘에 연결되어 있는 수 실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이해가 안 돼. 힘을 줘서 당겼다 면 도세가 틀어지기도 전에 바늘이 다시 밖으로 빠져 나왔을 텐데?” 

상관추는 여전히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이에 설우진은 뇌력침에 가볍게 뇌 기를 불어넣었다. 수실을 타고 바늘 로 흘러 들어간 뇌기는 놀랍게도 꼬리 부분에서 뭉쳐졌다.

뭉쳐진 뇌기 덕에 바늘은 아무리 힘을 줘도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뇌룡포박이란 기술이야. 지금처럼 바늘과 수실만 있으면 상대의 손발 을 꽁꽁 묶을 수 있지. 이걸로 궁금 한 건 대충 해결이 된 것 같은데 슬슬 마무리를 짓자고.”

설우진이 뇌력침을 밖으로 빼냈다 가 다시 한번 앞으로 내던졌다. 이 번 목표는 상관의 손목이 아닌 손 등이었다. 상관추가 통증을 느낄 새 도 없이 단번에 손등이 꿰뚫렸다. 한데 그것으론 만족하지 못했는지 뇌력침은 상관추가 손에 쥐고 있던 도병까지 뚫고 지나갔다.

“넌 오늘 이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 을 끊는 거야.”

“서, 설마?”

상관추가 불안한 눈빛으로 도를 쥔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도병을 꿰뚫 고 나온 뇌력침이 피를 머금고 요요 스러운 빛을 내고 있었다.

‘도를 놔야 돼.’

본능적으로 상관추는 제 손에 들고 있는 도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것 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급히 손을 펼쳐 도를 놓 으려 했다. 한데 그 순간에 설우진 이 수실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도 병을 그의 오른손에 고정시켰다.

“살려고 발버둥 치지 마. 네놈은 이미 내게 도를 겨눈 그 순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

설우진이 벼락처럼 상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뇌력침에 묶여 있던 상관의 도가 제 주인의 목줄 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상관추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도를 피하려 했지만 팔이 몸에 붙어 있는 이상 그것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 까웠다.

결국 그의 목덜미에 칼이 틀어박혔 다. 정확히 급소를 노렸기에 상관추 는 신음 한 번 제대로 내뱉지 못하 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거 제법 쓸 만한데. 활용하기에 따라서 다수와의 싸움에서도 꽤 큰 위력을 발휘하겠어.’

설우진은 상관추의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 후 뇌력침을 회수했다. 무쇠로 만들어진 도병을 뚫고 지나 갔음에도 뇌력침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저어기…….”

설우진이 뇌력침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을 때 운검문의 강명국이 말 을 걸어왔다.

눈앞에서 자신보다 몇 수 위에 있 는 상관추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본 뒤라 그런지 설우진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난 말 미적거리는 거 질색이니까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설우진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행여라도 그의 심기가 상했을까 강 명국은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 인사라면 됐어. 어차피 당신 네들을 도우려고 나선 거 아니니 까.”

“그래도 어찌….”

강명국은 어떻게든 설우진과 작은 연이라도 맺고자 했다. 그 정도 되 는 고수와 연을 맺어 놓으면 자신이 나 사문인 운검문에도 큰 도움이 될거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설우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노련한 그의 눈엔 강명국의 숨은 속내가 훤히 비친 것이다.

“당사자가 싫다고 하잖아. 그리고 오늘 일 함부로 떠벌리지 마. 난 내 이름이 구설수에 오르는 거 딱 질색 이거든. 저 자식은 아까 내가 말한 대로 죄책감을 못 이겨 자진한 거 야.”

“그걸 믿을 사람이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당신 역할이 중요한 거 야. 아까 그놈 꼴 나고 싶지 않으면 말 잘해.”

설우진은 강명국에게 단단히 경고 한 뒤 후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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