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30화 : 혈전의 서막 (8권 끝)

랜덤 이미지

낭왕전생 8권 – 30화 : 혈전의 서막


혈전의 서막

“철마, 요마!”

“네.”

하우연의 앞에는 통일된 복색을 갖 춰 입은 무리가 나란히 대열을 맞추 고 서 있었다.

그들은 각기 철마와 요마로 명명되 는 자들로 사마중달이 귀마들을 본 떠 만든 칼이었다.

힘에 취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귀마 들과 달리 철마와 요마는 철저히 그 의 지시에 따르도록 세뇌되어 있었다.

철마와 요마는 각각 서른 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양보단 질이라는 사마중달의 지론 에 따라 소수 정예로 양성된 것이 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각각 철사자회 와 설가장을 친다. 두 곳 모두 쌍룡 맹의 영역 내에 있는 만큼 속전속결 로 움직여야 한다.”

“그곳에 있는 건 모두 죽입니까?” 

철마들의 수장인 위요신이 물었다. 그는 과거 악명을 떨쳤던 혈불의 마공을 이은 자로 사람을 죽이는 행 위 자체를 즐겼다.

“이번 일의 목적은 놈을 밖으로 끌어낼 미끼를 잡는 것이다. 하니 철사자회에서는 남궁벽을, 설가장에서 는 설무백을 데려와라.”

“그럼 나머지는……?”

“저항한다면 죽여도 상관없다. 하 지만 그곳에서 오래 발이 묶이면 곤 란하니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도록 해라.”

지시를 받은 철마와 요마는 곧장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에 흥분한 것 인지 그들은 금세 날 듯 내달리며 시야에서 저만치 사라졌다.

“우리의 목적은 마천 놈들을 밖으 로 끌어내 목적지까지 유인해 내는 것이다.”

“목적지가 어딥니까?”

“고월장이다.”

설우진은 산채를 나서기 전에 비검 대를 모아 놓고 앞으로 수행할 작전 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밤에 본 것이 있어서인지 다들 설우진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 울였다.

“고월장이면 황룡 학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군요?”

“그렇지, 애당초 뒤통수를 칠 목적 으로 그곳에 별동대를 모아 둔 거니 까.”

고월장은 황룡학관과 십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본래 황족의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그 황족이 불의의 사고로 죽 으면서 소유주가 바뀌었다.

그런데 소유주가 누군지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주인이 바뀐 뒤로 고 월장을 오가는 발걸음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마천의 전위 대는 강하다. 우리 중 한 명도 살아 남지 못할 수 있다.”

“목숨이 아까웠다면 애당초 비검대 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사는 게 좋겠지. 살고 싶다면 내 뒤만 죽어라 쫓아와 라.”

“너무 자신만만하신 거 아닙니까?”

유건호가 설우진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생채기에 난 자존심이 아직도 회복 이 되지 않은 듯 보였다.

“지난밤에 내보인 게 내 실력의 전 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아무렴 쌍 룡맹주께서 아무나에게 이런 중요한 임무를 맡겼겠어?”

“……”

“너야말로 자존심 회복하겠다고 혼 자 설쳐 대지 마. 마천 놈들이 작정 하고 덤벼들면 넌 십 초식도 버티지 못해.”

설우진은 유건호에게 단단히 경고 했다.

잠시 후, 설우진을 필두로 비검대가 산채를 나섰다. 그리고 곧장 황룡 학관이 있는 방향으로 경공을 전 개했다.

우거진 수풀도, 가파른 지형도 그 들의 앞길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갑갑해 죽겠군. 대체 이 좁아터진 곳에서 언제까지 사내놈들끼리 얼굴 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냐고.”

“크큭, 그렇게 불만이면 천주님께 찾아가서 얘기해 보지그래. 아마 천 주님께서 장하다고 그 머리를 쓰다 듬어 주실 것 같은데.”

“요! 날 죽일 셈이냐? 가뜩이나 요새 천주님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 다고 하시던데!”

황룡학관의 기숙사 자리에 백색과 흑색의 무의를 갖춰 입은 자들이 삼 삼오오 모여 있었다.

겉보기엔 오합지졸로 비춰지지만 그들은 마천을 대표하는 전위부대였 다.

흑색 무복은 암습과 요격에 능한 흑랑대였고, 백색 무복은 전면전에 서 활약하는 백랑대였다.

앞서 중원에 들어왔던 청랑대 그리 고 적랑대와는 달리 흑랑대와 백랑 대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중원 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들은 중원에 들어온 이후 로 싸움다운 싸움을 해 보지 못했 다. 마천과 쌍룡맹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자잘한 국지전을 제외하고 큰 싸움이 아예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다.

싸움 자체를 즐기기로 유명한 흑랑 대와 백랑대로서는 갑갑해 미칠 노 릇이었다.

“쌍룡맹 놈들은 대체 뭐 하는 거 야? 적이 코앞에 진을 치고 있으면 별동대라도 운영해서 타격을 줘야 지.”

백랑대주 고금추가 쌍룡맹을 싸잡 아 욕했다.

그는 육 척에 조금 못 미치는 왜 소한 체구에 마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 었다.

그의 불만 섞인 투정에 흑랑대주 요굉이 냉소적인 얼굴로 대꾸했다. 

“바랄 걸 바라. 제 몸 지키기에 급 급한 놈들이니 아마 위에서 그리 명 령을 내리면 다들 야밤에 도망쳐 버 릴걸.”

“에이, 설마.”

“설마가 아니야. 지난번에 수호 가 문과 박 터지게 싸울 때를 떠올려 보라고. 그 자식들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거의 싸움이 끝날 때 뛰어들었잖아.”

요굉이 지난 마천 쟁투를 상기시켰다.

“듣고 보니 그러네. 하아, 그럼 이 렇게 계속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건가?”

고금추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하늘에 간절한 그의 마음이 닿은 것일까, 갑자기 종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분명 침입자가 발생했을 알리는 신호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최대한 크게 소란을 일으켜라!” 

설우진이 선두에서 거침없이 천뢰 도를 휘둘렀다.

뇌기를 머금은 도강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마천의 무사들을 시원하게 갈랐다.

설우진이 활약할 동안 비검대도 가 만히 손 놓고 기다리지는 않았다.

다들 그간의 한풀이를 하듯 맹렬하 게 검을 내질렀다.

가장 돋보이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역시나 유건호였다.

그의 검은 정파의 것이라고는 믿기 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사나웠다. 살짝 베었을 뿐인데도 살갗이 터질 정도였다.

비검대의 활약 속에 입구 쪽에 배 치되어 있던 마천의 경비 병력들은 모두 정리됐다.

살아 있는 자는 전무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설우진의 시선이 본관 쪽으로 향했 고 아니나 다를까, 서로 경쟁하듯 흑랑대와 백랑대가 들이쳤다. 그 선 두에는 역시나 고금추와 요굉이 있 었다.

“겁쟁이들만 모여 있는 줄 알았더 니 쌍룡맹에도 용자들이 있었구나. 어디 한번 신명나게 어울려 보자.” 

고금추가 한발 앞서 달려 나갔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유성추 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부웅.

한껏 힘이 실린 유성추는 비검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이에 설우진은 비검대를 뒤로 물리 면서 유성추가 떨어질 자리로 천뢰도를 과감하게 올려쳤다.

피하지 않고 정면 대결을 택한 것이다.

이에 고금추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힘 대결에서 자신이 질리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단숨에 칼을 부수고 네놈의 머리 통까지 날려 주마.’

유성추가 천뢰도를 내리찍었다.

서걱.

시원하게 잘려 나갔다.

날붙이가 달려 있는 건 칼이니 잘려 나간 건 당연히 유성추였다. 

“이, 이게 어떻게……………?”

고금추는 토막 난 유성추를 보며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방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힘은 제대로 실었 다. 한데 한낱 칼 따위에 잘려 나가 다니.

“뭘 그렇게 놀라. 이게 네놈과 나 의 실력 차이야.”

설우진이 천뢰도를 거두며 한껏 이 죽거렸다.

부들부들.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단단히 망신 을 당한 고금추의 두 눈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눈에서 검은자위가 완전히 사라졌다.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백마안인가? 이거 등골이 오싹해지는데.’

설우진도 백마안에 대해서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저 눈을 보고도 목숨을 부 지한 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위험한 상대였다.

하나 그걸 알면서도 설우진은 싸움 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놈들은 바보가 아니야. 제대로 싸 우지도 않고 도망치는데 순순히 밖 으로 따라 나올 리 없지.’

설우진은 이번 작전에서 자신이 해 야 할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 다.

그 역할은 바로 미끼가 되어 마천 의 전위부대를 밖으로 끌어내는 것. 그리고 지금 그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네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주마.”

백마안을 발동한 고금추가 우리에 서 풀려난 한 마리의 맹수처럼 날뛰 었다.

백마안의 근간은 귀수마공이다. 귀수마공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야 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육체 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게 만 드는 역할을 한다.

쉬쉭.

처음보다 배 이상 빨라진 움직임으 로 고금추가 설우진의 가슴으로 파 고들었다.

이후 위로 치켜든 오른손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기습적인 일격에 설우진은 천뢰 도의 넓은 도신을 방패삼아 손이 날아드는 궤적을 옆으로 틀었다.

끼긱.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천뢰도에 가는 줄이 그어졌다.

어지간한 충격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천뢰도인데 손끝에 실린 힘이 대단했다.

공격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고금추는 예상하기 힘든 몸놀림으로 방어가 쉽지 않은 사각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때문에 설우진의 몸 곳곳에는 생채기가 생겼다.

막는다고 막았지만 고금추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크윽!”

설우진의 입술 새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고금추의 오른손이 기어코 설우진 의 방어를 뚫고 그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간 것이다.

옆구리가 금세 붉은 피로 얼룩졌 다.

설우진은 다급히 지혈하며 사위를 살폈다.

비검대는 흑랑대에 일방적으로 밀 리고 있었다. 벌써 서넛은 숨이 끊어진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달아올랐겠지.’

-모두 철수한다.

설우진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비검대에 전음을 보냈다.

비검대원들은 시체가 된 동료를 안 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랜덤 이미지