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3화 : 흉수 출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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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4권 – 3화 : 흉수 출현 (3)


홍수 출현 (3)

“흠, 통천문이 지키던 거라면 벽력 신마의 ………….”

순간 해천인의 얼굴이 벼락을 맞은 듯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동안 답을 가까이 두고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허허, 나도 늙었나 보군, 설빙무진 을 제압했다고 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자네, 적성에게 들었나 보군?”

“네. 술자리에서 한숨을 내쉬며 얘기하더군요, 꼭 손에 쥐어야 할 힘을 눈앞에서 놓쳐 버렸다고.”

“안타까운 일이지. 만약 적성이 계 획대로 벽력신마의 마공을 손에 넣 었다면 일이 이렇게 어렵게 풀리지 는 않았을 걸세.”

해천인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묻 어났다.

다섯 수호 가문은 각각 긴 세월 천하를 경동케 했던 다섯 마인들의 무덤을 지켜 왔다.

그들이 남긴 마공이 후대에 전해지 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마천 쟁투가 끝난 뒤 복수를 위해 스스로 그 무덤을 열기에 이른다.

초기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마동을 여는 것은 수호 가문의 이념 에 어긋난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 만 반대의 목소리는 쌍룡맹의 득세 에 조용히 묻혔다.

천빙동, 흑풍동, 적화동, 철금동. 네 개의 마동은 비슷한 시기에 열 렸고 마인들이 남겨 둔 절세 마공들 이 수호 가문의 전인들에게 전해졌 다.

하지만 단 한 곳.

봉뢰동만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넨, 이제부터 다른 일은 제쳐 두고 흑개방과 연계해 그자를 찾는 데 주력하게. 그리고 정체를 알게 되어도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내지 시를 기다리게. 그자가 벽력신마의 유진을 그대로 이었다면 풍신마의 힘으로는 감당해 내기가 힘들 걸 세.”

“벽력신마의 마공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진추성의 두 눈에 호승심이 떠올랐다.

“아마 다섯 마두가 동시대에 태어 났다면 신마란 별호는 그만의 것이 되었을 거네.”

“이거 긴장이 바짝 되는군요. 일단 흑개방도부터 만나 보고 진행 상황 은 추후 그들을 통해 전하겠습니 다.”

진추성은 가볍게 고개를 조아린 뒤 벽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하나의 거대한 성이 사막의 삭풍을 맨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빛깔이 섬뜩함을 자아내는 이 성은 타락한 신선, 그 러니까 중원에서는 마신이라 불리는 천마를 숭앙하는 마인들의 본거지였 다.

십수 년 전, 마천 쟁투에서 패배한 마천의 무사들은 마룡성으로 자연스 럽게 모여들었다.

마룡성은 그들에게 어미의 품과 같 았다.

제멋대로 떠난 자식들이었지만 마룡성은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 줬다. 어미의 품 안에서 마천은 과거의 성세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정공과 달리 마공은 속성으로 수련이 가능 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 회복세는 점점 빨라졌다.


“더는 놈들을 신뢰할 수 없다. 이 제는 우리가 직접 전면에 나선다.” 

붉은 용좌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 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두 눈 은 시리도록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 다.

청안마제 서진용.

오 년 전, 혈루쟁을 통해 새로이 마천의 천주가 된 이였다.

혈루쟁은 이름 그대로 피가 눈물이 되어 흐르는 치열한 사투의 장이다. 혈루쟁에서 승리하면 마천의 하늘 이 될 수 있기에 수많은 이들이 혈 루쟁에 출사표를 던졌고 서진용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베고 또 벴다.

그중에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친 우도 있었고 한배에서 난 형제도 있 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검을 휘두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중달!”

서진용은 자신의 발아래 엎드린 사 내들을 가볍게 훑은 뒤 맨 좌측에 시선을 고정했고, 그곳에는 유난히 얼굴색이 창백한 중년 사내가 고개 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는 서진용이 직접 임명한 마천의 총사로 사마의 성에 중달이란 이름 을 지니고 있었다.

“하명하십시오.”

사마중달이 고개를 들어 서진용과 눈을 맞췄다.

“역천회와의 연계는 오늘부로 끝이 다. 앞으로는 모든 계획에서 역천회 를 배제하고 진행한다. 이에 중점을 두고 새롭게 계획을 수립해라.”

“역천회 쪽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사마중달이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이었다. 그는 역천회와의 연계를 주도한 핵심 인사였다.

“우린 이미 놈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 단적으로 혈옥불을 떠올려 봐 라. 놈들은 그것만 내주면 중원으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 했지만 결과가 어떠하냐? 길이 열리기는커녕 되레 본천에 대한 경계만 강화됐다.”

“……”

“네가 역천회와 손을 잡기 위해 얼 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다. 하 지만 언젠가는 이쪽에서 먼저 내쳐 야 할 손이었다. 그 시기가 좀 앞당 겨졌다 여기고 미련을 버리도록 해 라.”

서진용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마중달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하지만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고 천주의 뜻을 따르겠다며 고 개를 조아렸다.

한 달 뒤, 서역의 거친 모래바람을 뚫고 일단의 무리가 동쪽으로 향했 다. 머릿수가 적어도 수백은 넘어 보였다.

무리의 선두에는 검은 깃발이 휘날 리고 있었고 그 깃발 한가운데에는 혈랑이 서슬 퍼런 눈빛을 발하고 있 었다.


쌍룡맹에서 돌아온 뒤 설우진은 평 온한 학관 생활을 이어갔다.

많은 이들이 맹에서 일어난 일을 물어 왔지만 괜한 구설수에 오르기

 싫어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렇게 열 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내일부터 승급 심사가 시작된다. 일 년간의 노력을 평가받는 자리니 최선을 다 해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란다.”

단상 앞에 선 적사호가 승급 심사 일정을 발표했다. 승급 심사는 일 년 동안 거둔 성적과 용익대전이라 불리는 실기 시험을 통해서 그 가부 를 결정한다.

용익대전은 상위 등급의 선배들과 겨루는 일종의 양자 간 대결로 승리 한 쪽에는 가산점이, 패배한 쪽에는 벌점이 주어진다.

그런 점 때문에 용익대전은 선후배 간의 훈훈한 분위기 대신 서로를 찍 어 누르려는 치열함만이 존재했다. 

“인창아, 문과도 용익대전 치르 냐?”

적사호의 일장 연설이 끝난 뒤 설 우진은 옆에 앉은 조인창에게 슬쩍 용익대전에 대해 물었다.

“용익대전은 학과 구분 없이 치르 는 걸로 알고 있어. 단 대결 상대는 같은 학과로 한정돼.”

“그 말은 문과생은 문과생끼리, 무 과생은 무과생끼리 겨룬다는 뜻이 야?”

“응.”

“그럼 대결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 는데? 설마, 문과니까 학식으로 실력의 고하를 판단하는 건 아니겠지……?”

설우진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말 꼬리를 흐렸다.

그는 황룡 학관에 들어와 지낸 일 년여의 시간 동안 자신의 머리가 남 들에 비해 그리 특출하게 뛰어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를 깨닫게 해 준 이들은 자스민을 비롯 한문과 동기생들이었다.

동기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자랑했고 설우진은 배우느라 쩔쩔맸던 무경찰서를 달달 외울 정 도였다.

무경칠서는 수대에 걸쳐 중원에 내려오는 병략서들이다.

세간에 잘 알려져 있는 손무의 손 자부터 오기의 오자, 사마양저의 사 마법, 울요의 울요자, 이정의 이위공 문대, 황석공의 삼략, 여망의 육도가 그에 속한다.

입관 전에 집중적으로 익혔던 손자 병법은 어찌어찌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지만 나머지 육 서에서 큰 벽에 가로막혔다.

진도를 따라가 보겠다고 자스민에 게 일대일로 과외도 받아 보고 밤낮 을 잊어 가며 책을 들여다보기도 했 지만 동기들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 어졌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황룡 학관에 지원하는 문과생들 대부분은 군사부의 참모를 목표로 각 고의 노력을 해 온 인재들이기 때문 이다.

“우진아, 대결 종목을 걱정하는 거 라면 안심해도 돼. 문과는 머리가 아니라 네가 자신 있어 하는 몸으로 겨루거든!”

“그게 정말이야?”

“응. 용익대전은 문무겸전의 인재 상을 표방하고 있는 황룡 학관의 의 지가 단적으로 드러난 제도야. 그래 서 무과생들은 머리로, 문과생들은 몸으로 대결을 펼치게 되어 있어.”

“이야, 누가 생각했는지 머리 참 잘 썼네. 용익대전 때문에라도 다들 평소에 자신들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려 할 거 아니야!”

“맞아. 덕분에 정심관이 무과생들 로 꽉 들어찼어. 아마 용익대전이 끝나기 전까진 발도 들이기 힘들 거 야.”

조인창이 얘기하는 정심관은 문과 생들이 애용하는 서고였다. 삼층 높이의 건물로 일 층에는 수천 권에 이르는 책들이 꽂혀 있고 이 층과 삼 층에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 도록 책상과 책상 사이에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설우진도 서너 번 정심원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물론 공부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 지만 한 시진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고요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한 그 특유의 분위기에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넌 정심원 안 가도 되냐?”

“난 괜찮아. 평소에 예습, 복습을 열심히 했거든.”

‘그래, 너 잘났다!’

설우진은 조인창을 사납게 흘겼다. 조인창은 모범생의 표본이었다. 수 업이 시작되면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학사의 말을 경청했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제자리에 남아 그 날 배운 내용을 복기했다.

그리고 무과생임에도 불구하고 항 상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녔다. 설우진과 함께 다니면 누가 무과생이 고 문과생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 도였다.

“넌 그렇다 치고, 벽이 놈은 이번 에 고생 좀 하겠다. 그 자식은 검 휘두르는 것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설우진은 애꿎은 남궁벽을 끌어들였다.

“누가 검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 는 게 없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다 들었냐?”

“그렇게 크게 얘기하는데, 못 들으면 농아지.”

화장실에 다녀온 남궁벽이 태산준령 같은 검미를 사납게 꿈틀거리며 설우진의 앞에 마주 앉았다.

이에 설우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남궁벽에게 기습적으로 문제 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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