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29화 : 비밀 호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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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29화 : 비밀 호위 (1)


비밀 호위 (1)

황유하의 고희연을 하루 앞두고 그 의 거처에 오랜만에 젊은 손님이 방 문했다. 황유하는 난을 치던 손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는 고희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홍안의 외모를 자랑했다. 이 마와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기 는 했지만, 그 정도는 고희라는 나 이를 감안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설우진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뒤에는 제갈윤 대신 장로인 모 용황이 서 있었다.

“이 아이는 누군가?”

황유하의 시선이 모용황을 향했다. 모용은 간단하게 설우진의 이력 을 설명했다.

“호오, 그럼 이 아이가 중원을 한 때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의 손이 란 말인가?”

“네. 저도 처음 만났을 땐 긴가민 가했는데 이번에 가져온 맹주님의 생신 선물을 보고 확신하게 됐습니 다.”

“쯧쯧, 작년에 그 타박을 듣고서도 또 선물을 준비한 겐가?”

“이번엔 맹주님 맘에 쏙 드실 겁니다. 자, 입어 보시지요.”

모용황이 흑색 장포를 조심스럽게 황유하에게 건넸다. 황유하는 달갑 지 않은 표정으로 장포를 아래로 활 짝 펼쳤다.

그런데 장포를 본 후 그의 눈빛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네놈, 정체가 뭐냐?”

황유하가 갑자기 설우진에게 손을 뻗어 왔다. 상대를 제압하는 데 쓰 이는 금나술이었다. 설우진은 반사 적으로 그의 손길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간발의 차이로 가슴 어름에 자리하 고 있던 옷깃이 살짝 찢겨 나갔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설우진이 발끈해 소리쳤다. 얼굴까 지 붉어진 것이 꽤나 열이 받은 눈 치였다. 이에 다급히 모용황이 중재 에 나섰다.

“맹주님, 그 옷이 그렇게 맘에 안 드십니까?”

“옷 때문이 아닐세. 자네, 저 아이 가 마공을 익혔다는 걸 알고 있었 나?”

“마, 마공이라니요!”

모용황이 소스라치게 놀라 반문했다.

마공은 쌍룡맹에 있어 역린과도 같 은 존재였다. 마천의 근간이 되는 무공이 마공이기 때문이다.

“이 옷에 마기가 깃들어 있네. 뇌기라는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건 분명 한 마길세.”

황유하가 장포를 매만지며 단정 짓 듯 얘기했다.

“지금 맹주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인가?”

모용황이 허리에 걸린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사나운 눈빛으로 설우진의 입을 노려봤다. 대답 여하에 따라 공격도 불사할 기세였다.

‘빌어먹을, 저 작자가 화산의 진전 을 이은 도문의 고수라는 걸 간과했 어. 이럴 줄 알았으면 뇌기를 쓰지 않고 자수를 했을 것을.’

설우진은 아차 싶었다. 그가 익힌 벽뢰진천은 마공으로 분류되는 무공 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이들은 벽뢰진천 에 담긴 마기를 읽어 낼 수 없었다. 거칠고 사나운 뇌기가 마기를 감싸 고 있기 때문이다.

뇌기 속에 감춰진 마기를 읽어 내 기 위해선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하나는 화경의 경지를 넘어서 야 하고 다른 하나는 도문심법에 정 통해야 했다.

한데, 황유하는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어서 대답해라.”

모용황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설우진은 한참의 망설임 끝에 어렵게 입을 뗐다.

“마공을 익힌 건 사실입니다. 하지 만 기연을 통해 얻은 것일 뿐 마천 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그 말을 어찌 믿느냐?”

“믿고 안 믿고는 두 분의 몫입니 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절 끝까지 마 천의 주구로 호도하신다면 그때는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설우진이 벽뢰진천의 뇌기를 극성 으로 끌어 올렸다.

오해가 풀리지 않으면 맹주고 장로 고 다 때려눕히고 쌍룡맹을 빠져나 갈 작정이었다.

다행히 그가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 지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황유하가 모용황의 검을 아래로 끌어 내린 것이다.

“후훗, 듣던 대로 기백이 넘치는 젊은이로군. 아주 보기 좋아.” 

“……”

“그렇게 멀뚱히 쳐다보고 있지 말 고 이쪽으로 앉지. 사흘 전에 오랜 친우가 군자침을 보내왔다네. 그 성 질 머리를 보니 차보단 술을 더 좋 아할 것 같지만 대낮부터 술을 마실 순 없으니 오늘은 좋은 차로 만족하 게.”

“이게 지금 무슨 뜻입니까?”

설우진은 갑작스럽게 바뀐 황유하 의 태도에 한껏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냥 노인네의 변덕이라 생각해주게.”

“제 말을 믿어 주시는 겁니까?”

“애당초 자네가 마천과 연관이 있 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네. 그들이 품고 있는 마기는 자네의 것보다 훨 씬 농밀하고 진득거리거든.”

황유하는 설우진의 물음에 답하며 군자침을 우려낸 물을 찻잔에 덜어 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설우진은 전신에 한껏 끌어 올렸던 뇌기를 단 전으로 다시 갈무리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노인네로군. 어 쩌면 허수아비 맹주라는 수식어도 스스로 만들어 냈을지 모르겠어.’

설우진은 문득 그런 의심이 들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 실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어서 맛을 음미해 보게.”

황유하가 찻잔을 내밀었다. 설우진 은 잔을 받아 들고는 조심스럽게 입 으로 가져갔다. 그윽한 찻잎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자넨 이 강호가 얼마나 갈 것 같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본맹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 걸세.”

황유하의 깊은 두 눈이 맑게 빛났다.

설우진은 잠깐 동안 답을 망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섣부른 판단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쌍룡맹은 앞으로 십 년 이상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그 판단의 근거는?”

“쌍룡맹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 계 때문입니다. 쌍룡맹은 하나의 몸 에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습니 다. 두 머리가 한곳을 바라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두 머리가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된다면 큰 사달이 빚 어질 것입니다.”

설우진이 냉정하게 쌍룡맹의 현주 소를 짚었다. 짧은 순간 황유하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자넨 그 두 머리를 어찌했으면 좋 겠는가?”

“함께할 수 없다면 한쪽은 과감하 게 쳐내야지요.”

“많은 피가 흐를 텐데?”

“아무런 희생도 치르지 않고 원하 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요?”

설우진이 담담한 어조로 반문했다. 그는 오랜 낭인 생활을 통해 뼈저 리게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 은 바로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라 는 사실이었다.

“허허, 얼굴은 앳되어 뵈는데 세상 살이가 꽤나 고단했던 모양이군. 그 래, 자네 말이 맞아. 아무런 희생도 치르지 않고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순 없지.”

미소 짓는 황유하의 얼굴이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자네, 내일 다른 일정이 있나?”

“아침 일찍 학관으로 돌아갈까 합 니다.”

“아쉽군. 오랜만에 맘이 맞는 어린 친구를 만나서 더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는데. 언제든 이곳에 들를 일이 있으면 찾아오게. 그때는 심각한 얘 기 대신, 술이나 한잔 걸치세.”

황유하는 다음을 기약하며 설우진 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뒤돌아 나오는 설우진의 가슴엔 무거운 쇳 덩이가 얹어졌다.

‘이거 괜히 찝찝하네. 그냥 몸조심 하라고 슬쩍 언질이라도 해 줄까?’

설우진은 황유하의 얼굴을 보며 진 지하게 고민했다. 그에게 일어날 일 을 뻔히 알고 있는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 다.

한데, 문제는 그가 말을 해 준다고 해도 맹주가 그 사실을 믿을지 확신 이 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끝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무 거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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