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27화 : 쌍룡 입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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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27화 : 쌍룡 입성 (2)


쌍룡 입성 (2)

광룡가가 무너졌다. 그 사실에 녹 림이 크게 들끓었다.

총표파자의 지휘 아래 조사단이 꾸 려졌다. 그 숫자는 기백에 달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조사단이지 그들 은 광룡가가 무너진 이유를 찾기보 다는 광룡가의 재물을 찾는 데 혈안 이 되어 움직였다.

창고 안에는 적잖은 양의 재물이 남겨져 있었다. 

물론 그 값어치는 설우진이 가져간 것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조사단들 사이 에선 크고 작은 신경전이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양의 재물을 얻 고자 한 것이다.

결국 총표파자가 나서 중재를 했 다.

분란이 일지 않도록 조사단에 참여 한 모든 녹림십팔가에 균등하게 재 물을 나눠줬다.

원하는 것을 얻은 조사단은 뿔뿔이 흩어졌다, 광룡가가 무너진 이유는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로.


“호야, 황룡에 좀 다녀와야겠다.”

정갈하게 정돈된 방 안.

쌍룡맹의 장로인 모용황이 약관 무 렵의 청년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 다. 청년의 이름은 검궁호로 후기지 수들로 구성된 비룡대의 일원이었 다.

“황룡 학관엔 갑자기 무슨 일로?” 

“일전에 그곳에 다니는 관도에게 맹주님의 고희연 선물을 부탁한 적 이 있다.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곤 란하니 네가 직접 가서 받아 오도록 해라. 이건 오가는 여비다.”

모용황이 일을 부탁하며 전낭을 건 넸다. 검궁호는 안 받겠다며 손사래 를 쳤지만 모용황의 귀신같은 손놀 림은 막을 수가 없었다.

“꼭 맹주님의 고희연 전에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

모용황이 다시 한 번 신신당부했다.

이에 검궁호는 바로 방으로 가 간 단하게 짐을 꾸린 뒤 곧장 맹을 나 섰다.


“누구?”

설우진이 예고 없이 찾아온 낯선 손님에게 부스스한 얼굴을 비췄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검궁호 라 합니다. 모용 장로님께서 설공 자에게 부탁한 물건이 있다고 하셔 서 제가 대신 가지러 왔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지난번 쌍룡무 회에서 맹주의 선물을 만들어 주기로 했었지! 이거, 큰일인데.’

모용황의 이름을 듣는 순간 설우진 은 아차 싶었다.

단예가 납치되는 큰 사건을 겪으면 서 그 약속을 깜빡 잊은 것이다.

“맹주님의 생신이 언제죠?”

설우진이 다급히 물었다.

이에 검궁호는 친절히 나흘후라 답했다.

‘쌍룡의 총단이 있는 하남 정주 까지 경공술을 이용해 달리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어.’

“그쪽한테는 미안한 얘긴데 아직 작업이 끝나질 않아서 물건은 제가 직접 가져다줘야 할 것 같네요.”

“정주는 이곳에서 꽤 멉니다. 말을 타고 달려도 사흘은 족히 걸리는 거 리인데………….”

“그건 걱정할 것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뛰는 것만큼은 자신 있으니 까.”

설우진은 자신의 튼튼한 종아리를 내보이며 검궁호를 안심시켰다. 검 궁호는 한참을 망설이다 물건이 완 성된 뒤에 함께 움직이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검궁호가 떠난 뒤 설우진은 부랴부 랴 일품점 서안 지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설 공자님.” 

서안 지점에 들어서자 황월련이 그 를 반겼다.

“아, 오랜만이오, 황 소저. 내가 사정이 생겨서 그러는데 공방 좀 빌려 줄 수 있겠소?”

“공자님이 필요하시다면 당연히 빌 려 드려야죠.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황월련이 부리나케 공방으로 뛰어 갔다.

서안 지점의 공방은 건물 삼 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 공방의 역할은 본점처럼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수선하는 데에 국한돼 있었 다.

공방 기술자들은 부지런히 바느질 을 해 댔다. 옷을 짓는 것만큼이나 수선도 까다로운 공정이었기에 바느 질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점심도 거르고 다들 일하느라 수 고가 많네요. 더 늦기 전에 식사들 하고 와요.”

황월련이 공방 기술자들에게 식사 를 권했다.

한데 하나같이 당혹스럽다는 반응 이었다. 그도 그럴 게 공방 기술자 들은 눈앞에 서 있는 황월련과 불과 이각여 전에 함께 식사를 마친 상태 였다.

그때 눈치 없는 기술자 하나가 불 쑥 입을 열었다.

“아가씨, 아까 저희랑 식사…”

“알겠습니다. 천천히 다녀오겠습니 다.”

연륜 있는 중년 여인이 동료의 입 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이에 황월련 은 고맙다는 눈짓을 보내며 공방을 나서는 그녀에게 은전을 쥐어 줬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방해꾼들을 내보낸 후 황월련은 설 우진에게 공방을 공개했다.

“지금 급해서 그러는데 흑라 좀 구 해 줄 수 있소?”

“음, 아마 창고를 뒤져 보면 한 포 정도는 나올 거예요. 한데 그건 왜……?”

“강호의 높은 양반한테 드릴 생신 선물을 만들어야 하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 주시오.”

설우진이 급하게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공방 한쪽에 자리를 잡았 다. 그러고 부지런히 손을 놀려 필 요한 색상의 수실들을 한쪽에 가지 런히 놨다.

일각여 뒤.

이마에 땀방울이 그득히 맺힌 황월 련이 흑라를 안고 공방으로 들어왔 다.

“고맙소.”

설우진은 짧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흑라를 넓게 펼쳤다. 그러고 자수가 들어갈 부분에 능숙한 솜씨로 밑그 림을 그려 나갔다.

그의 손끝이 흑라 위를 스칠 때마 다 한 떨기 매화가 나뭇가지 끝에 피어났다.

‘대단해, 어쩜 설 공자님은 못하는 게 없지? 바느질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싸움도 잘하고. 중원 어 딜 가도 저만 한 남자를 만나긴 힘 들 거야.’

황월련의 두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 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설우 진은 마지막 밑그림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음, 매화만 그려 넣으니 영 심심 한데. 명색이 쌍룡맹의 맹주가 입을 건데 뭔가 더 들어가야 하지 않을 까?’

설우진은 거의 완성되어 가는 밑그림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바로 그때, 공방 한 면에 걸려 있 는 족자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 다. 그 안에는 백학을 타고 노니는 신선들의 모습이 수놓여 있었다. 

‘바로 저거야, 백학!’

설우진은 족자에서 답을 얻고 매화 나뭇가지에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백학을 그려 넣었다.

완성된 밑그림은 화산의 정취가 물 씬 풍겼다.

뒤이어 설우진은 곧장 자수에 돌입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기에 한시 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설우진의 손이 눈부신 속도로 흑라 위를 노녔다. 머릿속으로 실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먼저 떠올린 후 손 끝에 뇌기를 실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설우진이 긴 숨을 몰아쉬며 손에 쥐 고 있던 바늘을 놨다. 그러고는 만 족스러운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봤 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은은한 광 택을 뽐내며 서 있는 매화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위에는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 듯 날개를 펄럭이는 백학 한 마리가 흑요석처럼 검은 눈으로 정 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한 것치고는 기대 이 상의 작품이 나왔는데. 이 정도면 허수아비 맹주도 만족할 테지.”

설우진은 자신의 작품에 충분히 만 족했다. 머릿속에 그렸던 모습이 눈 앞에 그대로 재현됐기 때문이다. 옷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자수가 완성되자 설우진은 나머지 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잠시 후 온전 한 형태의 장포가 완성됐다.

“공방 잘 썼소. 언제 시간 되는 대 로 밥이나 한 끼 합시다.”

설우진은 완성된 장포를 둘둘 말아 쥐고는 급하게 공방을 나섰다. 황월 련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뜨겁게 달궈진 자신의 몸을 감 싸 안았다.

천하 패권을 움켜쥐고 있는 쌍룡맹.

그 쌍룡맹의 총단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였다. 정주는 고래로부터 쌍룡맹과 같은 권력 기구들이 자주 자리를 잡았었 다. 이는 사통팔달로 뚫려 있는 지 리적인 요건이 크게 작용했다. 정주에서 가장 노른자위 땅으로 불 리는 천하로, 그 한복판에 쌍룡맹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 척에 이르는 높은 담벼락. 그 너머로 크고 작은 전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긴가?”

거대한 철문 앞에 설우진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는 사흘 전, 서안을 빠져나와 곧 장 정주로 달렸다. 처음엔 검궁호와 함께했었다. 하지만 그는 하남성의 경계를 지날 무렵에 지쳐서 나가떨 어졌다. 설우진의 속도를 따라잡느 라 내력을 과도하게 소모한 것이다. 이후 설우진은 홀로 정주까지 내달 렸다.

발길을 붙잡는 혹이 없으니 그 속 도는 전보다 되레 빨라졌다. 덕분에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두 시진 정도 앞서 정주에 도착했다.

“멈춰라.”

설우진이 문 앞으로 다가서자 입구 를 지키고 있던 수문위사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들의 가슴에는 쌍룡맹을 상징하 는 두 마리 용이 서로의 몸을 껴안 고 있었다.

“황룡학관의 설우진입니다. 모용 장로님의 부탁으로 맹주님의 생신 선물을 가져왔으니 문을 열어 주십시오.”

설우진이 자신의 신분과 방문 목적 을 밝혔다.

“맹주님의 생신 선물을 가져왔다 고?”

수문위사 중 하나가 날카로운 기세 를 뽐내며 설우진의 앞으로 다가섰다.

‘뭐야? 이 반응은.’

설우진은 당황스러웠다. 조용히 물 건만 전해 주고 갈 생각이었는데 어 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 다.

“모용 장로님의 부탁으로 가져온 물건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이틀 전, 맹주님을 시해하려는 시 도가 있었다. 그래서 외부인의 출입 을 철저히 단속하라는 윗선의 지시 가 있었다. 하니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명패와 선물로 가져왔다는 그 물건을 이쪽으로 넘겨라.”

수문위사의 서슬 퍼런 기세에 설우 진은 품에 지니고 있던 관도패와 흑 색 장포를 넘겼다. 수문위사는 관도 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는 다른 동료를 불러 군사부에 전하게 했다. 그 뒤로 이각여의 시간이 흘렀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뜻밖 의 얼굴이 설우진 앞에 등장했다.

“오랜만이다, 우진아.”

“유, 윤이 형!”

설우진을 마중 나온 이는 무한에서 연을 맺은 제갈윤이었다. 그는 특유 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설우진 에게 악수를 건넸다.

설우진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바쁘 게 대화를 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얼마 전에 맹으로 불려 왔다. 아 버님께서 공부는 그쯤하고 맹을 위 해 일을 하라고 하시더구나.”

“벼락출세하셨네요?”

“출세는 무슨, 고생길이 훤히 열린 게지. 그나저나 맹주님 생신 선물을 가져왔다고?”

“네. 모용황 장로님이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셨거든요. 마침 잘됐네요. 맹 내 분위기도 안 좋은 것 같으니 형이 대신 장로님께 전해 주세요.” 

설우진이 수문위사의 손에 들려 있 는 흑색 장포를 가리켰다.

이에 제갈윤이 수문위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수문위 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설우진 에게 장포를 돌려줬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질 순 없지. 내 처소로 가서 한잔하자.”

“학관도 빠지고 온 터라 빨리 돌아 가 봐야 하는데요.”

“그런 문제라면 걱정 붙들어 매. 내가 사유서 하나 써 주면 가볍게 해결될 일이니까.”

제갈윤이 설우진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쥐며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 를 머금었다.


“이야, 수석 보좌라는 자리가 대단 하긴 한가 보네요. 무사들이 앞다퉈 저리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제갈윤의 손에 이끌려 쌍룡맹 내부 로 들어온 설우진은 옮기는 걸음마 다 스쳐 가는 무사들의 인사를 받았 다. 낭왕 시절에도 겪어 보지 못한 호사였다.

“후훗, 부러우냐?”

“이런 상황에 안 부러워할 사내가 있겠어요?”

“부러워 마라. 어차피 수석 보좌라 는 자리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 다. 겉은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매 일같이 이어지는 격무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제갈윤은 수석 보좌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수석 보좌는 군사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군사가 해야 할 업무를 한발 앞서 수행했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 하는 데 있어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 을 아끼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수석 보좌는 언제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은 군사가 외출하거나 자는 시간뿐이었다.

“높은 자리라고 다 편한 건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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